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337화 (32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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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조 의뢰

    "알겠네. 알겠네. 진정하게. 자네는 이 몸을 어떻게 생각하는 겐가. 어쩔 수 없이 그런 것 아닌가. 게다가 바로 이 몸의 곁으로 돌아오지 않았나. 이 몸이 그런 것까지 화내지는 않네. 자네가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었던 걸세."

    생각 외로 디아나는 자기 차례에 내가 사라와 몸을 섞은 것 까지는 대범하게 넘어가줄 생각인 모양이다.

    크흑. 역시 우리 대마법사님! 그릇의 크기부터 다르셔!

    "그, 그리고…."

    "음?"

    "내가 좋아하는 애들이 서로 싸우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서."

    하지만 용서한다고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잘못이 없는 나에게 한정된 거다.

    아마 사라한테는 엄청나게 화가 나 있겠지.

    아무리 사라가 취했었다고는 하더라도, 애초에 술을 마신 것부터가 문제니까.

    나는 사라도 감싸주기 위해서 그렇게 말했다.

    "흐으음. 이 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네만. 사라양은 뭔가 할 말이 있는가?"

    "읏! 저, 정말 미안해요! 그, 그리고…."

    "그리고?"

    "우읏…다, 다음 제 차례는…디, 디아나한테 양보할 게요…."

    사라는 움직이지 않는 입을 억지로 움직이며 말한다는 듯,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울먹거리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 그런가…."

    과연 저 대답에는 디아나도 조금 당황했는지 조금 말을 더듬었지만, 그래도 이내 디아나는 크홈하고 귀엽게 헛기침을 한 후에 말을 이어나갔다.

    "그건 당연한 거고, 원래 자네는 이 몸에게 더 혼나야 하네. 그 정도 일을 한 걸세. 알고 있는가?"

    "아, 알고 있어요…."

    매번 겁도 없이 우리 대마법사님이랑 정면으로 싸우던 사라가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니까 뭔가 조금 신선했다.

    "하지만 낭군님이 저렇게까지 말하니, 이 몸도 더는 말을 하지 않겠네. 다만. 앞으로 술은 조심하게나."

    "우읏. 그, 그럴게요."

    결국 사라의 차례를 한 번 디아나에게 양보하고, 디아나는 용서해주는 걸로 결말이 나는 모양이다.

    "디아나. 고마워."

    나는 예상보다 훨씬 쉽게 용서해준 디아나에게 감격해서, 그 몸을 꽉 끌어안아줬다.

    "흐, 흠. 알면 앞으로 이 몸에게 더 잘하게."

    "응. 오늘은 내 무릎 위에서 식사할까?"

    "자네는 이 몸을 어린애라고 생각하는 겐가?"

    무슨 소리야. 평소에는 자기가 은근 슬쩍 내 위로 올라타려고 그러면서.

    물론 말만 그렇게 했을 뿐, 내가 몸을 들고 무릎 위로 앉히자 디아나는 아무런 저항 없이 가만히 내 품에 파고들어 앉았다.

    "사라양도 그만 고개를 들게."

    "웃. 네…."

    "너무 그렇게 풀죽을 거 없네. 다 끝난 일 아닌가."

    사라가 너무 풀이 죽어있자 조금 보기 안쓰러웠는지, 디아나가 사라를 다독여줬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사라의 표정이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디아나. 괜찮아. 쟤 표정이 저런 건 너한테 미안해서만 그런 게 아니거든."

    "음? 무슨 소리인가?"

    "구워어어언! 좋아해애애!"

    "꺄아아아악! 흐아앙! 정마아알!"

    결국 사라는 진짜로 울기 시작했다.

    "으악! 미안! 내가 너무 과했어. 울지 마."

    "흐잉…아, 안 울었어…."

    사라는 손으로 눈가를 훔친 후, 억지로 평소의 쿨한 표정을 만들어 보이려고 노력하면서 중얼거렸다.

    "과, 과연…. 그런 겐가. 자네도 적당히 놀리게나."

