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327화 (31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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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의 저주

    "마틸다."

    내가 방에 돌아왔을 때, 마틸다는 마침 눈을 뜨는 찰나였다.

    자신의 옆이 비어있는 걸 확인한 후 쓸쓸한 표정을 짓던 마틸다는, 갑자기 정면에서 들려온 내 목소리에 깜짝 놀라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러자 마틸다 위에 덮어줬던 이불이 스르르 내려가면서, 다리부터 음부 위까지만 아슬아슬하게 가려지는 모양새가 됐다.

    얘 이거 일부러 이렇게 의도한 건 아니겠지?

    남자의 본능을 자극하는 모습이다.

    "네, 넷?!"

    "역시 저주를 푸는 건 섹스가 맞았어."

    아무튼 나는 알몸에 정신을 뺏기는 일 없이, 당황하는 마틸다를 무시하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이런 건 기세가 중요하니까 말이야.

    "흉터를 봐."

    마틸다는 기절에서 막 깨어난 상태라 혼란스러운 모양이었지만, 일단 반사적으로 자신의 하복부를 살폈다.

    "아니. 거기 말고. 여기."

    나는 마틸다의 손목을 붙잡고 마틸다의 눈앞에 가져갔다.

    "어때? 줄어들었지?"

    "아, 아아…!"

    "피해 남성이 늘어날 때마다 저주의 흔적이 퍼졌다는 얘기를 듣고 감이 왔지. 아무래도 피해 남성의 숫자만큼 해야지 저주를 완전히 풀 수 있는 모양이야."

    마틸다는 내 얘기를 듣고 있기는 한 건지, 자신의 팔만을 빤히 쳐다보면서 울 것 같은 표정이 됐다.

    역시나. 아무리 스스로 자처해서 하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무척 힘들었겠지.

    하지만 이제 괜찮다. 내가 완전히 저주에서 해방시켜줄 테니까.

    "그러니까 마틸다. 너 저주를 풀려면 이제부터 나랑 있어라."

    원래부터 우리 집에 눌러앉아 있던 애한테 이제 와서 이런 말을 다시 하려니까 조금 어색하네.

    하지만 뭐, 말 그대로 그냥 같이 있기만 하라는 뜻이 아니니까.

    "엣?! 엣?! 하, 하지만…당신 곁에 있는 세 사람은…?!"

    "이미 허락 맡았어. 물론 걔들처럼 너와 정식으로 맺어진다든가, 그런 건 아냐. 그냥 실비아와 비슷하게…무슨 말인지 알지?"

    얘도 이 저택에 눌러앉은 지 꽤나 됐다.

    그리고 그 시간은, 눈썰미가 아주 없지 않는 한 인간관계정도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마틸다는 그렇게까지 눈썰미가 없는 애는 아니었다.

    애초에 던전에 같이 들어갔을 때, 내가 매일같이 실비아와 한 걸 알고 있을 거다.

    그런데도 마틸다는 방금 전에 내 곁의 세 사람을 언급했다. 실비아를 빼먹은 거다.

    한마디로 말해서, 마틸다도 나와 실비아가 어떤 관계인지는 대충 파악하고 있다는 거겠지.

    "그, 그건…."

    "뭐, 맘에 안 들 수도 있겠지. 그래도 너한테 선택권은 없어. 적어도 저주가 풀릴 동안은 말이야."

    사실 마틸다한테 선택권을 주려고 했었다.

    마틸다도 내가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건 아니라고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선택권을 주는 게 더 잔인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선택권을 준다고 한들, 마틸다에게 거부한다는 선택은 있을 수 없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

    저 저주에 영향을 받고 있는 건 자신 하나만이 아니니까.

    고자가 되어버린 모든 남성들을 위해서라도, 마틸다는 반드시 승낙할 수밖에 없는 거다.

    그러니까 나는 괜히 마틸다를 고민하게 할 거 없이, 내가 조금 악역이 돼서라도 강요하기로 했다.

    "마틸다. 내 여자가 되어서, 내 곁에 있고 싶지?"

    "네…. 읏!"

    마틸다의 곁으로 다가가서 턱을 붙잡고 고개를 들게 만든 후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이자, 마틸다는 바로 몽롱한 표정이 되어서 긍정했다.

    하지만 잠깐 동안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고개를 저으면서 자신의 본능에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역시 스스로의 감정을 속일 수는 없는 듯, 다시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볼 때도 눈빛은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하나만, 하나만 대답해줄 수 있나요?"

    "대답?"

    "네. 당신 말했었죠? 제 저주에 영향을 받지 않는 다는 걸 깨달은 건 최근이라고. 정확히 언제 알게 됐나요?"

    질문을 던지면서도, 마틸다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마치 내게 안겨들고 싶은 걸 필사적으로 참으려는 것처럼 말이다.

    "응? 그게 지금 중요한 거야?"

    "주, 중요해요. 당신은 어떨지 몰라도, 제게는 무척. 그러니까 제발…."

    대답해주세요.

