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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362화 (346/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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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용사

    아무튼 바넷사의 충고를 받아들여서, 나는 그 쓰레기 용사를 찾아가는 건 조금 미루기로 했다.

    물론 만나기는 만날 거다. 다름 아닌 사라를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만난다고 하더라도, 일단은 디아나가 돌아온 후에 상담해서 만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디아나가 자기 없는 동안 사고치지 말라고 하기도 했고, 그 쓰레기는 강자에 약한 버러지다 보니 디아나만 보면 설설 기어 댔으니까 상대하기도 편할 거고 말이다.

    디아나는 다음 자기 차례 때는 올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으니 3일만 참으면 된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일단 순순히 저택으로 돌아왔다.

    "…여기까지 따라오는군요."

    저택에 도착한 후 마차에서 내리려고 했을 때, 갑자기 바넷사가 중얼거렸다.

    "으, 응? 뭐가?"

    "아까 그 자, 계속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바넷사는 그렇게만 말했지만, 나는 무슨 뜻인지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어? 진짜로?"

    "네."

    "……."

    "처리할까요?"

    "아, 아니. 그냥 놔둬."

    어차피 내가 타고 있던 게 디아나의 마차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공격을 못해왔던 찌질한 놈이다.

    그런데 디아나의 저택에 잠입하는 짓을 할 리가 없지.

    디아나가 안 탄 마차를 공격하는 것과, 디아나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저택에 잠입하는 건 일의 경중이 확실히 다르다.

    아무리 멍청한 놈이라도 그 정도는 알 테니까.

    아마 내가 진짜 디아나의 저택으로 들어오나 확인이나 하려고 따라온 거겠지.

    그보다 내가 놀란 건 놈이 우리 뒤를 밟았다는 게 아니다.

    바로 바넷사 때문에 놀란 거다.

    대체 우리 뒤를 쫓아오는지 어떻게 안 거야?

    기냐? 아니면 무슨 저 쓰레기의 영압 같은 거라도 느껴지는 거야?

    무슨 소년만화도 아니고.

    설마 저택에서 일어난 일을 전부 파악하고 있는 것도….

    게다가 이 녀석, 방금 아무렇지도 않게 처리할거냐고 물어봤다.

    상대는 용사인데도.

    저거 레벨 꽤나 높던데 말이야.

    게다가 용사인 이상 스태이터스도 동 레벨의 다른 사람들과는 비교도 안 되게 높을 거다.

    얼굴을 보면 그것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에이 설마 못생긴 것도 서러운데 매력뿐만 아니라 다른 스탯도 사라만큼 안 되겠어?

    아무튼 우리 슈퍼 집사는 그런 용사도 이길 자신이 있단 말이야?

    나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담아 바넷사를 쳐다봤지만 바넷사는 여전히 안면 근육하나 꿈틀대지 않았다.

    …그래. 됐다. 얘랑 관련된 일은 생각하면 지는 거라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어.

    나는 더 이상 생각하기를 그만두고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시야 한 구석에 뭔가가 후다다닥 도망가는 게 보였다.

    도망간다고 해도 아예 멀어진 것도 아닌데다가, 모퉁이에서 빼꼼 내밀어져있는 머리를 통해 누군지 다 보였지만 말이다.

    "실비아? 이리 온. 해치지 않아요."

    나는 최대한 상냥한 미소를 지으면서 손짓을 해봤지만, 실비아는 내게 들켰다는 걸 알자마자 후다닥하는 소리와 함께 모습을 감춰버렸다.

    어제 그 일 때문인지 평소보다 더 나와 마주치기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그래도 부르면 올 정도는 됐었는데.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내 명령보다 도망가는 걸 우선하게 되어버렸나.

    뭐, 어쩔 수 없지. 시간이 지나서 회복되기를 바라는 수밖에.

    하지만 실비아로 못 논다니.

    안 그래도 맘 편히 밖에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인데, 놀 게 하나 더 줄어버렸다.

    어쩔 수 없지. 아마 사라도 레이아도 오늘은 제대로 저택 안에 있을 거다.

    나는 저택을 무작위로 돌아다니다가 우리 애들 중 가장 먼저 눈에 띈 애랑 놀기로 했다.

    "뭐? 걔가 아직도 밖에서 서성이고 있다고?"

    어느새 시간이 흘러 시간은 초저녁이 됐다.

    나는 갑자기 다가온 바넷사의 보고에 심각한 표정을 짓고 되물었다.

    "…네."

    바넷사는 날 내려다보면서 여전히 무표정을 유지한 채로 대답했다.

    "흠…무슨 속셈인 거지."

    설마 밤이 되기를 기다리는 건가?

    아니, 디아나의 위세에 겁먹을 정도의 정신머리는 있는 놈이다.

    밤에 기습을 가한다든가, 농담으로 끝날 얘기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을 테지.

    그럼 대체 뭐지?

    대체 무슨 목적으로 아직까지 저택 밖에서 서성이고 있다는 거지?

    나는 팔짱을 끼고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후우우우우…."

