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347화 (33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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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 마석의 정체

    "으아아…우웨에엑! 흐악! 죽어…나 죽어…."

    다음 날 아침. 3계층의 주인을 상대하려 밖으로 나가자, 광장에 시체 세 구가 놓여 있었다.

    아니. 일단 토악질을 하면서 꿈틀대는 걸 보면 살아는 있는 모양이지만,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모양새였다.

    "여! 구원! 지금부터 다시 출발하는 거냐?"

    그리고 그 앞에는 앨리시아가 맹수를 연상케 하는 시원스런 미소를 지으면서 내게 손을 흔들면서 다가왔다.

    만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얘도 참 맺고 끊는 게 확실한 성격이다.

    어제 그렇게 헤어졌는데도 오늘은 또 상쾌한 미소로 인사하다니.

    하긴. 그러고 보니 저번에도 그렇게 두들겨 패고 헤어진 주제에, 어제 막 만났을 때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인사했지.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긴 하지만.

    "어…뭐 그런데…앞에 셋은 괜찮은 거냐?"

    원래라면 레즈비언 의혹이 있는 앨리시아가 우리 파티에 다가오는 것만으로도 경계해야겠지만, 이 내가 그러는 것도 잊고 절로 먼저 안부부터 묻게 될 정도로 삼인방의 모습은 심각했다.

    "응? 아아. 쯧. 요즘 애들은 근성이 없다니까. 근성이. 엄살떨지 말고 일어나! 너희보다 늦게 모험가가 된 쟤는 이제 4계층을 향한다는데, 고작 3계층에서 하루 사냥했다고 언제까지 빌빌댈 거야!"

    분명 난 괜찮냐고 물은 건데, 앨리시아는 오히려 삼인방을 보채기 시작했다.

    앨리시아 쟤, 보기보다 훨씬 더 가차 없구나.

    아니. 물론 이미 딱 보기에도 가차 없게 생기기는 했지만, 내 말은 보이는 이미지보다도 훨씬 더 그렇다는 말이다.

    이건 귀신 교관 수준이 아니잖아.

    게다가 말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얘들이 이렇게 구르고 있는 이유는 나 때문인 것 같아서,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더 미안해졌다.

    쟤들이 어제 날 원망스런 눈초리로 쳐다봤던 거, 그런 이유 때문이었던 거냐.

    참고로 지금은 날 그렇게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애초에 그렇게 쳐다볼 힘도 없어 보였다. 눈에 초점도 안 맞고 있는 것 같고.

    "야. 아무리 그래도 나랑 비교하는 건 좀 그렇지. 난 성자 아니냐. 성자."

    이 세계에서 제일 처음 성자의 위력을 맛봤다고 볼 수 있는 앨리시아이니까 이 말도 통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앨리시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무슨 소리! 인간은 하려면 뭐든 할 수 있는 법이라고!"

    "아, 네…."

    칸나, 세레나, 에이미. 난 할 만큼 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명복을 빌어주는 것밖에 없어. 무력한 나를 용서해다오.

    "그나저나 너희, 이제 3계층의 주인을 잡으러 가는 거냐?"

    "아, 응. 그런데?"

    "그렇담 도중까지 우리도 같이 가는 게 어때?"

    "너희랑?"

    "그런 표정하지 말라고. 끝까지 같이 따라간다는 게 아니니까. 나도 쟤들이 3계층 주인을 상대할 수준이 아니란 건 잘 알아. 그냥 어차피 쟤들 훈련시킬 겸 나가야하니, 도중까지 같이 가자는 거다."

    아니. 어떻게 내 표정을 보고 그런 말이 나오는 거냐.

    내 표정은 쟤들이 방해된다는 표정이 아니었어.

    물론 쟤들 수준으론 방해밖에 안되겠지만, 그 이전에 쟤들 상태를 봐라.

    던전에 나갈 수준이냐? 좀 쉬게 해주라고.

