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383화 (367/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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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안에는 마신이?

"하지만 마신에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전혀 모르는 이상, 대책을 세울 수도 없구먼."

나는 기대를 해봤지만, 역시 디아나라도 이렇게까지 단서가 없는 상황에서는 뭐라고 말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굳이 짐작해보자면 거대 마석의 정화겠지만…."

"거대 마석의 정화?"

"음. 마신의 존재가 확정된 것으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네. 그동안 수수께끼에 쌓여있던 내용이었네만, 실은 던전 안에 존재하는 마나는 지상의 마나와 달랐다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자네도 알다시피 대기나 사물, 이 세상의 모든 것에는 마나가 존재하네. 사람마다 고유의 파장이 있고 조금씩 다르긴 하네만, 마나라는 큰 틀의 기질이라고 해야 할지 기운이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그런 느낌은 다 비슷했네. 다만 던전 안에 흐르는 마나는 그 기운부터가 꽤나  이질적이었지. 때문에 던전 안의 마나는 이 세계의 사람들이 곧장 사용할 수 없다네. 게다가 대기 중에 흐르는 그 이질적인 마나 때문에 던전 안에 오래있으면 오래 있을수록 숨 막힐 정도로 갑갑하고 피로가 쉽게 쌓이지. 자네도 느끼지 않았는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피로감이 점차 커져가고, 마나의 회복도 지상보다 느리다는 것을 말일세."

확실히…. 게임에서도 기본적으로 마을에선 생명력이나 마나의 회복 속도가 빠르니까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고 넘어가고 있었지만, 듣고 보니 그랬다.

피로감도 확실히 그랬다.

레벨이 오름에 따라 내 체력도 일반인들과는 비교하는 게 우스울 정도로 성장했는데, 아무리 전투를 한다지만 던전 안에서 고작 며칠만 있어도 피로가 확 느껴질 정도니까 말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 마나의 원천이 바로 거대 마석일세. 마신의 존재가 확정된 것으로 마나의 기운이 다른 이유도 알게 됐구먼. 지상의 마나는 여신님의 마나, 던전 안의 마나는 마신의 마나라는 것인가. 그래서 이 몸이 짐작으로는 그 거대 마석의 기운을 여신님의 마나로 정화하면 혹시나…라는 것이네만, 하지만 여신님께선 그저 아래로 내려가라고만 말씀하신 게지?"

"응. 나도 전부터 의문이었어.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 거대 마석 같은 걸 처리하고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는데 말이야."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계속해서 여신님의 의도를 짐작해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짚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대체 던전을 내려가면 뭐가 있다는 거야.

"흠…어쩌면 6계층 아래에는, 그 거대 마석을 총괄하는 한층 더 거대한 마석이라도 존재한다는 것일지도…. 아니, 이것도 결국 근거라고는 전혀 없는 추측에 불과하네만…. 후우. 아무튼 결국, 6계층의 너머로 가는 것 밖에는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것이로구먼. 여신님과 다시 한 번 대화라도 나누지 않는 한은 말일세."

"죄송해요. 아직 스킬을 사용하기에는 시간이…."

"아니. 레이아가 미안할 게 뭐 있어. 어쩔 수 없는 거지."

결국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한 채, 우리는 일단 6계층 너머로 내려가는 걸 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모두와 얘기한 덕분에 사라가 위험해질 일은 없을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점이려나.

물론 그것도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이 한결 편해진 건 사실이었다.

그래. 설마 그 여신님이 그렇게 성격이 더럽겠어?

전에 대화해본 느낌으론 엄청나게 상냥한 성격으로 보였는데.

완전히 경계를 푸는 건 아니더라도, 일단 지금은 여신님을 믿기로 하자.

"아무튼 오늘 얘기는 여기까지로구먼."

"네. 사라씨 걱정하지 마세요. 분명 괜찮을 거예요."

"레이아…고마워요."

"하아…갑자기 새로운 용사에 게다가 마신이라니. 갑작스런 얘기가 너무 많아서 따라가기 힘들 정도네요."

"네…."

마틸다나 실비아마저도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혹시 말려들게 돼서 조금 후회하는 걸까?

"그…그래서 구원님."

"응?"

"결국 사라님이 용사라는 것은…."

"아…안 밝힐 생각인데. 다들 우리끼리만 알고 있는 비밀로 하자고."

"그, 그렇습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실비아는 뭔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죄책감에 휩싸이는 것 같은 표정이라고 해야 할까.

"응? 왜? 문제 있어?"

"그…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표정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데 말이야.

"정말로?"

