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343화 (327/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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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조 의뢰

    "구원. 교대할 시간 되지 않았어?"

    불침번을 서고 있자, 다음 불침번 순서인 사라가 텐트에서 나왔다.

    내가 먼저 깨우기도 전에 일어나버리다니, 얘도 참 지나치게 성실하다고 해야 할지.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네. 그래도 미리 일어나다니, 재대로 못 잔 거 아냐?"

    "괜찮아. 충분히 잤어. 그보다 구원도 그러고 오래 있어서 피곤하지? 어서 쉬어."

    내 걱정스런 말에도, 사라는 오히려 내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물론 불침번은 항상 서는 거니, 원래라면 사라가 저런 표정을 지을 이유가 없다.

    사라가 저런 표정을 짓는 건, 말 그대로 정말 내가 오래 이러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비아를 놀리다가 사라에게 등짝 스매시를 한 대 맞고는, 나는 사라 대신 주변을 경계하게 됐다.

    그리고 그대로 쭉 불침번까지 서게 됐다는 말이다.

    그래도 사라가 미안해할 건 없을 텐데.

    어차피 주변 경계라고 해봤자, 계속 가만히 서서 주변을 둘러봐야하는 게 아니다.

    어차피 주변을 둘러본다고 해봐야 눈 때문에 시야가 좁아서 잘 보이지도 않고, 몬스터가 습격 전에 알 수 있도록 디아나가 알람 마법을 설치까지 해놓았다.

    그러니 할 일이라고는 그저 알람마법에 바로 반응할 수 있도록 깨어있기만 하면 되는 거다.

    그리고 나는 그 틈을 타서 정령을 소환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는 정령 언어를 복습하고 있었다.

    마나로 이루어진 언어라고 할지라도 결국 언어 습득의 지름길은 최대한 많이 대화를 하는 것이라는 신념하에 계속 말을 해봤다는 거다.

    정령 소환을 유지하는 데 마나를 소모하고, 또 대화를 하는 것에도 마나를 사용하니 마나 소모가 심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시간은 상당히 잘 갔다.

    불침번 교대 시간이 다 됐는데도 사라를 깨우는 것도 잊을 정도로 말이다.

    "전혀 피곤하지 않아. 사라가 원한다면 계속 해주고 있어도 될 정도로."

    "바보야. 그렇게 무리하면 내일은 어떻게 하려고. 내일은 마을까지 저 사람들을 보호하면서 가야되잖아. 평소보다 더 정신 차리지 않으면 안 돼."

    "그거야 사라가 밤새 힐링 섹스를 발동시키게 해주면 아무 문제…."

    "으이구! 이 변태!"

    하지만 사라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냥 장난스럽게 살짝 내 뺨을 꼬집기만 하고는 내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평소라면 또 등짝 스매시를 때려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인데.

    아무래도 내가 계속 이러고 있게 만든 게 상당히 미안한 모양이다.

    "아니. 생각해봐. 어차피 다음 사라차례는 디아나한테 넘겨줬잖아? 그러니까 이렇게 틈 날 때 안 하면 너 나랑 엄청 오래 동안 못하게 된다?"

    사라의 태도가 부드러운 걸 이용해서 나는 한 번 더 유혹을 해봤다.

    "읏…괘, 괜찮아. 아니, 오히려 내가 잘못해서 그렇게 된 거니까. 그 사이에 구원이랑 하면 반성한 게 아니게 되잖아. 참을 거야."

    사라는 처음에는 조금 고민된 듯 바로 즉답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역시 착실한 성격 상 유혹에 지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화재를 돌리듯, 내 손바닥 위에 있는 정령을 바라봤다.

    "그 정령 대화라는 건 이제 익숙해졌어?"

    "응. 일단 얘한테 어딜 씻겨달라고 말하는 건 완벽히 마스터했어."

    "왜 또 하필 그런 걸…."

    내가 손바닥 위에 있는 물의 정령의 머리에 손가락을 대고는 빙글빙글 어루만지면서 말하자, 사라가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제일 쓸 데가 많으니까. 여러모로."