    "응. 자중할게."

    나는 옆으로 손을 뻗어서 사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다시 테이블을 둘러봤다.

    레이아와 실비아, 마틸다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다 있는 앞에서 떠들어버린 건가.

    얘들도 대화 내용을 듣고 대충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짐작을 하겠지.

    이거 괜히 사라한테 더 미안해지네.

    아니, 애초에 사라가 여기서 갑자기 사과하지 않았으면 이럴 일도 없었겠지만.

    "자, 자. 다들 뭐해. 식사하자. 식사. 식겠다. 우와. 이거 맛있겠네. 던전 안인데도 제대로 된 음식이 나오는 구나. 아, 하긴 재료는 텔레포트로 가져오면 되니까 상관없나."

    나는 그렇게 억지로 주위를 환기시키면서 식사를 시작했다.

    "자, 사라야. 너도 좀 먹어 봐."

    "응…."

    내가 입가에 스프를 가져다주자, 사라는 풀죽은 얼굴로 스프를 받아먹었다.

    이런 때에 이런 말을 하기는 조금 그렇다는 건 알지만, 풀죽은 사라는 이건 이거대로 또 귀여웠다.

    물론 사라는 평소대로 쿨한 모습이 제일 잘 어울리지만 말이야.

    식사를 마칠 즈음에는 사라도 겉보기엔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고, 우리는 서둘러 다시 던전에 갈 준비를 했다.

    아침에 조금 소동이 있었던 덕분에, 예정보다는 조금 시간이 늦어져버렸다.

    뭐, 급한 것도 아니니까 조금 늦었다고 하더라고 별다른 문제는 없지만 말이다.

    우리가 다시 장비를 갖춰 입고 아래로 내려왔을 때, 막 여관으로 한 사람이 들어오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실례합니다. 잠시만 주목해주십시오. 방금 전 길드에서 새로 구출 의뢰가 내려왔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마을 안 광장의 게시판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그 사람은 그렇게만 말하고는, 다시 바쁜 걸음으로 여관을 나섰다.

    아마 다른 곳에도 공지를 전하러 가는 거겠지. 이 마을을 관리하는 클랜의 사람인 걸까?

    "뭐야 저거?"

    "아무래도 이 계층에서 모험가들이 조난당한 모양이구먼."

    "그런 것도 알 수 있어? 우리도 예전에 조난당했지만…."

    "그때는 이 몸들 중 아무도 당하지 않지 않았었나."

    그렇게 운을 띄우면서, 디아나는 설명을 해줬다.

    모험가 카드는 일반적으로 모험가끼리 싸웠을 때만 누나 누구에게 당했는지 표시되지만, 그 외에도 해당 모험가의 신변에 위협을 알 수 있는 수단이 있다.

    바로 해당 모험가의 카드가 없어졌을 때다.

    모험가 카드는 모험가 자신의 마나와 연동이 되어 정보를 실시간으로 갱신하는 만큼, 모험가 본인이 죽어버리면 아예 내용 자체가 사라져 버린다.

    그를 통해서 굳이 모험가끼리의 다툼이 아니더라도 길드에선 모험가들의 생사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같이 파티를 맺고 던전에 들어간 모험가들 중 일부만 목숨을 잃은 상황이 되면 길드에서 살아있는 사람들이 조난을 당했다고 판단하고, 그 계층을 다니는 모험가들에게 구조 의뢰를 내린다는 거다.

    그를 위해서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 꼭 한 번 파티원들끼리 길드 안내원들에게 얼굴을 내미는 게 필요한 것이고 말이다.

    길드도 그냥 모험가들을 관리만 하는 곳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의뢰 비용은 물론 구출한 모험가의 주머니에서도 나가지만, 길드에서도 절반을 지원해준다는 모양이다.

    같은 계층을 다니는 모험가의 주머니에서 턴 돈만으로는 다른 모험가들이 적극적으로 수색활동을 하게 만들기 힘들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게 길드로서도 마냥 손해만은 아니라고 한다.

