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388화 (372/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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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계층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서 오늘은 던전에 가기위해 길드로 왔다

    일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든, 거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선 힘이 필요하다.

    그리고 일단 6계층까지는 별 일이 없을 거란 확신도 있었고 말이다.

    여신이 영원한 생명을 얻은 걸 칭찬한 걸 보면, 딱히 시간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되고.

    우선은 레이아의 스킬 쿨 타임이 돌아올 때까지 던전을 다니면서 스스로의 힘을 키우자.

    나는 그렇게 결심했다.

    아, 참고로 내 의혹에 대해서는 다른 애들한테 딱히 얘기하지 않았다.

    저번 반응을 봐선 다들 여신님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 같았으니까 말이야.

    심지어 디아나마저도 그러니, 뭔가 더 단서가 생길 때까지 괜히 말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여신님이 뒤통수를 때릴지도 모른다는 건 어디까지나 그럴 가능성도 생각해둬야 한다는 정도로, 나도 증거라곤 하나 없이 심증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고.

    그렇게 여느 때처럼 파티 인원을 보고하고, 우리는 곧장 던전에 들어왔다.

    왠지 레이첼 누님이 기대에 찬 눈으로 날 쳐다봤던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또 여기부터인가요?!"

    그리고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하여 3계층에 들어오자마자, 마틸다가 살짝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뭐, 그 기분은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게다가 마틸다는 던전에 익숙하지 않으니 말이야.

    던전과 지상의 마나의 기운부터 다르다는 디아나의 설명을 듣고 난 이후라, 마틸다의 이런 모습이 더 이해가 갔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다면 그냥 안 따라오고 저택에서 쉬고 있으면 될 텐데.

    그건 또 싫은 건지 던전에 갈 때마다 따라온단 말이야.

    "어쩔 수 없잖아. 모험가 카드에 4계층에 있는 텔레포트 지점을 아직 등록 못 했으니까. 자, 가자. 이번에는 4계층 사냥이 목적이니까, 전보다 더 서둘러서 갈 거야."

    "우우우…."

    마틸다는 내게 등이 떠밀려서, 결국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축 처진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우리는 며칠간의 탐험 끝에 3계층의 주인이 있던 방에 다시 도착했다.

    아슬아슬하게 타이밍이 맞았던 건지, 아니면 리젠되자마자 다른 모험가 파티가 처리해버린 건지 그곳에 별다른 몬스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슬슬 리젠될 때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뭐, 리젠됐다고 하더라도 다시 잡아버리면 그만이지만 말이지. 별로 어려운 상대도 아니고.

    "어, 그러고 보니 안 보이네 거대 마석."

    "음? 자네는 몰랐는가. 던전은 그 지형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는 성질이 있다네. 때문에 한 번 만들어진 지도가 계속 유용한 게지. 거대 마석 역시도 그 원리에 따라 다시 빙하에 파묻힌 것이네."

    과연. 하긴 거대 마석이 계층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모양이니까.

    지형 유지도 마법으로 어떻게 되는 건가.

    "그보다는…자, 저기가 바로 4계층으로 통하는 통로일세."

    디아나가 가리킨 곳은 원래 계층의 주인이 있던 바로 그 자리.

    계층의 주인의 잠자리인지 나뭇가지들이 모여 있는 그 아래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래로 향해 뚫려있는 통로가 보였다.

    "…물로 막혀있는데."

    그리고 그 통로를 따라 어느 정도 걷다보니, 통로가 물로 막힌 곳에 다다랐다.

    설마 여기로 잠수해서 빠져나가야 되는 건가?

    "음. 당연하지 않은가. 4계층은 전체가 물이니 말일세. 바넷사가 챙겨준 물건 중 작은 가방이 있을 걸세. 그걸 꺼내보게."

    그러고 보니 그런 것도 받았었다.

    나는 디아나가 시키는 대로 인벤토리 안에 넣어뒀던 가방을 꺼내 그 내용물을 살펴봤다.

    "뭐야 이거."

    "처음 보는 물건이네요. 어디에 쓰는 걸까요?"

    사라도 살짝 가방 안을 엿보더니,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난 사라처럼 정말 몰라서 물은 게 아니었지만 말이야.

    뭐냐고 한 건 정말로 어디 쓰는지 몰라서 말한 게 아니라, 진짜로 이런 걸 쓰는 거냐는 뜻으로 말한 거였다.

    왜냐하면, 가방 안에는 군대에서나 보던 방독면 같이 생긴 게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게 있다면 정화통이 없다는 점과 이마부분 한가운데에 마석이 박혀있다는 점, 그리고 그 색이 투명하다는 점뿐이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방독면이라기보다는 그냥 투명한 마스크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지도.

    하여간 군대는 사람을 버려놓는 다니까.

