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371화 (35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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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용사

"어때 실비아. 이걸로 만족했어? 실비아?"

"하앗, 하앗, 아웃…네, 네헤…."

몇 번이나 절정에 달한 실비아는 몸을 침대에 축 늘어뜨리고는 혀가 풀린 목소리로, 하지만 착실하게 대답했다.

"정말로? 이제 내가 끌어안고 있어도 느끼지 않을 자신 있어?"

"우…그, 그건…네, 네헤…."

"확실히 대답해."

"히응! 네, 네헷!"

내가 허리를 한 번 더 튕기자, 실비아가 몸을 꿈틀대면서 대답했다.

그 불감증이었던 실비아가 이제는 한 번 허리만 튕겨도 이렇게 민감한 반응을 보여주다니. 감개무량한 기분이 조금 들었다.

아무튼 조금 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엄청나게 느끼게 만들었지만, 아마 이정도가 딱 좋은 거겠지.

이렇게라도 안하면 얘는 자기 스스로 안아달라고 말 할 일이 절대 없을 테니까.

분명 처음에는 내킬 때만이라도 좋으니까 안아달라고 찾아온 애였는데. 이제는 오히려 안아달라는 걸 주저하게 되다니.

이렇게 생각해보면 참 신기한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이걸로 너도 충분히 느꼈겠지? 다음에도 이런 일이 발생하면 이정도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다음엔 정말로 복상사시켜버릴 거야. 알겠어?"

"우으읏…네에…."

아니. 그러니까 왜 눈빛에 미약하게 기대도 담겨있는 거냐고. 그냥 순수하게 두려워하란 말이다.

이거 오히려 역효과가 생긴 건 아니겠지?

조금 불안해졌지만, 나는 더 이상 추궁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신경 써서 가끔 실비아를 안을 시간을 마련하면 충분히 해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좋아. 그럼 드디어 진짜로 데이트를…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버렸네. 쳇. 실비아 특훈은 나중에 해야겠다."

"후, 후우…그렇습니까…."

"야. 좀 더 아쉬운 얼굴 안 해? 왜 안도하고 있는 건데?"

"아응! 아, 아쉽습니다아! 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 데이트까지 하게 되면 정말로 생명에 지장이…."

"앙?"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아쉽습니다."

"……후우. 그래. 옷이나 입어라."

좀 더 꾸짖어주고 싶은 맘이 뭉클뭉클 솟아올랐지만, 나는 그 마음을 꾹 억눌렀다.

적어도 저녁 시간에는 맞춰가야지.

우리 애들이 실비아한테는 묘하게 친절해졌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침에 단 둘이 나가서 저녁시간 지나도록 안돌아오면 질투를 할 거다.

아니. 이미 단 둘이 나온 시점에서 질투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거야 뭐 이미 늦었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치고.

"그러고 보니 실비아. 질문이 있는데."

"지, 지, 지, 지, 질문 말입니까?"

돌아가는 길.

내 품에 안겨서 열심히 진동을 해대던 실비아가 내 말에 더욱더 긴장하면서 몸을 굳혔다.

참고로 이 녀석. 정말로 몸이 달아올라서 그랬던 것뿐인지 지금은 성적인 의미로 느끼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래봤자 진동하고 있는 건 변함이 없지만 말이다.

"그래. 그 쓰레…용사 놈 말이야. 공주한테 묘하게 집착하는 것 같던데. 혹시 이유라도 알아?"

내일 대결에서 이기면 마인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게 됐으니 이제 딱히 신경 쓸 일도 아니기는 하지만, 나는 일단 실비아에게 그런 질문을 던졌다.

호기심을 굳이 억누르고 있을 필요도 없으니까 말이다.

"아, 그, 그런 질문입니까…후우…."

그럼 대체 어떤 질문을 기대한 거냐, 이 녀석아.

"간단히 설명 드리기에는 조금 복잡한 관계입니다."

"그럼 간단히 말고 길게 설명해봐. 너와 나의 시간은 앞으로도 잔뜩 있으니까."

"아, 아우우…."

헛소리할 셈으로 말한 거였는데 먹혀들었다.

실비아야. 그 성격에 용케도 지금까지 좋아하는 남자 하나도 없었구나.

생각해보니 그랬다. 실비아가 날 만나기 전에 좋아하는 남자라도 생겼으면 불감증은 진작 치료된 거나 마찬가지였을 텐데.

"그게…공주님과 그자는 일단은 약혼자…비슷한 관계입니다."

"약혼자면 약혼자지 비슷한 관계는 뭐야?"

"그걸 설명하려면 용사 가계부터 설명해야합니다. 용사 가문은 혈통으로 그 직업이 계승된다는 특이점 때문에, 그 맥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지금까지는 반드시 동 세대에 둘 이상의 용사가 존재하도록 아이를 낳아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불의의 사고로 지금의 용사 하나만을 남겨둔 채 그 부친이 타계하셨죠."

"불의의 사고?"

