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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330화 (31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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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의 저주

    "그럼 전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마부 역할을 한 메이드가 우리를 향해 공손하게 인사를 하면서 말했다.

    저주를 풀 방법을 알았다고는 하더라도, 저주가 풀린 건 아니다.

    때문에 마틸다가 밖을 나오기 위해서는 여전히 마차를 통한 이동이 필수였다.

    하지만 성에 장비들을 가지러 가게 될지도 모르는 만큼 바넷사와 가장 좋은 마차는 저택에 남겨뒀고, 우리는 다른 메이드가 모는 적당한 크기의 마차를 타고 왔다는 말이다.

    "그럼. 마틸다. 일단 나한테 붙어."

    "네? 아앗! 이, 이렇게 대담하게…."

    "으음. 구원씨."

    내가 마틸다를 끌어안자, 레이아는 조금 토라진 얼굴로 내 반대쪽 팔을 끌어안았다.

    "아니. 저주 때문에 위험하니까."

    그랬다. 마차로 신전에 도착했다고는 하더라도, 신전은 여전히 엄청난 수의 왕래 객들이 있었다. 특히나 남자 위주로 말이다.

    여전히 여자보단 남자 신도들이 압도적으로 많…앗! 그런 건가!

    나는 왜 이렇게 신전에 왕래 객들이 많은지를 알 수 있었다.

    물론 여기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신앙심이 투철한 것도 있겠지만, 이것들 적어도 반 이상은 교육장 때문에 온 녀석들이야!

    그러고 보니 이 세계에 와서 한 번도 창관 같은 걸 본적이 없었다.

    보통 이렇게 모험가들이 많은 도시는 창관이 집단으로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도 말이다.

    이 세계의 신이 그런 신이다보니 오히려 돈을 주고받으며 섹스하는 건 금기가 돼서 없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냥 순수하게 창관이 있을 필요가 없어서 없는 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10레벨 이하라면 교육이랑 명목 하에 신전에서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교육이라는 명분이 있다는 건 남자의 자존심을 유지시켜줄 수 있는 수단도 된다.

    왜냐하면 이 세계는 섹스로 상대방이 절정을 느꼈다는 걸 경험치 상승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창관 같은 데 가서 열심히 허리를 흔들었는데, 정작 들어오는 경험치가 단 하나도 없었다면?

    괜히 돈만 쓰고 자존심만 갈가리 찢기는 꼴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교육이란 명목이 있으면 그나마 자존심이 상할 일은 없다.

    이 세계의 시스템 상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다수의 남자들에게 신전의 교육장이란 꿈과도 같은 장소라는 거다.

    그리고 이유야 어찌됐든 이렇게 신전에 사람이 몰리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신앙심도 깊어지는 법이다.

    서로 윈윈인 관계라고 할까.

    만약 이 세계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내가 교육장의 존재를 알았다면 엄청나게…아, 그러고 보니. 과연. 오늘따라 우리 천사님이 왜 그렇게 내 감시에 의욕을 불태우나 했더니.

    나한테 교육장의 존재가 들켜서 불안했던 거구나.

    "응? 구원씨? 왜 그러세요?"

    내가 레이아를 빤히 쳐다보자, 레이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레이아. 사랑해."

    "후훗. 저도 사랑해요."

    레이아는 싱긋 웃으면서 내 팔에 더더욱 자신의 가슴을 눌러왔다.

    진짜 천사라니까.

    걱정 마. 내가 레이아가 불안해할 짓을 하겠어?

    나는 교육장 쪽으론 눈길도 주지 않고 곧장 대사제…소피아씨의 방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소피아씨."

    대사제님이라고 부르는 게 오래됐던 만큼, 소피아씨라고 부르는 게 어색하다.

    게다가 반쯤 장모님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만큼 더욱더.

    "어머. 어서 오세요. 마틸다 추기경님까지 같이 오셨다는 건…이제 구원씨를 여신님의 사자로 인정하시겠다는 건가요?"

    아앗! 그러고 보니 그게 있었지!

    어쩐지 여기 셋이서 오는 게 불안하다 싶더라니! 망했다!

    "…그러네요. 인정하지 않을 수밖에 없게 돼버렸어요."

    그리고 내가 신호를 보내기도 전에, 마틸다는 간단하게 수긍해버렸다.

    왜 그렇게 쉽게 수긍하는 거야?! 전에는 자기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진 절대 믿지 않겠다고 우겨댔었잖아!

    "그 말은…여신님이 또 다시 내려오셨던 건가요?"

    "아뇨. 그건 아니지만…이 남자. 제 저주에 영향을 받지 않아요."

    "네, 네?!"

    그렇게나 예상외의 대답이었던 건지, 언제나 차분하던 소피아씨는 조금 당황한 모습으로 마틸다를 쳐다봤다.

