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360화 (34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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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용사

    "아야야. 디아나. 아파. 그만 때려."

    "거짓말 말게! 바보! 변태!"

    나는 일단 그 토닥토닥 공격을 맞으면서 몸을 움츠렸지만, 그 행동은 오히려 디아나의 분노만 부추긴 모양이었다.

    디아나는 더욱더 강하게 팔을 휘두르더니, 주먹이 아픈지 잠깐 공격을 멈추고 손을 호호 불었다.

    그러니까 그만 때리라고 한 건데.

    "우읏…역시 냄새가…."

    자신의 손을 호호 불던 디아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다시 나를 노려봤다.

    응? 냄새라니?

    "게다가 마지막에는 입에다가! 마시게까지 하다니! 이런 게 그렇게 좋은 겐가?!"

    "응. 솔직히 엄청 좋았어. 그나저나 너 그래서 입 안 열고 있던 거였어? 아야. 아파. 디아나."

    "이 냄새를 어떻게 해줄 겐가! 응?! 어떻…으읍."

    나는 울먹이면서 토닥거리는 디아나의 입에 입을 맞춰줬다.

    혀를 얽히고 타액이 서로의 입안을 오가게 만든 후에, 나는 입을 뗐다.

    "이러면 나도 마찬가지지? 이러면 됐어?"

    마법으로 입을 헹구게 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모처럼 입에 쌌는데 싸자마자 가차 없이 헹궈버리면 뭔가 조금 아쉽잖아.

    변태 같다고? 나 변태 맞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남자가 변태라서 뭐가 나빠!

    "그, 그런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디아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힘없이 내 가슴을 한 번 톡 치고는 고개를 숙였다.

    "모처럼의 데이트였는데 말일세…."

    아, 그런가.

    물론 그런 곳에서 갑자기 야한 짓을 해버린 것도 화를 내고 있겠지만, 디아나는 그뿐만 아니라 모처럼 단둘이 하는 데이트인데 이런 식으로 끝나는 걸 더 화내는 건가.

    그건…조금. 아니, 많이 미안하네.

    "정말 미안! 내가 생각이 짧았어. 그래도 아직 시간 많으니까, 지금부터 제대로 데이트하면 되지. 일단 어디 가서 밥부터 다시 먹을까?"

    "됐네. 배부르네."

    "응? 아까 그걸로 되겠…아…."

    "무, 무슨 생각하는 겐가! 그런 거 아닐세!"

    "아니.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아무튼 그런 거 아닐세!"

    "그래. 정액으로 배부른 거 아니란 거 잘 알았으니까 얼른 다시 데이트나 하러 가자."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디아나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면서 고함을 질렀지만, 그러면서도 순순히 따라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직 데이트는 더 하고 싶은 모양이다.

    "음. 슬슬 저녁시간이구먼."

    디아나가 저물어가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쓸쓸한 듯 중얼거렸다.

    하루 종일 같이 다녔는데, 아직도 부족하다는 걸까?

    "아직 좀 더 놀다 갈까?"

    이 도시의 거리는 밤이 되어도 그다지 어두워지지 않는다.

    던전에 드나드는 모험가들은 밤낮이 거의 없다시피 하니까 말이다.

    낮에만 여는 가게도 있는 반면 밤에만 여는 가게도 존재한다. 아예 24시간 내내 열어놓고 있는 가게도 존재하고 말이다.

    의외로 발달된 기술과 모험가들이 던전에서 가져오는 풍부한 마석의 수에 힘입어, 이 거리는 내가 원래 있던 세계 이상으로 밤에도 충분히 밝고 활기가 넘쳤다.

    그러니 디아나에게 그렇게 제안을 해봤지만, 디아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만 돌아가세. 아무리 그래도 다른 이들이 자네 얼굴도 못 보도록 독점하고 있을 수는 없지."

    하여간 착해빠져 가지고.

    하긴 오늘은 밤에도 디아나 차례이니, 이대로 놀면 정말로 다른 애들 얼굴도 못보고 디아나랑 붙어있는 꼴이 되어버리긴 하지만.

    그래도 디아나는 내일 던전에 가잖아.

    "괜찮겠어? 충분히 만족했어? 디아나는 내일부터 며칠 동안 날 못 보잖아. 좀 더 이기적으로 굴어도 된다고?"

    "괜찮네. 어차피 밤에는…최고로 잘해주는 것이지?"

    "그럼! 물론이지!"

    "또 이상한 방향으로 힘쓰려고 하지 말고 그냥 평범하게 잘해주는 걸세."

    내 기운찬 대답이 불안했던 건지, 디아나는 다시 한 번 다짐시키듯이 그렇게 말했다.

    "나만 믿으라니까."

    "자네가 좀처럼 믿을만한 행동을 안 보여주니까 그런 것 아닌가."

