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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378화 (362/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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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던전 안에는 마신이?

    그런 레이첼 누님의 말을 듣고도 나는 전혀 안심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길드 카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생존여부 뿐이다.

    모험가끼리 싸운 거라면 피해 여부도 알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오직 생사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디아나에게 뭔가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은 아직 충분히 있다는 거다.

    게다가 4계층이라니? 분명 디아나는 1, 2계층의 거대 마석만 조사하고 온다고 했을 텐데?

    설마 디아나 얘, 괜히 의욕에 넘쳐서 4계층까지 갔다가 문제생긴 거 아니겠지?

    레이첼 누님의 말을 듣고 오히려 불안감만 증폭된 나는, 황급히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향하기로 했다.

    "가자! 바넷사! 아, 참. 레이첼 누님!"

    "네, 넷?!"

    내가 몸을 돌리다 말고 갑자기 다시 돌아보면서 이름을 부르자 깜짝 놀란 건지, 레이첼 누님이 몸을 움찔 떨면서 대답했다.

    "퇴근 중이셨던 것 같은데 괜히 저 때문에 일만 더 하게 되고, 정말 고맙습니다."

    "후훗. 아니에요. 하지만 그러네요. 정 고마우면 언제 밥이라도 한 번 사세요."

    "네. 그럴게요."

    "어, 어머. 정말요?"

    "네. 언제 한 번 기회 봐서 꼭 살게요. 그럼 전 이만."

    나는 그렇게 말하고 바넷사를 대동한 채 황급히 텔레포트 마법진을 향했다.

    그리고 텔레포트 마법진에 도착한 나는, 또 한 가지 장애물에 부딪히게 됐다.

    "왜 안 된다는 건데요! 우리 클랜원이 지금 거기에…!"

    "사, 사정은 알겠습니다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모험가 카드에 등록이 되어있지 않으신 지역으로는 이동할 수 없습니다."

    그래. 나는 아직까지 4계층의 마을에 가본 적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 그래도 지금 클랜원이 위기에 처했을지도 모르는데!"

    나도 내가 하는 짓이 단순한 진상 짓이라는 건 자각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우리 디아나한테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르는 거라고! 지금 진상 짓이라는 게 문제야?

    이딴 진상 짓, 디아나를 구하러 갈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해주겠어.

    "그래도 안 됩니다. 등록도 안 되신 분이 갔다가 괜히 그쪽까지 위험에 처하시면…."

    "젠장! 댁이랑은 말이 안 통하는군. 여기 책임자 누구야! 책임자 불러!"

    결국 나는 진상 짓의 끝판 왕이라는 책임자 불러를 시전할 수밖에 없었다.

    "채, 책임자라니. 그런…."

    "…구원님은 여기 계십시오. 저 혼자만이라도 가서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내가 그렇게 텔레포트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자 더는 기다릴 수 없었던 건지, 바넷사가 그렇게 말하고 나섰다.

    "어, 뭐야? 넌 4계층에 갈 수 있어?"

    "네."

    "매일 저택에 틀어박혀만 있는 애가 대체 어떻게…."

    "아직 수습기간이었던 시절에 단련을 위해서 조금…. 그럼 저 혼자 다녀오겠습니다."

    세상에 어떤 집사가 단련을 위해서 몬스터를 때려잡고 다니는데.

    그것도 던전 4계층에 갈 수 있다니. 얼마나 오버스펙인 거야.

    "제, 젠장. 어쩔 수 없지. 그럼 바넷사. 너만이라도…."

    내가 그렇게 결단을 내리려고 했을 때, 텔레포트 마법진이 빛나더니 그 안에서 비교적 키가 작은 사람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로브와 마법모를 푹 눌러쓰고 있어서 얼굴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그 모습을 내가 착각할 리가 없었다.

    "디아나!"

    "음? 뭔가? 자네가 여기 왜 있는 겐가! 게다가 바넷사 자네까지. 혹시 둘이 이 몸 몰래…."

    "너 지금 그런 말이 나와?!"

    "뭐, 뭔가?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겐가?"

    내가 조금 진심으로 욱하자, 디아나도 분위기를 읽은 건지 조금 기죽은 표정으로 내 얼굴을 살폈다.

    "너 자기 차례까지 돌아온다고 했잖아!"

    "음. 아슬아슬하지만 제대로 맞춰서…."

    "12시 넘었거든!"

    "아읏! 조, 조금 늦은 모양이구먼."

    내가 디아나의 머리에 턱하니 손을 얹으면서 말하자, 디아나가 살짝 내 눈을 피하면서 말했다.

    "조그음?"

    "조, 조금 많이…?"

    디아나는 겁먹은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면서 말했지만, 난 강철 같은 의지로 그 애교 공격을 버텨냈다.

    이번만큼은 그렇게 귀여운 척 해도 안 통하거든!

    "애초에 1, 2 계층만 보고 온다고 했잖아! 4계층에는 왜 간 건데!"

