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320화 (30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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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습의 구원

    "아니. 너랑 실비아는 달라."

    "어떤 점이?"

    "일단 실비아는 날 좋아해. 이게 가장 큰 차이점이지. 난 몸뿐인 관계는 싫거든."

    예전에 철없던 시절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말이지.

    "어머. 나도 자기를 좋아하는 걸?"

    "그런 게 아니라고. 너랑은 달라. 잘 봐. 실비아. 날 어떻게 생각해."

    "으엣?! 그, 그게…조, 조…아우…."

    실비아는 다른 사람 앞에서까지, 특히 친구 앞에서 말하기 부끄럽다는 듯이 제대로 대답을 못했다.

    하지만 이거면 충분했다.

    "봤냐?"

    "자기, 저 펠리시아도 당신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처음 안긴 그 순간부터 쭉."

    내가 당당하게 펠리시아에게 말하자, 펠리시아가 갑자기 청순한 분위기를 연기하면서 말했다.

    "장난 아니거든?!"

    "어머. 나도 장난 아닌걸."

    "애초에 날 좋아한다는 애가 아무하고나 자냐? 너 방금 내가 오기 전에도 다른 놈이랑 하고 있었잖아?!"

    "그거야 자기가 안아주지 않으니까 적적한 몸을 달랜 거지. 감정 같은 건 없는걸. 그리고 실비아도 따지고 보면 쾌감 때문에 자기한테…."

    "그래도 실비아는 나하고만 자. 난 소유욕이 엄청 강해서 말이야. 내가 안은 여자가 다른 놈한테 안기는 걸 무척 싫어하거든."

    "무슨 소리야. 실비아도 자기를 만나기 전에는…."

    "난 여자의 과거까지 집착할 정도로 속 좁은 놈이 아냐. 문제는 현재지. 실비아는 내가 싫어한다는 걸 안 이후로는 이제 나 말고 다른 남자와는 절대 자지 않아. 그게 너와 실비아의 결정적인 차이지."

    "나도 지금 알았는걸. 그럼 나도 지금부터…."

    "네가 섹스를 안 한다고? 그게 가능할 리가 있냐?"

    "피이. 하지만 자긴 실비아를 디아나님처럼 자기 여자로 인정하는 건 아니라면서? 그러면서 다른 남자와 섹스를 금지하는 건…."

    펠리시아도 함부로 섹스를 끊겠다고 하긴 힘들었는지, 뾰루퉁한 표정으로 말을 돌리려고 했다.

    "그래. 나 원래 쓰레기야. 그리고 넌 그런 쓰레기하고 한 번 자보려는 색녀고."

    "으읏!"

    그러자 펠리시아가 다시 몸을 떨었다.

    …응? 또? 저거 분명 느낀 얼굴이지?

    아까도 그렇고 대체 왜….

    하지만 내가 생각을 더 이어가기 전에, 펠리시아가 먼저 입을 열어서 집중을 방해했다.

    "그, 그러면…."

    "응?"

    "정말로 내가 이제부터 자기하고만 잔다고 하면? 그럼 안아줄 거야?"

    펠리시아는 내 도발에 넘어간 건지, 아까 하려다 말았던 말을 다시 했다.

    "풉. 네가?"

    "어머? 무시하네? 이래 봬도 나, 자제력은 상당히 뛰어난 편이야."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

    "평소엔 자제를 안 하고 있는 것뿐인걸."

    뭐야 그거. 난 공부를 안 해서 못하는 것뿐이지, 맘먹고 하면 잘한다는 그런 심리인 거냐?

    "그래서, 어때? 자기가 안아준다고 하면 나 이제부터 다른 남자랑은 안 잘게. 어차피 자기만큼 기분 좋게 해주는 남자도 없는걸."

    얘 진짜 이상할 정도로 들이대네.

    다른 남자랑 안 자? 내가 만약 널 안는다고 하더라도 몇 번이나 안을 거라고…아, 설마….

    "야. 너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응?"