    어차피 길드로서도 모험가는 한 명이라도 더 많은 편이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고, 모험가도 길드에서 자신들을 위해 그렇게까지 해준다는 걸 아니까 마석을 전부 길드에서 정산하더라도 불만으로 생각하지 않는 거다.

    이런 것 외에도 길드에서 모험가를 위해 이것저것 편의를 봐주기도 하고 말이다.

    뭐, 가끔 연줄을 통해 직접 마석을 정산하는 사람도 있다는 모양이지만, 정말 소수에 불과한지라 그 정도는 길드에서도 눈감아 준다나.

    아무튼 우리는 일단 아까 그 사람이 말했던 대로 일단 광장으로 가보기로 했다.

    게시판 앞에는 이미 꽤 많은 모험가들이 기웃거리고 있어서 제대로 내용을 보기 힘들었다.

    이 마을에 있던 모험가들은 대부분 나온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의 인파였다.

    "죄송합니다! 지나갈게요! 잠깐만 비켜주세요!"

    그리고 그런 모험가들의 인파를 뚫고, 익숙한 얼굴 하나가 튀어나왔다.

    "어? 레이첼 누님?"

    "어머! 구원씨!"

    바로 길드의 안내 데스크에서 항상 얼굴을 마주하는 레이첼 누님이었다.

    레이첼 누님은 우리 얼굴을 보자마자 정말로 기쁘다는 듯이 다가왔다.

    "벌써 3계층의 마을까지 오신 건가요?"

    "네. 뭐. 이참에 4계층까지 가보려고요."

    "네?! 그렇게 빨리요?! 너무 조급하시면 안 돼요. 성자 전설을 보여주시려면, 이런데서 죽으시면 안 되잖아요?"

    레이첼 누님은 안내원 기질이 발동한 건지, 나를 타이르듯이 말하면서 주의를 하기 시작했다.

    "괜찮네. 이 몸들의 실력이면 충분하네."

    "아, 디, 디아나님. 안녕하세요. 그, 그러네요. 디아나님이 계신데 괜한 참견이었네요."

    하지만 디아나가 그렇게 말해주자, 레이첼 누님은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이 누님도 친해지니까 은근히 귀여우시다.

    처음 만났을 땐 그렇게 꼬드겨도 얼굴색 하나 안변하고 거절하는 철벽녀였는데.

    "아뇨. 걱정해주셔서 고마워요. 그런데 레이첼 누님은 여기 왜?"

    "아, 그렇지! 구원씨! 4계층을 향하실 거면 3계층의 주인이 있는 곳으로 가실 거죠?"

    "네."

    "그러면 저도 데려가주실 수 없을 까요?"

    "네? 무슨 일이신데요?"

    "이번에 이 계층에서 모험가들이 조난을 당했어요. 바로 이 사람들인데요…앗."

    그렇게 말하면서 품에서 종이를 꺼내려던 레이첼 누님은,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누님? 왜 그러세요?"

    "아, 아, 아뇨! 그, 그게! 신경 쓰지 마세요! 전 그럼 이만 바빠서 실례할 게요. 구원씨는 전혀 신경 쓰실 필요 없으니까. 그냥 쭉 곧장 3계층 주인에게로 향해주세요."

    "네? 방금은 저희와 동행하신다고…."

    "아, 아뇨! 생각해보니까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레이첼 누님은 그렇게만 말하고는, 내가 붙잡을 새도 없이 황급히 자리를 벗어나버렸다.

    역시 엘프야. 엄청 빠르네.

    아니, 뭐 디아나를 보면 엘프라고 다 저런 것 같지는 않지만.

    생각해보면 오히려 디아나 쪽이 순혈이잖아.

    그냥 레이첼 누님의 특징인가.

    아무튼 대체 뭐였던 거지. 대충 예상해보자면, 레이첼 누님은 아마 조난당했다는 모험가들과 아는 사이인 모양이다.

    원래부터 친구일 수도 있고, 우리처럼 매번 안내 데스크에서 레이첼 누님이 담당하는 모험가일 수도 있겠지.