"네…히야아아앙!"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던 실비아는 내가 끌어안자 바로 새빨개지면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여간 얘도 귀찮은 애라니까. 꼭 이렇게까지 해야지 본심을 털어놓으려나.

나는 실비아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대고 숨결을 불어넣듯 부드럽게 속삭였다.

"실비아…."

"네, 네, 네헤에…?"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야?"

"저, 정말입니다! 정말입니다!"

실비아는 두 눈을 꼭 감고는 열심히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이상하다. 분명 아무것도 아닌 표정이 아니었는데.

하지만 이 상태의 실비아가 나한테 거짓말을 할 수 있을 리도 없고.

만약을 위해 한 번 더 추궁해볼까.

"나중에 거짓말인거 밝혀지면 앞으로 평생 네 얼굴 안 볼 거야."

"우…거짓말입니다!"

거짓말인 거냐.

이렇게 쉽게 털어놓을 거짓말이면 애초에 하질 말라고.

"뭐야? 말해."

"그, 그러니까…펠리시아한테 미안해서…."

"응? 갑자기 여기서 공주 이름이 왜 나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에 나는 조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그러니까 세계에 용사가 단 하나밖에 없다는 이유로 펠리시아는 하기 싫은 결혼을 억지로 강요당하고, 낳기 싫은 사람의 자식을 억지로 낳아야하는 상황까지 몰려있으니까요…. 만약 사라님이 용사라는 걸 밝히시면…."

아…얘기가 또 그렇게 되는 건가. 하지만 말이지…. 그렇다고 사라가 용사란 걸 밝혀버리면 사라가 더 귀찮아질 테고.

미안한 얘기지만 공주와 사라를 저울질하자면 난 무조건 사라 쪽에 추가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

"그 여자가 그런 처지가…."

전에 공주와 대판 싸웠던 사라도 실비아의 얘기를 듣고 나니 펠리시아가 조금 불쌍해진 모양이다.

복잡한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생각에 빠졌다.

"구원. 차라리 그냥 밝힐까? 어차피 난 그…사우론 아우덴 같은 꼴은 절대 되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까."

"그만두게."

그리고 결국 착해빠진 사라는 공주가 불쌍했는지 그런 말까지 했지만, 곧바로 디아나에게 제지당했다.

"네?"

"사라양. 생각해보게. 용사가 한 명밖에 없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네. 왕가의 목적은 용사의 피를 왕가에 종속시키는 것이지. 자네가 용사라는 걸 밝히면 다음은 자네의 피를 노릴 뿐이라네. 게다가 사라양은 자식의 외모가 못생겨질 거라는 걱정도 없으니 더 좋은 표적이지."

"하지만 전…."

"참고로 지금 왕가에는 왕자가 없네."

"네? 그게 무슨…."

"모르겠나? 당연히 공주와 사라양 사이에서 자식이 생길 수는 없지. 그럼 어떻게 하면 그 피를 왕가에 종속시킬 수 있겠는가? 대답은 간단하네. 그 아이의 아비 되는 자와 공주가 맺어지면 되는 게지. 그렇게 되면 굳이 용사의 피를 왕가에 포함시킬 것도 없이, 같은 성자의 핏줄이라는 명목 하에 용사의 후손이 대대로 왕가를 따르게 만들 수 있겠지."

"절대 안 밝힐 게요."

펠리시아와 내가 결혼하는 상상이라도 한 걸까? 사라는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지면서 즉답했다.

"아…저, 저는 그, 그런 생각까지는…."

대화가 그렇게 흘러가자 당황하게 된 건 실비아였다.

내가 분위기를 읽어서 실비아를 놔주자, 실비아는 그제야 숨을 고르고 차분히 말을 이어나갔다.

"하앗, 하앗, 죄송합니다…. 거기까진 생각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알고 있네. 자네는 단순히 친구를 고통에서 해방시켜줬으면 싶었던 것뿐이겠지. 이해하네."

"하지만 실비아. 미안해요."

"네…. 알고 있습니다."

실비아는 어쩔 수 없다는 걸 잘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미안한 표정을 지우지는 못하고 있었다.

공주와는 어렸을 때부터 알고지낸 소꿉친구였다고 하니, 도와줄 수 있는 수단이 있으면서도 외면할 수밖에 없는 이 상황에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공주하니까 생각난 건데, 언제 공주한테 가서 내기도 깨야 되는데.

지금 그 얘기를 했다가는…그냥 혼나는 정도로 끝나지 않겠지?

특히 디아나가 드디어 폭발해버릴 위험이 무척이나 컸다.

어젯밤에 한 짓에 이어서 내가 자기 없는 동안 결투를 벌였다는 사실까지 알았으니 말이다.