    "나 실비아 맨날 안는 거 아니다. 오히려 엄청 드물게 안아. 일이주일 정도는 그냥 넘어갈 정도로. 그리고 넌 나랑 같이 다니는 게 아닌만큼, 실비아보다도 더 기간이 길어지겠지. 네가 그걸 참을 수 있다고?"

    "그럼. 난 한다면 할 수 있는 여자야."

    펠리시아는 내가 넘어왔다고 생각한 건지, 입 꼬리를 씨익 올리면서 대답했다.

    하지만 나도 괜히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거든.

    "못 믿겠는 걸…."

    "에이. 자기야. 그러지 말고. 속는 셈치고 한 번 믿어봐."

    "좋아. 그럼 다음에 내 얼굴 볼 때까지 다른 남자랑 하지 않고 있어봐. 그럼 널 안는 것도 생각해보지."

    "정말? 정말이지?"

    "그래. 정말이야."

    "좋아. 약속한 거야?"

    "그럼. 난 약속은 지키는 남자야."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훗. 이걸로 완전히 펠리시아를 떼어놓을 수 있게 됐다.

    물론 펠리시아를 안을 생각은 조금도 없다고.

    펠리시아가 저렇게 쉽게 다른 남자와 안자겠다고 하는 건 아마 두 가지 이유가 있었을 거다.

    일단 이른 시일내에 다시 내 얼굴을 볼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장비를 찾으려면 다시 와야 하니까.

    하지만 난 장비를 찾을 때도 올 생각이 전혀 없었다.

    힘센 바넷사한테 시켜서 찾아오도록 하면 되지 뭐.

    그리고 만약 참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날 속일 수 있다고도 생각했을 거다.

    다른 남자와 자고도 안 잤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난 애널라이즈로 다른 사람 레벨을 볼 수 있거든.

    나에게서 다른 놈과 잤다는 걸 숨기는 건 불가능하다.

    만약 진짜로 펠리시아가 다른 남자하고 안자면 어떻게 하냐고?

    에이 설마. 저 펠리시아가? 남자하고 안 자? 말이 되는 소리를.

    심지어 언제 다시 볼지도 모르는데? 앞으로 평생 안 볼 수도 있는 거다.

    그런데도 만약 정말로 다른 남자와 안 잤다면, 펠리시아를 안는 것도 생각해 볼 거다. 생각만 말이다.

    "어디 한 번 잘 참아보라고."

    속으로는 전혀 믿지 않으면서, 나는 펠리시아에게 미소 지었다.

    "후훗. 두고 봐. 자기. 난 한다면 한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인지, 펠리시아는 이번에는 쉽게 날 놔줬다.

    "그럼 잘 가. 자기. 이번에 자기한테 못 안긴 건 아쉽지만, 약속도 했으니까 이걸로 만족해야지. 그동안엔 자기 손길이라도 되새기면서 참을 게. 다음에 봐."

    그렇게 우리는 서로 웃으면서 헤어질 수 있었다.

    "…저 구원님."

    마차에 타자, 실비아가 뭔가 주저하는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응?"

    "펠리시아는 정말로 한다면 합니다."

    야, 야. 갑자기 무섭게 왜 그러냐.

    "하물며 고작 며칠 참는 정도로는…."

    휴. 그럼 그렇지.

    역시 실비아도 장비를 찾을 때 내가 직접 올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며칠이라니. 나 장비 찾을 때 직접 올 생각 없는데."

    "네, 넷? 그럼 다음에 얼굴 볼 때라는 건…."

    "언제가 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지."

    "……."

    실비아는 친구가 불쌍하게 생각됐는지, 아연한 얼굴로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보다 실비아."

    "넷?"

    "아까 펠리시아한테는 뭐라고 할 말이 생각 안 나서 그렇게 말했지만, 난 널 내 여자로 생각 안하는 게 아니니까."

    "으엣?! 엣?!"

    "물론 디아나나 다른 애들처럼 대해주지 못하는 건 미안해. 그래도 나는 너도 내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어."

    "으아…아우으으. 네, 네헤에…."

