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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348화 (332/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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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 마석의 정체

    "디아나? 왜 그래?"

    디아나의 심상치 않은 반응을 보니, 바로 이 거대마석에서 뭔가 알아내기는 알아낸 모양이다.

    혹시 던전이 만들어진 목적과 직결되는 실마리가 아닐까?

    나는 기대되는 한편, 조금 불안하기도 한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말했다.

    "으음…."

    하지만 디아나는 자신이 알아차린 사실을 좀처럼 믿고 싶지 않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 채 말이 없었다.

    그런 표정 짓지 마라. 예쁜 얼굴에 주름 생길라.

    내가 검지로 디아나의 미간을 꾹꾹 눌러주자, 디아나가 잠깐 놀라더니 배시시 웃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군. 자네 이 몸이 개미굴에 있던 거대 마석에 대해서 했던 말들은 기억하는가?"

    "아, 아마 대부분? 구체적으론 어떤 말?"

    "거대 마석은 이 몸을 능가하는 마법적 지식을 가진 사람이, 이제는 전설에나 나올 법한 드래곤 하트를 능가하는 마나 덩어리를 다뤄서 만들어 냈다는 것 말일세."

    "아, 응. 기억 나. 그런 말 했었지. 그럼 이것도 마찬가지라서 놀란 거야?"

    디아나는 자기보다 뛰어난 마법적 지식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은 모양이었으니까 말이다.

    마치 신이 만들어내기라도 한 것 같다고 했던가?

    솔직히 나는 이 던전을 여신이 만들어 냈다는 가설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그렇다면 본인이 만든 이 던전을 왜 굳이 다른 세계에 있던 날 데려와서 돌게 만드는 거냐는 또 다른 의문이 생기기는 했지만.

    "아니. 그런 것이 아닐세. 애초에 같은 물건이 존재하는 시점에서 비슷할 거라곤 예상하고 있었지. 아무래도 이 마석 역시 개미굴에서 발견한 것을 만든 사람과 같은 사람이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되는구먼. 이 몸의 마법적 지식을 한없이 능가하는 고도의 마법적 처리가 되어있네. 또한 담겨있는 마력은 개미굴에서 봤던 것을 능가하기까지 하는구먼. 이건 어디까지나 가설이네만. 전에 봤던 것이 개미굴 전체의 근간을 이루는 마석이라면, 이 마석은 3계층 전체의 근간을 이루는 마석인 것 같구먼. 규모가 큰 만큼 마석에 담긴 마력도 큰 거겠지."

    "아, 그럼 마석에 담긴 마력이 워낙 거대해서 놀란 거구나?"

    하지만 그 말에도 디아나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아니. 그것도 아닐세. 물론 이렇게 거대한 마나가 담긴 물건이 대체 무엇인지 놀랍기는 하네만, 문제는 그게 아닐세. 이 몸을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이 마석이 담고 있는 마나의 성질이 개미굴에서 봤던 마석의 마나 성질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 같다는 걸세."

    "응? 그 말은 즉?"

    "어쩌면 개미굴에서 봤던 마석과 이 마석은 같은 생명체에게서 추출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걸세. 믿어지는가? 그 옛날 존재했다던 드래곤조차도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마나량일세. 이 마석만 하더라도 그렇네. 모르긴 몰라도 드래곤 하트 수백. 아니, 수천수만 개를 모아야 겨우 견줄 수 있을 정도의 마력을 담고 있네. 그런데 이 마석조차도 어떤 생명체의 일부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걸세. 이게 정말로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이 몸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구먼. 이런 건 불가능하네!"

    디아나의 말을 듣고, 나는 머릿속에 한 가지 가설이 떠올라버렸다.

    "…신의 몸을 토막 내기라도 해서 나눠놓지 않는 이상은 말이지?"

    "그렇…자네 설마…!"

    디아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아 챈 모양이다.

    그래. 신화에서는 꽤나 단골처럼 나오는 얘기다.

    신의 몸이 대지를 이룬다는 얘기는 말이다.

    그 뻔한 신화를 비틀어서, 이 던전이 신의 몸으로 이뤄져있다면?

    물론 신화처럼 그냥 신이 쓰러져서 그 몸이 대지가 됐다 수준의 얘기는 아닐 거다.

    디아나가 말하기를 마석들은 엄청난 마법적 처리가 되어있다는 모양이니까.

    즉, 이런 거다.

    여신이 다른 신의 몸을 이용하여 던전을 만들었다.

    그 신은 아마 이 세계의 여신이 적대하는 신, 다시 말해 마신 같은 놈이겠지.

