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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
"구원! 드디어 돌아왔…꺄아아악! 구원?!"
저택에 돌아가자, 마침 정원 한쪽에서 활쏘기 연습을 하고 있던 사라가 내 얼굴을 보고는 비명을 질렀다.
"그 얼굴 어떻게 된 거야?! 의뢰 그렇게 힘들었어?!"
"아니, 이건…그…아무것도 아니야."
앨리시아를 놀려먹다가 맞아서 이렇게 됐다고 말하기는 너무 민망했다.
마틸다가 있었으니 오는 와중에 치료도 가능했던 거 아니냐고?
그게 말이지. 마틸다 녀석 자업자득이라면서 왠지 자기도 앨리시아만큼이나 화를 내더라고. 덤으로 치료까지 거부하고.
덕분에 앨리시아한테 엉망진창으로 당한 몰골 그대로 돌아왔다는 얘기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사제 신분으로 치료를 거부해도 되는 거냐?
뭐, 그런 말을 할 정도로 양심이 없지는 않으니까 그냥 아무 말 않고 왔지만.
"음? 무슨 일인가?!"
"구원씨!"
그리고 사라의 비명소리를 들었는지,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디아나와 레이아도 저택에서 뛰쳐나왔다.
"자네 그 얼굴 어떻게 된 겐가?"
"구원씨! 어쩌다가!"
디아나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고, 레이아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얼른 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아니. 신경 쓸 거…."
"말하게! 누가 이렇게 만든 겐가?! 상처를 보니 몬스터에게 당한 흔적이 아니구먼! 게다가 실비아양과 마틸다양은 이자가 이렇게 당하도록 무엇을 한 겐가?!"
디아나는 오랜만에 대마법사의 포스를 풀풀 풍기면서 외쳤다.
"이 몸의 낭군님을 이런 꼴로 만들다니! 이 몸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 아닌가! 안되겠구먼! 이 몸이 지고의 대마법사라고 불리는 이유를 똑똑히 보여주겠…!"
"잠깐! 잠깐 진정해 디아나!"
나는 결국 쪽팔림을 무릅쓰고 이렇게 된 사정을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자업자득이구먼."
"레이아, 이거 치료해줄 필요도 없는 거 아닌가요?"
내 설명을 듣고 나자 디아나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고, 사라는 더 가차없는 말을 내뱉었다.
야. 아무리 그래도 네 남자한테 이거가 뭐냐. 이거가.
"아하, 아하하하…."
레이아마저도 곤란하다는 듯이 웃을 뿐이었다.
그래도 끝까지 치료를 멈추지 않는 레이아는 정말 천사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별 일 없었던 거지?"
"그럼! 내가 누군데!"
"흐으음. 내 눈 똑바로 보고 다시 말해봐."
"정말 별 일 없었어!"
나는 사라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다시 말했다.
이번엔 정말로 꿀리는 일이 없으니까 말이다.
오히려 그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정조를 지켜낸 난 칭찬받아 마땅하다.
"…정말인가보네."
"사라야. 오빠를 그렇게 못 믿겠냐?"
"여자의 순정을 가지고 놀다가 맞고 왔으면서 그런 말이 나와?"
넌 맨날 말싸움하면 약점을 찌르더라. 비겁한 녀석. 용사주제에 그래도 되는 거냐?!
"실비아양도 마틸다양도 별 일 없었는가?"
"우…네, 네에…."
"그럼요."
마틸다는 당당하게 말했지만, 실비아는 살짝 기죽은 표정으로 말했다.
어라? 실비아 쟤는 또 왜 저래?
"실비아씨? 무슨 일 있었나요?"
"우…그, 그게…."
"구원! 당신 또 뭔 짓 했어?"
"아, 아무것도 안했어! 실비아?! 왜 그래?!"
"그게, 여러분은 구원님과 만나지도 못하고 계셨는데, 전 구원님과 밤마다…."
"아, 뭐야. 그거 때문에 그런 거였어. 휴우. 식겁했네."
실비아 얘도 참. 그게 양심이 찔려서 실토한 거야?
조금은 약삭빠르게 굴어도 될 텐데.
뭐, 실비아가 그런 애였으면 애초에 나랑 자도 된다고 허락도 못 받았겠지만.
"자네가 안심할 타이밍이 아니라고 생각하네만?"
내가 안도하자 어처구니가 없었던 건지, 원래라면 화를 냈어야할 디아나도 조금 맥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기다려봐. 내가 다 설명할 수 있어."
어차피 얘들이랑 섹스를 하면 바로 레벨을 올리고 매력을 올린 건 들키는 거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숨길 생각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자랑할 생각이었다.
들와봐! 내가 정조를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지!
