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349화 (333/1,205)
  • 349====================

    거대 마석의 정체

    3계층의 마을로 돌아가던 도중, 나는 문득 어떤 사실이 떠올랐다..

    "디아나. 그러고 보니 이번 거대 마석은 제대로 조사도 안 하고 그냥 와버렸네. 미안. 그 생각을 못했어. 다시 돌아갈까?"

    애초에 디아나는 거대 마석에 새겨진 마법적 처리를 해석하고, 마법을 더 연구하기 위해서 여기에 온 거였다.

    그걸 까먹고 그냥 와버리다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마음먹었다고는 하나, 역시 완전히 냉정한 상태였던 건 아닌 모양이다.

    "아니. 괜찮네."

    하지만 디아나는 별 거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겠어? 디아나는 저걸 조사하러 온 거였잖아."

    아마도 내 상태를 염려해서 배려를 해주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재차 확인해봤지만, 디아나는 정말로 괜찮다는 얼굴이었다.

    "이곳의 마석에 가해진 마법적 처리도 개미굴에서 발견한 마석에 가해졌던 것들과 큰 틀은 비슷한 걸로 보였으니 말일세. 어차피 세부 내용은 잠깐 본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이번엔 이정도로 만족할 수밖에."

    디아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양팔로 레이아의 꼬리를 끌어안고는 뺨을 문지르며 폭신폭신한 감촉을 만끽하는데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3계층에서 탐험하는 내내 그랬지만, 디아나는 지금도 레이아의 품에 안겨있었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로군.

    이제 레이아의 가슴에 반응도 안 하기 시작했어.

    아니, 그걸 잊기 위해서 일부러 꼬리에 집중하는 건가?

    어찌됐든 부럽다. 나도 레이아한테 안겨서 머리에 가슴을 얹은 상태로 저 복슬복슬한 꼬리를 만지작만지작하고 싶다.

    아무튼 디아나가 모처럼 저렇게 말해주고 있는 거다.

    저게 진심인 건지 아니면 날 배려하기 위해서 둘러대는 건지는 몰라도, 일단 지금은 고맙게 생각하고 돌아가자.

    "겨, 겨우 해를 볼 수 있게 됐네요! 으읏!"

    며칠간의 행군 끝에 마을로 돌아온 우리는 곧장 텔레포트를 타고 지상으로 돌아왔다.

    마틸다는 햇빛이 얼마나 그리웠던 건지, 감격에 찬 목소리로 외치면서 고개를 들다가 두 눈을 감싸 쥐었다.

    저거 바보 아냐? 아무리 그리워도 그렇지, 태양을 직시하는 바보가 어디 있어.

    "그럼 난 마석 정산하고, 구조 의뢰비도 받고 돌아갈게. 다들 먼저 가 있어."

    나는 언제나처럼 그렇게 말하고는 레이첼 누님에게로 향하려고 했다.

    솔직히 오늘은 나도 바로 침대에 누워서 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래도 할 일은 해야지.

    괜히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면 우리 애들의 걱정만 살뿐이다.

    "나도 같이 가."

    하지만 평소와 다른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라가 그렇게 말하고는 내 팔짱을 껴왔다.

    "응? 왜? 뭐 볼 일이라도 있어?"

    "아니. 그냥 구원이랑 같이 있고 싶어서. 왜? 안 돼?"

    갑자기 얘가 왜 이러지? 아, 혹시 날 걱정해서주는 건가?

    하여간 얘는 배려를 하면서도 티를 안낸다니까. 그거 손해 보는 역할이라고.

    "아니, 그럴 리가. 그래. 그럼 같이 가자."

    나는 사라의 엉덩이 위에 있는 사도 인장 부근에 손을 올리고 대답했다.

    사라는 곱게 눈을 흘기면서도 내 손을 치우는 대신 옆으로 끌어와서 자기 허리를 감싸안게 만들었다.

    "이, 이 몸도…우읏! 에잇! 떨어지게! 이제 춥지도 않지 않나!"

    우리 모습을 보고 디아나가 달려오려다가, 레이아에게 안겨서 버둥댔다.

    지금까지 꼬리 잘 만지고 있었던 주제에 이제 와서 우리 천사님한테 그러지 마라.

    "조금만 더 이러고 있으면 안 돼요?"

    "안 되네!"

    "유감이네요…."

    레이아가 정말로 아쉽다는 얼굴로 디아나를 놔주자, 디아나는 쪼르르 달려와서 내 반대 팔에 안겼다.

    혹시 레이아, 그냥 추워서 디아나를 안고 있었던 게 아닌 건가?

    그러고 보니 어린애 좋아하는 성격이고, 혹시 그래서 그 대용으로 우리 중 제일 작은 디아나를…레이아. 그거 디아나한테 들키면 엄청 화낼 걸.

    "이 몸도 같이 가세."

    "그럼 오늘은 다 같이 가죠."

    레이아까지 그렇게 말하는 걸로, 오늘은 오랜만에 다 같이 마석을 정산하러 가기로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안내원 누님들이 일렬로 빽빽하게 쭉 늘어서있는 데스크에 우르르 몰려갈 수도 없는 일이다.

