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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326화 (31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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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의 저주

    일단 명분은 있었다.

    오히려 실비아 때보다도 훨씬 큰 명분이.

    실비아 때는 솔직히 실비아를 받아주지 않더라도 크게 문제는 없었다.

    쾌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뿐이지, 생활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매몰차게 대했던 거고.

    하지만 마틸다는 다르다.

    마틸다 자신은 저주로 인해 남자들이 올 수 없는 곳에 평생을 갇혀있다시피 지내야할 뿐만 아니라, 수많은 남성들이 고자인 채로 지내야 한다.

    비단 마틸다 하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수많은 남성들을 위해서라도 데리고 있으면서 저주를 치료할 필요가 있다는 거다.

    물론 굳이 내가 마틸다와 섹스를 하면서 저주를 풀지 않더라도, 레이아가 250레벨이 되면 저주를 풀 수 있기는 하다.

    문제는 250레벨이 언제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지.

    안 그래도 100레벨이 넘어가면서 레벨 업이 조금 더뎌지기 시작한 거다.

    그런데 언제 될지도 모를 그때까지 마냥 기다리라고하면서 마틸다와 저주에 영향 받은 수많은 남자들을 방치하는 건 너무하지.

    이렇게 명분은 확실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불안해하는 건 이유가 있었다.

    실비아 때와는 너무 상황이 다르다.

    실비아 때의 나는 처음엔 완고하게 거부했었고, 그 다음엔 그냥 파티원으로서 데리고만 다닌다고 했었다.

    실비아와 섹스를 해도 된다고 우리 애들이 말해 준 후에야 겨우 가끔 하겠다고 한 정도다.

    하지만 지금은 처음부터 내가 먼저 선언해버린 거다.

    데리고 있으면서 섹스도 할 거라고.

    "흠. 그런가. 역시 쉽게 풀리지 않는구먼."

    하지만 디아나는 팔짱을 끼고서, 마치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으, 응? 화 안 내?"

    "물론 자네에게 다른 여자를 안게 하는 건 기분이 나쁘기는 하네만, 이런 상황에서 화를 낼 정도로 이 몸은 어린 애가 아닐세. 말했잖은가.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다른 여자를 안아도 된다고."

    "그래요 구원씨. 너무 그렇게 불안해하지 마세요. 구원씨가 얼마나 고민하셨는지는 충분히 알 것 같아요."

    레이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주먹을 꽉 쥔 채 땀에 흠뻑 젖은 내 왼손을 붙잡고는 자신의 가슴사이에 파묻었다.

    그리고는 살며시 주먹을 펴게 한 후에, 조심스레 손수건을 꺼내서 땀을 닦아 줬다.

    고민이라니. 오히려 내가 마틸다를 데리고 있어야겠다고 말한 직후 대답을 할 때까지 그 짧은 시간동안 얘들이 얼마나 고민을 했을지….

    그런데도 이렇게 오히려 날 다독여주는 모습에, 나는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너, 너희들…."

    "정말 바보라니까. 아님 뭐야? 혹시 우리가 화날 짓이라도 한 거야?"

    "아, 아냐! 그런 거 아냐!"

    "정말로? 수상해…."

    아마 날 안심시키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겠지, 사라는 누가 봐도 장난인 걸 뻔히 알 정도로 재미있다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 그건…."

    하지만 나는 말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으, 응? 뭐야? 설마 정말로?"

    그리고 내 그런 반응에 사라는 당황한 표정이 됐다.

    "설마 정말로 마틸다씨를 좋아하게 됐다든가, 그런 거야?!"

    "아니. 그런 거 아냐. 지금은 그런 거 아니지만…."

    그래. 확실히 지금 현재는 마틸다에게 사랑한다는 감정을 느끼지는 않는다.

    내가 마틸다를 데리고 있겠다고 먼저 말한 이유는 오로지 아까 느꼈던 미안함과 동정심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 얘들한테 미안해하는 이유는, 실비아 때도 이랬기 때문이다.

    실비아도 처음에는 별 감정 없었다.

    그야 생긴 게 예쁘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틈만 나면 심심하다고 끌어안고, 데리고 놀면서 장난치고, 귀여워 죽으려고 하고 있다.

