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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389화 (37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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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계층

    그래서 우리는 현재 4계층의 밑바닥에 두 발을 대고 서있었다.

    참고로 아까처럼 디아나가 우리의 머리 주변을 잇듯이 공기를 만들어줘서, 지금은 대화가 가능했다.

    "이 사태는 아무리 이 몸이라도 예상을 못했구먼. 설마 파티원 중 절반이나 수영을 못 할 줄이야…."

    디아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맥주병 셋을 매서운 눈초리로 노려봤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레이아와 마틸다를 매서운 눈초리로 노려봤다.

    디아나 이 녀석 절대 얘들이 맥주병이라 화내고 있는 게 아니야.

    중간에 있는 실비아를 거쳐 갈 때마다 미묘하게 눈매가 상냥해지는 걸 보니 확실하다.

    뭐, 확실히 엄청난 광경이기는 하지만.

    금속갑옷을 입은 실비아나 가죽 갑옷을 입은 사라와는 다르게, 레이아와 마틸다는 수녀복 차림이다.

    그렇다곤 하나 아쉽게도, 정말 아쉽게도 옷에 방수 코팅처리를 해놨기 때문에 젖어서 몸에 딱 달라붙거나 하는 광경은 볼 수 없었다.

    다만, 부력의 힘에 의해서 뜨는 거다. 특정 부위가.

    젖진 않았다곤 하더라도 천 옷이다.

    특히 레이아의 수녀복은 몸에 딱 달라붙도록 내가 개조해놨었던 덕분에, 부력에 의해 잔잔하게 출렁이는 가슴이 너무도 눈에 띄었다.

    "우우…죄송합니다."

    "죄, 죄송해요…. 실은 물속에 들어오는 건 처음이라…."

    실비아는 짐이 돼버린 게 너무도 면목 없다는 듯이 죽을상을 하고 고개를 숙였고, 레이아는 두 손을 모은 채 배 앞에서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면서 사과를 했다.

    천사님 그러지 마세요. 그러니까 가슴이 더 강조 되잖아요.

    물론 나야 보기 좋지만, 슬슬 디아나의 표정이 울 것 같이 변했다고.

    "그, 그래요! 어쩔 수 없잖아요! 지금까지 바다 근처엔 가본적도 없는 걸요!"

    그리고 그렇게 당당하게 강한척하는 마틸다 역시도, 미안하긴 한 듯 시선을 우리에게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있었다.

    "대체 3계층에서 이어졌던 통로는 어떻게 빠져나온 거야."

    "그, 그거야…이렇게 벽을 집고요…."

    내 말에 레이아가 뭔가를 잡듯이 손가락을 살짝 구부리고 기어오르듯 양손을 휘저었다.

    우와 가슴의 현란한 무브먼트가…! 이대로라면 진짜로 위험해!

    나는 더 이상 디아나가 상처받기 전에 얼른 디아나를 끌어안았다.

    "히잉!"

    그러자 디아나는 살짝 귀여운 소리를 내면서 아무 저항 없이 내게 끌려왔다.

    그리고는 머리가 퐁당하고 물속으로 잠기더니,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진짜 상처 받은 거냐. 혹시 우는 건 아니지? 물속인데다가 마스크까지 껴서 느껴지진 않지만.

    나는 그런 디아나의 등을 오냐오냐 하듯이 톡톡 두들겨 줬다.

    "그나저나 이래선 4계층 탐험은 제대로 하지도 못하겠네."

    힐러인 레이아나 마틸다는 그나마 괜찮다고 치더라도, 든든한 방패가 돼줘야 할 실비아가 수영을 못해서야.

    "우으으…죄송합니다."

    실비아도 그걸 알기 때문인지, 더더욱 고개를 푹 숙이고는 얼굴을 들지 못했다.

    "아니. 사과할 건 없지만 말이야. 그럼 우선…이렇게 걸으면서 가볼까?"

    물속을 자유자재로 헤엄치면서 이동하는 것보다는 시간도 더 걸리고 탐색 범위도 한정되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면 일단 던전 탐험이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

    "하, 하지만…."

    "괜찮아. 나도 아까 땅에 발을 디디지 않고 있으니까 조금 힘들었거든. 여기 몬스터들에 익숙해질 때까지는 이렇게 이동하는 편이 더 안전할지도 모르겠어."

    "우으으으…구원니이임…히으으읏!"

    내가 그렇게 말해주자 실비아가 감동에 벅찬 얼굴로 날 쳐다봤다.

    내가 그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바로 진동했지만.

    던전 안이라도 전투 모드가 아니면 진동하는구나.

    물속이라 진동할 때마다 실비아 주변이 물결치는 게 느껴져서 조금 재밌었다.

    "음. 이 몸도 찬성일세. 그리고 자네들 셋은 전투 없이 이동하는 동안 수영연습도 하고 말일세."

    어느새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부활한 디아나가 그렇게 말하면서 실비아를 쳐다봤다.

    레이아와 마틸다 쪽은 눈길도 안 주기로 정한 모양이다.

    "그거 좋네. 그렇게 하자."

