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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375화 (359/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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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용사

멍청한 놈. 설마하니 진짜로 걸려들 줄이야.

애초에 검사도 아닌 내가 검을 들고 있었던 이유가 뭔데.

이런 식의 결투는 보통 검 대 검으로 이뤄지니까?

그럴 리가 있냐. 그딴 허례허식 개나 주라고.

난 그런 것에 일일이 집착하지 않는 성격이란 말이지.

뭐, 애초에 눈앞의 쓰레기는 내가 원래 검을 쓰는지 주먹으로 싸우는지도 모르고 있겠지만 말이야.

아무튼 작전이 제대로 통해서 다행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더 철저하게 대비를 해둘까.

"어설프게 잔머리 굴리려고 하지 말고 그냥 검으로 싸워라. 말로는 그러면서 막상 불리해지면 그 허리에 찬 검으로 상대하려고 그러는 거지? 너무 대놓고 그러는 거 아니냐? 너같이 치졸한 놈이 하는 생각 따위는 다 보인다고."

"훗. 내가? 제대로 공격에 반응도 못하는 네놈을 상대로?"

하지만 놈은 날 비웃듯이 그렇게 말하고는, 허리에 차고 있던 나머지 검마저도 검집에 넣은 채로 허리에서 풀고 바닥에 던졌다.

"스스로 구멍을 판 것도 모르고 잘도 떠드는군. 차라리 검으로 맞으면 짧게 끝났을 것을. 보아하니 맷집은 어느 정도 자신 있는 모양인데, 그 잘도 조잘대는 입에서 비명밖에 안 나올 때까지 철저하게 두들겨 패주지."

얘가 지금 함정에 빠진 게 누군데 그런 소리를.

나는 하마터면 웃음이 터져 나올 뻔 했지만, 안면근육에 힘을 빡 줘서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인상을 찌푸린 모습이 꽤나 괴로워 보였는지, 쓰레기의 입 꼬리가 더더욱 올라갔다.

"방금 전까지의 날 생각하면 큰 코 다칠 거다. 나는 진심이 아니었다고. 그 증거로…지금부터 진심을 보여주지."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성자의 진심을 발동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위력을 약하게 조절해서. 복상사는 시키면 안 되니까 말이지.

나야말로 자비를 베풀어주고 있다고. 저 놈은 아는지 몰라.

"과연. 강화 마법인가. 정말로…정말로 그런 얕은 수가 이 용사에게 통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냐?!"

아무래도 놈은 내 몸 전체가 마나로 둘러싸인 것 까지 인지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걸 알면 뭐해. 정작 중요한 스킬에 대한 정체를 몰라서야.

애초에 성자의 밤 기술이 엄청나다는 소문은 들었을 텐데, 정작 스킬을 모르다니.

하긴 처음 식당에서 봤을 때부터 내 얘긴 꺼내지도 말라는 식이었으니.

듣기 싫은 얘기는 아예 귀를 막고 안 듣는 성격인 건가.

"간다!"

놈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재빠르게 달려왔다.

그래. 와라.

어차피 내가 한 방에 기절만 안 하면 무조건 이기는 게임이다.

나는 양팔을 들어서 안면을 철저히 가드하고는 놈이 오길 기다렸다.

놈은 정말로 내 얼굴에 질투를 느끼기는 하는지, 복부가 텅 비어있는데도 굳이 가드를 올리고 있는 얼굴 쪽에 주먹을 연속으로 꽂아 넣었다.

그리고.

"우헷! 헷! 히엑!"

역겨운 소리를 내면서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다리를 오므리고 가랑이를 움켜쥔 채로, 몸을 덜덜 떨면서 날 노려봤다.

"뭐, 뭐냐! 뭐냐 이건! 어떻게 된 거냐! 이거 뭐야?!"

이런 사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진 모양이었다.

맘 같아서는 아까 놈이 했던 것처럼 여유롭게 놀려주고 싶었지만, 나도 그럴 여유는 없었다.

젠장. 위력을 너무 약하게 조절했나.

놈의 매력 수치가 최저치라고 예상되는 만큼 최대한 약하게 조절했는데, 레벨이 있어서인지 놈은 기절하거나 다리가 풀리지 않고 저렇게 버티고 서있을 수 있었다.

나는 놈에게 대답하지 않고, 아까보다 조금 더 위력이 강하게 성자의 진심을 발동한 후 달려들었다.

이번에야말로 기절시킨다.

쾌락의 바다에 삼켜져라!

"으, 으윽! 으으윽!"

내가 달려들자 놈도 대충 사태를 파악한 건지, 아니면 위기의식에 따른 본능적인 행동인지 놈은 곧장 검을 던져놨던 곳으로 몸을 던졌다.

이런 안 돼!

나는 필사적으로 제지하려고 했지만, 놈이 조금 더 빨랐다.

놈은 황급히 검을 뽑아들고는, 후들거리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준 채 양손으로 검을 꼭 잡아 세웠다.

"다, 다가오지 마! 다가오면 죽여 버리겠어!"

그 눈빛은 마치 강간마를 보는 피해자의 눈빛 같았다.