    마틸다 역시도 그렇게 변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거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계속 몸을 겹치다보면 그렇게 변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나는 중간에 말을 흐렸지만, 다들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이해했다는 표정이었다.

    얘들도 나와 실비아의 관계가 변화하는 걸 바로 옆에서 직접 봤으니까 말이다.

    실비아에 대한 내 감정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겠지.

    "무슨 말 하려는지 알겠어. 아까 디아나도 말했지만, 솔직히 좋은 기분은 아냐."

    사라는 내 눈을 빤히 들여다보더니, 일단 그렇게 운을 띄웠다.

    "하지만 구원. 내가 좋아하는 구원은 이렇게 수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상황에서 나 몰라라 하고 버리는 남자가 아냐. 그리고 몸을 겹치면서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을 정도로 매정한 남자도 아니고. …그러니까, 이거 하나만 확실히해줘."

    사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 오른손을 붙잡고 자신의 허리에 둘렀다.

    아니. 정확히는 허리에 두르는 식으로 내 손을 자신의 몸 뒤로 가져가서, 엉덩이 위의 사도 표식이 있는 부분에 닿게 했다.

    "구원의 마음속에서 최고는 나야. 그렇지?"

    "사라야…. 그야 물…."

    "자아아암깐 기다리게!"

    내가 한껏 감동받으면서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디아나가 고함을 질렀다.

    "사라양! 지금 그건 뭔가?! 이런 때에 새치기를 할 생각을 하다니!"

    "쳇."

    디아나가 고함을 지르자, 사라가 살짝 아쉽단 얼굴로 혀를 찼다.

    "그래요. 사라씨! 너무하세요!"

    심지어 레이아마저도 주먹을 꽉 쥐고 아래로 붕붕 흔들면서 화를 내셨다.

    화내는 모습마저 귀여우시다.

    게다가 주먹을 아래로 흔들 때마다 떨린다. 가슴이.

    "자네도 자네일세! 뭘 대답하려고 하고 있는 겐가!"

    그리고 디아나는 사라뿐만이 아니라 나한테까지 화를 냈다.

    "어?! 나, 난 그냥…사라가 아까 우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사라양은 내가 최고라고 했네! 단수형으로!"

    "부, 분위기에 취해서 잘못 들었나보네."

    "어떻게 잘못 들으면 내가를 우리가로 잘못 듣는단 말인가!"

    "잠깐. 지금 이 상황에서는 잘못 들은 나보다는, 일부러 그렇게 말한 사라한테 화를 내는 게 맞는 거 아닐까?"

    나는 일단 비난의 화살을 사라에게 돌리기로 했다.

    "구원?!"

    "나는 물론 너희 셋이 최고야. 셋 중 누가 더 좋다든가, 그런 거 없어."

    나는 사라의 시선을 외면하면서, 일단 나부터 변호하기로 했다.

    적어도 이 건에 대해서는 난 잘못 없어!

    "음. 그렇구먼! 사라양! 이 몸과 잠깐 얘기 좀 하는 게 어떻겠나?!"

    "그래요! 저도 꼭 얘기를 하고 싶어요!"

    "잠깐. 너무 그렇게 화내지 마요. 잠깐 장난 좀 친 거잖아요. 구원이 너무 긴장한 것 같으니까…."

    "자네가 구원인가!"

    잠깐. 그 말은 좀 심하지 않아?

    물론 내가 긴장을 풀기위한 농담 같은 걸 자주하는 편이라는 건 인정하는데, 방금 그 말은 마치 욕처럼 들렸는데? 이거 내 기분 탓 아니지?

    "미안해요. 구원이랑 같이 지낸 시간이 길어서 그만 옮았나 봐요."

    병 아니거든! 바이러스 옮은 것처럼 말하지 마라!

    "그렇게 은근 슬쩍 자신이 가장 오래 같이 있었다고 자랑하는 겐가?!"

    "넷?! 아, 아뇨. 이번엔 그런 의미가…."

    "따라오게! 자네와는 둘이서 진득이 이야기를 조금 해야겠네!"

    "아뇨! 셋이서요!"

    디아나와 레이아는 정말로 화난 표정으로 사라를 식당에서 끌고 나갔다.

