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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 의뢰
바넷사가 없으니 평소보다 조금 품목 정리에 고생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디아나가 착착 메이드들을 시켜서 지시를 내려준 덕분에 의외로 쉽게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다녀왔어."
준비를 마치고 사라와 실비아를 기다리고 있자니, 점심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에 드디어 둘이 돌아왔다.
그저 짐을 가져오기만 했을 텐데도, 사라도 실비아도 어째선지 피곤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짐이라고 해봤자 어차피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 왔으니까 그다지 무겁지는 않았을 텐데.
뭣하면 바넷사도 있었고.
"어서와.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그 공주 대체 뭐야?"
사라는 생각만 해도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 만나버린 건가.
그것도 하필 사라랑 만나다니.
직접 본 것도 아닌데 사라와 펠리시아의 대치 구도가 눈앞에 생생히 떠오르는 것 같았다.
둘이 엄청 상성 안 좋을 것 같단 말이지.
사라는 쿨한 얼굴로 기분 나쁘면 기분 나쁘다고 딱 잘라 말하는 타입이니까.
아마 공주 앞이라고 할지라도 그다지 태도가 바뀌진 않았을 거다.
애초에 지고의 대마법사가 편하게 부르라니까 바로 디아나라고 존칭 없이 부를 정도고. 자기 자신은 용사님이고.
펠리시아는 펠리시아대로 사라 앞에서는 그다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을 거다.
아무리 상대가 내 본처라고 하더라도, 디아나 정도가 되지 않는 이상 분명 그랬겠지.
"어떻게든 구원이랑 자보려고 발정 난 게 눈에 보일 정도였어! 게다가 구원을 맘대로 자기라고 부르기나 하고!"
역시 내 예상대로의 대화를 하고 온 모양이다.
"공주라고해서 전부 자기 맘대로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뭐야?! 그렇게 따지면 나도 용…!"
"워, 워. 사라야. 진정해. 중요한 건 내가 걔랑 안 잤다는 거잖아."
내 앞에선 이제 감정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지만, 기본적으로 남 앞에선 쿨하기 그지없는 사라가 이렇게 화를 내다니.
게다가 무심코 자신이 용사라는 걸 말하려고 할 정도라니. 정말로 화났던 모양이다.
사실 사라가 용사인 걸 숨길 이유가 이제는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애초에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하는 게 싫어서 감춘 거였는데, 어느 누가 지고의 대마법사와 같이 다니는 용사를 이용해먹으려고 들겠어.
그런데도 이렇게 계속 감추고 있는 건, 정말로 별거 아닌 이유 때문이다.
바로 이제 와서 자신이 용사라는 걸 밝히는 게 부끄럽고 어색하다는 이유 말이다.
아무튼 그래서 난 사라가 용사라고 완전히 내뱉기 전에 제동을 걸어줬다.
그리고 사라야. 아마 펠리시아 걔가 자신감이 넘치는 건, 공주라서 그런 게 아니라 자신의 매력을 믿어서 그러는 걸 거야.
대화를 하다보면 자신이 꼬드기면 안 넘어올 남자가 없을 거란 자신감이 엄청나게 느껴지는걸.
뭐, 난 안 넘어…처음에 한 번 넘어갔구나. 망할 놈의 매혹….
"후우, 후우. 응. 그렇지. 패배자의 말에 일일이 신경 쓸 필요 없지."
패배자라니. 그렇게까지 말하는 거냐.
뭐, 날 놓고 벌이는 싸움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무튼 사라도 조금 진정한 듯, 숨을 고르면서 냉정한 표정을 되찾았다.
"그런데 사라는 그렇다 치고 실비아는 왜…아니다. 미안."
"아닙니다…."
실비아로선 남자 때문에 친구를 두 번이나 배신한 게 돼버리니까 조금 마음이 아파서 그런 거겠지.
게다가 사라와 펠리시아가 말다툼하는 걸 말리는 역할도 했을 테니까. 진짜 고생이 많았을 거다.
나는 수고했단 의미로 실비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우으읏!"
아니. 그러니까 이런 걸로 진동하지 마라.
뭐, 얼굴은 행복해보이니 다행이다마는.
"아무튼 너희 기다리는 동안 준비는 마쳤는데. 지금 당장 던전에 갈래?"
"던전? 응. 가자."
사라는 펠리시아따위는 신경 안 쓰기로 했는지, 내 팔에 매달려서는 그렇게 말했다.
"그럼 다들 장비부터 챙기자."
우리는 즉석에서 강화된 장비들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5계층 물품들로 강화한 덕분에, 다들 장비들의 모습이 멋들어지게 변해있었다.
물론 내 장비도 그야말로 게임의 고레벨 장비라는 느낌이 나게 변해있었지만, 나는 내 장비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이미 5계층 초월종의 공격도 막아낸 몸이라고.
고작 3계층에 가면서 장비를 신경 쓸 필요가 있겠어?
나는 그보다 우리 애들의 변한 모습에 주목했다.