    마틸다는 떨리는 눈동자로 내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던전에서 5계층 주인을 잡고 난 후야. 그때 내가 기절에서 깨어난 후에, 네가 나한테 제대로 사랑한다고 말했었잖아. 그런데도 발기가 되는 게 이상해서 다시 한 번 능력을 살펴보니 어느 샌가 그런 능력이 생겨있더라."

    "5계층의 주인을 잡은 후…."

    마틸다는 그렇게 말한 후, 갑자기 내 품에 달려 들어왔다.

    "알겠어요. 저, 당신 곁에 있을게요."

    "괜찮아?"

    "네. 사랑해요…."

    마틸다는 아까의 조금 고민하는 것 같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다시 완전히 머릿속이 핑크빛으로 물든 것처럼 몽롱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거 진짜로 고민을 하긴 한 건가?

    그냥 자기 본능에 이끌려서 결정한 거 아냐?

    뭐, 아무래도 좋긴 하지만 말이야.

    하지만 이거 곤란하군.

    물론 전처럼 사사건건 조금 오만해 보이는 태도로 덤벼드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사랑에 빠진 얼굴로 계속 엉겨 붙는 것도 조금 그랬다.

    여러 가지 의미로 말이다.

    일단 나도 분위기에 타서 그만 사랑을 속삭여버리게 될 것 같다.

    그것만은 자제하지 않으면.

    마틸다를 데리고 있는 것까지 허락해준 셋을 위해서 말이다.

    아니, 애초에 세 명이 지금 마틸다의 모습을 보면 어떻게 될까?

    분명 엄청나게 질투하겠지.

    "나같은 쓰레기의 곁에 있고 싶어 하다니. 심지어 사랑한다고? 너 남자 취향도 참…."

    "누, 누가 당신 같은 남자를…!"

    내가 그렇게 말하자, 마틸다가 거의 척수반사 수준으로 곧장 그런 반응을 해왔다.

    표정을 보니 자기도 꽤나 당황한 모양이다. 마치 이러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해버렸다는 표정이었다.

    과연. 그런 건가. 연기를 너무 오래하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게 저런 태도가 반사적으로 튀어나와버리는 건가.

    "사랑하지 않아?"

    "사, 사랑해요…."

    하지만 다시 부드럽게 속삭이자, 마틸다는 달콤한 목소리로 다시 애교를 떨었다.

    위험해. 이거 조금 재밌을지도 몰라.

    "뭐, 일단 옷부터 입어. 밥이나 먹으러 가자."

    "네? 아앗! 다른데 보고 있으세요!"

    마틸다는 그제야 자기가 아직도 알몸이란 걸 깨달은 모양이야.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대체 얼마나 무방비한 거야.

    뭐, 머릿속이 반쯤 꽃밭인 애니까 어쩔 수 없나.

    "보고 있으면 안 돼? 마틸다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보고 싶어."

    "좋아요…."

    "쓰레기한테 알몸이 보이는 걸 좋아하다니."

    "다른데…! 정말!"

    마틸다는 다시 반사적으로 틱틱대려고 하다가, 자기가 뭔 짓을 하는지 깨닫고는 발을 동동 굴렀다.

    정말 위험해. 얘 너무 재밌어.

    "삐지지 마. 삐지지 마. 귀여워."

    "다, 당신도 멋져요."

    그렇게 해서 나는 실비아에 이어서 새로운 장난감…아니, 어중관한 관계를 이어가게 될 애가 하나 더 늘어버렸다.

    "얘기는 잘 된 모양이구먼."

    식당에 들어가자, 디아나가 이마에 살짝 혈관을 띄우고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응? 어떻게 알았어?"

    "마틸다양의 저 얼굴을 보고 어떻게 모르겠나."

    나는 마틸다의 얼굴을 봤다.

    사랑에 빠진 얼굴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과연. 그래서 디아나가 뚱한 표정이었던 건가.

    허락은 했지만, 막상 이런 모습을 대놓고 보면 기분이 언짢아지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디아나. 좋아해."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자네 설마…! 또 이 몸에게 뭔가 잘못이라도 했는가?"

    "아, 아냐! 그런 거 안 했어!"

    "그럼 방금 갑자기 좋아한단 말은 왜 한 겐가?"

    그야 디아나가 뚱해보여서 기분 좀 풀어주려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무 말이나 속삭여도 바로 풀어져버리는 마틸다를 상대하다 오니까, 그만 반사적으로 너무 쉽게 가려고 해버렸다.

    젠장. 마틸다 녀석. 공략 난이도가 너무 낮다보니까, 상대하면 상대할수록 오히려 내 연애 경험치가 깎이는 것 같잖아.

    하지만 그걸 대놓고 디아나한테 말할 수도 없었다.

    마틸다 대하듯이 대했단 걸 알면 기분이 더 나빠질 테니까.

    "그, 그러니까…실은 디아나한테 부탁이 있는데."

    "음? 부탁? 뭔가?"

    "오늘 내 무릎 위에서 같이 밥 먹으면 안 될까? 오늘은 왠지 무척이나 디아나 누나한테 응석부리고 싶은 마음이라서."

    하지만 마틸다를 상대하면서 깎인 연애 경험치는 일시적인 것!