    우오오오오.

    하지만 이어서 귀를 간질이는 부드러운 숨결에, 내 안면 근육이 자동으로 풀리면서 몸이 부르르 떨렸다.

    "어머, 후훗. 자, 구원씨. 이쪽은 다 됐어요. 다음은 왼쪽이에요."

    "헤헷. 응."

    이어서 들려오는 우리 천사님의 목소리에, 나는 헤벌쭉 웃으면서 몸을 빙글 돌렸다.

    처, 천사님의 고간이 바로 눈앞에…!

    물론 옷으로 가려져있다고는 하지만, 코 전체를 향기가 가득 메우는 것 같았다.

    "구, 구원씨. 그렇게 냄새 맡으면 부끄러워요."

    "미안. 너무 좋아서."

    "후훗. 구원씨도 참…."

    뭘 하고 있는 거냐고?

    그야 뻔하잖아. 우리 천사님이 귀를 파주시고 계신 거다.

    난 천사님의 허벅지 위에 머리를 얹은 채 바깥쪽을 바라보고 누워 있다가, 방금 천사님 쪽으로 몸을 돌린 상황이고.

    "…구원님. 그 자의 대응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가만히 우리가 노닥거리는 걸 보고 있던 바넷사가, 다시 한 번 내게 질문을 했다.

    기분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그 목소리는 평소보다 약간 더 힘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 응. 잠깐 기다려. 생각 좀 해볼게. 으음…."

    나는 천사님이 귀이개로 부드럽게 귓속을 파주는 감각을 만끽하면서, 생각을 해봤다.

    젠장. 그 쓰레기 녀석. 나와 천사님의 소중한 시간을 방해하려 하다니. 절대 용서 못 해.

    대체 무슨 목적으로 저택 밖에 대기타고 있는 상황이냔 말이야.

    어차피 찌질하고 소심한 놈이니 내가 스스로 나가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못할 거면…어? 잠깐. 설마 진짜로 그걸 노리는 건가?

    내가 디아나를 대동하지 않고 혼자 나오는 걸 노리는 거야?

    가능성이 있었다. 아니, 그것 말고는 딱히 밖에서 대기하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참 할 일 없는 놈이네.

    "아, 그 놈이 대충 뭘 하려는지 알 것 같아. 바넷사. 그대로 그냥 무시…아니지."

    그대로 무시하라고 할 셈이었지만, 생각해보니 이만한 기회도 없었다.

    어차피 마인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서라도 놈을 한 번 더 만나기는 만나야했다.

    그런데 놈이 제 발로 우리 집 앞까지 찾아와서 대기하고 있는 이 상황을 어찌 이용하지 않을 수 있을까.

    놈은 지금 나한테 해코지 하려고 벼르고 있는 상황인데 잘도 마인에 관한 정보를 불겠다고?

    훗. 그런 거, 이미 낮에 그런 짓을 한 시점에서 돌이킬 수 없게 된 거다.

    게다가 놈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를 묘하게 적대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어차피 언제 만나도 놈은 나한테 적대적일 거다.

    그러니 놈에게 마인에 대한 정보를 불게 만들려면 딱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었다.

    바로 힘을 통한 압박 말이다.

    이미 검증이 끝난 디아나가 하는 게 제일 편하겠지만, 놈은 나와 디아나가 같이 있다면 모습을 드러내려하지 않을 거지.

    하지만 나에게는 디아나 말고도 쓸 수 있는 패가 더 있다는 말씀.

    바로 마틸다라는 패가.

    일단 마틸다는 말할 것도 없다.

    내가 좀 막대하고 있기는 하지만, 저래 봬도 추기경이란 말이지.

    게다가 이 세계는 여신님을 유일신으로 섬기며 모든 사람이 신자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교단의 권한이 강한 세계다.

    그런 세계의 추기경이다. 더 말 할 것도 없지 않아?

    실비아도 공주님과 소꿉친구인 걸 보면 꽤나 높으신 가문이겠지만, 용사 가문보다 힘이 강하다고는 확신할 수는 없으니까.

    여기서는 확실하게 추기경 파워로 가자.

    "잠깐만 그대로 대응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어라? 한 번에 허락해주네.

    바넷사도 나와 디아나가 헤어지기 전에 한 대화를 들었으니, 분명 사고치지 말고 얌전히 있으라는 말을 하면서 반대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바넷사는 짧게 승낙하고는 바로 방을 나가버렸다.

    뭐, 나한텐 좋은 거지만 말이야.

    그럼 쓰레기 용사와 대면하기 전에 일단은….

    "구원씨. 움직이시면 안 돼요. 가만히 계셔야 해요."

    "헤헷. 응."

    우리 천사님과의 이 시간을 만끽해야지.

    아무리 필요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 못생긴 얼굴을 볼 생각을 하니까 고통스러워서 말이야.

    일단은 우리 천사님 성분을 최대한 보충하고 가자.

    나는 내 몸 앞에 축 늘어져있는 꼬리에 손을 뻗어서 그 복슬복슬한 감촉을 즐겼다.

