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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계층
가만있던 식물이 갑자기 움직인 것에는 조금 놀랐지만, 그래봤자 정면에서의 기습이다.
물속에 둥둥 떠 있는 상태라면 모를까, 바닥에 제대로 발을 디디고 있는 내가 반응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우왓! 깜짝이야."
나는 빠르게 다가오는 식물덩굴을 잽싸게 잡아챘다.
과연. 원래 세계에서도 물속에 살며 곤충이나 물고기 같은 걸 잡아먹는 식물이 있단 얘기는 들어본 적 있었다.
이런 식으로 덩굴을 뻗는 놈은 들어본 적도 없고, 하물며 인간을 습격하는 녀석은 더더욱 들어본 적 없기는 하지만.
뭐, 이런 식의 몬스터야 판타지 세계에 흔히 있는 설정이니까.
주로 능욕물 같은 거에서 많이 봤어.
내가 식물덩굴을 붙잡고 가만히 보고 있자, 갑자기 몸이 그대로 붕 들어 올려졌다.
"어, 어?"
아차. 땅에 발을 디디고 있다곤 해도 결국 여긴 물속이지.
식물이 가볍게 덩굴을 들어 올리는 것만으로도, 내 몸은 수중을 부유하게 돼버렸다.
잠깐 손발을 움직여봤지만 역시나 이렇게 뜬 상태에선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내 손에서 팔까지 타고 올라 단단히 감싸고 있는 식물을 떼어내기란 힘들어보였다.
헷. 하지만 난 이제 신체능력만이 전부인 놈이 아니라고.
내 정령 커터 맛을 똑똑히….
"우앗! 썅! 이거 뭐야! 야! 새끼야! 어디다 덩굴을 뻗어! 안 놔?!"
정령을 부르려고 한 그 순간, 식인 식물의 돌발 행동에 나는 정신 집중이 흐트러지고 말았다.
이 녀석. 무려 내 고간에 덩굴을 뻗은 거다.
심지어 갑옷 위도 아니고 안으로 덩굴을 집어넣어서.
아니 그야 물론 팔다리 같은 곳도 그러고 있으니까 딱히 내 정액을 갈취하려고 한다든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흠칫하잖아!
촉수를 생각하고 있었던 만큼 괜히 더!
그리고 그러고 있는 사이에도, 놈은 점점 더 내 갑옷 안으로 덩굴을 침투시켜왔다.
아니. 이제는 침투시키는 정도로 끝나지 않고 아예 갑옷을 벗겨버릴 기세였다.
"야!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야! 난 남자야! 촉수라면 촉수답게 여자를 능욕해라! 이 촉수 망신 다 시키는 놈아! 저기 잘빠진 미인들이 다섯이나 있는 거 안 보이냐? 눈깔이 옹이구멍이냐? 그래! 식물이니 옹이구멍이겠지! 아니. 잠깐. 기다려봐. 속옷 안은 진짜 안 돼. 야. 잠깐. 사과할게. 사과할 테니까. 넌 촉수의 자랑이야. 그러니까…으악! 그만 둬!"
물론 그런 내 혼의 외침도 상관없이, 놈은 더욱더 덩굴을 내게 뻗어왔다.
이제는 양 팔을 물론 양 다리까지 식물에게 휘감겨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
젠장. 이거 성자 스킬도 안 먹히고. 뭐 이래?
"얘들아! 뭐해! 구해줘!"
"……."
하지만 사라도 디아나도, 내 목소리에 반응하지 않은 채 그저 멍하니 날 쳐다보기만 했다.
"얘들아?! 대체 왜 그래?! 설마 아까 한 말 때문에 그래? 너흰 농담이랑 진담도 구분 못하는 애들이 아니잖아? 당연히 농담이었지! 그 눈은 뭐야?! 설마 내가 진심으로 그런다고 생각하는 거야?! 으아아아! 빨리! 진짜로! 농담 아니고! 빨리! 너희 서방님의 중요한 물건이 몬스터한테 더럽혀진다! 사라야! 디아나! 진짜 그러고 가만히 보고 있게?!"
내가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면서 외치자, 그제야 사라가 핫하는 표정이 돼서는 활시위를 겨눴다.
마나를 듬뿍 실은 화살이 식물의 중심을 뚫고 지나갔지만, 그래도 덩굴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젠장. 몰려다니는 놈보다 혼자 있는 놈이 강하다는 법칙은 식물한테도 적용되는 건가.
하지만 사라가 화살을 날리자 곧바로 디아나도 가세를 해줬고, 사라와 디아나의 공격에 겨우 내 몸을 휘감던 덩굴들이 차례차례 힘을 잃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후우. 겨우 해방됐네.
솔직히 말해서 촉수의 등장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설마 그 피해자가 내가 될 줄이야.
좀 더 므흣한 상상을 기대했는데 말이야.
"그나저나 너희 정말 너무한 거 아니냐? 레이아나 마틸다, 실비아까지는 그렇다 쳐. 사라랑 디아나 너는 어떻게 이렇게 될 때까지 보고만 있냐?"