바지 앞섶이 이미 흥건히 젖어있는 게 그렇게 불쌍해 보일 수가 없었다.

사내새끼가 그딴 표정, 그딴 목소리로 저항하지 마라.

괜히 기분 더러워지잖아.

그건 그렇고 이거 좀 위험한데.

놈이 꺼내든 검은 하필이면 또 그 번쩍번쩍한 명검이었다.

게다가 놈의 현재 정신 상태는 대충 손대중을 할 정도로 안정되어 있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 배이면 아무리 나라도 무사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면 내게 남은 수는 단 하나밖에 없잖아.

"야.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좋게 말할 때 순순히 검을 내리고 항복해."

"누, 누가 항복 같은 걸 할 까보냐?! 용사는 절대…!"

"바지에 지리는 것보다 더 심한 꼴 당하고 싶지 않으면 내려라."

"저, 절대 그렇게 못한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어쩔 수 없지.

이건 웬만하면 사용하고 싶지 않았는데.

네가 나쁜 거다. 나는 할 만큼 했어.

나는 곧바로 성역 선포를 사용했다.

"히이잇! 아아! 으아앗! 으으윽! 흐으윽!"

그러자 놈은 곧장 몸을 비틀면서 꼴사나운 목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했다.

아무리 성역 선포의 기본 위력이 낮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성역 선포의 레벨도 꽤나 올랐단 말이지.

최대한 위력을 억누른 성자의 전력보다는 당연히 위력이 더 강하다.

그것도 초당 들어가는 위력이 말이다.

아까 내 몸을 때리면서 느꼈던 쾌감보다도 더 큰 쾌감을 1초에 한 번씩 맞보고 있는 쓰레기는, 지금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검은 진작에 손에서 떨어졌고, 놈은 이제 바닥에 엎어져서는 간질 환자처럼 부들부들 떠는 게 전부였다.

이렇게 반응이 극적일 줄이야.

사실 성역 선포도 위력을 좀 더 줄였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아직 성역 선포는 그게 안 된단 말이지.

유일한 광역기 기술인만큼, 마나로 다루는 게 꽤나 어려워서 말이야.

그래서 이왕이면 이건 쓰지 않고 끝내려고 했는데.

"히끄윽! 흐으윽! 흐아아악!"

놈은 바닥을 뒹굴면서 정말 더러운 모양새로 꿈틀댔다.

너무 그렇게 극적으로 반응하지 마라.

2계층에서 오크들 상대로 할 때도 그 정도 반응은 안 보여줬다고. 네 매력은 오크 이하란 거냐.

뭐 그때에 비해서 내 레벨이나 매력, 스킬 레벨 등 많은 것들이 오르긴 했지만 아무튼.

어차피 가만히 놔둬도 이내 기절하겠지만, 당장 기절시켜주는 게 최소한의 자비라는 거겠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 역겨운 소리 좀 그만 듣고 싶다.

나는 놈에게 다가가서 발에 위력을 억누른 성자의 손길을 발동하고는 한 대 툭 쳤다.

"흐이이이이잇!"

그러자 놈은 몸을 한차례 크게 부들부들 떨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나는 그제야 모든 스킬을 해제하고, 느긋하게 뒤를 돌아봤다.

"…이겼다."

"…축하해. 안 죽었지?"

쓰레기의 너무도 비참한 모습에, 사라는 살짝 질린 얼굴로 그런 질문을 던졌다.

"아, 아마 그렇지 않을까?"

"그보다 구원씨. 어서 상처를 보여주세요."

그리고 우리 천사님은 아까부터 다른 건 전혀 안보고 내 상처만 보고 있었는지, 결투가 끝나자마자 재빨리 다가와서는 내게 치료 마법을 걸었다.

천사님. 아무리 이런 쓰레기라도 그보다 라는 말은 좀 불쌍하지 않나요.

야. 쓰레기. 너 우리 천사님한테까지 그런 취급 받았다고.

뭐, 날 상처 입힌 당사자라는 점도 있고, 그만큼 천사님이 날 좋아한다는 걸 뜻하기도 하지만.

"그럼 바넷사. 저 녀석을…아니다. 그냥 놔둬라. 이따가 내가 할게."

치료를 받으면서 바넷사에게 놈을 옮기는 걸 부탁하려고 했지만, 생각해보니 놈은 지금 바지가 흥건히 젖어있는 상태다.

아무리 바넷사가 강철의 집사라고는 해도, 일단은 결혼도 안 한 처자인데.

저런 오물에 손대길 부탁하는 건 조금 미안했다.

"…감사합니다."

우와. 감사 인사까지 들어버렸어. 대체 얼마나 만지기 싫었던 거야.

바넷사 너도 마법으로 씻기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잖아.

그런 고로 상처를 치료받은 나는 일단 정령을 불러내어 놈의 몸을 씻기도록 부탁했다.

하지만 예상외의 사태가 일어났으니, 심지어 정령마저도 싫다고 거부해버린 거다.

어떻게 안 되겠냐고 부탁하자, 정령이 필사적으로 거부한 끝에 그대로 돌아가 버릴 정도였다.

