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384화 (368/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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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던전 안에는 마신이?

    자,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할까.

    사라의 몸이 위험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마신의 존재는 확정된 거다.

    게다가 상대는 전쟁신.

    그 가호를 받았다는 용사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 무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겠지.

    그런 놈을 상대해야 한다니.

    상대가 생명체이기만 하다면 그 누구에게도 질 생각이 없다고 자부하고 있는 나지만, 아무리 성자 스킬이라고 하더라도 신에게까지 먹힐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대책이라고는, 할 수 있는 최대한 강해지는 것밖에는 없다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당장 던전에 가서 단련을 하고 싶기는 하지만 말이야.

    장비도 디아나가 던전에 가기 전에 전부 강화 및 수리를 끝내놨고, 시간도 아직 점심때로 던전에 가기에 적절한 시간이다.

    다만 한 가지. 디아나가 막 던전을 다녀온 직후라는 게 문제란 말이지.

    디아나 본인에게 말하면 아마 괜찮다고 하겠지만, 파티장으로서는 그렇게 무리를 시킬 수 없었다.

    게다가 아까 디아나가 말하지 않았던가.

    던전에 흐르는 마력은 지상의 마력과 달라서 쉽게 지치게 된다고.

    적어도 하루는 쉬게 해줄 필요가 있겠지.

    나는 내 허벅지 위에 앉아있는 디아나를 가만히 쳐다봤다.

    내가 레이아와 떨어지자마자 허벅지를 차지하고 앉은 디아나는,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한창 릴렉스하는 중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랑 며칠 동안 얼굴을 못 봤었으니까 말이야.

    어젯밤에도 결국 평소보다 훨씬 조금 하다가 기절해버렸고. 뭐, 내용자체는 농후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그래서 디아나는 지금 내 허벅지 위에 올라타서 맘껏 내 온기를 느끼는 중이라는 말이다.

    "후아아…음? 자네?"

    잠깐 생각하느라 머리를 쓰다듬는 손이 멈추자, 디아나가 풀어진 표정으로 날 올려다봤다.

    "아니. 아무것도."

    나는 다시 디아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생각을 계속했다.

    이렇게 비어있는 시간에 레이첼 누님과 했던 식사 약속이라도 해결하고 올까 싶었지만, 이 모습을 봐선 오늘은 디아나랑 놀아주는 게 좋을지도.

    그러고 보니 레이첼 누님, 낮엔 항상 안내원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같이 식사를 할 수 있기는 한 걸까?

    어제 보니 퇴근도 엄청 늦게 하는 모양인데.

    "이봐요."

    "응?"

    멍하니 그런 생각하고 있었을 때, 마틸다가 말을 걸어왔다.

    "그게…부탁이 있어요."

    "응? 아, 아아. 미안. 지금은 좀…조금 이따가 하자."

    별로 꺼림칙한 일이 아니기는 하지만, 디아나가 허벅지 위에 앉아있는 상황에서 이런 얘기를 하기는 좀 그랬다.

    나는 마틸다의 목뒤로 손을 뻗어서 그 얼굴을 내 얼굴 가까이 가져오게 하고 조그맣게 속삭였다.

    "으읏…! 아아…네에…이따가…핫! 그, 그 부탁을 하려는 게 아니거든요! 그, 그야 그것도 얼른 해줬으면 좋겠지만…. 아, 아무튼 지금은 그런 게 아니라고요!"

    잠깐 몽롱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려고 했던 마틸다였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그렇게 소리쳤다.

    저 마틸다가 그 특유의 핑크빛 분위기에서 저렇게 빨리 빠져나오다니.

    저주를 푸는 것 말고 뭔가 중요한 부탁이라도 있는 건가?

    "그래? 뭔데?"

    "그게…신전에 조금 가고 싶은데요."

    정말 중요한 부탁인줄 알고 장난기 없이 물어봤지만, 돌아온 대답은 의외로 평범한 부탁이었다.

    아니, 추기경씩이나 되는 사람이 벌써 며칠이나 신전에 가지 못한 거고, 생각해보니 본인한테는 중요한 부탁인 건가.