    아무튼 레이첼 누님은 그 모험가들의 구조를 마냥 모험가들에게 맡겨둘 수 없어서 자기도 내려왔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도와달라고 하려고 했던 거고.

    하지만 그렇다면 그냥 도와달라고 했으면 됐을 텐데.

    왜 중간에 말을 멈추고 그냥 가버린 걸까?

    우리가 도와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내가 그렇게 정 없는 놈이란 이미지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게다가 만약 내 예상이 사실이라면, 레이첼 누님은 지금 홀로 그 사람들을 찾으러 나간 거잖아.

    물론 전에 봤던 레이첼 누님의 실력이라면, 그다지 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사냥이 목적이 아닌 이상, 굳이 몬스터들을 전부 상대할 필요 없이 빠른 몸놀림을 이용해서 도망가 버리면 그만이고 말이다.

    아무튼 레이첼 누님 덕분에 구조 의뢰에 더 신경이 쓰이게 된 우리는, 일단 내가 대표로 모험가들의 인파를 뚫고 게시판에 붙어있다는 구조 의뢰 내용을 확인하기로 했다.

    거기에는 구조 성공 시의 보수와, 모험가들이 평소 어느 쪽을 사냥하며 돌아다니는지에 대한 설명. 그리고 마지막으로 얼굴 그림이 붙어있었다.

    일단 그림을 보기 전에 글 내용부터 읽어보니, 7인 파티 중 네 명이 사망. 살아남은 건 마법사, 도적, 음유시인이라는 살아남기 참 힘들어 보이는 조합이었다.

    평소 사냥하는 곳은 3계층의 후반부. 이 정도면 나름 베테랑 모험가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다.

    살아남은 셋의 얼굴은 각자 몽타주 기법으로 그린 건지 특징을 잘 살린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는데, 셋 다 수인이었다.

    한 명은 여성 토인족 도적과, 남성 호인족 음유시인, 그리고 여성 견인족 마법사.

    토인족과 호인족은 사람느낌이 많이 나는, 레이아처럼 머리 위에 귀만 쫑긋 나있는 수준이었지만, 견인족은 그냥 얼굴 전체가 털로 뒤덮인 강아지 얼굴이었다.

    토인족은 그렇다 치고 호인족과 견인족은 뭔가 몸 쓰는 종족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엄청 안 어울리네.

    대체 레이첼 누님은 왜 이 사람들을 구조하는 데 내 손을 빌리려고 하지 않은 걸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의아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튼 그림의 얼굴들을 제대로 기억해둔 다음에, 나는 다시 인파를 뚫고 우리 애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확인하고 왔어. 토인족 도적과 호인족 음유시인. 그리고 견인족 마법사였어. 굳이 얼굴을 잘 기억하지 않더라도, 이 정도 특이한 조합이면 보자마자 알 수 있겠지."

    "그렇구먼. 그럼 그 자들의 구조를 우선할 셈인가?"

    솔직히 보수만 놓고 보면 끌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동종업계 사람이 생명의 위기에 처했다는데 마냥 모른 척 하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레이첼 누님도 신경 쓰이고.

    "뭐, 찾으러 다닌다고 해도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거란 보장도 없지만 말이야. 그래도 일단 3계층 후반부에서 자주 사냥을 한다는 모양이니까, 어쩌면 마주치게 될 수도 있어. 가는 동안 주변을 잘 살피면서 다니다가, 발견할 수 있으면 구조하자."

    "네. 꼭 구하도록 하죠!"

    분명 던전에 질색인 표정이었던 마틸다가, 뭔가 사명감을 가진 것처럼 강하게 긍정했다.

    과연 추기경님.

    사람을 구해야 된다는 생각이 던전에 대한 압박감을 누른 건가.

    던전 탐험에서 제일 문제였던 마틸다도 제대로 마음을 다잡은 모양이니, 우리는 장비를 제대로 점검하고 다시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던전 안쪽을 발을 내디뎠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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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참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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