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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 의뢰
하지만 던전 안은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다.
아무리 우리가 위기에 빠진 모험가들을 구할 결심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리 쉽게 발견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위기에 빠진 모험가들은커녕, 그들의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안 보이네요…."
지금까지의 긴장하던 모습은 대체 어디로 간 건지, 마틸다는 열심히 사방을 살피면서 애가 탄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 심정은 이해 안 되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해서 너무 그렇게 조급해하지 말라고. 어차피 그렇게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안했잖아. 우리 말고도 흥미를 가진 모험가들은 많이 있을 테니, 어쩌면 이미 구조되었을 수도 있는 거고 말이야."
"네. 그렇…군요."
마틸다는 내 말에 수긍하면서도, 여전히 주변을 살폈다.
전혀 면식도 없는 사람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필사적이 될 수 있다니.
여신님의 가르침에 따라 모든 인간을 사랑한다든가, 뭐 그런 건가?
아니. 여신님의 가르침 운운 이전에, 이 정도면 천성인가.
확실히 사랑에 빠지는 속도가 엄청나기는 하지만…아, 이건 별로 상관없나.
아무튼 마틸다 이외에도 다들 해당 모험가들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주변을 살폈지만, 그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애초에 여긴 항상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으니까, 지형자체는 탁 트여있더라도 시야가 너무 좁단 말이지.
시력이 좋은 사라마저도, 이런 눈보라 속에서 제대로 앞을 보기란 힘든 모양이었다.
결국 그 날은 아무런 단서 없이 탐색을 종료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모험가들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이제 슬슬 3계층도 막바지까지 내려온 상태.
하지만 여전히 몬스터들은 우리의 상대가 되지 않았고, 덕분에 우리는 좀 더 탐색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 모험가들도 3계층 후반부에서 주로 사냥을 한다는 모양이었고, 만약 그들을 찾게 된다면 가장 확률이 높은 건 이 부근이다.
"읏!"
점심을 먹고 다시 이동을 개시하려했을 때, 갑자기 사라가 몸을 움찔하면서 걸음을 멈췄다.
"사라 왜 그래?"
"쉬이잇."
하지만 사라는 손가락을 세워 입가에 가져다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하면서, 눈을 감고 뭔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내 눈을 뜬 후, 우리가 가려던 곳보다는 약간 오른쪽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에서 희미하게 비명 소리가 들렸어. 어쩌면…."
"그 모험가들일 수도 있다는 건가."
"확실한 건 아니지만. 싸우는 소리도 희미하게 들려와. 그냥 다른 모험가들이 전투를 하고 있는 걸지도."
"뭐, 어찌 됐든 가보는 게 좋겠지. 아니면 아닌 대로 그냥 다시 갈 길 가면 되는 거고 말이야."
우리는 사라가 가리킨 방향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는 사라 말대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다만 구조 대상이 된 모험가들은 아니었다.
아니, 심지어 모험가조차 아니었다.
거기서 싸우고 있는 건 바로 길드가 자랑하는 미인 안내원, 레이첼 누님이었다.
"꺄아아악!"
그리고 레이첼 누님은 전의 그 위풍당당한 모습은 어디가고,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서 힘겹게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있는 중이었다.
"레이첼 누님!"
우리는 황급히 레이첼 누님의 곁으로 달려갔다.
"구원씨!"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레이첼 누님도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기뻐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절박한 목소리로 자신의 뒤편에 있는 모포 더미를 가리켰다.
"도와주세요! 사제님들! 부탁드려요!"
왜 몬스터가 아니라 모포를 가리키면서 외치는 건지, 그리고 왜 굳이 사제를 부르는 건지.
이유는 명확했다. 모포는 희미하지만 마치 숨을 쉬듯 위아래로 흔들리고 있었으니까.
설마 레이첼 누님이 찾아내신 건가?
"레이아와 마틸다는 우선 부상자의 치료를! 실비아는 둘을 지켜줘! 나머지는 공격! 이번에는 디아나도 부탁해!"
나는 황급하게 명령을 내리고는 몬스터들을 향해 돌진했다.
아이스 골렘 세 마리와 십 수 마리의 리자드 맨. 그리고 일곱 마리의 북금 곰으로 구성된 몬스터였다.
일반적으로 던전을 탐험한다면 절대로 한꺼번에 만날 일 없을 수의 몬스터에, 과연 레이첼 누님도 예전처럼 손쉽게 상대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레이첼 누님은 물과 바람을 다루는 정령술사.
물은 일단 3계층의 몬스터들 상대로 상성이 너무 안 좋고, 바람 역시도 아이스 골렘 상대로는 상성이 좋지 않다는 걸 이미 저번에 한 번 봤었으니까 말이다.
그건 그렇고 어째서 이 녀석들이 한꺼번에 달려드는 거지?
이건 게임이 아니다.