너희가 허락한 실비아만 안으면서 끝까지 버텨냈다고!
나는 벗어서 인벤토리에 넣어놨던 갑옷을 다시 꺼내서 뚫린 부분을 자랑스레 보여주고, 그동안 있었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도저히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내 분투를 듣고, 우리 애들은 모두 감동에 빠지…지 않았다.
"무슨 짓을 한 거야?! 다치면 어떡하려고 그런 짓을 했어!"
"그렇다네! 갑옷이 뚫린 부분을 보면 죽을 수도 있었던 것 아닌가?! 자넨 생각이 있는 겐가!"
"구원씨. 왜 그렇게 위험한 짓을 하신 건가요?"
사라와 디아나가 바로 격노를 했고, 레이아마저도 날 타이르듯이 말했다.
"왜, 왜 냐니. 정조를…."
"우리가 당신 목숨보다 정조를 더 소중히 여길 것 같아?! 목숨이 위험할 정도면 그까짓 거 한 번 해버리면 그만이잖아 이 바보야!"
설마 정조를 지켜냈는데 바보라는 소리를 들을 줄이야!
하지만 사라의 마음이 전해져서 화가 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마음이 따뜻해졌다.
디아나와 레이아도 사라의 말에 공감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사라양 말이 백번 옳네. 이 몸들을 생각해서 그렇게 행동한 건 알겠지만, 자네 목숨을 걸 필요는 없었네."
"그래요. 구원씨. 구원씨가 이 세상을 떠나는 게 저희에겐 그 무엇보다도 슬픈 일인걸요."
"너, 너희들…!"
"알겠는가. 물론 이 몸들을 생각하는 그 마음은 기쁘네만, 어쩔 수 없을 때는 그냥 해버리게나."
"그래요. 구원씨가 다른 여자와 몸을 섞더라도 저희를 향한 마음이 변치 않을 거란 건 이미 충분히 알았는걸요. 그리고 저희는…."
레이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가슴 위쪽에 사뿐히 손을 얹었다.
사라는 자신의 엉덩이 위쪽에, 디아나는 자신의 하복부에 각각 손을 얹고 살며시 쓰다듬었다.
내가 만약 다른 여자를 안더라도, 사도의 표식이 있는 한 특별한 사람은 우리뿐이라는 듯이.
"어차피 처음부터 세 다리 걸치고 있는 걸 알면서 구원에게 고백한 거고. 거기에 실비아까지 받아들인 시점에서 다른 여자랑 더 자도 그게 그거니까."
사라는 살짝 삐죽이면서 말했지만, 그게 앙탈에 불과하다는 건 누가 봐도 뻔했다.
"넌 그냥 내가 다른 여자랑 자는 거에 흥부…."
"이 바보가 진짜!"
"크허…응…?"
내가 놀리려고 하자, 사라가 바로 나에게 펀치를 날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아파하려고 했지만, 막상 사라의 주먹을 맞아보자 전혀 아프지 않았다.
…그래. 그러고 보니 내구를 올렸었지. 아깝게도 엄청 많이!
아프진 않은데, 왜 갑자기 이렇게 눈물이 날까.
"자, 잠깐! 울 정도로 아팠어?! 미, 미안해!"
사라가 당황해서 펀치가 날린 곳을 쓰다듬었지만, 나는 그 손을 꼭 붙잡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냐. 하나도 안 아팠어. 그래서 슬퍼진 거야."
내 중얼거림에 애들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스탯 분배에 망해서 망캐가 된 심정, 너희는 죽어도 모를 거야.
"아, 아무튼! 다른 여자와 자도 된다고 해서 아무한테나 막 껄떡거리고 다녀도 된다는 건 아니니까! 어디까지나 꼭 그래야할 상황이 오면 해도 상관없다는 거야!"
"그거야 당연하지. 내가 너희 놔두고 아무한테나 껄떡거릴 남자로 보여?"
"조금."
"그렇구먼. 아무래도 이 몸들이 실수한 것일지도 모르겠구먼."
사라와 디아나는 살짝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 그럴 수가?! 레이아! 레이아는 나 믿지?!"
나는 일부러 과장되게 당황하며 레이아를 쳐다봤다.
훗. 이게 바로 카운터란 거다. 질투할 준비나 해라.
"으으음…."
당연히 레이아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날 그 풍요로운 가슴에 끌어안아주실 줄 알았지만, 의외로 레이아는 고민하는 얼굴로 대답을 주저했다.
"레, 레이아?!"
"죄, 죄송해요. 저도 분위기에 어울려서 조금 장난을 쳐봤어요.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내가 더욱더 당황하자, 레이아는 그제야 미소를 지으면서 날 끌어안아줬다.
