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331화 (31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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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의 저주

    "아하하. 그런데 소피아씨, 빨리 오셨네요. 마틸다는요?"

    나는 일단 레이아에게서 떨어지려다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굳이 이런 모습을 감출 것도 없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레이아를 더 꽉 껴안은 채로 소피아씨에게 질문을 던졌다.

    "마틸다 추기경님은 현재 교황님과 대화중이에요. 전 당신을 부르러 왔어요. 저주를 풀 수 있는 당사자 없이 어떻게 제대로 설명이 되겠어요?"

    아, 그런가. 레이아와 대화할 생각으로 남아있었지만, 잘 생각해보면 내가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나.

    나는 소피아씨의 안내를 받아서 마틸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따라간 곳에는 통신 마법과 텔레포트 마법이 혼합된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영주성에서도 본 것과 같은 구조를 하고 있었다.

    "당신이 구원이로군요."

    내가 방에 들어가자, 마틸다가 몸을 살짝 옆으로 비켰다.

    그러자 마틸다의 몸에 가려져있던 수정구가 모습을 드러냈고, 그 너머로 날 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정구에는 젊었을 때 미인이었을 것을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곱게 늙으신 할머니가 이쪽을 향해서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이거 허를 찔렸네.

    이런 세계이다 보니 당연히 교황도 잘빠진 미인일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그런 교황의 모습에 잠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보통은 그렇게 생각하잖아.

    마법사협회 누님들마저도 30대 후반 정도의 미인으로 보이는 세계라고.

    내가 그 누님들의 나이를 정확히 아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그런데 교단의 최고직위에 있는 분이 이런 올드 레이디라니.

    내 추측에 따르면 이 세계의 성직자들은 기본적으로 직업 레벨이 오를 때 매력이 오른다.

    그러니 교황씩이나 되는 사람이 매력이 낮을 리도 없다.

    그렇다면 이 모습은 그만큼 나이가 많다는 증거인 걸까?

    "마틸다 추기경에게서 얘기는 들었습니다. 지금 사람을 시켜서 저주에 영향을 받은 자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확인을 기다리는 동안 잠시 저와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아, 네."

    그야말로 교황의 표본 같은 차분하고 인자한 말투에, 나는 스스로가 절로 공손해지는 걸 느끼면서 대답했다.

    얘기라고는 해도 별 말을 한 건 아니었다.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부터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같은, 정말로 시시콜콜한 얘기들만을 주고받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잡담을 한 후에, 교황은 드디어 본격적인 얘기를 시작했다.

    "여신님의 사자라고 들었습니다만."

    교황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와서 순간 흠칫했지만, 생각해보니 당연한 거였다.

    어차피 저주를 어떻게 풀 수 있었는지 얘기하려면, 그 얘기를 할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솔직히 그 정도로 거창한 건 아니고요, 그냥 여신님께서 뭔가 목적이 있어서 저를 보내신 건 맞아요."

    "후훗. 겸손하시군요. 그게 바로 여신님의 사자라는 겁니다.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여신님의 사자란 걸 공개하기 거부한 건가요?"

    그 얘기까지 한 건가.

    뭐, 레이아 본인이 결혼은 천천히 생각하겠다고 한 이상, 이제 여신의 사자라고 공표되더라도 별 상관없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 면도 없다고는 말 못하겠네요."

    하지만 방금 전까지 그렇게 공개를 반대했던 내가, 결혼이 무산되자마자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꾸는 건 너무 속보이겠지?

    나는 계속해서 공개 반대의 입장을 고수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저주에서 해방된 남성분들에게는 저희가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요?"

    교황은 여전히 인자한 미소를 지으면서, 전혀 고민하는 기색 없이 그렇게 말했다.

    "아, 그런가. 그러네요. 그럼 그냥 말 하셔도 돼요."

    "정말 괜찮나요?"

    "네."

    "어째서 갑자기 마음이 바뀐 건가요?"

    그렇게 질문하는 교황의 눈이 아주 조금 날카로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야…저에 대해서 숨기려면 사제분들이 거짓말을 해야 될 테니까요. 제 이기심 때문에 성직자분들이 거짓말을 하게 만드는 것도 미안하고."

    "그렇군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자연히 소문이 퍼질 텐데, 괜찮겠습니까?"

    "음…뭐 어쩔 수 없죠. 어차피 마틸다의 저주를 푸는 동안 알게 되는 사람도 점점 더 늘어날 거고. 생각해보니 비밀로 해달라고 하는 건 너무 제 생각만 한 거였네요."

    "…후훗.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죠."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교황의 미소에서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나저나 교황은 내가 여신의 사자라고 믿고 있는 걸까?