    "그, 그건 또 어떻게 알았는가?"

    "대답!"

    "그, 그게…이 몸이 서두르자고 하니까 다들 의욕이 넘쳐서 말일세. 1, 2 계층을 돌아보고도 시간이 꽤나 남게 돼서 그럼 아예 4계층도 다녀오자는 얘기가…우아아아아. 미, 미안하네. 미안하니까 그만하게에에…."

    나는 더 들을 것도 없이 디아나의 머리 위에 얹은 손에 힘을 줘서 그 조그마한 머리를 단단히 잡고 좌우로 마구 흔들었다.

    내 손에 따라서 정처 없이 머리가 흔들리자, 디아나는 팔을 버둥버둥 대면서 저항했다.

    "자네. 지금 디아나님에게 무슨 짓인가!"

    그리고 그런 우리 모습을 보고, 어느 샌가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온 마법협회의 누님들이 바로 제지를 하려고 했다.

    "이건 우리끼리 사적인 일이니까 누님들은 끼어들지 마세요!"

    "그럴 수 없네! 아무리 자네라고 해도 디아나님에게…."

    "디아나!"

    "우, 우우…끼, 끼어들지 말게."

    디아나도 내심은 도움을 청하고 싶은 심정이겠지.

    하지만 어지러움에 눈이 빙글빙글 돌아가면서도, 디아나는 내 뜻에 따라 그렇게 말해줬다.

    "하지만 디아나님…."

    "우읏! 끼어들지 말게! 사적인 일일세!"

    "윽…. 네. 알겠습니다."

    그런 디아나가 기특해서, 나는 일단 머리를 흔드는 건 멈춰주기로 했다.

    "디아나. 나한테, 아니 우리한테 할 말은?"

    "느, 늦어서 미안하네. 걱정 끼쳤구먼."

    "그걸 아는 애가 늦어?! 적어도 연락이라도 했어야할 거 아냐!"

    "그, 그러니까 미안하다고 하지 않나."

    "이 기회에 확실히 말해두겠어. 디아나. 마법이랑 나랑 뭐가 더 좋아?!"

    "웃…! 꼭 하나만 선택해야 하나? 그냥 둘 다 좋아하는 것으로는…."

    "뭐?"

    "자, 자네가 좋네! 자네가!"

    내가 다시 디아나의 머리 위에 턱하고 손을 올리자, 디아나가 황급히 대답했다.

    억지로 나라고 대답하게 만든 느낌이 들어서 개운치 않기는 하지만, 뭐 이쯤해서 용서해둘까.

    애초에 마법 때문에 죽지도 않고 계속 살아온 애니까. 나라고 대답해준 것만으로도 만족해야겠지.

    "그럼 앞으로는 마법에 푹 빠져서 내가 걱정하게 만드는 일 없도록 하라고!"

    "알겠네. 정말 미안하네."

    디아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하지만 자네가 설마 그렇게 당황하다니. 후훗. 이 몸을 그렇게나 걱정해 준 겐가?"

    "이, 이게…나 아직 화 다 풀린 거 아니거든? 너 집에 가서 두고 보자."

    갑자기 할머…누님 모드가 발동한 디아나의 태도에 조금 쑥스러워져서, 나는 그렇게 내뱉고는 등을 돌렸다.

    젠장. 이제 와서 생각하니 아무것도 아닌 일에 너무 소란을 피웠다.

    애초에 저 마법사협회 누님들이 붙어있는 시점에서 디아나가 다칠 리가 없는데.

    나는 텔레포트 마법진을 관리하는 길드원분께 소란 피워서 죄송하다고 사과를 드리고, 당장 그 장소를 벗어났다.

    "그래서. 결국 거대 마석은 다 찾은 거야?"

    "음. 문제없네. 역시 계층의 주인이 있는 곳에 하나씩 존재하더구먼. 게다가 전부 완벽하게 같은 마나의 파동을 내뿜고 있었네. 자네 말처럼 마신의 파편이라는 가능성도 정말로 염두에 두어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더구먼."

    "그거 말인데."

    "음?"

    "아니. 가서 말해줄게."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니다.

    나는 일단 디아나를 데리고 저택으로 향했다.

    "구원씨! 다행이다. 디아나씨도 무사하셨나 보네요."

    "으, 으음. 자네들 전부 일어나있었던 겐가. 미안하네. 이 몸은 무사하네. 조금 이 몸이 딴 길로 새서 늦어진 것뿐이었다네. 소란 피웠구먼. 밤도 늦었는데 다들 들어가서 쉬게나."

    디아나는 자기 때문에 다들 이 시간까지 일어나있었다는 게 상당히 미안했던 건지, 기죽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아뇨. 디아나. 지금부터 할 얘기가 있어요."

    "음? 그러고 보니 이 자도 오면서 뭔가 할 얘기가 있어 보였네만. 혹시 같은 얘기인가?"