    "게다가 이 사람과의 섹스로 저주가 조금이나마 풀렸어요. 아마 이대로 계속하면, 완전히 저주를 풀 수 있겠죠. 사실 오늘 여기 온 이유는 그 일 때문이에요."

    "그, 그렇군요."

    소피아씨는 복잡한 얼굴로 레이아를 쳐다봤다.

    딸 같은 레이아가 좋아하는 남자와 상사나 마찬가지인 추기경이 섹스를 했다는 얘기를 들었으니, 그야 마음이 복잡하기도 하겠지.

    으윽. 괜히 죄송합니다.

    하지만 소피아씨는 이내 표정을 다잡고, 진지한 얼굴로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구원씨. 마틸다 추기경도 성녀가 될 수 있는 건가요?"

    역시나. 역시나 이렇게 돼버리나.

    젠장. 그래. 이런 흐름이 될 것 같았어.

    사라나 디아나랑 같이 왔어야 했는데.

    "아뇨. 마틸다는 불가능해요."

    앞으로 대화의 흐름이 어떻게 진행될지 뻔히 보였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어서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엣? 불가능한가요?"

    "그래."

    그러고 보니 얘는 사도 임명에 대해서 모르지.

    혹시 자기도 성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아, 하긴. 그러고 보니 원래는 성녀 후보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여전히 성녀가 될 수 있는 건 레이아 하나군요."

    소피아씨는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다시 마틸다를 쳐다봤다.

    "그럼 마틸다 추기경님. 전에 얘기했던 교단에서 성자 구원과 성녀 레이아의 성혼을 추진하자는 얘기를 교황님께 다시 한 번 건의하고 싶네요."

    으아. 역시 이렇게 돼버리나.

    아니. 물론 싫다는 게 아니다. 나도 레이아와 결혼을 하고 싶다.

    다만 단독으로 레이아하고만 먼저 하는 건 말이지….

    "에, 엣?! 네엣?! 뭐라고요?!"

    마틸다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피아씨를 쳐다봤다.

    "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어차피 성자와 성녀는 이미 상사상애하고 있는 관계입니다. 또한 한동안 성녀가 없어서 침체됐던 교의 분위기를 일신하는 차원에서도 이 얘기는…."

    "자, 잠깐. 잠깐 기다려주세요. 소피아씨."

    "뭐죠, 구원씨? 우리 레이아에게 어디 불만이라도?"

    소피아씨는 마치 처음 만났을 때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소피아씨도 내가 왜 이러는지 알고 있으니까, 일부러 더 저런 말을 하는 거겠지.

    "그건 절대 아니에요! 아니지만, 그게…여신님이 저한테 던전을 가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여신님의 사자라느니, 그런 소문이 퍼지면 모험가로서 조금 불편할 것 같아요."

    "그, 그래요. 결혼이라니. 너무 이른 얘기에요!"

    마틸다는 내 말에 필사적으로 맞장구를 쳐줬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한 번 달콤한 말로 꼬드겨두면 효과는 계속 지속되는 모양이다.

    "마틸다 추기경님. 당신은 지금 냉정함을 잃고 있는 겁니다. 저주 때문에 특히 더 그런 것 같군요. 냉정하게 상황을 보시는 게 어떠신가요?"

    "읏!"

    하지만 소피아씨는 마틸다에게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말투만 존댓말이지 마치 아랫사람을 타이르는 것 같은 태도였다.

    그리고 마틸다도 찔리는 구석이 있는 건지, 아니면 소피아씨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건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과연 이런 큰 신전의 최고관리자. 어쩌면 소피아씨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하신 분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구원씨. 여신님의 사자라는 게 알려지면 불편할 거라고 하셨지요?"

    "네, 네."

    "확실히 거친 모험가들 중에는 시기하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르고, 던전 안에서 뒤를 캐거나 할지도 모릅니다. 여신님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일거수일투족에도 신경을 써야 하겠지요. 하지만 그런 디메리트 이상으로, 저희 교단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메리트가 크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윽, 그, 그건…하지만…."

    "하지만 뭐죠?"

    젠장. 장모님처럼 생각하고 있는데다가 지금까지 선생 역할도 해줬던 분인 만큼, 소피아씨가 저렇게 나오니까 기를 못 펴겠네.

    "그, 그게…그래. 그, 레이아도 불편할 테고."

    결국 나는 레이아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방법밖에 없었다.

    만약 여기서 결혼이 결정나버리고, 신전에서 결혼식까지 나와 레이아를 붙잡아 둔다면?

    그야말로 답이 없다.

    아무리 디아나가 있다고 하더라도, 성자와 성녀의 결혼을 방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전 세계의 마법사? 이쪽은 여신님을 모시는 전 세계의 사람이 같은 편인 거다.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레이아가요?"