"야. 바넷사. 미안한데 마법으로 얘 씻기기라도 해줄래?"

"……네."

바넷사는 정말 드물게도 싫은 내색을 감추지 않고 얼굴에 살짝 내비친 채, 마법을 이용하여 놈의 몸을 씻겼다.

이 놈, 역시 여자들한테, 아니. 정령은 딱히 성별도 없어 보이니 그냥 모두한테 엄청 미움 받는 놈인 건가?

이쯤 되면 조금 불쌍…솔직히 동정심은 별로 안 생기네.

아무튼 나는 그렇게 씻긴 놈의 몸에 최대한 닿지 않게 뒷덜미를 잡아서 끌고는 빈 방의 침대에 던져 놨다.

"구원님. 그 자가 정신을 차린 모양입니다."

식사를 하고 우리 애들이랑 느긋하게 보내고 있자, 바넷사가 그 사실을 알려줬다.

건드리는 것도 싫어했으면서 일단 언제 깨어날지 지켜보고는 있었던 모양이다.

역시 프로. 싫어도 맡은 바 일은 최선을 다 하는군.

"그래? 그럼…아, 괜찮아. 나 혼자 다녀올게."

왠지 다들 날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기에, 나는 손을 들어서 제지시켰다.

일단 마인에 대해 물어볼 거라고 설명은 했지만, 혹시 용사에 관해서도 파고들어야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사라의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사라 이외에는 같이 데려가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정말로 사라만 데려가 버리면 우리 천사님이 슬퍼하실 테니까.

결국 나 혼자 가야한다는 거지.

"하지만 구원씨 위험해요."

"아니. 위험한 건 내가 아니라 걘데. 아까 성역 선포만으로 놈이 어떻게 되는지 봤잖아?"

"그, 그건 그렇지만…"

"놈한테 예쁜 너희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그래. 더럽혀지는 느낌이라."

"구, 구원씨…아무리 그래도 그건 조금 말씀이 심하세요."

"그, 그래?"

아까 레이아의 반응을 생각해보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우리 천사님 앞에서 쓰기에는 발언이 조금 과격했던 모양이다.

"그럼 잘 조심히 잘 해결하셔야 해요? 너무 도발하지 마시고요."

하지만 그 발언에 레이아는 따라오길 포기한 모양이었다.

천사님. 역시 그 녀석 맘에 안 드세요?

누구에게나 친절한 우리 천사님이 이런 반응을 보일 정도라니. 그 녀석은 대체….

"구원…."

"그래."

사라는 살짝 불안해 보이는 것 같았지만, 나는 안심시키듯 눈빛으로 타일러줬다.

걱정 마. 마인의 정체가 뭐든 간에 나는 결코 널 버리지 않아.

그렇게 눈빛을 주고받아서 무언의 대화를 한 후에, 나는 놈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드디어 마인의 정체를 밝힐 때가 왔다고.

"좋은 꿈 꿨냐?"

"네, 네 녀서어어억!"

"시끄럽네. 뭔데?"

"결투 중에 비겁한 수단을…!"

"비겁하기는 또 뭐가 비겁해. 네가 용사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서 싸운 것처럼, 나도 성자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서 싸운 것에 불과하다고."

"이런 결투는 무효다! 아무도 인정…!"

"이걸 어쩌나. 난 이미 사방팔방에 너와의 결투가 있다고 떠벌린 상탠데.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한테 뭐라고 변명하려고? 성자의 스킬 한 방에 돼지처럼 꿀꿀 짖으면서 비참하게 땅어 얼굴을 처박고 정액을 줄줄 흘리다가 기절했어요! 라고 변명하게? 못생긴 놈이 조루인 걸 어필하면 사람들이 참 불쌍하게 여기고 무효라고 해주겠다. 새끼야. 발정 난 오크도 그거보단 더 버틴다. 어떻게 성역 선포 한방에 좆물을 주륵주륵 싸지르면서…."

"크, 으, 으아아아아아아앙!"

아, 이런. 아무리 그래도 말이 좀 심했나.

"야, 야. 그렇다고 울 건 없잖냐. 다 큰 사내새끼가."

"나라고…히극. 나라고 좋아서 이런 게…우아아앙! 개새끼야! 씨바아알!"

"야. 진정해. 미안해. 미안하다니까."

"나도, 흐끅. 나도 너 같이 섹스 잘하고…히끅! 예쁜 여자들도 많이 만나고…우우우…으아아앙!"

아무래도 놈은 쌓여있던 열등감이 폭발한 모양이었다.

아무리 달래 봐도 쉽게 진정될 것 같지가 않았다.

"나도…나도 씨발 섹스가 하고 싶단 말이야…."

너무 절절히 울리는 그 한마디에, 나는 할 말을 잃고 그냥 울음이 그칠 때까지 놈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연참은 죄송합니다.

요즘 추천 수가 확 떨어지니까 글 쓰는 게 재미가 없고 잘 안 써지네요.

소위 말하는 슬럼프 상태입니다.

오늘도 하루 종일 컴퓨터를 붙잡고 있어봤는데 두 편은 안 써지네요.

안즈라미 //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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