    하지만 신이란 게 그렇게 간단히 죽는 것도 아닐 거다.

    여신은 마신의 몸을 여럿으로 나눠서, 각각 따로따로 봉인해 놨다.

    그게 바로 던전의 각 계층이라는 얘기다.

    만약 이 가설이 맞는다고 가정한다면, 여신이 날 이 세계로 부른 이유는?

    뻔하잖아.

    이 마신을 봉인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아예 소멸시켜버리라는 거다.

    뭐, 이 가설은 여러 가지 의문점이 생기지만 말이다.

    일단 제일 처음 떠오르는 의문점은, 애초에 마신을 소멸시키는 게 가능하다면 왜 여신이 직접 하는 게 아니라 나 같은 놈을 불러서 하냐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만약 정말로 목적이 마신을 소멸시키는 거라고 한다면, 그 방법이 대체 뭐냐는 거다.

    그냥 던전의 끝까지만 도달하면 그걸로 끝인 걸까?

    그렇게 간단하게 끝날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게다가 각 계층마다 이 거대 마석이 존재하는 거라면, 이걸 어떻게든 처리하지 않으면 안되는 게 아닐까?

    그냥 계층의 주인만 잡아서는 얼마든지 다시 부활해버리니 말이다.

    하지만 전에 만난 여신은 지금까지 해온 내 행동들이 꽤나 흡족한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2계층은 계층의 주인을 만나지도 않고 개미굴을 통해서 3계층으로 갔는데 말이다.

    즉, 이 거대 마석을 어떻게 할 필요는 없다는 거다.

    설마 마지막 계층에 마신의 핵 같은 게 존재해서, 그걸 없애거나 해야 되는 건 아니겠지?

    마왕까진 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이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마신은 아니잖아. 마신은.

    온갖 잡념이 머릿속을 휘몰아쳤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느 정도 이 비슷한 전개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눈앞에 나타나니 가슴 한편이 무거워졌다.

    더 내 마음을 무거워지게 하는 건, 내가 여신의 명령을 무조건 들어야 되는 상황이라는 거다.

    만약 여신이 하는 말을 거절했다가 내게 줬던 이 게임 시스템이나 성자 직업같은 능력을 모조리 빼앗아 버리면?

    아니, 그것만으로 끝나면 차라리 낫다.

    여신님은 내가 계약을 맺고 이 세계로 왔다고 했다.

    물론 전에 만났던 여신님의 성격 상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계약 파기의 대가를 요구할지도 모를 일이다. 예를 들어서 목숨 같은 대가 말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전부 없던 일로 하고 나를 원래 세계로 돌려보낼 수도 있는 일이다.

    이 세계에 와서 사랑하는 애들이 이렇게나 잔뜩 생겼는데, 이제 와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니.

    원래 세계에서 이 세계로 넘어왔을 때 별로 정신적 데미지가 없었던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웃기지만, 지금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다름 아닌 원래 세계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런 일이 일어난 것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얘들아, 역시 여신님이 날 이 세계에 보낸 이유는…."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겠네. 하지만 이 몸은 그럴 것 같지 않구먼."

    아마 난 어울리지 않게 꽤나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겠지.

    디아나가 날 달래기라도 하듯 머리 위에 손을 얹고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면서 말했다.

    "그럴 것 같지 않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생각해보게. 여신님께선 자네에게 성자라는 직업을 주고 이 세계에 보낸 것 아닌가?"

    "응. 그런데?"

    "만약 자네에게 전투를 시키기 위해서 부르신 거였다면, 성자가 아니라 용사라는 직업을 주셨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나?"

    디아나가 그렇게 말하자, 어느새 옆으로 다가와서는 내 얼굴을 불안한 표정으로 들여다보고 있던 사라의 몸이 움찔하고 떨렸다.

    그런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나.

    "그럼 디아나 생각에는 여신님이 날 성자로서 여기 보낸 건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음. 요즘 들어서는 완전히 자취를 감췄네마는, 원래 이 세계에는 자네 이외에도 이방인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네. 이 몸도 지금까지 꽤나 많은 수의 이방인을 만나봤지만, 여신님이 뭔가 특별한 직업을 주신 사람은 없었다네. 그런데 자네에게는 특별히 성자라는 직업까지 주시고 보내신 걸세. 거기엔 분명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을 걸세."

    어쩌면 디아나는 그냥 날 달래기 위해서 그렇게 말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 확실히 전투 능력이라는 면만 놓고 보면 용사라는 직업이 성자보다 압도적으로 좋았다.