몬스터들도 엄연히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생물이고, 자기들끼리 다투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종족이 다른 몬스터들끼리 연합하여 모험가를 상대한다는 건 있기 힘든 일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의문은, 놈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바로 풀렸다.
리자드맨의 신호에 맞춰서 북극곰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거다.
길러지는 거냐. 자립심을 가지라고. 너희가 리자드 맨보다 더 강하잖아. 북극곰 녀석들아.
그리고 아이스 골렘과 리자드 맨들은 협력해서 싸운다고 하기 보다는, 서로 신경을 안 쓰는 느낌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스 골렘이 다른 몬스터들을 무시한 채 모험가들만 노리고 있었고, 리자드 맨들은 그걸 잘 이용해먹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디아나! 골렘부터 부탁할게!"
아무튼 일단 적들 중 가장 방해가 되는 건 아이스 골렘이들이다.
나는 쮸쀼쮸쀼 달려들면서 앞발을 휘두르는 북극곰들을 막아서면서 외쳤다.
"음. 걱정할 것 없네."
디아나는 여유로운 느낌으로 말하더니, 화염구 세 개를 소환해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디아나의 주먹만 한 크기였던 그것들은, 점차 크기를 키워가더니 이내 골렘들의 주먹보다도 더 커져서는 맹렬한 불길을 뿜어댔다.
화염구들은 하나하나가 내뿜는 불길이 얼마나 강렬한 건지, 그 열기로 인해 디아나 주변의 눈들이 급속도로 녹아내릴 뿐 아니라 아예 하늘에서 내리는 눈조차 사라진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과연 지력 500. 저런 거 맞으면 골렘이고 뭐고 뼈도 못 추릴 거다.
뭐, 애초에 골렘은 뼈가 없지만.
그리고 내 예상은 정확했다.
화염구들이 아이스 골렘을 향해 날아가자, 채 몸에 닿기도 전에 그 단단하던 아이스 골렘들이 녹아내리기 시작한 거다.
화염구들은 그렇게 골렘의 몸을 녹이면서 관통해 지나갔고, 골렘이 완전히 녹아내리자 이번엔 방향을 바꿔 리자드 맨들이 있는 곳으로 떨어졌다.
"퀘에에에에엑!"
예상치 못한 봉변을 맞은 리자드 맨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로 통구이가 되어버렸다.
물론 놈들도 산개해있었기 때문에 화염구 세 개로 모든 리자드 맨이 전멸한 건 아니었지만, 남은 놈들은 사라의 화살의 좋은 먹잇감이 됐을 뿐이었다.
그러자 통제를 잃게 된 북극곰들이 한층 더 흉포해지면서 날뛰려고 했다.
하지만 너희 상대는 나란 말씀.
아무리 내가 요즘 공격력이 많이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말이야. 생명체 상대로, 그것도 고작 3계층 몬스터들 상대로 질 리가 없잖아?
나는 바로 양손에 성자의 손길을 사용하고는, 북극곰을 차례차례 한 번씩 터치했다.
"쿠워어어엉!"
그렇게 울지 마라. 이제부터가 시작이잖아?
나는 북극곰들의 움직임이 멈춘 걸 확인하고, 양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
내 회심의 러쉬 공격에, 북극곰들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온 몸을 사시나무처럼 부르르 떨면서 바닥으로 쓰러졌다.
여느 때 같았으면 똥폼이라도 잡으면서 뭔가 결정대사라도 날렸겠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북극곰들이 쓰러지는 걸 확인하고 나자마자, 나는 재빨리 레이첼 누님을 향해 달려갔다.
"레이첼 누님! 괜찮으세요?!"
"저는 괜찮아요. 그보다 어서 저 사람들을…."
몸 여기저기 상처를 입고 만신창이가 된 것처럼 보이는 레이첼 누님이었지만, 아무래도 상처의 수가 많을 뿐 상처의 깊이 자체는 그리 깊지 않은 모양이었다.
우리가 싸우는 동안 바닥에 주저앉아있었던 레이첼 누님은, 황급히 일어나서는 우리 사제 콤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다만, 어째선지 그쪽으로 다가가면서도 내 안색을 살피면서 불안에 떠는 것처럼 보였다.
대체 왜 그러는 걸까?
"레이아. 마틸다. 어때?"
모포에 있는 건 역시나 모험가들이었다.
토인족 도적, 호인족 음유시인, 견인족 마법사.
역시 구조 의뢰서에 그려져 있던 그들이었다.
레이첼 누님이 발견하신 건가. 하여간 대단한 누님이셔.
하지만 딱 보기에도 그리 희망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살아남았다는 셋을 모조리 구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운이 좋았다고 봐야겠지만, 셋 다 상처가 너무 심했다.
특히 호인족 음유시인은 배가 완전히 뻥 뚫려서는, 안에 있는 내장들이 고스란히 보일 정도였다.
그래도 남자라고 여자들을 지키려고 한 건가?
마치 정면에서 제대로 얻어맞은 것 같은 상처였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됐든, 너무 무모했어.