    저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의심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뭔가 여신의 사자를 떠받들거나 이용해먹으려는 것 같지도 않고.

    뭔가 신기한 사람이다.

    "아, 아무래도 결과가 나온 모양이군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교황은 그렇게 말하고 잠깐 자리를 벗어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수정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당신의 예측은 정확했던 모양이네요. 저주에 영향을 받았던 사람들 중 23명의 증세가 회복됐다고 합니다."

    "23명…."

    "으읏…."

    교황의 말에, 나보다 먼저 레이아와 마틸다가 반응을 보였다.

    그나마 옆에 있는 게 천사님이라 천만다행이다.

    사라나 디아나였으면 분명 화냈을 거야.

    천사님의 목소리도 썩 기분 좋은 것 같지는 않은 느낌이라, 옆을 돌아보기 두려웠지만 말이다.

    "그, 그렇군요. 그거 잘 됐네요."

    "네. 그럼 계속해서 마틸다 추기경을 부탁해도 될까요?"

    "아, 네. 물론이죠."

    "감사합니다. 그럼 마틸다 추기경."

    "네, 넷!"

    "당신은 그곳에서 한동안 저주를 푸는 것에 전념하시길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교황님."

    "그럼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그렇게 해서 교황과의 대화가 끝났다.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그다지 긴장도 하지 않았고, 결국 대부분 내가 원하는 데로 풀렸다는 느낌이다.

    여신님의 사자라는 소문이 퍼질 수 있다는 게 변수이기는 한데, 이거야 뭐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있을 테니 뭐라고 말하기 힘들고.

    "뭔가 신기하신 분이네. 그냥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안심되는 사람이었어."

    "당연하죠. 역대 최고의 교황 중 하나라고 칭송받는 분이시라고요."

    마틸다는 정말로 교황을 존경하는지, 자기가 더 뿌듯해하면서 말했다.

    "그럼 돌아갈까."

    무사히 용무를 마친 우리는, 소피아씨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신전을 빠져나왔다.

    "그나저나 역시 내 감은 대단하다니까. 예상이 정확하게 들어맞다니. 나 스스로가 두려울 정도야."

    마차를 타고 저택으로 향하는 도중, 나는 스스로가 대견해져서 자랑스럽게 떠들었다.

    만약 딱 한 번만 해보고 저주가 안 풀렸다면서 그대로 포기했으면 어떻게 됐겠어.

    하지만 이 얘기는 하면 안 되는 얘기였다.

    "후훗. 그러네요. 분명 교황님께서 23분이 저주에서 회복됐다고 하셨죠. 그럼 마틸다씨와 23번을 하신 건가요?"

    레이아의 말을 듣고, 나는 등뒤가 식은땀으로 축축히 젖어가는 게 느껴졌다.

    이 화제는 위험해.

    아무리 우리 천사님이라고 하더라도, 이 화제를 계속 이어나가면 안 될 것 같아.

    "그, 그랬던가? 아무튼 마틸다 넌 참 대단하다. 저주가 23명이나 풀렸는데 고작 저주의 흔적은 손가락 두 마디 정도밖에 사라지지 않았잖아. 대체 몇 명한테 반했다는 거야."

    나는 본능이 주는 신호를 착실하게 받아들여서, 회심의 화제 전환을 시전 했다.

    "벼, 별로 그런 건! 그렇게까지 반하지 않았어요!"

    다행이다. 마틸다가 제대로 받아줘서.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더욱더 마틸다를 몰아붙였다.

    "무슨 소리야. 시치미 떼도 소용없어. 네 몸에 퍼져있는 그 저주의 흔적이 무엇보다도 확실한 증거야. 정말로. 그냥 말만 걸어도 반하는 거 아냐?"

    "그, 그렇지는…."

    마틸다는 스스로 말하고도 조금 자신감이 없는지, 조금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구원씨. 마틸다 추기경님께 너무 그러지 마세요. 저주의 영향이니까 추기경님도 어쩔 수 없으신 거예요."

    그리고 내가 너무 마틸다를 몰아붙이자, 우리 착하신 천사님이 결국 보다 못해서 마틸다를 두둔하고 나섰다.

    좋았어. 이걸로 완전히 화제가 전환됐다.

    마틸다에게는 조금 미안한 짓을 했지만, 또 달콤한 말로 속삭여주기라도 하면 되겠지.

    "그, 그래요! 이건 저주의 영향이에요!"

    뭐, 그리고 그렇게까지 풀죽은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뭐, 어찌됐든 이제 네가 나만 좋아하면서 피해자만 안 늘리면 되는 거네."