과연 벗으면 강해진다는 수준으로 모습이 변한 건 아니었지만, 장비의 소재가 튼튼해지고 가벼워진 만큼 두께도 줄어서 그런지 다들 훨씬 더 바람직한 모습이 되어있었다.
사라도, 디아나도, 레이아도, 실비아도, 마틸…어라? 쟨 왜 아직도 여기 있지?
"마틸다? 너도 가게?"
"네? 그럼 저만 따돌릴 생각이었나요?"
"아니. 따돌리는 게 아니라, 넌 갈 필요 없잖아?"
"그, 그건…당신의 곁에 없으면 저주도…."
"아니. 아무리 나라도 던전에 내려가서까지 섹스는 안 해."
제대로 던전 안에 있는 마을을 거점 삼아서 돌아다니는 거라면 모를까. 야영하면서 할 정도는 아냐.
아라크네 애들과 다닐 때가 특이한 경우라고.
"아님 뭐야? 그냥 나랑 같이 있고 싶은 거야?"
나는 조금 도발하듯이 말을 했다.
이러면 마틸다도 그 연기 모드가 튀어나와서….
"네…."
어, 어라? 야. 모드 전환 왜 안 돼? 여기선 아니라고 틱틱대야할 장면이잖아.
왜 촉촉한 시선을 보내면서 솔직히 대답을 하는데?
"뭐, 그, 그럼 상관없지만. 그러면 실비아랑 같이 후방에서 얘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부탁해도 될까?"
어차피 실비아나 마틸다는 3계층에서 레벨을 올릴 수도 없는 수준이다.
그러니 전투는 되도록 넷이서, 아니. 디아나도 빼고 셋이서 하면서 다니자는 계획이다.
"네!"
마틸다는 그냥 같이 가게된 것만으로도 기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오랜만에 다시 던전에 가게 됐다.
아니, 물론 나는 오랜만이 아니지만. 오랜만이란 건 이렇게 우리 애들과 같이 가는 걸 말하는 거다.
일단 2계층의 오아시스 클랜이 관리하는 마을로 텔레포트를 타고, 개미굴로 향한다.
원래부터 2계층의 몬스터들은 이제 상대도 안 되는 수준이었는데, 이제 장비로 강화까지 한 거다.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RPG는 레벨과 아이템이 전부라고.
5계층 수준의 장비로 무장한 우리에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사라에게, 2계층 몬스터들은 말 그대로 툭 치면 억하고 죽는 수준이었다.
얼마나 강한지 몬스터들이 보이는 족족 죽어버려서 사라 외의 사람들은 마땅히 할 일도 없이 걷기만 할 정도였다.
"그 활. 진짜 사기네."
"후훗. 이런 소재를 가져다줘서 정말 고마워."
덕분에 혼자서 경험치를 독차지하게 된 사라는, 정말로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뭐, 애초에 지금 직업 레벨이 혼자서 유독 낮은 사라니까 별 상관없지만 말이다.
내 무투가나 암살자 레벨이 더 낮지 않냐고? 무슨 소리야. 난 성자라고.
아무튼 강화된 사라의 활이라는 게 정말 어마무지한 녀석이라서, 무려 화살이 없이 활을 쏠 수 있는 활이었다.
장비를 건네받으면서 동봉된 쪽지에 쓰여 있던 설명에 따르면, 이 활을 와이번의 숨통을 이용해서 강화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활 가운데에 있는 홈에 마석만 끼워 넣으면, 와이번의 기파와 비슷한 구조의 마나 화살을 날릴 수 있는 거라나 뭐라나.
단점이라면 소모될 때마다 마석을 끼워 넣어야한다는 건데, 어차피 던전에서 사냥하다보면 마석은 끊임없이 나오니까 그 정돈 단점도 되지 않는다.
소모품인 화살을 엄청나게 들고 다니는 것보다도 훨씬 낫고.
"흐흐흐흥."
던전을 탐색중이라는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분 좋게 콧노래를 부르는 사라를 보고 있자니 나는 조금 골려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용사 레벨 올라가네."
나는 사라의 귀에 입을 가져가서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속삭였다.
"응!"
"용사는 레벨이 올라갈 때마다 모든 스탯이 1씩 오르는데. 매력은 한계치에 도달해서 계속 안 오르네. 아아. 아까운 스탯이 공중으로 사라져버리다니."
"잠! 엣?! 정말로?!"
"응."
기분 좋았던 사라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무룩해졌다.
그냥 조금 놀려줄 생각이었는데, 이렇게까지 시무룩해하니까 엄청 미안하네.
"시, 신경 쓰지 마. 어차피 용사 레벨을 올려야지 그 이상 매력을 올릴 수 있게 되는 거잖아? 그리고 네 매력이 벌써 한계치라는 건, 굳이 용사 레벨이 아니더라도 엄청나게 잘 오른다는 증거야."