    "아니. 됐어. 저런 상태인 애들이랑 같이 갔다가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쳇. 역시 그런가. 더 철저히 훈련시키지 않으면…."

    앨리시아는 기대도 안했다는 듯이 혀를 차더니, 조그맣게 무서운 소리를 중얼거렸다.

    바닥에 뻗어있던 삼인방의 몸이 부르르하고 떨린 건 결코 내 착각이 아닐 거다.

    바닥에 처박힌 채 이쪽을 향해있는 칸나의 얼굴이 원망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 역시도 말이다.

    "아, 아무튼 난 간다!"

    이 이상 앨리시아와 대화를 나눠봤자 괜히 더 삼인방의 원망만 사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들었던지라, 나는 황급히 대화를 마무리하고는 길을 나섰다.

    "어, 그래. 나중에 보자."

    나중에 언제?! 설마 4계층에서?! 시체라도 끌고 올 셈인 거 아니지?!

    나는 조용하게 삼인방의 명복을 빌어줬다.

    3계층의 주인을 만나러 가는 길은 저번보다 훨씬 더 쾌적했다.

    저번에는 혹시 주변에 조난당한 모험가는 없는지 주의하면서 가야했기 때문에 속도가 조금 더딜 수밖에 없었지만, 그런 제약마저 없어진 우리는 쾌진격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미궁을 쓱쓱 나아갔다.

    게다가 중간까지는 이미 한 번 가봤던 길이라는 점도 한몫 거들었다.

    그냥 한 번 가봤던 길은 왠지 이동 속도가 빨라진다는 수준이 아니다.

    나 같은 경우는 한 번 지나갔던 길은 맵 시스템에 기록이 되니까 말이다.

    지도를 펼쳐서 일일이 확인해볼 것도 없이 나아갈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이점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3계층 몬스터를 손쉽게 잡고 있기는 하지만 레벨 자체는 오히려 몬스터들 수준보다 낮다는 것도 유효했다.

    나와 사라는 직업 레벨을 상당히 빠른 속도로 올릴 수 있었고, 특히 사냥을 통해 레벨마저 올릴 수 있는 사라의 성장 속도는 무서운 수준이었다.

    저대로 성장하다가는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사라의 공격에 아파해야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묘한 위기감마저 들 정도였다.

    아무튼 덕분에 단순히 이동속도뿐만 아니라 사냥속도마저도 더 빨라졌고, 우리는 며칠 지나지 않아서 3계층의 주인이 있는 곳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저게 3계층의 주인인가."

    "음. 거대한 덩치를 살려서 강력한 범위 공격을 날리는 성가신 녀석이라네. 물론 이 몸들과는 상관없는 얘기지만 말일세. 5계층의 대형 몬스터들을 상대하기 전에 앞서, 미리 맛보기를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

    "응? 여기가? 4계층은?"

    "4계층은 던전 중에서도 특히나 이질적인 곳이니 말일세. 아무래도 그런 경험은 기대하기 힘들지."

    특수한 곳이라…또 뭔가 귀찮을 것 같은 말이군.

    뭐, 그거야 나중 일이고 우선은 눈앞에 있는 저 녀석부터 처리해야겠지만.

    디아나 말대로, 웅크리고 있는데도 멀리서 확연히 보일 정도로 엄청나게 거대한 덩치였다. 게다가 실루엣도 인간형.

    새하얀 털에 뒤덮여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예티인 모양이다.

    이곳에 오기까지 예티를 몇 마리 만나기는 했지만, 그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크기.

    정말로 5계층에서 봤던 오우거 같이 인간형 거대 몬스터들이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그럼 전에 말했던 대로 내가 먼저 어그로를 끌고, 사라와 디아나가 공격하는 걸로 할까?"

    "음. 그렇게 하세."

    디아나가 수긍하고 나서야, 나는 계층의 주인에게 다가갔다.