    그렇게 해서 우리는 일단 그 자리에서 기초적인 수영 강의를 시작하기로 했다.

    맥주병 셋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것도 생각보다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나도 수영장을 좀 다녀서 아는 거지만, 원래 수영 강의라고 하면 얼굴을 물에 박아서 물에 대한 공포를 없애는 훈련부터 한다.

    하지만 척 보니 셋 다 물에 대한 공포는 없는 모양이니, 그 단계는 생략해도 되니까 말이다.

    물에 대한 공포만 없어도 수영 강의는 크게 어려울 게 없다.

    "우선은 물에 뜨는 훈련부터 할까. 다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몸에 힘을 빼봐. 천천히 몸이 물에 뜰 거야."

    참고로 디아나가 계속 내 머리 높이 정도 일정 공간에 공기를 유지하고 있어줘서, 대화도 가능했고 지상에서나 가능할법한 수영강의 역시도 가능했다.

    "후으읍. 어, 어머?"

    "…신기하네요."

    그러자 바로 레이아와 마틸다의 몸이 천천히 떠올랐다.

    레이아는 떠오른 게 상당히 기분 좋은지, 털들이 한 올 한 올 풀어져 물속에서 가만히 흔들거리던 꼬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물론 나는 그 결과가 새삼 놀랍지도 않았다. 다 예상했던 바였으니까.

    역시나. 레이아와 마틸다가 수영을 못하는 이유는, 그냥 어디까지나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에 불과해.

    떠오르는 것만 놓고 보면 파티원 중 가장 적성이 있는 둘이다.

    속도 문제가 되면 반대로 가장 적성이 떨어지는 둘이지만.

    나는 시선을 살짝 아래로 향하면서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

    반면 문제는 가장 중요한 실비아였다.

    실비아는 물에 잠긴 채 전혀 떠오르지 못하고 있었다.

    실비아는 고개를 잠깐 갸웃거리더니, 자신과의 차이를 찾기 위해선지 레이아와 마틸다를 쳐다봤다.

    그리고 한 곳에서 시선이 멈추더니, 눈을 크게 뜬 채 충격 받은 표정을 지었다.

    슬픈 표정으로 갑옷에 가려진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지 마라!

    물론 그 차이도 아주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갑옷이니까! 스스로 만지고 있으면 눈치 채라고!

    그러니까 그런 표정 그만 둬! 디아나에 이어서 너마저 가슴 트라우마가 생겨서 어쩌려고!

    나는 황급히 실비아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는 실비아의 얼굴을 공기가 있는 곳까지 들어올렸다.

    이 녀석, 내가 만지고 있는데 진동도 안하고 있어.

    그 정도로 충격이었던 거냐.

    "실비아. 벗어."

    "…으헷? 엣? 헷? 여, 여, 여, 여기서 말입니까아?!"

    좋아. 드디어 진동하는군.

    다행히 실비아가 가슴 트라우마에 걸리기 전에 구출해낼 수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대신 난 사라한테 등짝 스매시를 맞아야 했지만.

    "아냐. 갑옷! 갑옷 벗으라고! 이것 때문에 안 뜨니까!"

    "이 바보야! 그럼 헷갈리게 말하지 마! 또 이상한 짓 하는 줄 알았잖아!"

    억울하다….

    "또 라니! 내가 언제…!"

    "그럼 평소에 안 했어? 변태 같은 짓?"

    …그야 했지만.

    "…물론 나도 착각해서 때린 건 미안하지만 말이야…. 좀 더 오해받지 않게 말 하란 말이야."

    내가 억울해하기도 전에, 사라가 그렇게 말하면서 아까 때렸던 내 등을 살살 쓰다듬었다.

    음. 그래. 어쩔 수 없지. 내가 오해하게 말을 한 걸. 용서해주지.

    "아무튼 그래서. 실비아는 갑옷을 벗고 다시 해봐."

    던전 안에서 갑옷을 벗는 것 자체가 위험하기는 했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수영을 못하면 전력으로서 크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수영을 할 수 있게 될 때까지는 그냥 얘도 힐러진들과 같이 후방에서 지내게 할 수밖에.

    "네, 네헷…."

    내가 다시 내려주자 실비아는 후다닥…이라고 하기엔 물속이라 느렸지만 아무튼 내게 조금 떨어져서 갑옷을 벗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셋이 맥주병이라니. 의외란 말이지. 실비아도 그렇고 레이아도 운동신경이 꽤나 좋으니까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전위 직인 실비아는 말할 것도 없고, 레이아도 구미호라는 종족 덕분인지 사제계열 직업치고는 민첩이나 체력 같은 스탯이 준수하니까 말이다.

    "그러네. 나도 실비아는 수영할 수 있을 줄 알았어."

    "반대로 디아나가 수영할 수 있는 것도 의외고. 사라는 둘째 치고 디아나는 수영 같은 거 절대 못할 이미지였는데."

    "잠깐. 나는 둘째 친다니. 무슨 뜻이야?"

    그야 시골 애들에 대한 서울 촌놈의 편견이지.

    라고 말하면 또 등짝 스매시 한 대 맞겠지?