    "하여간. 이 변태는…."

    "응? 변태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씻기는 게 왜 그런 쪽으로 연결되는데? 우리 사라양은 대체 무슨 생각을 했길래, 씻겨주는 걸 마스터했다는 말을 듣고 바로 변태라는 말이 나온 걸까요? 응?"

    "이, 그, 그건…구원도 그럴 생각으로 그런 연습부터 한 거 맞잖아?!"

    사라는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 당황하더니, 이내 적반하장으로 반격을 해왔다.

    뭐, 사라 말대로 그럴 생각으로 이런 연습부터 한 게 맞기는 하지만.

    하지만 그걸 그대로 인정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응?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사라는 대체 어떤 생각을 한 걸까? 꼭 좀 한 번 나한테 알려주지 않겠어? 우리 변태 사라양?"

    "이, 이씨! 진짜! 변태는 구원이잖아!"

    "대체 씻는 다는 걸로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제대로 변명도 못하는 변태양에게 그런 말을 듣고 싶지는…아, 아니다. 하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응. 알았어. 인정해줄게."

    "뭐, 뭐야. 갑자기?"

    내가 갑자기 더 놀리지 않게 되자, 사라가 오히려 불안하다는 얼굴로 되물어왔다.

    뭐긴 뭐야. 추진력을 얻기 위해 잠시 무릎을 꿇은 거지.

    네가 되물어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사라는 날 너무 좋아하니까 말이야. 술 취해서 솔직해지면 밤에 남의 잠자리를 습격할 정도로. 그러니까 이렇게 나랑 대화하고 있으면, 생각이 자꾸 그런 쪽으로 연결되는 건 어쩔 수 없지. 그렇지 않아? 사라아아아."

    나는 사라가 술 취했을 때 내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늘어지는 말투로 사라의 이름을 불렀다.

    "이, 바, 그런 거 아니라고 했잖아?!"

    "쉬잇. 소리 지르지 마. 애들 깨겠다."

    "으읏! 바, 바보가 진짜…그런 거 아니란 말이야."

    내가 입가에 손을 대고 말하자, 사라는 목소리를 줄이면서도 날 노려보면서 항변했다.

    "응. 알았어. 그렇다고 쳐줄게. 사라아아아."

    "이, 이, 이…씨잉…."

    사라는 결국 눈가에 물기만을 머금고 날 노려보는 게 전부였다.

    "장난이야 장난. 삐지지 마."

    "삐, 삐진 거 아니야."

    사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하지만 내가 그 뺨에 손을 대고 다시 날 바라보게 만든 후 키스를 하자,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키스를 받아줬다.

    "하여간 날이 갈수록 능구렁이처럼 여자 마음 다루는 법만 익숙해져서는."

    그리고 입을 떼자, 사라가 조금 분하다는 듯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니, 이걸로 화가 풀리는 네가 너무 쉬운 거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사라는 어디의 추기경씨와는 다르게 나한테만 한정적으로 쉬운 여자이기는 하지만.

    하여간 귀엽다니까.

    "삐진 거 풀렸구나?"

    "아직 덜 풀렸어."

    내가 부드럽게 말하자, 사라는 살짝 오기를 부리듯 입술을 삐죽이면서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라에게 또 입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얼굴을 맞대면서 부드럽게 말했다.

    "그런데 사라야."

    "응?"

    사라는 내 목소리에 이끌리듯이 삐진 표정을 풀면서 조용히 대답했다.

    "삐진 거 아니라고 하지 않았어?"

    "이, 이씨! 얼른 들어가서 잠이나 자!"

    결국 나는 등짝 스매시를 한 대 더 맞고 텐트로 돌아가야 했다.

    그렇지만 귀여운 사라 얼굴도 봤고, 등짝 스매시는 데미지도 없고. 완전히 이득이다.

    내가 사라 때문에 방어력 올린 보람을 느낀다니까.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드디어 구조해준 모험가들이 정신을 차렸다.