    레벨 업만 놓고 보면 성자가 더 빠르다고는 하지만, 용사는 사냥을 통해서도 레벨을 올릴 수 있는 만큼 그게 그렇게 유리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래. 어울리지 않게 심각한 표정 짓지 마. 그리고 만약 전투 때문에 부른 거면 어때? 상대가 마왕이 됐든 마신이 됐든, 난 언제나 구원 곁에 있을 건데."

    사라가 내 팔을 끌어안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마왕이라는 말에 힘을 주면서 살짝 장난스럽게 웃은 건, 아마 예전에 내가 했던 착각을 떠올렸기 때문이겠지.

    사라를 위해서 같이 마왕을 퇴치하겠다던 착각 말이다.

    설마 입장이 반대가 될 줄이야.

    "그래요 구원씨. 설령 여신님이 내려주신 사명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구원씨가 가시는 곳엔 언제나 저도 함께할 거예요."

    레이아도 사라와는 반대쪽 팔을 끌어안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솔직히 만약 마신과 싸우게 된다면 그런 위험한 자리에 우리 애들은 절대 동석시키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찌됐든 그 마음만큼은 날 든든히 받쳐주었다.

    "그래. 고마워. 뭐, 애초에 정말로 마신과 싸우라고 부른 건지도 알 수 없는 거고. 다음에 여신님과 대면하게 됐을 때 물어보고 사실이면 그때 가서 고민하면 되지 뭐."

    나는 애써 밝은 목소리로 그렇게 별 생각 없어 보이는 듯이 말을 내뱉었다.

    솔직히 마신과 싸우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떨어지지 않았지만, 정말로 혹시 모르는 거잖아?

    나는 억지로라도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했다.

    "일단…마을로 돌아갈까."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지금은 더 이상 던전 탐험을 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차피 우리가 던전에 들어오고 나서 꽤나 시간이 오래 흘렀다.

    2계층의 마을에 머무르면서 사냥했던 때를 제외하면 역대 최장기록을 돌파했을지도 모른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자네라면 분명 4계층도 보고 가자고 할 줄 알았는데 말일세. 의외로구먼."

    디아나도 내 마음을 알아주고 최대한 평소처럼 말하려는 건지, 조금 놀리는 것 같은 말투로 말했다.

    "아, 그것도 그렇네. 혹시 내려가는 길이 길어?"

    "아니. 다른 계층들 사이를 이동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짧다네."

    "그래? 그럼 어디 한 번 가볼까?"

    솔직히 마신을 상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던전 아래로 내려가는 게 조금 싫어지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니, 마신이 상대라면 오히려 더더욱 아래로 내려가서 더더욱 강해져야한다.

    어차피 여신님의 요구를 거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굳이 가보겠다면 말리지는 않겠네마는, 지금으로선 추천하진 않네."

    "응? 왜?"

    "장비가 녹이 스는 건 자네도 싫을 것 아닌가."

    "잠깐 기다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4계층은 계층 전부가 물로 채워져 있으니 말일세."

    디아나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뭐? 그럼 숨은?"

    "그래서 4계층부터는 파티에 마법사나 정령사가 있는 것이 필수라네.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고가의 매직 아이템이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일세."

    "……."

    디아나의 태평한 말에 나는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말았다.

    2계층 때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말이야. 이 던전, 왠지 몬스터가 흉포성보다는 환경의 험난함으로 사람을 더 괴롭히지 않냐?

    만약 정말로 여신님이 이 던전을 만든 거라면, 정말로 사람이 다가오지 않게 만들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니. 던전을 이루는 건 마신의 일부라는 가정이 맞는다면, 이 경우는 여신님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소재가 된 마신이 문제라고 생각해야 되는 건가?

    "아니. 그래도 그럼 일단 우리는 갈 수는 있다는 거네. 장비는 녹이 슨다고? 어떻게 하면 돼?"

    "특수한 소재로 코팅을 입혀서 방수상태로 만들어야하네. 그 정도는 위에 있는 그 대장간에서도 충분히 가능할 걸세."

    결국 또 한나네 대장간에 가야하는 건가.

    저번 사건 이후로 걔들 얼굴보기 괜히 무안하단 말이지.

    뭐, 단골 가게를 잃지 않기 위해서라는 목적도 있었던 만큼 가긴 갈 거지만.

    그렇게 해서 우리는 4계층을 둘러보는 걸 깔끔하게 포기하고 일단 마을로 돌아가기로 했다.

    모처럼 강화도 빠방하게 했는데, 장비에 녹이 슬게 만들 수는 없지.

    4계층에는 장비를 싹 다 방수 코팅하고 난 다음에나 가기로 하자.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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