나는 반쯤 벗겨진 갑옷을 보여주면서 사라와 디아나에게 강력하게 항의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여전히 뭔가 반응이 미묘했다.
아차. 그런가. 나만 공기에서 빠져나왔구나.
나는 다시 한 번 공기에 머리를 집어넣고는 아까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코, 코홈. 이, 이 몸이라는 자가 조금 방심했구먼. 설마 그런 식으로 공격을 해올 줄이야."
그러자 디아나의 대답이란 게 이 모양이었다.
얘가 지금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건가?
"거짓말하지 마라! 자기가 제일 먼저 발견하고 공격까지 해보라고 시킨 주제에! 넌 저게 몬스터인지 알았잖아!"
"그런 의미가…아니. 음. 뭐 아무것도 아닐세. 아무튼 무사하면 되지 않았나."
"아까 상어랑 싸울 땐 방심하지 말라던 애가 지금 무슨 말이야!"
"구, 구원. 너무 그러지 마. 우리 다들 그랬던 거고. 결국 다치지 않은 건 맞잖아? 평소엔 조금 다쳐도 터프하게 굴면서 오늘따라 왜 그래? 남자답지 않아."
사라가 디아나를 이렇게까지 감싸준다라. 이거 더더욱 수상한데.
아니 물론 사라와 디아나도 평소에 사이가 좋은 건 맞지만, 사라 얘는 아까 나랑 같이 디아나한테 혼났었잖아. 그런데도 디아나가 방심한 걸 감싸준다고?
게다가….
"…니들 왜 나랑 눈을 안 마주 치냐?"
"내, 내가? 그랬던가요? 디아나?"
"이, 이 몸은 모르겠구먼."
이것들 반응이 너무 수상한데. 얼굴도 묘하게 빨갛고.
대체 갑자기 왜 이런….
"구원씨!"
그때 레이아가 물살을 가로지르며 내게 다가왔다.
분명 난 자유형 자세를 가르쳐 준 것 같은데, 어째선지 자세는 개헤엄.
여우도 개과인 만큼 저 자세가 편한 걸까?
아무튼 팔을 휘저을 때마다 정신없이 흔들리는 가슴이 눈부셨다.
"어디 다치신 데 없으세요?"
개헤엄으로 내게 다가온 레이아는, 살짝 숨을 고르면서 내 얼굴을 쳐다봤다.
얼마나 서둘렀던 건지, 얼굴이 살짝 빨개졌을 정도였다.
역시 천사님이야.
사라! 디아나! 봤냐?! 좀 본받아라! 힘이 없으니 구해주진 못하셨지만, 끝나자마자 곧바로 치유하러 와주시잖아!
너희들은 구해줄 수 있으면서도 멍하니 있기나 하고!
라고 말하면 다음 위기 때는 정말로 안 구해줄지도 모르니까 직접 입 밖으로 내뱉진 않겠지만 말이야.
"응. 괜찮아."
"정말이신가요? 그…거기는…혹시 부끄러워서 그러신 거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니까요."
천사님은 그렇게 말하면서,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고 내 고간 쪽을 쳐다봤다.
부끄러워하시는 모습이 가련하기 그지없으셨지만, 뭔가 미묘하게 시선이….
"아니. 진짜 아무 문제없으니까. 오히려 거기가 제일 튼튼하니까. 아이언 페니스 몰라? 아이언 페니스!"
"자네 설마 선 겐가?!"
"아, 안 섰지만! 아무튼 괜찮아! 아무 문제없어!"
나는 이제 뭐가 뭔지 모르게 돼서 그냥 따지기를 포기하기로 했다.
대체 이 반응들은 뭐냔 말이야.
…어? 잠깐만. 문제 있다고 했으면 천사님이 내 물건을 이 자리에서 쓰담쓰담 해줬을 수도 있었던 거 아냐?
젠장! 난 대체 무슨 짓을!
"잠깐. 생각해보니 역시 물건, 정확히는 봉 부분에 문제가…."
"거짓말하지 마."
쳇. 들켰나.
사라의 냉정한 한 마디에 결국 나는 눈물을 머금고 이 천금 같은 기회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크흠. 아무튼 알겠는가? 이런 식으로 4계층에는 자네 기술이 통하지 않는 적들이 다수 존재한다네."
"젠장. 5계층에서는 적어도 내 스킬이 통하지 않는 놈은 없었는데. 어째서 4계층에서만…."
"애초에 동물에게만 극도로 효과적인 자네 스킬이 특수한 것 아니겠나. 이 기회에 성자 외의 직업 레벨을 올리도록 하게나."
역시 그럴 수밖에 없나.
그렇다면 여기서 제일 올리기 좋은 직업은 역시 정령사인가?
하지만 전위에서 싸우기 어울리는 직업은 아니란 말이지….
레이첼 누님 같은 전투방식도 있다고는 하지만, 난 딜러가 아니라 탱커니까 말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 몬스터들을 상대하기에는 내 정령사 레벨이 너무 낮다.