그래. 애초에 사라의 매력은 내 내구처럼 보너스 스탯으로 스탯을 찍어서 버려지는 게 아니라, 순수하게 자연 성장으로 올라서 한계치를 찍은 경우니까 말이다.
내 내구야 말로…아니야. 이 이상은 슬퍼지니까 그만두자.
"그리고, 100레벨 한계를 넘어서게 되면 내가 또 잔뜩 해줘서 매력을 올려줄게."
"바보야! 앞으론 꼭 직업 레벨도 비슷한 수준으로 올릴 거야!"
사라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주먹을 불끈 쥐고는 눈에 불을 켜고 몬스터를 찾으면서 학살을 해댔다.
그렇게 진행해나가는 건 개미굴에 들어가서도 그다지 변하지 않았고.
화살 회수를 신경 쓸 필요도 없는 사라는 한 번에 몇 마리씩 개미를 꿰뚫으면서 착착 전진해나갔다.
"디아나님!"
그리고 개미굴의 끝에는, 마법사 협회의 사람들이 거대 마석을 조사하고 있었다.
완전히 여왕개미의 방에 살림을 차려놓은 모습이었다.
이거 그냥 이대로 여기에 텔레포트를 설치해도 되는 거 아냐?
뭐, 그러려면 여왕개미가 태어나자마자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가 항상 대기하고 있어야 되니, 효율측면에서 그러진 않겠지만.
아무튼 우리는 거기서 간단하게 저녁 식사를 하게 됐는데, 그동안 디아나는 마법사 협회 사람에게 거대 마석의 연구 진척 상황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래?"
식사를 하면서, 나는 그 누구보다도 의욕이 넘치는 사라에게 질문을 던졌다.
"응? 뭐가?"
"여기서 자고 3계층은 내일부터 갈까? 아니면 식사하고 바로 3계층으로 넘어갈까?"
"나로서는 바로 3계층에 가고 싶은데…다들 어떤가요?"
사라는 자기주장만 내세울 생각은 없는지, 다른 사람의 안색을 살피는 모습이었다.
"음. 그러세.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세."
디아나는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원래부터 던전의 위험함에 항상 주의를 하던 디아나이니만큼 말로 표현 하진 않았지만, 엄청나게 자신감 있는 모습이었다.
그야 그렇겠지. 디아나가 레벨 한계를 돌파하면서 500으로 껑충 올라버린 스탯이 매력 하나밖에 없는 게 아니니까.
아무리 레벨이 3계층 중반을 다니기에는 조금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디아나라면 3계층의 모든 몬스터를 일격에 증발시켜버릴 수 있을 거다.
"좋아. 그럼 그렇게 하자."
우리는 식사를 하고, 곧장 3계층으로 향하는 통로로 향했다.
그리고는 눈의 벽에 이르러서, 나는 걸음을 멈추고 모두에게 경계를 하도록 했다.
"장비가 강화 되서 별 문제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제부터 3계층이니까 다들 긴장하고. 특히 마틸다."
"네, 넷?! 뭐죠?!"
"나한테 반한 건 알겠는데 너무 그렇게 넋 놓고 나만 보다가 실수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아, 알고 있어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마틸다는 조금 자각이 있기는 있었던 모양이다.
마틸다는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돌렸다.
원래는 성기사였다고 하더라도, 마틸다는 뭔가 아가씨 같은 느낌이 있으니까 말이야.
아라크네와 던전을 했던 것도 내 곁에서 가끔 방어나 치료만 할 뿐 고이 모셔지는 역할이었고, 역시나 이런 던전 탐험은 그다지 익숙지 않은 모양이다.
정작 저기 있는 진짜 귀족 아가씨는 순식간에 던전에 익숙해졌는데.
뭐, 그래서 내가 실비아를 파티에 넣기로 결심하게 된 거지만.
"히아웃!"
나는 괜히 실비아가 기특해져서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아, 뭐야. 실비아. 전투 모드 풀렸네? 아직 나가기 전이라 그런가?"
"으엣? 모, 모드으으으…말입니까?"
실비아는 덜덜덜 진동을 하면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냐. 나 혼자 헛소리 하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마.
"아참. 그리고 디아나."
"음?"
"네 자리는 여기야."
나는 다들 점검을 한 걸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디아나를 끌어안았다.
역시 생체난로는 품안에 두는 게 제일이지.
"앗! 구원씨만 치사하세요!"
레이아는 내가 갑자기 왜 디아나를 끌어안았는지 깨달은 모양이었다.
바로 내 정면에서 디아나에게 달려 들어왔다.
"우으읍! 가슴! 가슴 치우게!"
"방금 전에 마틸다씨한테는 조심하라고 경고했으면서 정작 본인은 지금 뭐하는 거야!"
결국 사라한테 혼나고 나서야 우리는 3계층으로 향할 수 있었다.
전위를 맡아야 하는 나는 당연히 디아나를 뺏겼고, 디아나는 레이아의 품에서 머리 위에 가슴을 올려놓은 채로 고통스런 표정만을 짓고 있게 됐다.
쳇. 내 생체 난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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