    성자의 파동만 써도 어그로는 끌 수 있겠지만, 놈은 그 덩치 때문에 모든 공격이 범위 공격이 될 거다.

    이왕이면 우리 애들한테서 떨어진 다음 싸움을 시작하는 게 좋겠지.

    게다가 계층의 주인이라고는 하나 예티는 예티. 일반 몬스터와 싸우는 방식 자체가 크게 다르진 않을 거다.

    그리고 일반 예티들을 상대해본 결과, 나는 예티를 상대하는데 내가 무척이나 상성이 좋음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예티란 놈들은, 아무 무기도 없이 맨손으로 공격하거든.

    심지어 모든 공격이 물리 공격이다.

    나한테 있어서 이보다 좋은 상대란 있을 수가 없지.

    "우워어어어어!"

    어느 정도 가까이 다가가자, 계층의 주인이 날 알아채고는 괴성을 지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런 예티를 여유롭게 바라보면서 성자의 전력을 사용했다.

    "후워어어엉!"

    두 팔을 올리고 묵중하게 다가오는 거대한 주먹을 막아내자, 예티는 본인이 공격한 주제에 이상한 괴성을 내질렀다.

    그러면서 놈은 더욱더 거세게 주먹과 발을 휘둘러왔다.

    역시 비슷한 건 덩치뿐, 5계층 녀석들과는 다르다.

    공격 하나하나가 덩치에 어울리게 크고 굼떴다.

    피하려면 얼마든지 피할 수도 있는 공격이었지만, 나는 굳이 피하지 않고 전부 몸으로 방어해냈다.

    내가 뭣 하러 성자의 전력을 썼겠어.

    놈은 날 공격할 때마다 몸을 움찔 움찔 떨더니, 몇 번째일지 모를 공격에 기어코 주저앉아 버렸다.

    "조루야! 벌써 지린 거냐?"

    "쿠우우우…."

    내가 가드까지 풀고 양팔을 펼친 채 도발했지만, 놈은 내게 신경 쓸 여유가 없는 모양이었다.

    때린 놈이 데미지를 입는다. 이게 바로 반사 딜러의 묘미지.

    뭐, 나는 데미지를 준 게 아니기는 하지만.

    그리고 놈이 볼품없게 쪼그리고 앉아서 부들부들 떠는 사이에도, 멀리서 바람의 화살이 날아와서는 놈의 몸에 구멍을 뚫어놓고 있었다.

    과연 계층의 주인이라는 이름답게 사라도 화살 한 발에 잡거나 하진 못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라면 놈이 쓰러지는 것도 시간문제겠지.

    디아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 화려하게 주문까지 외우면서 준비했던 공격마법을 취소해버렸다.

    아무래도 사라와 나한테 경험치를 몰아줄 생각인가 보다.

    그뿐만이 아니라, 디아나는 아예 두 눈을 감고는 마치 명상하는 것처럼 가만히 서있었다.

    저건 뭘 하는 거지?

    아무리 그래도 디아나가 계층의 주인 상대로 저렇게 방심할 리가 없다.

    뭔가 하려는 것 같기는 한데…뭐, 상관없나.

    나는 다시 계층의 주인에게도 고개를 돌려서 주먹과 발을 휘둘렀다.

    "쿠워어어어어엉!"

    결국 나와 사라의 합공에 의해서 놈은 변변히 저항도 못해보고는 잡을 수 있었다.

    죽기 직전 마지막 발악으로 쿵쾅거리면서 날뛰는 바람에 놈 주변의 땅이 모조리 움푹 파일 정도가 되기는 했지만, 우리 애들은 멀리 떨어져있었던 덕분에 특별히 피해는 없었다.

    "음!"

    그리고 놈이 쓰러지자, 그때까지 가만히 눈을 감고 있던 디아나가 눈을 번쩍 뜨더니 이쪽으로 타다다닥하고 빠르게 달려왔다.

    "후약!"

    아, 넘어졌다.