    내가 실비아를 옆구리에 끌어안으면서 말하자, 조금 심각해보였던 실비아의 얼굴이 헤실헤실 풀어졌다.

    딱히 펠리시아의 일을 얼버무리려는 게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을 했을 뿐이지.

    실비아가 괜히 그걸로 마음 고생하면 안 되잖아.

    안 그래도 실비아의 지금 취급에 미안한데 말이야.

    "돌아왔는가."

    "별 일 없었지?"

    저택에 돌아오자, 다들 우리가 돌아오는 걸 기다렸다는 듯이 모여 있었다.

    뭐, 펠리시아는 이미 전과가 있으니까 어쩔 수 없는 반응이지만.

    "구원씨. 여기에요."

    레이아는 내 팔을 끌어안더니, 내 품에 코를 박았다.

    하아. 역시 천사님은 치유된다. 날 그렇게 보고 싶으셨던 걸까?

    "다른 여성분의 흥분한 냄새…."

    하지만 레이아는 킁킁하고 냄새를 맡더니, 갑자기 그런 소리를 중얼거렸다.

    "레, 레이아?! 아니야! 아니니까! 잠깐 기다려! 설명할 수 있어! 실비아도 바넷사도 나랑 붙어있었다고! 별 일 없었다니까! 그렇지 바넷사?!"

    "네. 펠리시아 공주님도 구원님의 스킬에 걸려있었던 모양으로, 구원님은 그걸 풀어주기 위해서 손으로 펠리시아 공주님을 느끼게 만들었을 뿐이었습니다. 그 외의 공주님의 유혹은 전부 피했습니다."

    "구원! 무슨 생각으로 공주님한테 스킬을…! 한참 안 만났잖아?! 공주님 이상해진 거 아냐?"

    "아냐. 그냥 고생 좀 해보라고 성자의 성수만 발라주고 온 거야. 민감해지기만 한 거였으니까 별 문제 없었어."

    사실 스킬 쓴 것도 숨기려고 실비아만 데리고 간 거였는데, 처음부터 완전히 들켜버렸다.

    수인족의 코라는 게 진짜 굉장하구나.

    하지만 다행이도 우리의 수퍼 집사 바넷사는 엄청난 신뢰를 받고 있어서, 바넷사가 보증해주자 내게 보내지던 의혹의 눈길도 금방 풀렸다.

    "다행이다…. 정말 깜짝 놀랐어요. 구원씨."

    레이아는 내 품에 안겨서 몸을 문지르면서 말했다.

    가슴이 비벼져서 행복하기 그지없지만, 아까 전 일 때문에 왠지 동물 생각이 났다.

    고양이들이 자기 냄새 묻힐 때 이런 행동하지 않던가?

    혹시 천사님도 내 몸에 남아있는 펠리시아 냄새를 없애려고…아냐. 우리 천사님이 그렇게까지 하실 리 없어.

    아무튼 나야말로 깜짝 놀랐다.

    앞으로 우리 천사님 속일 생각은 절대 안 해야지.

    "그런가. 그럼 그밖에 별 일은 없었던 겐가?"

    "네. 제 구원님께서 심심하시다면서 가슴을 주무르신 걸 제외하고는 딱히."

    "잠깐! 바넷사! 그걸 그렇게 말하냐?!"

    "디아나님께 말하겠다고 얘기한 걸로 기억합니다만."

    그래서 바로 사과했잖아!

    "자네. 이 몸이 전에 말했던 것 같은데. 기억하고 있나? 바넷사의 몸에 다시 한 번 손을 대면 어떻게 한다고 했는지 말일세. 그것도 뭐? 심심해서 주물렀다고 했는가?"

    "잠깐! 바넷사의 말에는 어폐가 있어! 그러면 완전히 내가 쓰레기 같잖아! 처음엔 그냥 장난칠 생각으로 다가간 거였는데, 워낙 가드가 단단하니까 조금 오기가 생겨서 어떻게든 놀라게 해보려고…!"

