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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357화 (34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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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용사

    "아무리 난쟁이족이라고 하더라도, 저 얼굴은 사기 아니야? 저게 어딜 봐서 서른이야."

    대장간에 장비를 맡긴 후, 나와 디아나는 모처럼 둘이서 같이 나왔으니 같이 돌아다니기로 했다.

    "아직도 그 얘기인가. 뭐, 확실히 태도가 어린애같은 구석이 있기는 했네만."

    디아나는 뭘 그런 것 가지고 그러냐는 듯이 말했다.

    그야 네가 보기엔 그놈이나 나나 비슷한 나이로 보일지는 몰라도…아니. 이런 생각은 그만두자.

    우리 디아나는 파티에서 신체연령 최연소를 담당하는 귀엽고 깜찍한 아이니까.

    나는 디아나 말대로 그냥 그 꼬맹이에 대한 생각을 그만두기로 했다.

    내가 뭐 하러 사내새끼 생각을 계속 하고 있는 거지.

    그럴 시간에 차라리 더 유익하고 건전한 생각을 하자.

    "그러고 보니 디아나. 아까 장비 강화가 내일까지 끝나는지는 왜 물어본 거야?"

    "음. 그 얘기를 안 했었구먼. 이 몸은 내일부터 던전에 갈 생각이라네."

    "뭐?! 잠깐만. 혼자서?!"

    "그럴 리 있겠는가. 마법사 협회의 아이들과 같이 갈 생각이라네."

    "대체 무슨 일로?"

    "저번에 말하지 않았었나. 아마 각 계층의 주인이 있는 곳에 거대 마석이 있을 것 같다고 말일세. 그런 거라면 1계층과 2계층의 마석도 확인해봐야 하지 않겠나? 4계층과 5계층은 나중에 자네와 함께 갔을 때 확인해도 되니 미룬다고 해도 말일세. 게다가 1계층은 이 몸들이 발견한 비밀장소를 통해서 계층의 주인까지의 거리도 짧으니, 지금까지 이상으로 거대 마석을 조사하기 쉬워질 걸세. 지금은 여왕개미가 나오는 곳에 계속 상주하면서 아이들이 연구를 하고 있으니 말일세."

    "그거라면 굳이 디아나가 갈 필요는…."

    "이 몸이 아니라면 거대 마석의 위치를 알아채기는 상당히 힘들 걸세. 이 몸마저도 그동안 눈치를 못 채고 있었던 거니 말일세. 그 미세한 마나의 파동은 이 몸이 가서 확인할 수밖에 없네."

    "그래도, 그래도 당장 갈 필요 있어? 던전에 다녀 온지 얼마나 됐다고. 디아나도 좀 쉬어야지."

    "후훗. 괜찮네. 이 몸은 마법을 연구하는 것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네. 게다가 이렇게 자네와 있는 것도 다 휴식 아니겠나?"

    디아나는 까치발을 들고는 마치 날 기특한 표정으로 쳐다보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기특한 소리는 자기가 해놓고 말이야.

    그리고 굳이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손을 후드 안으로 넣어야겠냐?

    나 얼굴 가리려고 후드 쓰고 다니고 있는 거다만.

    "그리고 파티에서 디아나만 가는 것도 그래. 아니, 물론 협회 누님들이 같이 가면 1, 2계층에서 위험할 일은 없겠지만 아무리 그래도…역시 나도 같이 갈까?"

    "후훗. 이 몸이 걱정되는 게 아니라, 이 몸이 시야에 없으면 자네가 불안한 건 아니고?"

    "뭐, 그렇다고 쳐도 상관없어. 그러니까 나도 같이 갈게."

    "아니. 괜찮네. 자네는 여기 남아있게?"

    "뭐? 왜?"

    "이 몸의 개인적인 용무에 모두를 말려들게 할 생각은 없으니 말일세. 기껏 던전에서 돌아왔는데 자네가 곧바로 다시 던전에 가버리면, 아직 같이 밤을 지내지도 못한 레이아양은 기분이 어떻겠나? 걱정 말게. 정말로 잠깐 다녀오는 것이니,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걸세. 내일 바로 출발하면 다음 이 몸의 차례까지는 아슬아슬하게 도착할 수 있을 걸세."

    네가 무슨 관우냐. 술이 식기 전에 화웅의 목을 베고 오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다른 애들을 들먹이니 나도 무작정 같이 가겠다고 우길 수도 없어졌다.

    디아나 말대로 레이아한테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으윽. 알았어. 그래도 조심해야 돼. 괜히 빨리 다녀오려고 서두르다가 다치기만 해봐."

    "후훗. 다치면 어쩌려고 그러나?"

    "이 몸은 내거야! 다치면 진짜로 가만 안 둬!"

    "알겠네. 알겠네."

    내가 그렇게 말해도, 디아나는 귀엽다는 듯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옆에서 보면 까치발 들고 팔 쭉 뻗어서 간신히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네 모습이 훨씬 더 귀엽고 흐뭇해 보이거든?