    하지만 레이아보다 먼저 나한테 이런 부탁을 하다니.

    마틸다도 나 없이 밖에 맘대로 돌아다니는 건 절대 안 된다는 자각이 생긴 모양이다.

    레온 녀석한테까지 반할 뻔 했으니, 드디어 위기의식이 생긴 건가?

    "음…하지만 신전은…오늘은 말이야."

    "이 몸을 신경 쓰는 거라면 그럴 필요 없네."

    디아나를 핑계로 마틸다의 부탁을 거부할 셈이었지만, 디아나에게 선수를 뺏겼다.

    "으, 응?"

    "음. 어차피 자네도 교단의 동향을 파악해야하지 않겠나. 지금쯤이면 신전 내에도 충분히 소문이 퍼졌을 걸세. 전에 자네가 했던 말들을 교단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오는 게 어떻겠나? 어차피 자네 스스로 내뱉은 이상,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도 아닐세."

    디아나는 찻잔을 다 비우고는 그렇게 말하더니, 내 허벅지 위에서 폴짝 뛰어 내려왔다.

    내가 요즘 일부러 신전에 안 가는 이유를 눈치 채고 있었던 모양이다.

    젠장. 미리 퇴로를 막아버리다니.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나.

    그렇게 해서 나는 거의 떠밀리다시피 레이아, 마틸다와 함께 신전으로 향하게 됐다.

    아, 덤으로 실비아도.

    "우아우우우…."

    같이 가자는 말을 안 하니까 몰래 스토킹하려고 하기에, 그냥 붙잡아서 같이 데리고 왔다.

    우리 마차 타고 왔는데 말이야. 대체 어떻게 스토킹 할 셈이었을까.

    그야 실비아가 전속력으로 달리면 마차도 따라잡을 수 있겠지만, 그러면 이미 스토킹이 아니지 않아?

    아무튼 신전에 가는 내내 나는 마음이 편치 못했다.

    마신에 대한 대책, 사라의 안전 확보, 공주와의 내기, 레이첼 누님과의 약속.

    안 그래도 신경 쓸 게 많아 죽겠는데 이런 일까지 신경써야한다니.

    젠장. 아무리 그 장소를 벗어나기 위해서라지만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덤으로 이렇게 마틸다도 신경 써야 하고.

    "야. 떨어지지 말고 딱 붙어있어."

    "아, 알고 있어요!"

    "어차피 길은 내가 걸으니까, 넌 딴 데 보지 말고 나만 바라보고 있어. 알겠지?"

    "네…당신만 바라보고 있을게요."

    내가 마틸다의 허리를 끌안으면서 말하자, 마틸다가 정말로 내 얼굴만 지그시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마차를 타고 왔다고는 하나, 마차에 내려서 신전 안에 들어가기까지 위험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말이야.

    나는 지금 마틸다의 옆구리에 팔을 두르고 딱 붙어서 걷고 있는 중이었다.

    차라리 얘가 저주 때문이 아니라 그냥 순수하게 날 좋아하는 거였다면….

    날 몽롱한 눈으로 쳐다보는 마틸다를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지금 고민하는 것 중, 마신에 대한 대책이나 사라의 안전에 대한 의혹을 완벽히 풀 수 있는 수단이 딱 하나 있기는 했다.

    바로 마틸다에게 사도 임명을 하고 여신 강림 스킬을 배우게 하는 거다.

    그렇게 한다면 굳이 레이아의 여신 강림 쿨 타임을 기다릴 것도 없이 바로 여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하지만 말이지….

    그렇게 하기에는 걸리는 게 너무 많았다.

    우선 우리 애들의 심정.

    지금 나는 우리 애들이 엄청나게 관대하게 봐주고 있는 상황이다.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실비아나 마틸다도 결국 정기적으로 관계를 가지는 사이가 됐고, 그 외의 다른 여자들과도 필요하면 관계를 맺어도 된다고 허락한 상황.

    그리고 우리 애들이 이렇게까지 허락해주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사도 임명일 거다.