    애초에 우리 사제 둘이 신성력을 전부 써가면서 몸의 치료는 끝내놨으니, 정신을 차리는 건 당연한 거지만 말이다.

    "그런가. 우리는…살아난 건가…."

    하지만 마냥 기쁘기만 한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일곱 명 중 네 명은 이미 사망했다고 했었지. 나 같아도 마냥 기뻐하지는 못할 거다.

    특히 이 호인족은 파티원 중 유일한 남자.

    우리처럼 전부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일단 전부 몸을 섞으면서 정을 쌓은 사이였을 테니까.

    여성들끼리 사이도 상당히 돈독했던 건지, 토인족과 견인족은 서로 부둥켜안고 펑펑 울 정도였다.

    "아니. 은인 앞에서 실례되는 소리를 했군. 미안합니다. 그리고 도와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제 이름은 그렉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내 호인족은 머리를 붕붕 흔들더니, 그렇게 말하면서 내게 악수를 청해왔다.

    모험가 남자들은 원래 다들 친구처럼 친하게 지내지만, 이 호인족은 날 은인으로 생각하기 때문인지 공손한 어조였다.

    그 악수를 받아주자, 꽤나 묵직한 힘이 느껴졌다.

    음유시인이라고 하지 않았나? 이것도 종족 특성 같은 건가.

    그러고 보니 덩치도 나보다 더 크고. 나도 어디 가서 꿀리는 덩치는 아닌데 말이야.

    "감사인사라면 저기 레이첼 누님에게 해줘. 저 누님이 먼저 너희를 발견하지 않았으면 우리가 구하지도 못했을 테니까."

    "응? 오오. 안내원양. 정말 고맙습니다."

    "아, 아뇨. 전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걸요. 오히려 저도 구해진 입장이고…."

    레이첼 누님은 조금 쑥스러운 듯이 웃으면서 두 손을 펴서 가슴 앞으로 들고 양옆으로 휘저었다.

    필사적으로 구하러 간 것 치고는, 그다지 친해보이지는 않았다.

    응?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그렇게 필사적으로 구하러 갔다고? 그럼 설마….

    아니, 레이첼 누님이 누굴 좋아하든 나랑 별로 관계없는 얘기기는 하지만 말이야.

    아무튼 다들 정신을 차리게 됐으니, 우리는 그들을 보호하면서 3계층의 마을까지 다시 돌아가는 처지가 됐다.

    돌아가는 길은 딱히 특필할만한 사건 같은 것도 없이 평화로웠다.

    얼마나 평화로웠냐면, 이동 중에도 틈틈이 디아나에게 정령 언어의 강의를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그런 평화롭다고는 하나 전투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냥 순식간에 끝나버려서 별로 의미가 없었을 뿐이지.

    "대단하군요. 2계층에서 활약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3계층에서는 본적도 없었는데. 3계층 몬스터들을 이렇게 손쉽게…."

    그리고 호인족은 우리의 그런 모습을 보고 크게 감탄하는 모습이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초롱초롱한 눈으로 우릴 보는 데, 그 모습은 나는 내심 상당히 못마땅했다.

    감히 누구 여자를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하여간 예쁜 건 알아가지고 말이야.

    너 카일이라고 알아? 하프대신 목탁 두드리면서 노래 부르게 만들어줄까?

    그리고 결국 호인족의 그 시선이 사건을 하나 발생시켰다.

    "다들 이렇게 강하고 아름다우시다니. 대단하시군요."

    "아, 아름답다니…."

    바로 마틸다가 호인족의 그 말에 반응해버린 거다.

    놈은 딱히 꼬드기려고 한 게 아니라, 그냥 순수하게 감탄했을 뿐인 것 같지만.

    우리 추기경님은 그런 것도 전혀 상관이 없으신 모양이다.

    "음? 설마 이런 말이 익숙지 않으신 겁니까? 그럴 리가. 이렇게 아름다우신…."

    "거기 스탑!"

    나는 황급히 끼어들어서 일단 마틸다의 턱부터 낚아챘다.