솔직히 말하자면 살아있는 게 신기할 정도의 상처였다.
레이아와 마틸다가 둘이서 동시에 호인족 음유시인에게 신성마법을 퍼붓고 있는 게 아니었다면, 분명 시체라고 생각했을 거다.
"괜찮아요. 어떻게든 살려 보이겠어요. 어떻게든…."
마틸다는 마치 자신에게 다짐하듯 그렇게 말하면서 신성마법을 퍼부었다.
하지만 위급한 건 이 호인족 음유시인뿐만이 아니었다.
물론 호인족이 가장 상처가 깊긴 했지만, 토인족이나 견인족 역시도 상처가 깊은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호인족은 가만 놔두면 바로 죽을 테니까 레이아나 마틸다도 호인족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건 알겠지만….
어쩔 수 없지. 일단 가지고 있는 포션을 몽땅 털어서라도 나머지 둘의 응급 처치를 해볼까.
"아, 안 돼요!"
내가 일단 견인족 마법사에게 손을 뻗으려고 하자, 갑자기 레이첼 누님이 그렇게 외치면서 나에게 달려들었다.
"레, 레이첼 누님?!"
"진정하세요! 진정하세요, 구원씨! 죽이면 안 돼요! 이 사람도 모습만 이럴 뿐, 사람이에요!"
필사적으로 날 말리려고 하는 레이첼 누님에, 나는 벙 찔 수밖에 없었다.
죽인다니 뭐야? 모습만 이럴 뿐 사람이라니 뭐야?
아니, 확실히 이 견인족 마법사는 사람이라고 하기 보다는 이족 보행하는 강아지라고 해도 될 수준으로 강아지와 비슷한 외견이기는 했다.
전신이 털로 덮여있고, 주둥이도 길게 나와서 얼굴만 보면 완전히 강아지다.
하지만 난 그런 걸로 차별할 정도로 나쁜 놈이 아니라고.
내가 무슨 수인 족을 외모로 차별하는 그런 놈으로 보이시는 건가?
"누, 누님! 진정하세요! 죽일 리 없잖아요?!"
"하, 하지만…강아지…보면 전부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로 싫어하시는 거잖아요?!"
하지만 레이첼 누님은 여전히 내게 달라붙어 떨어지려고 하지 않은 채로, 그렇게 외쳤다.
으, 으응…?
그리고 그 필사적인 외침에, 나는 잠깐 사고가 정지하고 말았다.
대체 이 누님은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지?
이 누님 안에서 내 이미지가 대체 어떻기에 강아지만 보면 전부 죽여 버리고 싶어 하는 사이코패스가…아, 아, 아아아아!
나는 뇌리에 1계층에서 사냥하던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난 늑대개를 박멸하다시피 잡았고, 그 이후로도 늑대개의 초월종이 있는 곳의 통로를 이용하기 위해서 계속 꾸준히 늑대개를 잡았었다.
그리고 이 누님은 내가 그렇게 늑대개 사냥에만 몰두하는 이유를 궁금해 하며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그리고 레이첼 누님의 질문에 내가 했던 대답이 바로…설마 그것 때문에 갑자기 그렇게 거동이 이상해지셔서 내 도움도 거절하고 혼자 오신 거였어?!
"아, 아니에요! 오해에요! 아니, 그때 제가 분명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그냥 너무 늑대개 사냥만 하니까 무안해져서 농담을 했다고 할까, 아무튼 아니에요!"
"거짓말! 그럼 어째서 갑자기 제일 먼저 견인족에게 손을 뻗으려고 한 건가요?!"
그 때 내 대답이 상당히 인상 깊었던 건지, 레이첼 누님은 도저히 못 믿겠다는 듯이 외쳤다.
"도와주려고 한 거예요! 포션으로! 자 봐요. 짠!"
내가 인벤토리에 있던 포션을 손바닥 위에 나타나게 하자, 레이첼 누님이 그제야 반신반의한 표정을 지었다.
"저, 정말인가요?"
"당연하잖아요!"
나는 증명이라도 하듯이 포션을 그대로 견인족의 상처에 뿌렸다.
그리고 나머지 포션도 몽땅 꺼내서 토인족과 견인족의 몸에 뿌렸다.
둘의 안색이 그나마 조금 나아지는 것 같자, 나머지 포션은 몽땅 호인족의 상처에 투자했다.
3계층의 몬스터 상대로는 다칠 일도 없고 사제도 둘이나 되다보니 포션을 많이 챙겨오지는 않았기 때문에, 솔직히 포션이 부족했다.
토인족과 견인족은 그나마 응급 처치 수준은 됐지만, 호인족은 여전히 힘들어보였다.
하지만 그래도 일단 내가 견인족에게 해코지를 안 한다는 사실에 안심했는지, 레이첼 누님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 다행이다…."
그 말을 끝으로, 레이첼 누님의 몸이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누, 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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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죄송합니다. 연말 송년회는 피할 수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