    사도 임명은 자신들만이 받고 있다는 버팀목이 있기 때문에, 우리 애들도 여기까지 관대해질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이 이상 사도 임명을 해버리면, 과연 우리 애들이 어떻게 나올지는….

    사라가 위험에 처하는 것도 두렵지만, 그 이상으로 우리 애들의 애정이 식어버리는 건 더 두려웠다.

    때문에 나는 해결책을 눈치 채고도 일부러 말 안하고 있었다.

    내가 눈치 챈 거다. 아마 다른 애들도 이 해결책에 대해서 눈치는 채고 있겠지.

    하지만 아무도 그에 대해 언급을 안 했다는 건, 역시 다들 내가 이 이상 다른 사람에게 사도 임명을 하는 건 싫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게 맞겠지.

    게다가 만약 우리 애들이 이해해준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하나 더 남아있었다.

    바로 마틸다의 진심을 내가 모른다는 거다.

    만약 마틸다가 진심으로 날 좋아하고 있는 거라면 아무 문제없다.

    하지만 만약 그냥 저주 때문에 날 좋아하고 있는 거라면?

    저주가 풀려서 나를 사랑하는 감정이 완전히 사라졌는데도 여전히 내게 사도 임명으로 종속되어 있으면, 그것만큼 고통스러운 것도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통해 마틸다의 진심을 듣는 방법도 생각해봤지만, 만약 그때 마틸다가 날 좋아한다고 대답하더라도 그게 사도 임명이 성공할 정도의 감정인지는 확신할 수 없는 거고.

    아무튼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마틸다를 통해 여신과 대화한다는 것은 반쯤 포기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차피 6계층 너머로 가기까지는 시간이 충분히 있으니, 그 전에 레이아의 여신 강림 쿨타임이 다 돌 거라고 스스로를 납득 시키면서.

    "어머. 오랜만이군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어느새 우리는 대사제님이 계시는 곳까지 와있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대사…소피아씨."

    "그러고 보니 들었어요. 세상에 있는 모든 고통 받는 남성들을 구원해주겠다고 선언하셨다면서요? 과연 여신님의 사자다운 행동이네요. 처음에는 조금 못미덥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듬직하게…후훗. 여신님의 사자 상대로 조금 실례였나요?"

    그리고 인사를 나누자마자, 강렬한 훅 한 방이 들어왔다.

    이쪽에서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저쪽에서 먼저 그 얘기를 꺼내다니.

    대체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 거야.

    아니, 그야 신전은 애초에 그런 사람들 상대로 교육까지 할 정도니까, 그야 기대하는 것도 이해는 되지만 말이야.

    게다가 묘하게 소문이 부풀려져있었다.

    뭐야. 세상에 있는 모든 고통 받는 남성들을 구원한다니. 바보 아냐?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평생 강의만 하러 다녀도 그런 건 불가능하겠다.

    아니. 평생 남의 떡치는 모습만 봐야 된다면 애초에 자살을 택하겠지만.

    "하, 하하. 아뇨. 그럴 리가요. 제가 이렇게 성장한 것도 다 소피아씨의 교육 덕분이죠. 요즘 잘 못 와서 죄송해요. 잘 계셨나요?"

    물론 나는 그런 감정은 전혀 드러내지 않고, 웃으면서 대답을 해줬다.

    이럴 땐 대화의 방향을 바꾸는 게 제일이다.

    "네. 잘 지냈어요. 그리고 미안할 거 없어요. 당신이 얼마나 바쁘게 활약하고 있는지는 다 듣고 있는 걸요. 교황청에서도 얼마 전에 또 소식이 들려왔는데, 마틸다 추기경님의 저주를 받았던 남성들이 또 한 차례 해방된 모양이더군요. 그러고 보니 마틸다 추기경의 저주 해제를 우선하기 위해 남성들의 구원은 뒤로 미루셨다고 했는데, 보아하니 마틸다 추기경의 저주를 완전히 푸는 건 꽤나 시간이 걸릴 것 같더군요. 구원씨만 괜찮다면 틈틈이 남성들의 해방도 진행하시는 게 어떤가요? 어차피 매일 마틸다 추기경을 안는 것도 아니잖아요?"