    게다가 마법 연구하러 가면서도 자기 차례는 꼬박꼬박 챙기기까지 하려고 하는 기특한 녀석인 주제에…잠깐. 그렇다면?

    "그럼 설마 내일 출발한다는 게, 오늘은 디아나 차례니까? 내일까지 장비 강화를 재촉한 것도 다음 차례까지 돌아오려고?"

    내가 그제야 디아나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렇게 외치자, 디아나의 몸이 움찔하고 떨렸다.

    "흐, 흠. 오늘 밤은 최고로 잘 해준다고 한 건 자네 아닌가."

    디아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그렇게 말했지만, 들켜서 부끄럽다는 듯 얼굴이 새빨개졌다.

    "으이구. 귀여운 짓은 자기가하고 있으면서 어른스러운 척이나 하고."

    나도 디아나의 후드 안쪽에 손을 집어넣어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후드 틈사이로 살짝살짝 보이는, 햇빛이 반사되어 눈부시게 빛나는 은빛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듯 마구잡이로 쓰다듬었다.

    "그, 그만두지 못하겠나?! 여자의 머리를 함부로 만지는 게 아닐세! 그리고 이 몸은 어른일세!"

    디아나는 확실히 부끄러워하고 있는 건지, 그렇게 외치면서 내 손을 치우려고 했다.

    평소엔 머리 만져도 기분 좋다는 듯이 가만히 있는 주제에.

    "그럼. 우리 디아나 누나는 어른이지."

    "뭔가 그 말투는…."

    디아나는 분하다는 듯이 내 가슴을 토닥토닥 때려니, 그래도 내가 머리를 어루만지는 손을 치우지 않자 결국 포기하고는 맘대로 하라는 듯이 가만히 서있었다.

    "뭐, 아무튼 볼일은 다 봤으니 어디 가서 같이 밥이나 먹고 갈까?"

    "음. 에스코트하게."

    "네. 아가씨. 분부대로 합죠. 어디 원하는 데라도 있어?"

    "자네와 단둘이 먹을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네."

    디아나의 말은 기쁘기 그지없었지만, 그렇다고 아무 음식점이나 데려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모처럼의 기회니 괜찮은 곳에서 식사를 하고 싶잖아.

    그래서 나는 일단 귀족가로 돌아간 후, 가본 적도 없는 고급 음식점까지 걸음을 옮겼다.

    과연 귀족가에 있는 음식점이니만큼 신분검사도 철저한 곳이었지만, 그 정도는 디아나가 잠깐 후드를 젖히고 신분을 밝히는 것만으로도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구먼. 자네가 이곳도 알고 있다니 말일세."

    디아나는 기특하다는 듯이 날 쳐다봤다.

    만약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아있는 게 아니었다면, 분명 또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했을 거다.

    "후훗. 나란 남자는 항상 준비가 되어있는 남자지."

    실은 그냥 할 일 없이 돌아다녔을 때 봐뒀던 게 우연히 기억났을 뿐이지만, 나는 일단 잘난 척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디아나는 여기 온 적 있나봐?"

    "귀족가에 위치하고 있을 만큼 유명한 가게이니 말일세. 그야 한두 번은 온 적이 있네."

    디아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주변을 보라는 듯 제스처를 취했다.

    확실히, 점심시간이란 걸 감안하더라도 이 정도로 사람이 들어차 있다는 건 그만큼 유명한 가게라는 거겠지. 심지어 손님들은 전원 귀족으로 보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성자라…제대로 여성을 만족시키지도 못했던 남자를 순식간에 제구실하는 여엿한 남자로 만들었다는 소문이 있더군. 자넨 그 소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그리고 이렇게 귀족들만 있는 곳에서도, 역시나 내 얘기는 들려오고 있었다.

    "아, 그 얘기 말인가. 나도 들은 말에 불과하지만, 아무래도 사실 같다고 하더군. 심지어 여신님의 사자라는 소문까지 들려오고 있다네. 교황청에서도 딱히 부정하는 반응은 없고, 그 마틸다 추기경이 정말로 교황청에서 모습을 감췄다는 소문까지 있더군."

    "호오…정말로 사실일 가능성이 있다는 건가."

    "그렇다면 여신님께서 다시 우리 남성들의 시대를 위해 축복을 내려주시려는 건지도 모르겠군."

    귀족차림의 남성들은 그렇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마치 축배라도 들듯이 건배를 했다.

    우리 남성들의 시대 좋아하고 있네.

    난 그딴 거 안중에도 없거든.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 거다.

    "흥! 성자 같은 소리하고 있네! 어디서 사기꾼 새끼가 튀어나와서는."

    두 사람이 건배를 하는 와중에도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똥 씹은 표정을 짓고 있는 사내가 중얼거렸다.

    차림새는 앞의 둘과 마찬가지로 확실히 귀족같이 옷을 입고 있지만, 얼굴이 심각하게 평범했다.

    다른 둘은 그나마 귀족답게 나른 괜찮은 얼굴을 하고 있는 만큼, 그에 비교되어 저 평범한 외모는 못생겨 보이기까지 할 정도였다.