    아무튼 물속에 들어가야 되는 생황에서 이렇게 생긴 걸 보여준 거다. 그러면 대충 쓰임새도 짐작이 가잖아?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도록 해주는 마법구일세. 이런 것 없이 이 몸이 마법으로 직접 해줄 수도 있기는 하네만, 던전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말일세. 이왕이면 도구를 쓰도록 하세. 일정 주기마다 마석을 갈아줘야한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던전 안에서라면 그 단점도 큰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니 말일세."

    "잠깐만. 디아나."

    "음? 뭔가?"

    "그러니까 4계층이 물이라는 건, 그냥 여기저기 물로 뒤덮여있다는 게 아니라 진짜 물속이라는 얘기였어?"

    "그 말대로일세. 이 몸은 처음부터 그렇게 얘기했다고 생각하네만."

    진짜냐. 나 혼자 착각하고 있었던 건가.

    "아무튼 그런 거니 다들 이 마법구를 장착하게. 아, 참고로 4계층은 그 특징상 서로간의 대화가 힘드네. 다들 각별히 주의하게나."

    디아나의 설명을 듣고, 우리는 다들 각자 그 마법구를 착용했다.

    군대에서 썼던 방독면처럼 안면을 꽉 조여 오는 느낌은 들지 않았고, 막상 착용해보니 착용감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 투명한 재질 덕에 우리 애들의 미모가 가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얼핏 보면 그냥 맨 얼굴 상태에다가 이마에 보석만 박혀있는 걸로 보일 정도였다.

    역시 판타지 세계. 기술력이 장난 아니란 말이야.

    "이걸로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는 건가. 그럼 가볼까?"

    "네."

    그렇게 다들 마법구를 착용하고, 우리는 물속으로 들어갔다.

    통로를 헤엄쳐나가자, 어느 순간 탁 트인 공간으로 나가게 됐다.

    이 광경을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마치 심해 속으로 스쿠버다이빙을 한 것 같은 기분이다.

    앞뒤좌우위아래 어디를 둘러봐도 끝없이 물로 채워져 있었다.

    다만 다른 계층과 마찬가지로 이 계층 역시 어딘 선지 모르게 빛이 들어와서 주변은 환히 보였다.

    뭐, 그래봤자 물 속이다보니 시야가 그렇게 좋은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내가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고 있자,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뒤를 돌아보니 사라가 입을 뻐끔뻐끔 거리면서 뭔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그곳에는 상어처럼 생긴 몬스터 몇 마리가 이쪽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4계층에 오자마자 바로 이거냐.

    뭐, 그래봤자 우리 파티의 실력이면 아무리 4계층이라고 하더라도 일반 몬스터 상대로 고전하지는 않을 거다.

    나는 별 긴장감 없이 곧바로 상어 쪽을 향해 헤엄쳐나갔다.

    그리고 그 사이에 사라는 녀석들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물속이기 때문에 기파로 된 사라의 화살이 더욱 확실하게 보였는데, 묘하게 평소보다 그 위력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건 내 기분 탓일까?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기파로 된 화살은 상어들에게 별 다른 데미지를 주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데미지를 주기는 했지만,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상어의 피부에 생채기를 낸 정도로 끝났으니까 말이다.

    물론 사라가 화살에 마나를 실은 것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공격이었다고는 하지만 이 결과는 조금 충격적이었다.

    3계층에서 평타만으로 무자비하게 몬스터들을 학살하고 다녔던 사라인데.

    안 그래도 4계층으로 내려오면서 몬스터들의 방어력이 강해졌는데, 저항이 강한 물속이라는 점까지 겹쳐서 저런 결과가 나온 모양이다.

    그리고 공격을 받은 상어들은 가까이 있던 나에게 사라에게로 곧장 타겟을 옮겼다.

    이런! 이렇게 되면!

    나는 곧장 성자의 전력을 사용하고 팔다리를 뻗어서 옆을 스쳐지나가는 상어들을 건드리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아무리 높아진 스펙을 바탕으로 하더라도, 여기는 물속.

    지상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한 마리는 가까스로 건드리는데 성공했지만, 그뿐이었다.

    나머지 놈들은 내 옆을 유유히 빠져나가서는 곧장 사라에게 향했다.

    사라!

    나는 들릴 리 없는 외침을 외치며 곧바로 놈들을 따라가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일단 물속에서 물고기 놈들 보다 빨리 헤엄친다는 것부터 불가능할뿐더러, 유일하게 내게 닿은 상어 한 마리가 집요하게 날 괴롭혔기 때문이다.

    나는 얼른 녀석을 정리하기 위해 주먹질을 해봤지만, 그마저도 데미지는 별로 나오지 않았다.

    물론 내 무투가 레벨이 낮은 것도 영향이 없진 않겠지만, 무엇보다 발을 땅에 디디지 않고 있다 보니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는 거다.

    젠장.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지금은 우리 애들도 말려든다든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

    내가 나머지 놈들의 어그로를 먹기 위해서 성역 선포를 쓰려고 했을 때, 갑자기 놈들이 있던 곳의 주변에 화악하고 동그랗게 공기가 생겨났다.

    바로 디아나의 마법이었다.