    틀렸다. 어떻게 잘 받아넘겼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얘기가 그 얘기로 돌아와 버렸어.

    대체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 거야.

    소피아 대사제님이 평소완 다르게 묘하게 고양된 것처럼 보이는 게, 정말로 내 활약을 기대하고 있다는 게 엄청난 압박감과 함께 전해져왔다.

    "하, 하하…그, 그게 말이죠. 그러니까…그, 그래! 실은 구상중이에요! 모두를 구원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제 몸은 하나. 평범한 방식으로 하나하나 지도해나가면 평생을 바치더라도 모두를 구원하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요. 그러니까 지금은 어떻게 하면 모두를 구원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열심히 구상중이에요. 뭔가 떠오를 듯 말듯한데, 잘 생각이 나지 않네요."

    "어머. 그런가요? 그런 거라면 저도 같이 고민해보죠. 그렇군요…. 아! 이건 어떤가요? 구원씨가 일단 저희 사제들에게 1 대 1로 가르쳐주고 그걸 또 저희 사제들이…."

    "대, 대사제님!"

    소피아 대사제가 그렇게 말하자, 레이아가 당황해서 말을 막았다.

    걱정 마 레이아. 안 할 거니까.

    그보다 소피아 대사제님. 지금까지 장모님처럼 생각하고 있었는데 레이아 앞에서 그런 말을 하다니. 대체….

    "어머. 레이아. 뭔가요? 설마 교육에 질투하는 건가요? 후훗. 설마 그 레이아가 그런 식으로 자기중심적인 감정 표현을 할 수 있게 되다니."

    "대, 대사제님도 참! 그런 거 아니에요!"

    소피아 대사제님이 조금 놀리듯 말하자, 천사님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가련하시다.

    "후훗. 괜찮아요. 칭찬하는 거예요. 성장했네요 레이아. 당신은 좀 더 그런 식으로 자기중심적이 될 필요가 있어요. 지금까지 너무 이타적이었으니까요."

    "대사제님…."

    뭔가 이런 반응을 유도했다는 듯이 좋은 얘기처럼 흘러가고 있지만, 방금 말했던 사제들에게 교육 어쩌고는 아마 진심이었을 거다. 눈이 전혀 농담하는 눈이 아니었어.

    하지만 그런 건가. 대사제님 안에서 교육이랑 사랑이 담긴 섹스는 별개인 건가.

    역시 이 세계의 상식은 내 상식이랑 묘하게 어긋나있단 말이야.

    그나마 우리 애들은 나랑 있었던 시간이 길어서 그런지, 내 상식에 오히려 더 적응한 모습이니까 괜찮지만 말이야.

    "저도 그 의견은 좀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사제분들을 교육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직접 교육하는 것만큼의 효과는 안 생길 것 같으니까요. 그런 방식으로 모두를 구원한다는 건 불가능할 것 같네요."

    "어머. 그런가요."

    저 반응. 역시 아까 한 말은 진심이었어.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asfdgads // 오타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BORNTOK // 제가 말을 좀 생략하는 버릇이 있는데 그게 또 튀어나왔네요. 문장 수정했습니다.

    NUMB3RS // 이 세상은 어차피 왕정 국가라 용사도 당연히 왕을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도 굳이 용사의 핏줄을 왕가에 넣으려고 한 건, 혹시 있을 반란에 용사가 가담하거나 용사가 다른 나라에 넘어가는 등의 행동을 막기 위함이죠.

    그런데 공주가 구원과 결혼하면 사라의 후손인 용사들과 왕가는 둘 다 구원의 핏줄이라는 끈으로 묶이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용사 가문과 왕가는 당연히 더 친밀한 사이가 될 거고, 용사가 다른 나라로 넘어갈 가능성은 없어지는 거나 마찬가지. 반란같은 걸 일으킬 확률도 매우 줄게 된다.

    라는 뜻으로 쓴 거였습니다.

    디아나가 거기서 일일이 이런 교육까지 하면서 설명하는 건 이상할 것 같아서 말을 좀 줄였는데, 전달이 잘 안 된 모양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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