    소피아씨는 무슨 소리냐는 듯이 날 쳐다봤다.

    "네. 레이아도 아직 성녀가 된 게 아니잖아요. 물론 제가 성녀로 만들 겁니다만, 그래도 아직 성녀가 되지 않은 이상 그런 발표를 하는 건 레이아에게 너무 부담을 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레이아?"

    나는 간절한 눈빛으로 레이아를 쳐다봤다.

    솔직히 말해서 구차하기 그지없는 행동이다.

    당연히 레이아는 나와의 결혼을 엄청나게 바라고 있을 거다.

    저번 밤엔 내 아이를 가지고 싶다면서 그런 플레이를 했을 정도니까.

    그런 레이아한테 결혼이 성립되지 않도록 도움을 요청하다니. 스스로 생각해봐도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네. 성녀가 되기 전까지 그런 발표를 하는 건 너무 부담이 큰 것 같아요."

    하지만 레이아는 내 눈을 빤히 보면서 잠깐 생각을 하더니, 소피아씨를 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뭐? 레이아. 하지만…."

    "괜찮아요. 걱정 하지 않으셔도 돼요."

    소피아씨가 당황하며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레이아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소피아씨의 두 손을 붙잡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전 저의 페이스대로, 느긋하게 관계를 쌓아올리고 싶어요. 그리고 지금도 충분히 행복한걸요."

    "그래…. 미안하구나."

    "아뇨. 언제나 감사하고 있어요."

    레이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내 옆으로 와서 내 팔에 팔짱을 꼈다.

    "레이아…."

    나는 나대로 미안함과 감동에 젖어서 레이아를 바라봤다.

    "후훗. 왜 그런 표정을 하세요. 정말 괜찮으니까요."

    레이나는 살며시 검지를 내 입술에 가져다 대서 말을 멈추게 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크윽. 대체 이분은 어디까지 천사 같은 거야.

    아니. 천사 같은 게 아니야. 천사 그 자체지.

    오히려 천사가 레이아 같은 거야!

    "크흠! 아, 아무튼! 제 저주에 대해서 잠깐 교황님과 얘기를 하고 싶은데요. 통신 마법이 있는 곳으로 안내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마틸다도 한동안 조용히 우리 모습을 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린 듯 헛기침을 하고 소피아씨를 향해 말했다.

    "…그렇군요. 따라오시죠."

    소피아씨는 마틸다를 데리고 방을 빠져나갔다.

    그냥 고자 상태에서 해방된 사람이 있는지만 확인하면 되는 거니까, 굳이 내가 따라갈 필요는 없겠지?

    나는 레이아와 함께 여기에서 대기를 하기로 했다.

    "레이아. 미안해."

    단둘이 되고 나서야, 나는 겨우 레이아한테 사과를 할 수 있었다.

    "네? 갑자기 왜 그러세요?"

    "레이아는 분명 나와 결혼하고 싶었을 텐데."

    "어머. 마치 구원씨는 그렇지 않으셨다는 것 같네요?"

    "아냐! 그런 게 아냐! 단지…!"

    "후훗. 알아요. 구원씨를 따라서 농담 한 번 해봤어요."

    레이아는 쿡쿡 웃으면서 내 정면으로 오더니, 두 손으로 내 손을 감싸듯 잡으면서 말했다.

    "사과하실 것 없어요. 다 저를 위해서 한 것인 걸요."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생각해봤어요. 과연 그런 식으로 결혼을 한다고 하더라도, 정말로 행복할지를요. 아마 사라씨와 디아나씨는 괴로워하시겠죠. 그리고 그런 두 분을 보는 구원씨도 괴로워지실 거고요.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그런 구원씨를 곁에서 바라봐야하는 저도 괴로워지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결혼을 거부한 거예요. 다 저를 위해서 그런 거죠."

    "레이아, 그건…."

    "그리고…벌써부터 성녀라는 직함으로 불리는 게 부담됐던 것도 사실이고요."

    레이아는 장난스럽게 혀를 살짝 내밀면서 말했다.

    레이아는 자기를 위해서라고 했지만, 이거 완전히 나를 위해서 그런 거잖아!

    나는 참을 수 없어서 레이아를 꽉 끌어안았다.

    "꺄악!"

    "레이아. 정말 사랑해. 정말로 내가 평생 잘 할게!"

    "구원씨. 잠깐 교황님께서…어머."

    내가 레이아에게 그렇게 외쳤을 때, 마침 소피아씨가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정말로 제가 안달할 필요는 없었던 모양이군요."

    그리고는 레이아와 서로 마주보면서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연참 성공!

    ziozia // 걱정 감사합니다. 사실 연말연초가 비수기라 조금 널널해요.

    그리고 요즘 조회수나 추천수가 늘어서 글쓰는 게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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