    다들 뒤에서 기다리고, 레이첼 누님과 대화하는 건 언제나처럼 나 혼자였지만 말이다.

    "안녕하세요! 레이첼 누님!"

    "아, 안녕하세요. 구원씨. 기운 넘치시네요."

    내가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기운차게 인사하자, 레이첼 누님이 살짝 피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는 누님은 조금 기운이 없으시네요. 무슨 일 있으세요? 혹시 그 이후로 또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건?!"

    "후훗. 아니에요. 3계층 마을까지 데려다주셨으면서 무슨 소리세요. 거기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무슨 문제가 생기겠어요. 텔레포트를 타면 순식간인 걸요."

    "그래도요."

    "네. 덕분에 잘 도착했어요. 마석 정산하러 오셨죠? 어서 주세요."

    "어? 오늘은 바로 본론부터 들어가는 건가요? 왠지 차가워요 누님."

    "구원씨를 위해서 그러는 거예요. 이렇게 계속 잡담만 하고 있으면, 뒤에서 무서운 눈으로 쳐다보고 계시는 분들한테 나중에 혼나는 건 구원씨잖아요."

    레이첼 누님의 그 말을 듣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볼 뻔 했다.

    하지만 상체가 돌아가기 전에, 나는 겨우 몸을 멈출 수 있었다.

    좋아. 잘 했어. 뒤돌아봤으면 괜히 더 의심만 샀을 거야.

    나는 얼른 인벤토리에서 마석을 꺼냈다.

    그러자 누님이 마석을 받아서는 정산하는 기계에 넣고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계가 돌아가는 사이에 나는 다시 잡담을 시작했다.

    "그 모험가들도 제대로 다 돌아갔나요?"

    "네. 구원씨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특히 그렉씨가 신신당부를 하시던데요?"

    "그렉이요?"

    "구조했던 파티에 있던 호인족 음유시인 말이에요. 설마 기억 못하시는 거예요?"

    "아, 아아! 걔 말이죠. 아 네."

    당연히 기억 못하지. 전에도 말한 것 같지만, 다시 만날 일도 없는 사내새끼 이름을 내가 기억해서 뭐하겠어. 난 그런 걸로 거짓말 안 한다고.

    "그러고 보니 누님. 그 파티랑은 어떤 사이세요? 그렇게 안색을 바꾸고 구하러 갔으니, 보통 사이가 아니었을 것 같은데."

    "후훗. 왜요? 궁금하세요?"

    "그야 뭐…조금요."

    "조금뿐인가요?"

    "조, 조금 많이?"

    "뭔가요 그게."

    레이첼 누님은 내 대답이 재미있다는 듯이 쿡쿡 웃었다.

    웃기려고 한 말 아니었는데 말이지. 혹시 누님 안에서 내 이미지는 개그 캐릭인 걸까.

    "그래서 어떤 건가요?"

    "그냥 언제나 제게 마석 정산을 하던 파티에요. 구원씨 파티처럼요."

    "그런 파티를 그렇게 안색이 변해서 구하러 갔다고요?"

    "음? 의심하시나요? 하지만 정말인 걸요. 아무리 이 일을 오래 하더라도, 익숙한 얼굴들이 어느 날 안 보이게 되는 건 익숙해지기 힘든 일이니까요."

    레이첼 누님은 그렇게 말하면서 조금 씁쓸한 듯이 웃었다.

    뭔가 건드리면 안 되는 선을 건드려버린 걸까?

    나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일부러 말을 돌리기로 했다.

    "그보다 너무하세요. 누님. 저희 파티처럼 그냥 언제나 마석 정산이나 하던 파티라니요. 저랑 누님 사이가 고작 그것밖에 안됐었나요?"

    "네, 넷? 그게 무슨 소리세요?"

    내 말이 워낙 뜬금없었던 건지, 레이첼 누님이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앞으로 성자 전설을 써나갈 사람과, 그 전설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면서 대대로 전해나갈 안내원 누님이잖아요."

    "…그러시겠죠."

    레이첼 누님의 눈길이 다시 싸늘해졌다.

    어, 어라? 이 누님, 원래 매번 이 얘기 하면 웃지 않으셨나?

    "네. 잡담은 여기까지. 정산 끝났어요. 그리고 구조 의뢰비까지 포함해서 여기요. 그리고…."

    누님은 내게 돈을 건네더니, 갑자기 몸을 숙였다. 테이블 옆의 서랍에서 뭔가를 꺼내려는 모양이다.

    이렇게 숙이니까 안 그래도 큰 가슴이 더 커 보이는 구나.

    역시 이 누님도 크단 말이야.

    저번에 힐링 섹스를 위해서 했을 때 하반신만 벗기고 했던 게 괜히 아쉬워진다.

    그때 맨가슴이라도 잠깐 좀 볼 걸…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정신 차려! 가슴의 유혹에 지면 안 돼!

    뒤에서 날 따뜻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을 우리 애들을 떠올려!

    "자 여기요!"