여기에 더해 공주랑 그런 내기까지 했다고 말을 했다가는…확실히 죽는다.

이번에야 말로 토닥토닥이 아니라 마법 공격을 퍼부을지도 몰라.

옆에서 사라도 주먹에 마나를 담아 때릴 지도 모를 일이고.

좋아. 이 얘기는 애들이 조금 진정되고 한참 후에 하자.

그동안 레온 녀석은 계속 섹스를 못하게 되겠지만…미안하다. 어쩔 수 없다.

"구원씨. 갑자기 왜 그러세요?"

내가 내심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걸 눈치 챘는지, 레이아가 날 바라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역시 천사님이야. 날 잘 보고 계셔. 다만 지금은 눈치 채지 말아주셨으면 했는데.

"아, 아니. 그러니까 이건…."

"괜찮아요. 다 잘 될 거에요."

하지만 천사님은 무슨 착각을 하신 건지, 자신의 가슴에 내 머리를 꼬옥 끌어안고는 부드럽게 쓰다듬어줬다.

"여신님을, 그리고 무엇보다 구원씨 자신을 믿으세요. 구원씨가 자신을 믿고 앞으로 전진해나아가면, 여신님도 분명 그 길을 밝게 비쳐주실 거예요. 그리고 곁에는 언제나 저희가 함께할 거고요."

"천사님…."

나는 가슴이 벅차올라 레이아를 꽉 끌어안고는 얼굴을 문질렀다.

"으응! 후훗."

우연히, 정말로 우연히 내 입이 천사님의 유두 부분을 스쳤는지 조금 야릇한 소리가 나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천사님은 개의치 않고 부드럽게 날 쓰다듬어줬다.

물론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전부 다 개의치 않았던 건 아니지만 말이다.

"이 변태! 이런 상황에서까지 그러는 거야?!"

"자네는 가슴이! 가슴이 그렇게 좋은가!"

"파렴치해요!"

"……."

사라야. 그렇게 마나를 담아서 등짝 스매시를 날리면 아프다니까.

디아나. 넌 이제 폴리모프도 쓸 수 있는 애가 아직까지 가슴을 질투하는 거냐. 폴리모프로 만들어진 가슴은 진짜 자기 가슴이 아니라거나, 뭐 그런 거냐.

마틸다. 파렴치한 건 내가 아니라 네 뇌야. 바라만 봐도 사랑에 빠지는 애가 무슨.

그리고 실비아야. 난 가슴이면 다 좋으니까 그렇게 침울한 표정으로 자기 가슴 팡팡 두들기지 마라.

"아, 아냐! 정말로 그런 거 아냐! 너희들도 봤잖아?! 지금 엄청 감동스런 장면이었다고! 파렴치한 마음 같은 건 아주 조금밖에 없었어!"

"아주 조금은 있었던 겐가!"

"그야 당연하잖아! 나도 남자라고! 이런 완벽한 가슴에 안기는데 어떻게 그런 기분이 조금도 안 들어! 세상에 그런 남자 따윈 없어! 누구라도 레이아한테 안기면 그렇게 된다고!"

"와, 완벽하다니…구원씨도 참…. 너무 띄워주세요."

내 말에 천사님은 얼굴을 붉히면서 부끄러워 하셨다.

가련하시다. 역시 지상에 강림하신 천사. 아니, 천사님이 계시는 이 공간 자체가 천국이야.

"뭘 당당히 외치고 있는 거야 이 변태가!"

물론 천사님을 제외한 사람들은 전혀 납득하지 못한 모양이지만 말이다.

젠장…. 사실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한 것뿐인데 이런 취급이라니.

이렇게 된 이상 오기로라도 레이아의 가슴에 계속 달라붙어있어 주겠어.

"안 떨어져?!"

그렇게 해서 무거운 분위기로 시작됐던 마신 대책 회의는 상당히 가벼운 분위기로 끝이 났다.

솔직히 뭔가 이렇다 할 대책이 나온 것도 아니고, 사라가 완전히 안전할 거라는 보장이 생긴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모두에게 털어놓으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아마 사라도 나와 같은 기분이겠지.

그러니까 일단은 평소처럼 이렇게 바보짓이나 하면서 유쾌한 분위기를 이어나가자.

괜히 우중충한 분위기로 있어봤자 기분만 더 우울해질 뿐이다.

사람은 언제나 밝고 긍정적으로 살아야 되는 거 아니겠어?

뭐, 적어도 6계층을 돌파하기 전에는 뭔가 실마리를 더 잡고 대책이 마련되겠지.

일단 지금은 그렇게 마음을 편히 먹기로 했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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