    "하핫. 뭘 그렇게 화를 내는 건가. 만약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가장 기뻐해야할 사람은 자네 아닌가? 안 그런가?"

    "뭐야?!"

    "하하. 자네가 참게. 이 사람 이거, 지금 공주가 상대를 안 해주니 욕구 불만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모양일세."

    "하핫. 그런 건가? 하지만 내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어디 한 번 찾아가보는 게 어떻겠나? 혹시 아나? 성자가 자네를 불쌍히 여기고 추기경의 저주보다도 더 우선시해줄지도. 크하하하."

    "이, 이…닥쳐! 난 그딴 사기꾼새끼 말은 안 믿어! 어디서 그런 쓰레기 같은 새끼가…!"

    놈은 분노에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차마 자신을 놀린 귀족을 욕할 수는 없는지 애꿎은 내 욕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 모습을 보고, 디아나가 푸욱 한숨을 쉬더니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조용히 내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 후 남자들이 앉아있던 테이블로 향했다.

    "그렇게 말 함부로 해도 되겠나? 그러다가 누가 들으면 성자님이 자네를 구원해주지 않을 지도 모를 일일세? 게다가 그 지고의 대마법사님마저 낭군님으로 인정했다는 소문이 있지 않나. 막연히 사기꾼으로 몰기에는…."

    "씨발! 지고의 대마법사도 웬…!"

    "이 몸을 불렀나?"

    "넌 또 뭐…윽! 서, 설마?!"

    도발당한 평범남은 다시 욕을 하려다가, 디아나가 후드를 뒤로 젖히자 깜짝 놀라서 말을 멈췄다.

    "이 몸을 부른 소리가 들린 것 같네만, 어디 할 말이라도 있는 겐가?"

    "아, 아니…그게…그러니까…."

    놈은 상당히 당황한 듯, 아까의 거만한 태도는 어디 갔는지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몸의 낭군님 욕도 들린 것 같네만, 어디 그렇게 불만이면 본인에게 직접 얘기하는 건 어떻겠나?"

    디아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 쪽을 바라봤다.

    아까 미안하다고 한 건 이런 뜻이었나.

    뭘 이런 걸로 미안할 것까지야.

    나는 바로 후드를 벗고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저한테 할 말이라도?"

    "이이익!"

    놈은 내 얼굴을 보고, 어째선지 얼굴을 분노로 물들이고는 죽일 듯이 노려봤다.

    평범한 얼굴 때문에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는데, 살기가 장난 아니다.

    이 놈 의외로 레벨 높은 거 아냐?

    그럼 레벨도 높으면서 이런 얼굴이란 말이야? 그럼 대체 매력이….

    나는 놈에게 화나기보다, 마냥 불쌍하게만 느껴졌다.

    그래. 그 정도면 다른 이유 필요 없이 그냥 세상이 미울만하지.

    "으드득…아, 아뇨. 할 말 같은 건 없습니다. 괜히 소란 피워서 죄송합니다."

    놈은 연민이 듬뿍 담긴 내 시선을 받고 더더욱 이를 갈면서도, 꾹 참고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런가? 그럼 이 몸이 잘못들은 모양이로군."

    디아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사과 한 마디 없이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평소 디아나라면 있을 수 없는 태도였다.

    "이런 소란스런 곳에서는 편히 식사도 할 수 없겠구먼. 가세."

    그리고는 내 팔을 잡은 채로 그대로 가게를 나가버렸다.

    가게를 나선 후, 디아나는 날 올려다보면서 미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모처럼 자네가 에스코트 해줬는데 이 몸이 망쳐버렸구먼. 미안하네."

    "아니. 잘했어. 디아나가 안 나섰으면 내가 나서서 괜히 싸움만 날 뻔 했는데 뭘."

    솔직히 저런 녀석 상대로는 화도 나지 않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디아나를 다독여줬다.

    "게다가 날 위해 화낸 거잖아? 으이구. 우리 디아나는 낭군님 욕먹는 게 그렇게 싫었어?"

    "다, 당연하지 않은가."

    디아나는 놀리지 말라는 듯이 주먹을 쥐고 손바닥 부분으로 내 가슴을 가볍게 때렸다.

    "아무튼 저 자는 원래 저런 것으로 유명한 자네. 그러니 자네도 괜히 저 자가 하는 말에 신경 쓸 것 없네."

    "응? 아는 사이야?"

    "아는 사이라고 할 정도로 친한 건 아니네만, 뭐 이름이나 얼굴정도는 알고 있는 수준이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워낙 유명한 인물이다 보니 말일세."

    "응?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유명?"

    "음. 아무리 저런 성격이라고 하더라도 일단은 세계 유일…이라고 알려져 있는 용사 아니겠나."

    디아나는 유일이라고 말하려다가 내 빤히 얼굴을 보더니, 그렇게 말을 바꿨다.

    하지만 나는 그런 디아나의 태도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동요했다.

    뭐? 용사? 사라랑 똑같은? 잠깐, 그렇다면…!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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