    "마틸다. 내 눈 똑바로 봐. 네가 좋아하는 건 누구야."

    "아…."

    호인족에게 향하려던 시선이 다행히도 나에게 향하면서 마틸다는 몽롱한 표정이 됐다.

    후우. 일단 이걸로 또 한 놈은 살린 건가.

    "야. 거기 호인족."

    "아, 그렉이라고 부르시면…."

    "사내새끼 이름 따위 내가 알게 뭐야. 아무튼 너 제발 허튼소리 말고 가만히 있어라. 얘 마틸다 추기경이야."

    "…네?"

    "교단의 마틸다 추기경. 고자 만드는 저주로 유명한 걔라고. 고자 되기 싫으면 그냥 좀 닥치고 있어라."

    다행히 호인족도 마틸다의 이름은 들어봤는지, 바로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어째선지 이번엔 날 선망의 눈초리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아니, 그렇다고 날 보라는 것도 아냐. 그 초롱초롱한 눈 제발 치워!

    왜 남자인 나까지 그런 눈으로 보는 건데? 당장 치워! 우리 애들이 오해하면 어떡하려고!

    "아…그…그게요…."

    그리고 핑크빛 분위기에서 벗어난 마틸다는 내 얼굴을 보기 민망하다는 듯이 바닥을 쳐다 보면서 중얼거렸다.

    "됐어. 변명 같은 거 안 해도. 네가 원래 그런 성격이라는 거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아…."

    내가 그렇게 말하자, 마틸다는 안도하는 듯, 하지만 또 한 편으론 안타까운 듯 조그맣게 입을 달싹거리면서 뭔가 중얼거리려다가 포기했다.

    나도 왠지 화가 나서 말을 험하게 해버린 것 같다는 자각은 있었지만, 그걸 또 사과하는 건 뭔가 아닌 것 같아서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조그마한 소동이 일어난 후에도 호인족의 날 향해 보내는 저 한없이 호의적인 시선은 상당히 부담스러웠지만, 아무튼 그 호인족도 함부로 입을 열지 않게 됐다.

    그리고 우리는 별 탈 없이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호인족이 대표로 그렇게 말을 했고, 토인족과 견인족도 그에 맞춰서 꾸벅하고 고개를 숙였다.

    아무래도 뒤에 있는 둘은 이번 사건으로 상당히 충격을 받은 건지, 마을까지 오는 내내 그다지 말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래. 얼른 가라. 가서 침울해져있는 네 여자들이나 달래주라고.

    나는 훠이훠이 손을 내저으며 대충 인사를 받아주고는 얼른 녀석들에게서, 아니 저 부담스런 호인족에게서 떨어졌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최고의짝사랑 // 사실 그래서 지금까지 일부러 설명을 안 하고 있었는데, 궁금하신 분들도 계신 것 같아서 쓰기로 했습니다.

    마법공학해병 // 너무 그런 부분까지 세세하게 따지고 드는 건 독자한테나 작가한테나 별로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일부러 그런 묘사는 안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같은 이유로 엉덩이로 할 때도 관장 묘사를 해야 되나 말아야하나 고민했었죠.

    뭔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쓸 지도 모르니 확신은 못하겠지만, 아마 앞으로도 히로인들이 생리하는 모습은 나오지 않을 겁니다.

    신경 쓰이신다면 그냥 구원과 몸을 섰지 않은 날이나, 소설 상 묘사가 안 된 날에 생리를 했다고 생각해주세요.

    3일마다 한 번씩 돌아가면서 한다고 해도, 어차피 소설 상에서 연속으로 2바퀴 이상 돌아가게 묘사한 적은 거의 없으니까요.

    jiho27 // 사실 하루에 두 편 쓰고 한 편만 올리는 식으로 비축을 쌓으려고 시도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그냥 다음 날 안 쓰고 놀게 되더군요.

    그리고 쉰 다음 날에는 괜히 더 쓰기 싫어지고요.

    휴재를 한다면서 그대로 연중을 해버리는 작가들의 마음을 잘 알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그냥 매일 성실히 연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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