    그동안 얘들한테 단련된 내 경험치가 어디 가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뭐, 뭔가. 그런 것이었나. 자네도 참 덩치는 산만하면서 아이같이 응석을 부리는구먼."

    "디아나 누나 상대니까 어쩔 수 없잖아."

    "흠흠. 그런가. 정말로 어쩔 수 없구먼. 어디, 거기 앉아보게. 오늘만 특별히 해주는 걸세."

    디아나는 만족스럽다는 미소를 지으면서 다가와서는 까치발을 하고 손을 뻗어서 내 머리를 톡톡 두드리더니, 내 손을 붙잡고 자신이 앉던 의자로 끌고 갔다.

    후하핫! 봤냐? 이게 바로 경험! 이게 바로 위기 회피 능력이란 거다!

    언제까지 내가 당하고만…!

    "흐으으으응. 그렇게 디아나랑 먹고 싶었구나. 아예 오늘 밤 차례도 바꿔줄까?"

    만약 이 자리에 디아나만 있었다면 완벽했을 텐데.

    "사, 사라야. 진정해."

    "무슨 소리야? 나 엄청 진정하고 있는데. 날뛰고 있는 걸로 보여?"

    응. 표정만 무표정하지, 네 등 뒤로는 질투의 불길이 날뛰고 있는 게 보여.

    "후훗. 사라씨 진정하세요. 오늘은 사라씨와 밤을 보내는 날이니까, 구원씨도 저녁시간정도는 저희를 달려주시려는 걸 거예요. 그렇죠, 구원씨?"

    그리고 이런 위기의 순간에 날 구해주는 건 언제나 그랬듯 우리 천사님이었다.

    천사님! 사랑해요! 후광이 눈이 부셔요! 그리고 가슴도 최고에요!

    "여, 역시 레이아야! 내 마음을 잘 아네! 사라는 미안하지만 밤을 기대해줘."

    나는 옆에 앉아서 은근슬쩍 내 팔을 안아오는 천사님께 마음속으로 무한한 감사와 찬양을 외치면서, 사라를 바라보고 말했다.

    "……."

    어, 어라? 사라의 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노의 불길이…가라앉지 않아?

    심지어 더 증폭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드는데….

    하지만 그럼에도 사라는 그 이후로는 아무 말 없이 식사를 했다.

    뭐야. 왜 저러는 거야. 저러니까 더 무섭잖아.

    나는 불안해져서, 식사하는 내내 무릎 위의 디아나나 옆에 있는 레이아보다 정면의 사라에게 더 신경을 쓰면서 농담을 던져댔다.

    하지만 사라는 전혀 반응하지 않고, 계속해서 뭔가 맘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분노는 조금 가라앉은 것 같아 보였지만, 그 대신 다른 부정적인 감정도 보이는 것 같고. 대체 뭐지?

    결국 식사를 마칠 때까지, 사라의 화는 풀리지 않았다.

    일단 씻고 온다고 하면서 욕실로 가기는 했는데, 설마 이대로 안 오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하아아아…."

    하지만 내 불안과는 다르게, 사라는 몸을 씻고나서 내 방으로 와줬다.

    뭔가 들어오자마자 크게 한숨을 쉬기는 했지만.

    사라와 마음이 통하게 된 이후로, 아니. 사라와 몸을 겹친 이후로 나랑 밤을 보내는 걸 이렇게 싫어하는 사라를 보는 건 처음인 것 같았다.

    "사라? 아직도 화났어?"

    "아냐. 그런 거 아냐."

    사라는 푸욱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저기 구원. 정말로 디아나나 레이아랑 바꿔줄까?"

    "사, 사라야?! 나 진짜 뭐 잘못했어?! 말로 해줘!"

    "아니. 구원이 잘못한 거 없어. 그냥 내 문제야."

    "대체 무슨 문젠데? 나한테 얘기를 해줘."

    나는 사라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사라의 몸을 꽉 끌어안고, 그 침울해 보이는 눈동자를 빤히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그게…난 매력도 낮고…."

    "그게 무슨 소리야?! 사라는 예뻐!"

    "나도 그 정도는 알아!"

    아, 아는구나. 응. 뭐. 자기 미모에 자신이 있는 건 알았지만. 응.

    아니. 그럼 대체 뭐가 문젠데?

    "하지만 디아나나 레이아와 비교하면…. 그리고 잘은 모르지만 아마 실비아나 마틸다씨마저도…."

    과연. 그런 건가.

    사라가 불안해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필 나는 매력을 숫자로 볼 수 있다. 뭐, 사도 임명을 한 사람으로 대상이 한정적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또 하필 그 중에서 사라가 제일 매력 수치가 낮은 거다.

    그냥 낮기만 하면 다행인데, 한동안 수치 상승이 불가능하기까지 하다.

    그야 불안하겠지.

    게다가 내가 식당에서 제일 먼저 들이댄 게 하필 매력이 제일 높은 디아나라는 것도 한몫했을 거다.

    어쩌면, 아니 분명 디아나의 매력이 제일 높아서 그랬다고 오해하고 있는 거겠지.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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