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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307화 (29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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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뢰

    루티아가 돌아갔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는 일이라, 결국 나와 실비아는 그냥 얘기나 조금 하다가 잠이 들었다.

    뭐, 결국 루티아가 다시 찾아오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드디어 돌아간다는 생각에 들떠서 황급히 텐트를 정리하는 나에게 루티아가 다가왔다.

    "얘. 누나가 조금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네, 넵?! 뭐, 뭔가요?!"

    "후훗. 그렇게 긴장할 거 없어. 잡아먹으려는 거 아니니까. 그냥 조금 궁금해서 그러는데, 왜 누나랑 자는 걸 그렇게 싫어하는 거니? 누나가 취향에 안 맞니?"

    그렇게 말하는 루티아의 표정은 정말로 그저 호기심이 생겨서 묻는다는 표정이었고, 자괴감이나 주눅 든 느낌 같은 건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뭐, 그야 그렇겠지. 이 외모로 자신감이 없을 수가 있나.

    "아, 아뇨. 그게, 제가 이래 봬도 순정파라, 우리 애들을 배신하고 싶지 않아서요."

    스스로의 입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건 살짝 부끄러웠지만, 그래도 나는 확실히 말했다.

    이런 질문을 해오는 걸 보면, 이 누님은 그 서큐버스 공주와는 다르게 대화가 통하는 상대일지도 몰라.

    "흐으으응. 그러니? 그럼 누나 같은 타입이 싫은 건 아니고?"

    "그, 그럼요. 당연히 싫은 건 아니죠. 아, 하지만 그렇다고 밤에 오셔도 된다는 건…."

    "후훗. 당황하기는. 역시 귀엽네."

    루티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쿡쿡 웃고는, 자기 텐트 쪽으로 돌아갔다.

    저 반응은 대체 뭐지?

    그래서 결국 앞으론 안 덮치겠다는 거야, 아니면 그 순정이 얼마나 갈지 두고 보겠다는 거야.

    나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돌아가는 길은 올 때보다 훨씬 더 긴장감이 덜했다.

    몬스터들에게 정확한 타이밍에 스킬효과를 발동시킬 수 있으니 일단 안정감이 생겼고, 무엇보다 방어력이 엄청나게 올라간 탓에 긴장도 훨씬 풀어졌다.

    물론 간간히 마법 공격을 날리는 녀석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 놈들은 애초에 후방에 어그로가 튀지 않도록 전위 멤버들로만 싸운다.

    후위에 어그로가 튈 일을 원천 차단할 뿐만 아니라, 만약 내 스킬을 맞고 마지막 발악으로 이쪽에 마법 공격을 날려도 전투에 참가하지 않고 있던 쌍둥이 마법사가 마법으로 상쇄시켜버리는 작전이다.

    그런고로 나는 아무런 부담감 없이 5계층을 산책하는 기분으로 다녔다.

    그러고 보니 원래는 고레벨들의 전투 방법을 자세히 보려고 온 거였는데, 얘들 기본적으로 초월종 이상의 강한 몬스터 상대가 아니면 그냥 막무가내로 싸운단 말이지.

    능력이 되니까 그런 짓도 가능한 거겠지만.

    뭐, 초월종과 싸울 땐 확실히 연계를 볼 수 있어서 공부도 되고, 무엇보다 5계층 몬스터들의 전투방식을 직접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여기 올 가치는 있었지만.

    아무튼 여유로워진 나는 주변에 있는 애들과 장난이나 쳤다.

    "야. 앨리시아. 어젯밤은 고마웠다. 그런데 어제 루티아를 데리고 나갈 때 말했던 그거가 대체 뭐야? 뭔데 저 누님이 순순히 나간 거야?"

    "너, 넌 몰라도 돼 인마!"

    "뭐야? 혹시 야한 거? 역시 남자를 사귀지 못해서 여자랑…."

    "너 이 새끼 진짜 죽고 싶냐?"

    "화내는 거 보니까 진짜로 그런 거 같은데?"

    "이 새끼가 도와줘도…!"

    "미안미안. 그러고 보니 그랬지. 그럼 보답으로 내가 오늘도 네 여성성 향상에 도움을…."

    "훗."

    …어라? 뭐야 저 미소는?

    또 앨리시아가 화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선지 앨리시아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날 쳐다봤다.

    "오늘의 내가 어제까지의 나와 같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앨리시아는 그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갑옷의 흉갑부위만을 끌어내렸다.

    물론 갑옷 안에도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가슴이 노출되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조금 섹시해 보였다.

    다른 부위는 전부 단단한 철로 감싸져있는데 가슴부분만 저렇게 드러내니까 괜히 강조가 되잖아.

    게다가 크기도 꽤나 크기 때문에 가슴이 천 옷을 뚫고 튀어나올 것처럼 강조되어 있었다.

    가슴을 노출시킨 앨리시아는, 이번엔 내 갑옷의 흉갑 부위를 벗겨냈다.

    그리곤 내 목에 팔을 둘러 자기 쪽으로 확 끌어당겼다.

    서로 갑옷 아래로 천 옷은 입고 있지만, 그래도 앨리시아의 부드러운 가슴이 내 가슴에 밀착되어 형태를 바꾸는 게 똑똑히 느껴졌다.

    거기에 더해 앨리시아는 자기 가슴을 내 가슴에 문지르듯이 상체를 움직이면서, 내 귓가에 입을 가져다댔다.

    "이래도 이 누님이 여성스럽지가 않니?"

    조금 사나워 보이는 하지만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면서, 평소완 달리 뭔가 섹시한 느낌으로 속삭이는 앨리시아.

    얘도 외모가 나쁜 건 아니니, 아니 까놓고 말해 외모는 엄청 좋으니까 엄청 흥분됐다.