    "아. 그거 말인데. 일단 쉬고 내일 얘기하자. 디아나 말대로 밤도 늦었고. 그렇게 당장 얘기해야할 정도로 급한 일도 아니고 말이야. 무엇보다 밤에 잠을 안자는 건 피부 미용에 안 좋다고 하잖아. 너희 피부를 상하게 만들 수는 없지."

    사라는 당장이라도 디아나와 얘기를 하려고 했던 모양이지만, 나는 그걸 조금 뒤로 미루기로 했다.

    어차피 바로 사라가 어떻게 되는 건 아닐 거다.

    여신님의 말을 생각해봐서는, 마신과 관련이 되는 건 적어도 6계층을 돌파한 이후다.

    "바보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그거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다고. 너 나랑 평생 같이 살려면 미모에 신경 엄청 써야 된다? 안 그러면 점점 멋져지는 나랑 격차가 벌어져서 안 어울린다는 소리 듣게 될 걸? 그건 싫지? 그러니까. 오늘은 푹 자고, 내일 제대로 이야기하자. 어차피 그렇게 급한 것도 아니잖아. 조급해하지 말자고. 다 잘 될 거야."

    "…알았어."

    내가 웃으면서 그렇게 말해주자, 사라도 드디어 내 의도를 이해해준 모양이다.

    사라는 날 애틋한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생각했어. 안 그래도 지금부터 얘한테 벌도 줘야 되거든."

    "자, 잠깐! 자네! 아, 아무래도 중요한 얘기 같지 않은가! 역시 지금 당장 얘기하는 편이…!"

    "디아나 넌 오늘 밤에는 발언권 없어."

    "우, 우으읏…."

    "이 변태가 진짜! 그런 이유로 그런 거였어?!"

    아니. 아마 원래 네가 생각한 그 이유 때문이 맞아.

    하지만 뭐, 이럴 때는 스스로의 이미지를 희생해서라도 분위기를 처지지 않게 하는 게 진정한 신사라는 거다.

    "변태라니? 갑자기 무슨 소리야? 우리 사라양은 대체 벌이라는 단어 하나만 듣고 무슨 생각을 했기에 곧바로 변태라는 말이 나왔던 걸까? 응?"

    "이, 이씨! 몰라 바보야!"

    사라는 그렇게 말하고는, 화가 난 듯 뒤를 돌아 성큼성큼 자기 방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 뒷모습과 나머지 애들을 둘러보면서, 나는 입을 열었다.

    "그런고로 얘들아. 얘기는 내일 하자. 푹 자고. 무거워진 기분도 좀 전환하고. 웃는 얼굴로 얘길 나누자고. 사람이 긍정적이 돼야지 좋은 아이디어 같은 것도 나오는 법이야."

    내가 그렇게 말하자, 사라의 발걸음 소리도 아까보다 조금 가벼워졌다.

    사라야. 너도 참 쉬운 여자 다 됐구나.

    "네. 구원씨. 내일 꼭 다 같이 얘기해요."

    계속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던 천사님은, 내 진심을 알았다는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여주고는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실비아와 마틸다까지 방으로 돌아가는 걸 보고 나서야, 나는 디아나의 목덜미의 옷을 붙잡고 들어서 그대로 방으로 끌고 갔다.

    "이, 이 몸이 고양이인가! 목덜미를 쥐고 들지 말게!"

    디아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잘못했다는 자각은 확실히 있는지 크게 발버둥치지는 않았다.

    그런고로 손쉽게 디아나를 방까지 데려온 나는, 조용히 디아나를 내려다봤다.

    자,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할까.

    벌을 준다고 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어떤 식으로 벌을 줄지는 전혀 생각해놓지 않았다.

    "저, 정말로? 자네 진심으로 이 몸에게 벌을 줄 생각인가?"

    디아나는 고민하는 내 모습이 사뭇 두려웠던 건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약한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그러니까 귀여운 척 해봤자 소용없다니까.

    물론 화난 건 아니지만, 내가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다는 거 너도 잘 알잖아?

    "정말로 진심이야. 아님 뭐야? 디아나는 자기가 잘못 안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날 그렇게 걱정하게 만들고?"

    "그, 그건 아니네만…."

    "그럼 벌도 달게 받아야지."

    "우으으…."

    "음. 그럼 일단 벗어."

    "자네란 남자는! 역시 그런 벌인가!"

    "다른 벌을 원하면 밤새 안아주지 않고 다른 식으로 벌해줄 수도 있는데."

    내가 눈을 번뜩이면서 그렇게 말하자, 디아나는 살짝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생긴 것과 참 잘 어울리는 표정이지만, 디아나의 이런 표정은 의외로 보기 힘들었다.

    지고의 대마법사라는 별명답게 평소에는 태도에 여유가 있고 좀처럼 겁먹는 일이 없으니까 말이야.

    "아, 아니네. 그냥 그런 식으로 벌해주게."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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