    뭐, 확실히. 양심상 부정할 수 없는 말이다.

    아무튼 디아나의 뜻도 저러니, 우리는 이쯤에서 저택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어머. 구원씨? 디아나씨?"

    그리고 막 저택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에, 우리 이름을 부르는 천사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얼굴을 확인할 것도 없이, 나는 바로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눈치챘다.

    "레이아! 레이아도 이제 돌아가는 길이야?"

    "후훗. 네.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우연이네요."

    레이아는 방긋 웃으면서 자연스럽게 내 옆으로 다가와서 팔짱을 껴왔다.

    뭉클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내 팔을 감싸왔다.

    "두 분은 상점가에 무슨 일이세요?"

    "아, 장비들에 방수 코팅을 맡기러 왔다가 겸사겸사 좀 둘러보는 중이었어. 그렇지 디아나?"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디아나를 바라봤지만, 디아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디아나?"

    혹시 아무리 돌아가는 길이라고 해도 데이트를 방해받아서 화난 건가?

    그렇게 생각하고 디아나의 얼굴을 엿봤지만, 후드 안쪽에 가려진 디아나의 얼굴은 그런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뭔가 불안한 듯이, 눈동자를 미세하게 떨면서 입을 꽉 다물고 있었다.

    "디아나? 왜 그래?"

    "구원씨. 혹시 디아나씨한테 무슨 잘못이라도 하신 건가요?"

    크윽. 어째서 바로 그런 질문이 튀어나오는 거지.

    심지어 천사님이 그렇게 생각할 정도라니. 평소에 해오던 짓이 있으니 그 업보겠지만, 내 여린 마음에는 의외로 데미지가 꽤나 들어왔다.

    "아, 아냐! 이번엔 아무 잘못 안했어!"

    "정말인가요?"

    하지만 레이아는 마치 뭔가 짐작 가는 게 있다는 듯이 내 얼굴에 더욱더 얼굴을 가까이 가져오면서 조금 장난스러운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예쁜 콧망울이 조금이지만 움찔움찔하고 귀엽게 움직이는 게 보였다.

    어? 이거 설마? 아! 그래서 디아나가!

    "그, 그럼! 정말이고말고!"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황급히 레이아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위험해. 그때 이후로 결국 입안은 헹구지 않았다.

    시간이 꽤나 흐르긴 했지만, 설마 냄새가 남아있는 건 아니겠지?

    상대가 후각이 좋은 레이아다 보니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우리 똑똑한 디아나는 레이아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걸 알아채고는 입을 다물어버린 거겠지.

    "후훗. 그런가요?"

    레이아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쿡쿡 웃었다.

    하지만 더 이상 추궁할 생각은 없는지, 끌어안은 내 팔을 당기면서 걸음을 옮겼다.

    아, 안 들킨 건가? 아니면 눈치 채지 못한 척 해준 건가?

    "내일은 저도 기대해도 되나요?"

    그런 내 의문에 대답해주듯, 레이아가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내게만 들리도록 귓가에 조용히 중얼거렸다.

    역시 들켰잖아! 역시 천사님답게 질투하거나 놀리거나 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았지만, 역시 이렇게 막상 들키니까 부끄럽다.

    "그, 그럼…."

    "후훗."

    크윽. 저 가련한 미소는 역시 천사님 그 자체지만, 지금은 차마 저 얼굴을 똑바로 보기 힘들어.

    천사님의 목소리를 들은 건 아니겠지만, 옆에서 디아나가 레이아에게 들키지 않도록 은밀하게 옆구리를 꼬집으며 공격을 해왔다.

    그런 디아나에게 열심히 눈으로 사과하면서, 나는 그렇게 양손의 꽃 상태로 저택으로 돌아갔다.

    "그럼 구원씨. 저는 조금 갈아입고 올 게요."

    저택으로 돌아온 후, 레이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레이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마자, 바로 디아나가 나에게 토닥토닥 공격을 감행했다.

    "어쩔 건가! 저 반응! 눈치 챘다는 반응 아닌가!"

    "괘, 괜찮아. 레이아랑도 그 정도는 했어."

    "지금 그게 변명이라고 하는 겐가! 그게!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젠장. 어떻게 잘 무마해서 즐겁게 데이트까지 하고 왔는데.

    하필 막판에 그런 변수가 나타날 줄이야.

    아니. 딱히 그게 우리 천사님 잘못이 아니기는 하지만, 오히려 우리 천사님은 알고도 디아나한테 아무 내색도 안 해주시기는 했지만, 우리 똑똑한 디아나가 레이아의 반응을 보고 눈치 챘다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

    "지, 진정해. 밥이나 먹자. 밥 먹으면 입에 있던 냄새도 사라질 거야."

    "역시 냄새 나는가?! 흐이잉…."