    그냥 여기서 하면 될 텐데. 일부러 끌고 나가기까지 하다니.

    나한테는 들려주기 힘든 얘기라도 하는 걸까?

    뭐, 다른 데서 해주면 나도 중간에 치일 일이 없으니까. 나로선 오히려 고마운 일이지만 말이야.

    사라도 조금 미안하기는 했는지, 아무런 저항 없이 디아나와 레이아에게 얌전히 끌려갔다.

    "후우. 일단 한 고비는 넘긴 모양이네. 다행이다. 그렇지. 실비아?"

    "넷?…히우으으으읏!"

    관계가 아예 없는 건 않지만, 자기는 끼어들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겠지.

    식당 구석에서 우리가 소란피우는 모습을 반쯤 제삼자의 입장으로 쳐다보면서 완전히 방심하고 있던 실비아는,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가서 기습적으로 끌어안자 저항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품에 끌려 들어왔다.

    기습을 당해서 데미지를 더 크게 입었는지, 실비아는 평소보다도 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어쩔 줄을 몰라 했지만,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실비아의 정수리에 뺨을 비벼댔다.

    "하아아아. 애니멀 테라피라는 게 실제로 효과가 있긴 있구나. 소모했던 정신력이 회복되는 기분이야."

    "우아아아…저, 전…동물이…아우우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넌 내 애완동물이라고. 귀여운 강아지 같으니라고."

    응. 부드러운 목소리로 뭔가 그럴듯하게 말했지만, 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완전히 쓰레기다.

    하지만 문제는 실비아에게 효과가 있었다는 거다.

    "우아아…아우으으…으아아아…."

    실비아는 내 품에서 어떻게든 도망가려는 듯이 양손을 정면으로 뻗고 있었는데, 그 손의 손가락들이 마치 고장 난 기계처럼 기묘한 각도로 꿈틀꿈틀 움직이기 시작한 거다.

    몸도 마치 오르가슴이라도 느끼는 것처럼 오싹오싹 떨리고 있고.

    "실비아도 실은 되고 싶지? 내 애완동물. 실비아가 인정하면, 앞으로 더 귀여워해줄 지도."

    "여, 여기서 더 귀여…저, 정말로 죽…."

    "그래서 싫어?"

    "조, 좋습니다아아…."

    실비아는 반쯤 자포자기하는 느낌으로 흐물흐물 풀어지며 대답했다.

    지금도 죽으려고 하는 와중에 좋다고 대답하다니.

    마치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 같군.

    뭐, 그래서 더 귀엽지만.

    나는 실비아의 정수리에 계속 뺨을 비비면서 유사 애니멀 테라피를 즐겼다.

    "자네라는 남자는…!"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다시 식당으로 돌아온 셋은, 실비아를 끌어안고 완전히 릴랙스하고 있는 날 보자마자 울컥한 표정이 됐다.

    아, 위험해.

    나는 황급히 실비아를 품에서 떼어냈다.

    "이 몸들이 누구 때문에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자네란 남자는…실비아양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한 겐가?!"

    디아나는 그렇게 외치면서 나에게 다가오더니, 갑자기 내 옆을 보면서 뭔가 처음 화난 거랑은 다른 이유로 화를 내기 시작했다.

    응? 왜 그러지?

    디아나의 시선을 쫓아서 옆을 바라보자,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실비아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힘없이 네발로 바닥을 기어가고 있었던 거다.

    내가 있는 곳에서 가장 멀리 있는 구석을 향해.

    모습만 보면 몇 번이고 당해버린 모습이었다. 성적인 의미로.

    "잠깐. 오해야! 그냥 심신의 안정을 위해서 끌어안고 있기만 했어!"

    "그러시겠지! 물건도 따뜻하게 덥히면서 말이야!"

    사라야. 너 혼나고 온 거 아니었니?

    아직 기운이 넘치는구나.

    "정말이야! 벗어서 보여줄까? 물기 하나 없는…."

    "자네, 지금 스스로의 가랑이를 한 번 보고 말하는 게 어떻겠나?"

    나는 디아나의 말에 따라서 자신의 가랑이를 쳐다봤다.

    …젖어 있잖아.