    몸치 주제에 눈 위에서 달려오려고 하니까 그렇지.

    "디아나. 괜찮아?!"

    "우으으…자네! 이 몸을 업게!"

    폭신폭신한 눈 위에 넘어졌으니 그다지 아프진 않았던 데다가, 쪽팔린 것도 한 몫 한 거겠지.

    디아나는 벌떡 일어나서 로브에 묻은 눈을 탁탁 털더니, 날 살짝 노려보면서 그렇게 외쳤다.

    혼자 넘어진 주제에 왜 날 그렇게 보는 거냐.

    "네이. 네이. 어디로 모실까요?"

    내가 디아나를 업자, 디아나가 내 어깨 너머로 손을 뻗어서는 척하고 아까 전투 전에 계층의 주인이 웅크려있던 곳을 가리켰다.

    "저기! 저기로 가게!"

    일단 대마법사님의 명령대로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가기는 했지만, 그곳은 그냥 새하얀 빙벽에 가로막혀있는 곳이었다.

    "여기?"

    "으으으으음…."

    디아나는 대답 대신 빙벽을 노려보면서 낮게 신음했다.

    "아, 그렇군. 자네. 미안하네만 우선 마석부터 회수해주겠나?"

    디아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 등에서 내려와서는 다시 눈을 감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디아나가 내 등에서 이렇게 쉽게 내려오다니.

    눈앞에 있을지도 모르는 단서에 완전히 집중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뭔가 쓸쓸한 기분을 맛봤다.

    나중에 실비아라도 껴안아서 이 쓸쓸한 마음을 매꿔야지.

    나는 그렇게 다짐하고는, 다시 계층의 주인에게로 다가가서 마석을 캐냈다.

    그러자 디아나가 다시 눈을 번쩍 뜨고는 화악하고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귀엽다. 일하는 여성이 멋있다는 게 이런 느낌인 건가.

    아니, 조금 다른가?

    아무튼 디아나는 이제 확신했다는 듯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유래 없이 거대한 화염구를 만들어내어서는 빙벽을 녹여갔다.

    하지만 빙벽은 화염구가 닿기도 전에 급속도로 녹아내렸지만, 디아나는 신중하게 화염구를 전진시켜갔다.

    마치 실수로 안에 있는 무언가에 상처 입히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뭐, 무언가라고 해봤자 안에 있는 게 무엇일지는 뻔했지만.

    섬세한 작업 끝에, 예상대로 빙벽 안에서 언젠가 본적 있는 거대한 마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이 몸의 예상은 정확했구먼!"

    그래.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까 나도 기쁘다.

    뭐, 나도 남의 일이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순수하게 마법 연구를 위해 조사하는 디아나와는 목적이 다르기는 하지만, 나로서도 저 마석의 비밀이 궁금한 건 마찬가지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거대 마석보다는 던전의 비밀이 궁금한 거지만.

    대체 여신은 무얼 위해 날 여기로 보낸 걸까.

    그 실마리가 저 거대 마석에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내 추측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다.

    "자네! 자네! 조금 도와주게!"

    디아나는 거대 마석을 직접 만지고 싶은 건지, 위로 손을 뻗으면서 그렇게 외쳤다.

    높이가 조금 높은데.

    나도 손을 최대한 뻗어야 겨우 닿을 수 있을 정도의 높이다.

    나는 디아나의 몸을 들어서, 아예 무등을 태웠다.

    "음!"

    디아나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준 후에, 거대 마석으로 손을 뻗었다.

    나도 만족스럽다. 말랑말랑한 허벅지가 뺨에 닿아서.

    "으음…음?! 이, 이건…! 이럴 수가! 아니, 하지만 그럴 리가…!"

    내가 뺨에 닿은 감촉을 만끽하고 있을 때, 거대 마석에 손을 대고 눈을 감은 채 한동안 가만히 있던 디아나가 갑자기 당혹스런 목소리를 내뱉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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