    갑자기 공기 중으로 몸이 내던져진 놈들은 중력의 힘에 따라 그대로 아래로 추락했고, 덕분에 사라를 습격하는 건 한 차례 늦출 수 있었다.

    ‘자네 뭘 하는 겐가! 집중하게!’

    마법인지 머릿속으로 디아나의 그럼 외침이 생생하게 들려왔다.

    그런가. 바람마법을 저런 식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건가.

    나도 마음만 먹으면 바람의 정령을 이용하여 저렇게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면 제대로 모든 몬스터의 어그로를 끌 수 있었을 테고, 처음부터 이렇게 애먹을 리도 없었는데.

    너무 안일했다.

    자책하는 마음은 들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우선은 눈앞의 적들을 처리하는 게 우선이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제대로 성역선포의 영역을 조절하여 상어들만이 범위 안에 들어오도록 한 후 발동했다.

    그러자 상어들이 내 주변으로 몰려왔지만, 이번에는 아까처럼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허우적거리지는 않았다.

    방금 디아나가 시범을 보인 대로 바람의 정령을 이용하여 놈들의 진행 경로에 공기를 만들어냈다.

    내 몸 주변을 전부 공기로 감싸는 것도 잠깐 생각해봤지만, 그러면 아까 전에 봤던 상어들처럼 나도 바닥으로 추락하여 다시 물속에 잠길 뿐이다.

    그러니 이렇게 놈들의 진행 경로를 막는 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몇 번 그렇게 진로 방해를 하다 보니 놈들도 슬슬 익숙해졌는지 점프하듯 공기로 찬 공간을 뛰어넘기 시작했다.

    뭐, 아직 난 바람의 정령을 다루는 게 익숙하지 않으니 말이야.

    게다가 마나 문제도 있고.

    이렇게 적절하게 상어들의 진로를 틀어막는 것만으로도 칭찬받을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렇게 점프하듯 공기로 된 공간을 뛰어넘어서 내게 다가온 놈들은 속도가 꽤나 줄어있었기 때문에, 몸을 가누기 힘든 물속에서도 그럭저럭 공격을 피해낼 수 있었으니 아무 문제  없었다.

    물론 이 상태로는 나도 변변히 공격을 하지 못하게 되기는 하지만,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요즘 파티에서 내 역할은 탱커니까 말이다.

    이렇게 어그로만 잘 끌고 있어줘도 나머지가 알아서 잘 해줄 거다.

    내 기대에 부응하듯 곧바로 마나를 가득 싫은 기파의 화살이 날아와 상어의 몸을 꿰뚫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디아나가 큼지막한 마법을 완성한 듯, 상어들 주변의 조류가 급변했다.

    마치 소용돌이치듯이 급속도로 움직이는 물의 흐름은 그 안에 있는 상어 떼의 몸을 갈가리 찢어 놨다.

    드디어 끝난 건가.

    대체 일반 몬스터들 상대로 이렇게 고생한 게 얼마만인지.

    3계층의 주인을 손쉽게 처리해서 자신만만하게 들어온 우리에게 던전이 얕보지 말라고 경고를 한 것 같은 싸움이었다.

    그리고 싸움이 끝나자마자, 디아나가 모이라는 듯 손을 까닥까닥 움직였다.

    나와 사라가 다가가자, 디아나가 바로 우리의 머리 주변에만 이어지도록 크게 공기를 만들었다.

    "자네. 처음 그 대처는 뭔가? 사라양도, 처음 본 몬스터 상대로 전위가 주의를 끌기 전에 선공을 가하다니. 무슨 생각을 하는 겐가!"

    "미안."

    "미안해요. 디아나."

    오랜만에 듣는 디아나의 꾸중에, 우리는 그렇게 사과하는 것 말고는 할 말이 없었다.

    "요즘 쉬운 몬스터들만 상대했다고 해서 너무 풀어진 것 아닌가? 던전 탐험은 장난이 아닐세."

    확실히. 그건 부정할 수 없었다.

    요즘 싸운 몬스터들은 거의 다 한 방 거리였으니 말이야.

    나도 방금 일반 몬스터한테 고전한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단 생각을 했을 정도니.

    너무 풀어졌어.

    "미안. 앞으로 주의할게."

    "저도요. 너무 안일했어요. 앞으로 주의 할게요."

    "음. 자네도 사라양도 하려고 마음 먹으면 할 수 있는 자들 아닌가. 좀 더 신중하게 주의를 기울이면 4계층의 몬스터들 상대로도 그다지 고전하지 않을 걸세. 일반몬스터들의 능력 자체는 3계층의 초월종과 비슷한 수준이니 말일세."

    크흑. 꾸중했다가 다독여주는 우리 디아나 할머…누나의 섬세한 마음씀씀이에 눈물이 나려고 한다.

    "그보다 다른 자들은 대체 왜 안 오고…아."

    "응?"

    디아나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보니, 맥주병 세 명이 열심히 허우적거리면서도 밑으로 밑으로 가라앉고 있는 중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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