    "실비아야!"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처럼 떨던 게 아니라, 정말로 느끼고 있던 거였어?!

    "정말로 이 바람둥이한테 마틸다씨까지 허락해도 될까요? 저 왠지 불안해지기 시작했는데요."

    "정말이구먼. 다시 고민해보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네."

    아무래도 셋이서 가서 그냥 사라를 혼내기만 한 게 아닌 모양이다.

    과연. 그래서 날 남겨두고 자기들끼리 다른 곳에서 얘기를 한 건가.

    "잠깐만 기다려보세요."

    그때 레이아가 내 가랑이 사이로 들어와서 앉고는 얼굴을 들이밀었다.

    "레, 레이아?!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는 건 교리를 어기는 게…!"

    나는 당황해서 외쳤지만, 레이아는 그런 의도로 내 가랑이 사이에 무릎을 꿇고 앉은 게 아니었다.

    바지 위에 닿을락말락한 거리까지 코를 내밀고는, 레이아는 귀엽게 킁킁하고 콧방울을 움직이면서 냄새를 맡았다.

    "구원씨 말은 정말이에요. 남성분의 흥분한 냄새는 전혀 안 나는 걸요."

    그리고는 다시 일어나서 방긋 웃으며 그런 말을 했다.

    이상하다. 분명 평소와 다름없는 천사님 같은 미소고, 지금은 내 결백을 밝혀주기까지 한 건데. 왜 조금 무섭지?

    "그, 그런가…."

    디아나도 조금 당황한 모습으로 내 결백을 믿어줬다.

    "아무튼. 자네에게 할 말이 있네."

    그리고는 표정을 바로잡더니 내 얼굴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이 몸들이 얘기를 해본 결과, 마틸다양을 데리고 있는 건 인정하기로 했네. 정말이지. 이런 상황에서 거부해버리면 이 몸들이 나쁜 사람이 되어버리지 않나."

    역시 그렇게 결론이 난 건가.

    역시 처음 내 예상대로, 얘들은 자기 욕심을 주장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을 구하는 쪽을 택했다.

    원래는 이런 선택을 하지 않게 만들려고 했었는데 말이야.

    결국 이렇게 돼버리네.

    "미안. 능력 있는 남자를 좋아하게 돼서 고생하네."

    하지만 내가 여기서 우울해하면서 미안해하면 오히려 분위기만 더 가라앉는다.

    게다가 받아들여질 마틸다에게 실례란 생각도 들었고.

    그래서 나는 일부러 살짝 장난조로 말을 했다.

    "자만하지 말게! 정말이지. 그리고 이거 하나는 확실히 해두게. 자네에게 최고는 이 몸…."

    디아나는 내 머리에 살짝 꿀밤을 먹이더니, 내 손을 붙잡고 자신의 하복부에 가져다댔다.

    "들일세. 알겠는가?"

    "디아나. 지금 들을 뺄까 말까 살짝 고민했지?"

    "아, 안했네! 그보다, 지금 대답을 피하는 겐가?!"

    "아니. 물론 나한테 최고는 너희들이지. 이건 언제까지고 절대 변치 않을 거야."

    나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디아나뿐만 아니라 셋을 동시에 껴안았다.

    "웃…가…우읏…."

    이번에도 가운데에 낀 디아나는 가슴 때문에 괴로워보였지만, 그 말을 하게 되면 분위기가 망쳐진다는 걸 알고 있는지 중간에 말을 삼켰다.

    "마틸다도 인정해줘서 내가 마틸다 대신 감사할게."

    "그런데 마틸다 추기경님은 왜 아직까지 안 오시는 건가요?"

    "응? 아마 아직 기절해있는 거 아닐까?"

    "구원! 당신 대체 얼마나…!"

    "어, 어쩔 수 없잖아! 저주를 제대로 알아보려면 여러 번하는 건 불가피했다고! 그, 그럼 난 이만 마틸다한테 내가 데리고 있을 거라고 얘기하고 올게."

    "뭣이?! 아직 마틸다양에겐 얘기도 안 했던 겐가?!"

    뒤에서 들려오는 고함을 무시하고, 나는 황급히 마틸다가 잠들어있는 방으로 향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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