    바넷사 저거 나 엿 먹이려고 일부러 오해 생기게 그렇게 말 한 거야!

    저 치사한 녀석! 장난 좀 치려고 했다고 해서!

    나는 변명하면서 바넷사를 노려봤지만, 바넷사는 평소와 다름없는 무표정으로 가만히 서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가슴을 탐닉했다는 말인가. 저 가슴을 말일세. 하긴 바넷사도 꽤나 훌륭한 가슴을 가지고 있지 이해하네. 그래서. 변명은 그게 끝인가?"

    "자, 잠깐. 디아나. 넌 지금 가슴에 대한 분노로 눈이 돌아가서 냉정한 판단을 못 내리고 있는 거야!"

    "무슨 소린가? 이 몸은 지극히 냉정하네만? 애초에 이 몸이 왜 가슴에 분노해야 하나? 이 몸도 성장만하면 말일세!"

    "그건 성장했을 때 얘기고 지금은…."

    "…지금은 뭔가?"

    "아, 아뇨. 성장하면 아름답고 성숙하지만 지금은 귀엽고 깜찍하다고요."

    "후훗. 자네 제법 재치가 있구먼."

    "하핫. 내가 좀 그렇지?"

    "음. 그 재치를 발휘해서 이제 다신 못 만날 아들에게도 한 마디 하는 게 어떻겠나?"

    "진정해 디아나! 얜 그냥 내 아들이 아냐! 우리의 아들이라고! 사라! 레이아! 디아나 좀 말려줘!"

    "설마 난 화 안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후훗. 다들 너무 그러지 마세요. 구원씨가 평소처럼 조금 장난이 과하셔서…."

    "뭔가 그 태도는! 자신감인가! 자네는 이길 수 없을 거라는 자신감인가?!"

    다행히 우리 천사님은 날 커버해주려고 했지만, 오히려 그게 디아나의 분노에 불길을 끼얹는 꼴이 되어버렸다.

    젠장. 이렇게 된 이상.

    "디아나!"

    "뭔, 힛!"

    나는 디아나의 가슴을 주물 거렸다.

    "잠, 흐읏! 이런 곳에서!"

    "나는 디아나의 가슴도 좋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이 가슴도 사랑스런 내 여자의 가슴이라고! 자부심을 가져!"

    "아, 하읏! 알겠으니까! 히읏! 알겠으니까 떼게!"

    내가 필사적으로 가슴을 주물 거리자, 디아나의 분노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그리고 그 입에서는 달콤한 목소리만이 나오게 됐다.

    그걸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디아나의 몸에서 손을 뗐다.

    이걸로 위기를 넘긴 건가?

    "자네는! 바보인가! 이, 이런 곳에서! 이런 곳에서 이 몸을…!"

    손이 떨어지자마자, 디아나는 나를 토닥토닥 때렸다.

    다행이다. 살았어.

    아직도 화내고 있는데 뭐가 다행이냐고?

    아까랑 화내는 이유가 다르잖아. 적어도 아들의 위기는 넘겼어.

    다른 이유로 화나게 만들어서 원래 화났던 이유는 잊어버리게 만든다.

    역시 난 천재야…!

    디아나에게 토닥토닥 공격을 당하면서도, 나는 저도 모르게 미소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하필 그걸 또 사라가 본 모양이다.

    "당신 이제 맞으면서 좋아하는 취미까지…."

    "어? 아, 아냐!"

    "미안…내가 평소에 너무 때린 거야…?"

    "아, 아냐! 그런 표정 짓지 마! 사과하지 마!"

    때린 걸 사과하는 건 좋은데, 왜 이런 타이밍에 그런 오해를 하면서 뉘우치는 거야?!

    아니니까! 난 맞으면서 좋아하는 변태가 아냐! 오해하지 마!

    "미안…이제 앞으로는 안 때…응? 이제 그런 취미가 생겼으니까 오히려 때려야 하나?"

    "그러니까 아니라고!"

    사라 쟤가 무서운 소릴 하고 있어!

    결국 나는 사라의 오해를 푸는데도 한참 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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