    "꺄악! 구, 구원씨도 참. 놀랐잖아요. 그러다 다치시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레이아는 황급히 귀이개를 내 귀에서 빼내면서, 꼬리를 위아래로 움직여서 내 몸을 가볍게 찰싹찰싹 때렸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말이야. 이렇게 꼬리로 때리는 거, 체벌의 효과가 전혀 없지 않아?

    오히려 역효과만 날 것 같은데 말이지.

    뭐 그걸 따지자면 디아나의 토닥토닥도 마찬가지지만.

    "정말…가만히 있어주세요."

    레이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이번엔 내 몸을 눌러 고정시키겠다는 듯 상체를 숙여왔다.

    위에서부터 묵직한 가슴이 얼굴 옆면을 꽉 눌러왔다.

    가슴으로 얼굴을 고정시키고 귀를 파다니. 그러니까 이거 완전 포상이라니까.

    나는 얼굴에 느끼는 감촉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켰다.

    "후훗."

    덕분에 꼬리를 만지작대던 내 손이 멈추자 안심했는지, 레이아는 그렇게 살포시 웃으면서 꼬리를 내 몸 위에 얹고 쓰다듬듯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대로 가만히 계셔야 해요."

    뽀드득 뽀드득하는 귀 파는 소리와 레이아의 조용한 숨소리만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하아. 치유된다. 영원이 이 상태로 있고 싶어.

    하지만 그 행복한 시간은 천사의 숨결과 함께 끝을 맞이했다.

    "후우우우우…자, 다 끝났어요. 후훗. 그렇게 간지러우세요?"

    "레이아도 한 번 당해볼래? 자, 후우우…."

    "어머! 후훗. 안 돼요."

    내가 몸을 일으켜 귀에 입을 가져다대려고 하자, 레이아는 바로 자신의 머리에 손을 뻗어서 자신의 두 귀를 앞으로 완전히 접어버렸다.

    양손으로 귀를 접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 천사님도 귀엽구나.

    이대로 계속 천사님과 노닥거리고 싶지만, 내키는 대로 했다가는 밤을 새버릴 것 같다.

    아니, 오늘은 천사님 차례이기도 한 만큼 반드시 그렇게 되겠지.

    과연 그 쓰레기도 밤새도록 우리 집 앞을 지키고 있진 않을 테니, 슬슬 가보실까.

    "그럼 레이아. 잠깐 나가서 일 좀 처리하고 올게."

    "저도 같이 갈까요?"

    "아니. 괜찮아. 금방 다녀올게."

    놈은 날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적대하고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나는 그게 질투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자기는 용사인데도 그 외모 때문에 변변히 여자도 못 만나고 있는데, 나는 절세미인 여럿과 같이 놀아 다니고 있단 소문이라도 들은 거겠지.

    물론 추기경 파워로 찍어 누를 계획이지만, 괜히 우리 천사님과 같이 나가서 질투를 더 유발할 필요는 없다.

    썩어도 준치라고, 그래도 일단 용사인 만큼 눈 돌아가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도 모르고.

    나는 마틸다와 단 둘이 용사와 만나기로 결심했다.

    "마틸다? 방에 있어?"

    "네, 넷?! 뭐, 뭔가요?! 아니, 잠깐만요! 들어오면 안 돼요!"

    마틸다의 방문을 두들기자, 안에서 격한 반응이 나왔다.

    저런 말 들으면 괜히 더 들어가 버리고 싶어진단 말이지.

    하지만 오늘은 협력을 구하기 위해서 온 거다.

    나는 괜히 화를 사지 말고 가만히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 안에서 마틸다가 문을 열고 나타났다.

    "어흠. 흠. 흠. 뭐, 뭔가요? 이 시간에?"

    마틸다는 자신의 옷매무새를 점검하듯이 매만지면서, 그렇게 시치미를 떼고 질문했다.

    하지만 그 눈빛은 기대에 차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게 너무도 티가 났다.

    이거 이러니까 조금 미안해지네.

    뭘 기대하고 있는지는 알겠는데, 그런 일로 온 거 아니야.

    저번에 섹스해달라고 외치게 한 다음 결국 지금까지 한 번도 안하기도 한만큼 괜히 더 미안해졌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좋은 기회였는데, 하필 우리 천사님과 제일 먼저 맞닥뜨리는 바람에 완전히 노닥거리는데 빠지고 말았다.

    나중에 틈을 봐서 정말로 해줘야지.

    "그게, 조금 부탁이 있는데 괜찮을까?"

    "…부탁이요?"

    내 말에 마틸다의 표정이 눈에 띄게 시무룩해졌다.

    야. 미안하다니까. 너무 그렇게 대놓고 티내지 마라.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무꾸914 // 바넷사의 종족은 용인족입니다. 만난지 얼마 안 됐을 때 짤막하게 언급이 나오죠.

    마스터칼솔럼 //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14C2A58H2 // 21입니다. 참고로 종족명 뒤에 있는 숫자는 나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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