    "다, 당신을…."

    "왜? 나 안 좋아해?"

    "좋아해요…."

    거 봐.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니까 바로 풀리잖아.

    "구원씨도 참…."

    레이아는 자기도 신경써달라는 듯이 내 팔을 끌어안으면서 가슴을 밀착시켜왔다.

    그리고는 내 귓가에 입을 가져와서는 속삭였다.

    "내일 밤에는 저도 23번 이상 할 거니까요."

    화제 전환에 성공한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냥 우리 천사님이 봐준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런 협박이라니. 역시 천사님이야.

    "겨우 그 정도로 괜찮겠어?"

    "정말…."

    레이아는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돌리면서, 하지만 여전히 내 팔을 양손으로 꽉 붙잡은 상태에서 꼬리로 내 허벅지를 찰싹찰싹 때렸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무사히 저택에 도착한 우리지만, 언제나 우리를 마중 나오던 슈퍼 집사 바넷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디아나가 내 쪽으로 쪼르르 다가왔다.

    "음. 자네도 빨리 왔구먼. 어떻게 됐는가?"

    "응.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디아나도 벌써 길드에 다녀온 거야?"

    "음. 어차피 새로 발견한 거대 마석이 있는지 물어볼 겸 잠시 갔던 것뿐이니 말일세."

    과연. 티를 안내고 있을 뿐이지, 여전히 연구에 열심이구나.

    디아나도 당장이라도 새로운 마석을 찾으러 던전에 가고 싶었을 텐데, 날 생각해서 보채지 않고 기다려준 건가?

    이런 부분에선 역시 연령에 상응하는 여유가 느껴진다니까.

    "그런가. 그럼 장비가 강화되는 대로 바로 던전에 가자."

    "음.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구먼. 안 그래도 사라양과 실비아양이 장비를 가지러 갔다는 모양일세."

    "응? 아, 그래서 바넷사가 안보였구나. 그럼 던전에 갈 준비를…아."

    나는 황급히 옆에 있는 레이아를 쳐다봤다.

    이번에 던전에 가게 되면, 3계층을 탐험하게 될 거다.

    당연히 2계층처럼 거점에서 머물면서 탐험하던 것처럼은 할 수 없을 거고, 그 말은 즉 던전 안에서 섹스를 못한다는 말이 된다.

    방금 전까지 내일 밤을 기대하라는 둥 떠든 주제에, 오늘 던전에 가도 되는 걸까?

    "괜찮아요."

    레이아는 내가 왜 자기를 쳐다봤는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듯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으면서 그렇게 말해줬다.

    "음? 왜 그러나? 뭔가 문제라도 있는 겐가?"

    "후훗. 아뇨. 아무것도요."

    심지어 마틸다랑 어제 하루 동안 23번 했다는 건 언급도 안 해주시는 이 상냥함까지.

    다시 한 번 말하지. 역시 천사는 레이아야.

    "으음.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네만…."

    하지만 디아나도 괜히 나이를 먹은 게…아니. 경험이 풍부했다.

    나는 수상하다는 듯이 나와 레이아를 번갈아보는 디아나에게 얼른 다가가서, 양쪽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애들이 돌아오는 대로 던전에 가려면 미리 준비를 해둬야지. 어서 가자."

    "안을 거면 좀 더 제대로 안게나."

    디아나는 석연찮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별거 아닐 거라고 생각을 바꾼 모양이다.

    "이거면 되겠습니까?"

    "음."

    내가 디아나의 등과 허벅지를 각각 받치는 자세로 안아들자, 디아나가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 목에 팔을 감았다.

    그런데 바넷사가 없으면 이거 누구한테 부탁해야하지?

    평소에는 던전에 가기 전에 바넷사가 척척 식료품 같은 걸 준비해주니까 편했는데.

    물론 데이트겸 다 같이 나가서 살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도 일단 저택에서 기본적인 준비를 해놓고 간 상태에서 추가로 더 사들이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저택에서 살게 된 이후로 바넷사 의존도가 엄청나게 늘었잖아.

    아니.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바넷사가 너무 편한 게 잘못이야.

    게다가 나는 아직도 바넷사가 전속으로 담당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오늘같이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면 다른 메이드들하고는 말할 기회도 변변히 없을 정니 말 다했지.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도 2시간 전후로 한편 더 올릴 지도 모릅니다.

    illya, GoodYear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hasj12 // 구원 입장에선 사정을 전부 말하지 않았을 뿐, 솔직하게 사실을 말한 건 맞습니다.

    능력문제가 아니라 감정문제 때문에 못하는 거긴 하지만, 어쨌든 못하는 건 못하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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