    야. 나이 먹을 대로 먹은 애가 조금 부끄럽다고 울려고 그러냐.

    "아, 아냐! 그런 뜻으로 한 거 아냐! 디아나한텐 좋은 냄새밖에 안 나!"

    나는 토닥토닥 공격까지 멈추고 부끄러워 죽으려고 하는 디아나를 필사적으로 다독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내가 필사적으로 다독인 결과, 디아나는 겨우 진정하고 식사를 하러 내려올 수 있었다.

    아직 부끄러운지 레이아와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어? 그러고 보니 실비아는?"

    다들 식사를 하러 내려왔지만, 그 중에 실비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평소에는 내 스토커짓을 하느라 항상 동시에 오고, 나와 떨어져서 스토커짓을 못하는 날에는 제일 먼저 식당에 도착하는 애인데.

    "아침 이후로 나오는 모습은 보지 못했습니다. 아직 주무시고 계신 게 아닌가 싶어서 일부러 부르지 않았습니다만, 부르러 갈까요?"

    내 질문에 디아나의 뒤에 무표정으로 서있던 바넷사가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얜 저택 안의 일이라면 모조리 꿰뚫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어제 내가 은신 썼을 때도 곧장 나한테 달려왔고.

    우연히 지나가고 있었다고 생각하기엔 타이밍이 너무 좋았다.

    설마 복도 여기저기에 감시 카메라 같은 거라도 달아놓고 항상 감시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내가 직접 데리러 갈게."

    아침 이후라면 내가 기절시킨 이후를 말하는 걸 거다.

    설마 아직까지 기절해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조금 책임감을 느낀 나는 직접 실비아를 데려오기 위해 움직였다.

    "실비아."

    방문을 노크하면서 이름을 불러봤지만, 방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살짝 문을 열고 방 안을 엿보니, 실비아가 침대에 누워서 새근새근 잠들어있는 게 보였다.

    설마 진짜로 아침부터 지금까지 계속 기절해있는 건 아니겠지?

    뺨에 기습 키스 한 번 했다고 그 정도로 뻗어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야. 실비아. 야. 그만 일어나."

    나는 침대 언저리에 다가가서 실비아의 몸을 가볍게 흔들었다.

    "으응…. 엣?!"

    실비아는 천천히 눈을 뜨더니, 내 얼굴을 보고는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아, 아으아…왜, 왜 구원님이 여기에…게다가 밤…핫! 꿈?!"

    실비아는 주위를 둘러봐서 여기가 자기 방이란 걸 확인한 후, 다시 내 얼굴을 바라보며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창밖을 바라봐 시각이 날이 저물어가고 있다는 것까지 확인한 후에 더더욱 패닉상태에 빠지는가 싶더니…갑자기 뭔가 깨달은 듯 그렇게 외쳤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부터 분명 재밌어질 거다.

    "훗. 실비아, 무슨 소리야. 오늘은 실비아의 차례잖아."

    나는 일부러 그렇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리면서, 사뿐히 실비아의 머리 뒤에 손을 받혔다.

    분명 진동을 시작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실비아는 떨지 않았다.

    "구원니…구원씨…."

    오히려 황홀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천천히 내 입술에 입을 맞추려고 했다.

    이, 이 녀석…꿈이라고 생각하고 대담해졌어.

    무슨 꿈에서라도 못해본 걸 해보려는 사춘기 남학생의 발상도 아니고.

    하지만 미안. 아무리 그래도 아직 키스는 조금….

    실비아라면 우리 애들도 키스 정도는 허락해줄 거라고 생각하지만, 나도 물론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래도 지금 이런 식으로 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지금 키스하고 이게 현실이란 걸 밝히면 또 기절해버릴 거 아냐.

    "실비아."

    그래서 나는 실비아에게 사랑스럽기 그지없다는 눈빛을 보내면서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네, 구원씨…."

    "이거 꿈 아냐."

    "……흐엣?!"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긴 침묵이 이어진 후에, 실비아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아, 아…제, 제가 무슨 짓을…그, 그런 게 아니라…저기…으아…아아…."

    실비아의 얼굴이 한계치까지 붉어지나 싶더니, 결국 퓨즈가 끊어진 것처럼 내 팔 안에서 풀썩하고 다시 쓰러져버렸다.

    키스를 안 해도 결국 기절해버리는 건 똑같은 거냐.

    나는 하는 수 없이 혼자서 식당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구원? 실비아 데려온다고 하지 않았어?"

    "아, 응. 아직도 자고 있더라. 그래서 그냥 자게 놔두고 왔어."

    "이렇게 오래 말인가. 잠을 너무 오래 자는 것도 몸에 좋지 않네만."

    "그러게 말이야. 던전에 다녀온 게 생각해보다 많이 힘들었나? 하하."

    실비아야. 미안하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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