아까는 당황해서 정령으로 식물을 자르려는 시도도 했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직업 레벨도 스킬 레벨도 엄청나게 낮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렇다면 역시 남은 건 무투가와 암살자인가.
수중전이라는 특징상 그다지 좋진 않아 보이지만, 어쩔 수 없지.
적어도 식물들을 상대할 땐 성자보다 나을 테니까.
"하지만 저런 녀석들이 다수 존재한다니. 이 계층엔 그렇게나 식물형 몬스터들이 많은 거야?"
"음 이 몸이 알고 있는 것만도 몇 종류가 있네. 게다가 보통 이 계층에서는 이렇게 바닥을 걸어서 탐험하는 일이 없으니 말일세. 지금처럼 바닥을 걸어 다니다 보면 알려지지 않은 식물형 몬스터들이 더 등장할 지도 모를 일 아니겠나."
"우우…죄송합니다…."
"아니네. 딱히 실비아양을 탓한 것이 아닐세."
역시 디아나 이 녀석 실비아한테는 상냥하단 말이야.
하지만 그런가. 식물형 몬스터들이 그렇게나 있는 건가.
수중전투라는 것만으로도 귀찮아 죽겠는데 새로운 타입의 몬스터까지.
6계층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절반을 꺾었다 이거지.
과연 던전…아니. 잠깐만. 새로운 타입의 몬스터?
분명 전에도 이런 몬스터와 싸웠던 경험이 한 번 있었던 것 같은데….
"아앗!"
"뭐, 뭐야?! 왜 그래?!"
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자, 사라가 황급히 활시위를 당기며 주변을 살폈다.
"1계층에서 그 미역 놈!"
"음? 오, 오오! 과연! 그러고 보니 그게 있었구먼!"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챘는지, 디아나가 손바닥 위에 주먹을 톡하고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래. 분명히 방금 전 식인 식물 비슷한 놈을 전에도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1계층에서 처음으로 성기를 써서 통로를 내려갔을 때, 연못에서 튀어나온 그 미역 같은 놈.
4계층에서만 등장하는 타입의 몬스터가 1계층에서 나타났다?
그럼 혹시 그 연못과 4계층이 이어져 있는 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였다.
그야 물론 그 미역 녀석은 1계층에 다니던 우리도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로 약한 녀석이었으니, 과연 그 연못과 4계층이 직통으로 이어져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쩌면 개미굴 같은 소형 계층을 뛰어넘어서, 여기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개미굴도 하루 만에 주파가 가능할 정도로 규모가 작았으니, 어쩌면 3계층 마을에서 4계층까지 오는 것보다 더 시간이 단축될 수도 있는 일이고.
좋아. 뭔가 오랜만에 모험심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는데!
불확실한 정보를 검증하는 것보다 차라리 꾸준히 4계층에 다니면서 레벨을 올리는 게 낫지 않겠냐고?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시간제한이 있는 건 아니니까. 별로 서두를 건 없다.
6계층 이후로 가는 건 여신님과 다시 한 번 대화를 나누고 나서도 충분한 거고. 아니. 오히려 그래야 하고.
게다가 새로운 발견을 좋아하는 디아나도 분명 기뻐할 거다.
그리고 1계층의 연못이면 생명의 위기 같은 거 없이 안전하게 수영연습도 가능할 거고.
덤으로 수중 전투에 익숙해지기에도 좋은 장소다.
뭐야. 진짜로 가면 좋은 점밖에 없는 곳이잖아.
"얘들아! 당장 위로 올라가서 그 연못을…!"
"음. 그 전에 저 녀석들부터 처리하세."
또 물고기냐.
그래도 이번엔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을 거라고.
일반 몬스터한테 애먹는 건 처음 두 번으로 충분하다.
"선빵 치는 놈이 싸움을 지배한다!"
나는 앞으로 헤엄쳐나가면서 일단 성역 선포부터 냅다 사용했다.
그리고 놈들이 몰려오는 틈에 성자의 전력!
훗. 완벽한 콤보다.
"끄아아아아악!"
‘자네! 갑옷도 안 입었으면서 방어 자세도 안 취하고 대체 뭘 하는 겐가!’
뇌리에 디아나의 텔레파시 마법이 울려 퍼졌다.
젠장…. 설마 했던 죽은 촉수가 산 구원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전개라니….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벗겨진 고간의 갑옷에 물고기들이 아무리 달려들어 봤자 불굴의 성욕 스킬덕분에 고자가 되진 않을 거라는 점이었다.
아니. 전혀 위안이 되진 않지만. 그런 거랑 상관없이 고간이 무지하게 아프지만.
물고기 놈들이 물어뜯는 바람에 바지의 고간부분이 슬슬 한계에 달할 것 같기는 하지만.
크흐흑. 젠장….
나는 고간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참으며 성자의 전력을 휘감은 주먹을 열심히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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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Ray.I.seraim, 시원섭섭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안즈라미 // 지적 감사합니다. 중력에 영향을 안 받고 있다고 쓰려했는데 안을 빼먹었네요. 좀 더 자연스럽게 수정했습니다.
누굴지?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