"네, 네에…그,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적어도 이 얘기에서는 말입니다. 아무튼 그래서 용사가 하나만 남게 되자, 여왕님께서도 걱정이 생기셨습니다. 이 나라가 전 세계에 압도적인 영향을 떨치고 있는 건, 전통적으로 용사를 데리고 있는 나라라는 타이틀도 꽤나 영향이 있었으니까요. 고민하시던 여왕님께서는 공주님께 용사와의 결혼을 명령하셨습니다. 두 분이 아이를 낳으시면, 왕가의 혈통이 끊어지지 않는 한 용사의 혈통도 끊어지지 않는 게 되니까 말입니다."

과연…. 그래서 그 쓰레기 녀석이 나한테 그런 반응을….

그래. 약혼자가 자기랑 하던 도중에 자길 내팽개치고 나한테 애교부리면서 어떻게든 안겨보려고 노력하는 걸 보면, 그야 화나겠지.

나로서는 내가 아니라 공주한테 화내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뭐 사람의 감정이란 게 그 정도로 논리적인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마누라가 바람을 피우면 마누라보다는 우선 바람피운 상대한테 화를 내는 게 일반적인 반응이라고들 하고.

"응? 그럼 그냥 빼도 박도 못하고 약혼자잖아?"

"아뇨. 그게…공주님께서 한사코 거부를 하셔서요. 구원님께선 의외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펠리시아 공주님은 저래 봬도 공주라는 위치가 가지는 책임감을 잘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지금까지 공주님께서 그렇게 반항하는 건 처음 있었던 일이라…여왕님께서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아, 그렇구나. 참고로 공주가 그렇게 반항한 이유는? 실비아는 공주랑 친하니까 알지?"

"그, 그게…공주라는 입장 상 정략결혼은 각오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런 물건의 사내와는 하고 싶지 않다고…."

그럼 그렇지.

실비아도 그렇지만, 펠리시아도 어떤 의미에서는 끝까지 한결같은 여자였다.

"하지만 내가 갈 때마다 둘이 붙어먹고 있던데?"

"그…공주님께서 그냥 용사 하나는 낳아서 왕가의 핏줄에 포함시킬 테니까 결혼 명령은 취소해달라는 부탁을 하셔서요."

그렇게까지 싫었던 거냐.

어떡할 거야? 나 그 쓰레기가 조금 불쌍해지려고 하잖아.

"그래서 여왕님께서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럼 아이를 낳을 때까지 둘은 서로와만 관계를 맺도록 말입니다."

뭐야. 그럼 그 쓰레기. 진짜로 지금 공주하고밖에 못하는 상태였어?

게다가 난 그것마저 막아버린 거고?

안 돼! 그러지 마! 진짜 미안해지려고 하잖아!

"……응? 그럼 난?"

"……근 일 년 간 그자와만 관계를 맺으시며 욕구불만이 계속되던 공주님이, 구원님의 소문을 듣고는 눈이 돌아…크흠. 흥미를 가지게 되셔서요."

"아니. 여왕님이 명령하셨다면서. 용사가 항의 안 해? 그럼 자기도 공주 말고 다른 여자를 안을 수 있게 될 텐데?"

"그게 조금 복잡합니다. 가문에서 용사가 홀로 남게 된 점도 그렇고, 전에 있었던 사건들도 겹치면서 지금 용사 가문의 입지가 전보다 많이 약해졌습니다. 원래라면 아무리 여왕님의 명령이라고 하더라도 용사 가문을 왕가에 흡수시킨다는 발상 자체에 반발이 나왔을 겁니다. 하지만 변변한 항의도 못할 정도로 지금 용사 가문은 힘이 약해진 상태죠. 게다가 마지막 남은 그 자는…구원님도 보셨다시피 그…권력으로 찍어 누르는 것에 무척이나 약한 사람이기 때문에…."

"…공주한테 기가 눌려서 변변한 항의도 못하고 있다고?"

"네. 그렇습니다. 게다가…아니, 아닙니다."

진짜로 찌질한 놈이잖아.

후우. 다행이다. 덕분에 미안했던 감정이 싹 다 날아가 버렸어.

아무튼 이걸로 모든 게 명쾌해졌다.

쓰레기가 나한테 그렇게 필사적으로 달려든 이유도, 그리고 덤으로 왜 성에 갈 때마다 공주가 그 놈이랑 섹스를 하고 있었는지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에 내가 건 조건에 왜 공주가 그렇게 자신만만했는지도.

그 녀석, 속였겠다!

어차피 쓰레기하고만 섹스할 수 있는 상황인데, 쓰레기하고 하면 욕구불만만 더해진다.

공주 입장에서는 차라리 안하고 마는 게 나은 상황이라는 거다.

그러니까 그렇게 자신만만한 거였어!

하지만 내가 그걸 몰랐다고 해서 내기를 무효로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런 건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단 건 나도 잘 안다.

젠장. 이렇게 된 이상,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공주와는 얼굴을 마주치지 않겠어.

어차피 조건은 다음에 얼굴 볼 때까지 다른 남자와 섹스를 안 하는 거니까 말이야.

마지막에 웃는 게 누구일지 한 번 보자고.