    내가 번뇌와 싸우고 있자, 레이첼 누님이 서랍에서 뭔가를 꺼내서는 내게 건내줬다.

    이건…수건?

    "약속대로 제대로 빨았어요. 그럼 이제 돌려드릴게요."

    그렇게 말하면서 수건을 건네는 레이첼 누님의 얼굴을, 나는 무의식적으로 빤히 쳐다봤다.

    "구, 구원씨? 왜 그러세요?"

    "아, 아뇨. 아무것도."

    말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이거 전에 제가 줬던 수건 아닌데요?’라고.

    누님은 내 게임 시스템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

    나는 아이템을 받으면 간단한 설명이 보인단 말이지.

    전에 내가 레이첼 누님에게 건네줬던 건 그냥 수건이었지만, 지금 받은 건 무려 엘프의 수건이었다.

    아이템 설명에는 엘프가 섬세한 손길로 한 땀 한 땀 만들어서 물기 흡수가 더 잘 된다고 쓰여 있었다.

    누가 봐도 다른 물건이잖아. 엘프란 건 레이첼 누님을 말하는 거겠지?

    그럼 이건 레이첼 누님의 수제 수건? 그렇다면 원래 내 수건은 어디 간 건데?

    아니, 그야 물론 그냥 평범한 수건이랑 누님이 직접 만든 수건을 교환하면 내가 이득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혹시 아무리 빨았다고는 하나, 자기 애액이 묻었던 수건을 다른 남자에게 돌려주기 싫다는 의사 표시인 걸까?

    물론 레이첼 누님이 직접 말한 건 아니지만, 은근히 상처받는다.

    아니. 상처받을 일이 아닌가? 원래대로라면 이게 보통인 건가?

    "어…음…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누님 안녕히 계세요."

    나는 더 이상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그냥 수건과 돈주머니를 인벤토리에 쑤셔 넣었다.

    "네. 안녕히 가세요. 아, 그리고 구원씨."

    "네?"

    "고생하세요."

    "아, 네."

    고생하라니? 뭘?

    뭔가 이상하기는 했지만, 아무튼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우리 애들 곁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역시나 사라와 디아나가 의심의 눈초리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재밌었어?"

    "입가에 웃음이 사라지질 않더구먼."

    "아니. 그냥 우리가 구조해준 애들 잘 돌아갔냐는 소리만 했어. 레이첼 누님도 다시 한 번 고맙다고 하고. 그게 다야."

    중간에 가슴의 유혹에 잠깐 빠지기도 했지만, 결국 번뇌에서 벗어났으니까 괜찮잖아. 그 정도는 봐줘.

    "그보다 얼른 돌아가자. 빨리 침대에 누워서 쉬고 싶다."

    "하여간 자네는 항상 그렇게 엉큼한 소리를 하는구먼."

    "우으읏…."

    아니. 그런 얘기를 한 게 아니라 진짜 순수하게 침대에 눕고 싶단 뜻으로 말한 건데.

    게다가 디아나 너도 기분 좋아 보이잖아.

    차례를 뺏긴 사라는 조금 울상이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떠들면서 길드 밖으로 나가자마자, 나는 바로 레이첼 누님이 왜 헤어지면서 고생하라고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덤으로 레이첼 누님이 처음에 그렇게 피곤한 표정을 짓고 있있던 이유도 말이다.

    "오셨다아아아!"

    "우와아아! 성자니이이임!"

    "성자님이다아아아아!"

    이 도시는 기본적으로 던전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도시다.

    당연히 사람이 가장 몰리는 곳은 던전을 중심으로 빙 둘러싸든 세워진 길드고, 그 때문에 길드 건물 주변은 넓은 도로가 잘 정비되어있다.

    그런데 그렇게 잘 정비된 넓은 도로를, 수많은 인파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심지어 그 대부분이 남자였다.

    "성자니이이임! 저희를 구원해주십시오오오오!"

    이건 또 갑자기 이게 무슨 소동이야?

    설마 마틸다의 치료 때문에 내가 신의 사도라는 게 퍼진 건가?

    아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상하다.

    만약 그게 퍼졌다고 하더라도, 갑자기 저렇게 광신적으로 구원을 외치는 건 이상하잖아.

    여기에 있는 놈들이 전부 마틸다 때문에 고자가 된 사람이라면 모를까.

    만에 하나라도 그럴 리는 없었다.

    애초에 마틸다는 원래 이 도시에서 지내던 게 아니었잖아.

    원래는 여기서 한참 떨어진 교황청에서 지냈던 거고, 당연히 고자가 된 수많은 남성들도 그 근처에서 살고 있을 거다.

    고자가 된 사람들이 전부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높으신 분들이 아닌 이상, 여기 있는 놈들이 마틸다의 저주로 고자가 된 놈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그럼 대체 이 놈들은 뭐란 말이야?

    도저히 짐작조차 되지 않았지만, 나는 일단 이 한 마디부터 외치기로 했다.

    "지금 내 이름가지고 말장난한 새끼 누구야!"

    구원이란 이름으로 말장난 할 수 있는 건 나 하나뿐이야!

    다른 새끼가 하는 건 용서할 수 없어!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