휴우. 다행이야. 우리 천사님마저 날 안 믿어주면 난 정말 삶에 희망을 잃을 뻔 했어.
하아아. 역시 이 가슴에 안기니까 정신이 안정되는구나. 집에 돌아온 실감이 난다.
"자네는 또 가슴에!"
"후하하! 그래! 가슴이 최고다! 레이아 누님의 커다란 가슴 최고!"
"우, 우으읏…!"
아까 날 놀리려고 한 보답으로 나도 놀려봤지만, 디아나는 예상보다 더 심각한 데미지를 입고 울먹였다.
"야, 노, 농담이야! 디아나의 작은 가슴도 최고야!"
"작다고 하지 말게! 이 몸도…이 몸도 성장만 하면…!"
"그럼. 그럼. 내가 다 알지."
나는 얼른 레이아의 가슴에서 벗어나 디아나를 끌어안아줬다.
마음에 상처를 입은 디아나는 순순히 내 품에 안겨서 허리를 꽉 끌어안고 내 옷에 얼굴을 비비며 눈물을 닦았다.
"지금 그게 뭐하는 거야…. 하여간 구원은 오랜만에 우리 얼굴 보면서도 기쁜 내색도 별로 안하고."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던전에 있는 내내 너희를 얼마나 그리워했는데! 안 되겠어! 지금부터 직접 몸으로…!"
"이 변태는 잘나가다가도 꼭 이런 식으로 나온다니까!"
"구원씨…아무리 그래도 다른 분들과 같이 하는 건…."
"응? 아니, 잠깐만!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냥 껴안으려고! 진짜야! 믿어줘!"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게 성직자들의 금기라는 걸 뻔히 아는데, 내가 미쳤다고 레이아까지 껴서 4p를 시도하려고 하겠어?
하지만 사라는 여전히 의심스런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입 꼬리가 올라가 있잖아?
얘가 오랜만에 보니까 기뻐서 그런지 계속 오빠를 놀려먹으려고 하네?
"에잇!"
나는 결국 강제로 셋을 한꺼번에 끌어안았다.
"꺄악!"
"어머!"
사라는 일부러 내는 티가 나는 비명을 지르며, 레이아는 포근한 미소를 지으면서 내 품에 끌려들어 왔다.
"우읏! 가, 가슴을 머리에 올리지 말게!"
이미 내 품에 안겨있던 디아나는 기겁을 했지만 말이다.
"…그럼 전 이만 가 봐도 될까요? 피곤하네요."
그때 한 목소리가 분위기를 깼다.
우리가 노닥거리는 걸 말없이 지켜보던 마틸다였다.
너 아직도 안가고 있었냐.
"어, 어. 응. 너도 일단 고생했다."
"……일단 말이죠."
마틸다는 조금 쓸쓸한 듯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몸을 돌렸다.
"마틸다씨 정말 고마워요."
"정말로 고생했네."
"추기경님 다시 한 번 감사드릴게요."
우리 애들이 날 커버치기 위해서 각자 감사 인사를 전했지만, 마틸다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자기 방이 있는 복도 쪽으로 나가 버렸다.
차라리 평소처럼 틱틱댔으면 나도 마음이 편했을 텐데, 저렇게 반응해버리니까 이거 엄청 미안하네.
그래도 쟤 역시 날 도와주려고 따라갔던 거고, 실제로 도움도 상당히 됐는데.
쟤 저주가 나한테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아닌 척 하려고 이렇게 제대로 감사 인사도 못하다니.
역시 이건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마침 마틸다도 없으니 얘들한테 상담이라도 해볼까?
아니다. 생각해보니 그건 얘들을 곤란하게 할 뿐이었다.
마틸다는 실비아와 무척 흡사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아니, 실비아보다는 레이아와 더 흡사한 케이스인가?
실비아는 그나마 다른 사람과 성교를 할 수는 있었지만, 레이아나 마틸다 같은 경우는 다른 사람과 성교 자체가 불가능하니까.
실비아 때도 결국 동정심 때문에 실비아를 데리고 다니도록 허락해준 거다.
내가 마틸다가 걸린 저주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걸 알면, 마틸다에게도 비슷한 동정심이 생길 수도 있다.
물론 저번처럼 또 질투심에 고민하겠지만, 착한 우리 애들은 결국 동정심을 못 이겨서 마틸다마저 허락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애초에 그런 고민을 하지 못하도록, 이 얘기는 우리 애들한테도 당분간 비밀로 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로 그럼 마틸다를 구제해줄 방법이 없는 걸까?
적어도 저주를 풀 수라도 있으면…. 레이아를 250레벨로 만들면 되는 거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응? 잠깐. 그러고 보니….
"얘들아. 마틸다의 저주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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