어쨌든 어느 정도 호기심이 풀리고 나니 머릿속이 착착 정리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디아나가 돌아올 때까지 호기심을 못 풀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비아도 생각보다 설명을…응? 그러고 보니 진짜로 중간부터는 말도 안 떨고 설명 잘 했네.

어느 샌가 진동도 없어져있고.

나는 실비아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더 궁금하신 점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러자 실비아는 귀엽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얼굴은 부끄러워하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이렇게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는 건 오히려 신선하네.

항상 새빨개져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이미지가 있지만 말이야.

하지만 어째서? 아, 설마…행위 중에 먹혔던, 정신을 딴 데로 돌리면 거기에 집중하느라 나와 있다는 실감이 약해지는 그건가?

"응. 하나 더 있는데."

"네. 말씀하십시오."

나는 실비아의 허리에 두른 팔에 힘을 줘서 더더욱 바싹 끌어안고는, 실비아의 귀에 속삭였다.

"이렇게 밀착해있는데 이제 안 떠네?"

"우읏…! 아, 아, 아, 우아아…!"

그 말을 들은 실비아는 곧바로 스위치가 들어간 것처럼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난 조금 안도했다. 역시 실비아는 이렇지 않으면.

익숙해지게 만들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데리고 돌아다녔으면서, 정작 실비아가 익숙해진 것 같은 반응을 보이자 조금 쓸쓸해져버리다니.

나도 참 못된 놈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진동하는 실비아가 귀여우니까.

이렇게 안고 있으면 귀엽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주제에 마사지 기능까지 있는 것 같아서 최고라고.

"익숙해진 거 아니었어?"

"귀, 귀에 숨결이…저, 저 죽어어…."

그러니까 이 정도로는 안 죽는다니까.

결국 오늘도 섹스하는 내내 안 죽고 살아남아 있잖아?

"훗. 귀엽네 그럼 집에 들어가서…."

"안녕히 다녀오셨습니까."

실비아를 놀릴 목적으로 저택의 정문을 가리킨 순간, 갑자기 바넷사가 튀어나오더니 무뚝뚝한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어, 어, 응. 다녀왔어. 별일이네. 정문까지 마중을 나오고."

"구원님께서 용사에게 시비를 건 이후로 저택 주변에 계속 불온한 무리가 감시하는 것 같은 시선이 느껴져서 말입니다. 경계를 철저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 쓰레기. 역시 저택부터 내 뒤를 밟은 거였어.

어쩐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데도 잘만 알아보더라.

"아, 그래? 고생이 많네."

"아닙니다. 저보다는…."

바넷사는 드물게 말을 흐리면서 실비아를 쳐다봤다.

야. 그 시선은 대체 무슨 의미냐.

요즘 이 녀석 묘하게 나한테 반항적인 것 같단 말이지.

얼굴이나 목소리나 무뚝뚝한 그대로라서 내 신경과민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 번 확인을 해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실비아. 그럼 저녁 때 보자."

"우으으읏!"

내가 허리에 감은 팔을 풀자 마자, 실비아는 떨리는 다리를 억누르고 황급히 저택으로 들어가서는…문틈으로 날 엿보기 시작했다.

역시 끝까지 도망은 안 가는 거냐.

나는 스토커짓을 시작한 실비아를 놔두고, 바넷사를 쳐다봤다.

"그럼 바넷사."

"네."

두 눈을 똑바로 마주보고 빤히 쳐다봤지만, 바넷사는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진짜 그냥 내가 피해의식을 느끼는 것뿐인가? 얜 평소대로 아닌가?

그 눈을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으으으으음….

"…읏."

그렇게 한참 눈을 마주치고 빤히 바라보고 있자, 갑자기 바넷사가 침음성을 흘리면서 먼저 눈을 돌렸다.

역시! 내 감은 틀리지 않았어! 그럼 그렇지!

"야. 너 나한테 켕기는 거 있지?"

"…무슨 소리십니까?"

"시치미 떼지 마. 있을 거 아냐. 나한테 뭔가 못되게 굴었다든가. 그게 아니면 왜 먼저 눈을 돌리는데? 솔직히 말해."

"…노출 많은 메이드 복을 원하는 야릇한 시선이 느껴져서 피했습니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말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의외의 것이었다.

"야! 너 무슨! 그런 거 아니거든?! 아니, 그러고 보니 전에 그것도 결국 아직 안 돌려줬잖아! 언제 줄 건데?!"

"……."

바넷사가 ‘거 봐. 역시 내 말이 맞잖아.’ 라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아니. 무표정이지만 말이야. 왠지 모르게.

하지만 난 굴하지 않았다.

"그래! 노출 많은 메이드 복 원한다! 그게 뭐 어때서! 우리 애들한테만 입힐 거니까 신경 끄시지!"

"……바로 드리겠습니다."

내가 당당한 목소리로 외치자, 바넷사가 결국 먼저 꺾여서는 그렇게 대답했다.

훗. 이겼다.

뭔가 논점이 흐려진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은 것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지금은 이 승리를 만끽하기로 했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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