    "아니. 사라도 운동신경이 좋으니까. 아무튼 그래서 디아나는 수영을 언제 배운 거야? 역시 이전에 4계층에 왔을 때?"

    "음? 아니. 이 몸은 수영 같은 거 못하네만."

    "…뭐? 그럼 지금은 어떻게…."

    "그야 마법의 힘 아니겠나!"

    디아나는 최고로 빛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어떠냐는 듯이 날 쳐다봤다.

    아니. 그 뭐랄까…수영 못하는 게 그렇게 자랑할 일은 아니지 않냐?

    물론 그렇게까지 섬세하게 마법을 운용하는 건 대단하지만 말이야.

    "아, 디아나씨 치사해요."

    "후훗. 치사하다니. 다 평소 마법을 갈고 닦은 덕분일세."

    라고 자부심을 한껏 드러내면서도, 디아나는 절대 레이아와 시선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

    "뭣하면 디아나도 같이 배워볼래? 좋은 기회잖아."

    "저 사이에 끼다니 절대로 싫네!"

    역시 그거 때문이냐.

    저기 네가 그렇게 아끼는 실비아는 그 사이에 껴있다고.

    "와왓! 구, 구원님! 떠, 떴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실비아를 바라보니, 실비아가 어느새 갑옷을 벗고 떠오르는 데 성공해서 눈을 빛내고 있었다.

    응. 응. 그래. 그래. 실비아는 그렇게 계속 이상한 트라우마 같은 거 걸리지 말고 순수하게 살아가다오.

    뭐, 디아나가 거유를 싫어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나 때문이지만.

    아무튼 그렇게 떠오르는데 성공했으니, 다음은 손발을 움직이면서 이동하는 연습만 하면 된다.

    원래도 이 단계까지 오면 수영은 거의 다 배운 거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여기선 마스크 덕분에 숨 쉬는 방법을 배울 필요도 없어서, 그 난이도가 더더욱 낮아졌다.

    간단한 강의를 통해서 셋 다 일단 기본은 습득했다.

    참고로 손발을 움직일 때마다, 중력의 영향에서 해방되어 흔들리는 가슴은 참으로 절경이었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행복한 기분이 드는 것이, 이 세계로 넘어와서 다행이라도 다시 한 번 느꼈다.

    역시 여신님은 아무런 꿍꿍이 없이 그냥 착하신 분 아닐까?

    뭐, 아무튼 그렇게 기초적인 수영 강의를 마치고, 우리는 이동을 개시했다.

    물론 셋 다 제대로 수영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테니까, 당분간은 땅을 걸으며 이동을 하게 됐지만 말이다.

    이렇게 땅 위를 이동하는 와중에도, 셋은 되도록 물에 떠서 헤엄을 통한 이동을 연습하도록 시켰다.

    "디아나 4계층의 마을은 얼마나 걸릴까?"

    "음? 최단거리로 직진해도 일주일은 걸릴 걸세. 하지만 이 속도로는…. 게다가 경로에는 초월종같은 것도 존재하니 말일세."

    그런가. 그럼 역시 이번 탐험에서 4계층의 마을까지 가는 건 포기하는 게 좋을까?

    아니. 하지만 매번 3계층에서 4계층까지 오는 것도 꽤나 번거롭단 말이지.

    물론 내가 매번 계층을 넘어갈 때마다 곧장 마을을 들러서 그렇게 느끼는 것뿐이지, 다른 모험가들은 그런 식으로 탐험하는 게 일반적이라는 모양이지만 말이야.

    그래도 역시 번거로운 건 번거로운 거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초월종이라….

    능력만 놓고 보면 3계층의 주인과 별 다를 거 없겠지만, 수중 전투라는 변수가 문제였다.

    뭐, 여차하면 디아나도 있고, 나도 성자 스킬을 풀로 발동해서 때려대면 크게 문제가 없을 것 같기는 하지만. 으음….

    "디아나는 어떡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마을을 찾아가는 것 말인가? 이번에는 포기하길 추천하네. 이 계층 역시도 자네 스킬이 통하지 않을 몬스터들이 있다네. 예를 들어 저런 녀석 말일세."

    디아나가 그렇게 말하면서 가리킨 곳에는, 땅 위로 식물이 자라나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응? 저 식물이 몬스터야?"

    "음. 한 번 시험 삼아 자네 스킬을 사용해보는 것은 어떻겠나?"

    나는 디아나의 말에 따라 식물을 향해 성자의 파동을 날렸다.

    하지만 결과는 역시나 무반응. 식물은 진짜 몬스터가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가만히 조류에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저거 정말 몬스터 맞아?"

    "음. 그럼 사라양. 이번엔 자네가 공격해보게."

    "네."

    사라가 활을 한 발 날리자, 바로 몬스터가 본모습을 드러냈다.

    보통 식물처럼 가만히 흔들흔들 흔들리던 것이, 갑자기 확하고 늘어나면서 우리를 덮쳐온 거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기습 연참!

    Tigerfish // 별 생각 없이 썼는데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공기저항을 그냥 저항으로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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