    솔직히 물건이 설 정도였다.

    이렇게 밀착해있으니, 아마 제대로 서면 앨리시아의 다리에도 그 느낌이 전해지겠지.

    어제의 사건으로 내 가죽 갑옷의 고간부분은 완전히 파괴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그 누군가가 생각나는 말투 덕분에, 나는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과연.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하지만 난 지지 않아!

    여기서 인정해주면 끝이야! 그럼 더는 앨리시아는 놀릴 수 없게 돼버리잖아!

    지금 던전에 있으면서 할 수 있는 내 몇 안 되는 즐거움인데!

    나는 물건이 완전히 서기 전에 되살아난 자존심을 쓰는 것과는 반대로 마나를 운용하여 강제적으로 물건을 서지 않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최대한 티 나지 않게 호흡을 가다듬고, 앨리시아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루티아한테 배웠냐?"

    "뭐, 그, 그게 무슨 소리…!"

    "무슨 소리기는. 말투만 봐도 루티아한테 배운 게 바로 티 나는데. 어제 같이 동침하면서 잠자리 토크로 전수라도 받았…꾸엑!"

    "같이 안 잤다고 몇 번을 말해 새끼야!"

    "쿠헉! 크헉! 그, 그렇다고 비어있는 복부를 때리냐…."

    거긴 가루다한테 뚫려서 갑옷도 없다고.

    내 방어력이 높지 않았으면 크게 다쳤을 거야.

    "후욱. 후우…아, 아무튼! 넌 그 길론 틀렸다. 전혀 섹시하지 않아."

    "놀고 있네 새끼가. 얼빠진 표정 지어놓고! 물건도…아, 안 섰어?"

    앨리시아는 내 고간을 덥석 잡더니, 정말로 당황한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말했잖아. 갭이 중요하다고. 넌 평소엔 전혀 안 그럴 것 같이 생긴 만큼, 여성스런 행동을 연습해야 한다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앨리시아는 섹시한 태도가 잘 먹힐 가능성이 크다. 외모도 그러는 편이 어울리고, 무엇보다 얘가 여성스런 행동을 하는 건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 할 테니까.

    하지만 난 굳이 이렇게 말했다.

    왜냐고? 그게 재밌으니까!

    섹시하게 유혹하는 걸 연습하면 금방 익혀버려서 재미없어질 확률이 크다.

    방금도 루티아를 흉내 낸 그 말투만 아니었으면 나한테 제대로 먹혔을 거고.

    "자, 그런 걸로 회피할 생각하지 말고, 오늘도 여성스런 행동을 연습을 해볼까."

    아직 돌아가려면 며칠이나 남았는데, 벌써 얠 가지고 노는 걸 포기할 수는 없다고.

    "그럼 먼제 제가 또 시범을 보여드릴까요?"

    그 때 마틸다가 난입을 해왔다.

    "아, 아니야. 마틸다가 무리할 필요는…."

    "어머? 오늘은 웬일로 반응이 격하지 않으시네요? 실은 당신도 살짝 기대하고 계셨던 건가요?"

    젠장! 그게 아니야! 그냥 네 저주가 더 이상 안 통한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너무 모질게 대하기 힘들어졌을 뿐이야!

    하지만 이대로 미적지근하게 대하면 들킬지도 모른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모질게 대하기로 했다.

    "아, 아니거든?! 당신도는 뭐야?! 넌 기대하고 있었던 거냐?!"

    "그, 그런 거…그냥 말이 헛나온 거예요!"

    "그럼 잘 됐네! 시범같은 거 필요 없어!"

    "흥! 이제 부탁해도 안 해줄 거예요!"

    나도 이제 괜히 너한테 부탁 안 할 거다.

    얘가 걸린 저주에 면역이 됐으니 대하기 쉬워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어려워져버렸다.

    모질게 대해야 되는 건 마찬가지인 데다가, 진심이 아니다보니까 괜히 나도 미안한 생각까지 들고.

    역시 얘랑은 아예 말을 섞지 않는 게 최고인가.

    아무튼 그런 식으로 농담 따먹기나 하면서 며칠간 행군을 한 끝에 우리는 드디어 5계층의 텔레포트 마법진이 설치된 곳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루티아는 전에 말했던 내가 순정파라 다른 여자와 자기 싫다는 걸 이해해줬는지, 그 이후로 날 덮치러 오진 않았다.

    이런 저런 일이 있었지만, 다 끝나고 돌이켜보니 결과적으론 좋은 추억이 됐다.

    레벨도 꽤나 올렸고, 좋은 스킬도 얻었고, 의뢰도 성공적으로 끝났고.

    음. 흠잡을 데가 없다.

    "그럼 여기까지로군. 고생했어."

    "아니. 난 따라다니면서 스킬 몇 번 쓴게 전부니까. 고생은 너희가 했지."

    나는 미리엘이 내민 손을 굳게 마주잡았다.

    "그럼 보수는 어떻게 할까? 우리 쪽에서 한꺼번에 처리하고 그쪽 클랜 하우스에 절반을 보내는 걸로 좋을까?"

    "아니. 이왕이면 현물로 절반을 줬으면 하는데. 아, 너희를 못 믿겠다는 게 아니야. 재료들을 팔기보단 장비를 강화하는데 쓰고 싶어서."

    "그런가. 그럼 돌아가기 전에 일단 우리 클랜 하우스에 들르는 게 어때? 여긴 아이템을 나누기에는 조금 좁군."

    하긴. 이왕이면 바로 집으로 돌아가서 우리 애들 얼굴부터 보고 싶지만, 조금만 더 참자.

    조금 늦게 간다고 우리 애들이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텔레포트를 타고 길드로 올라가 마석을 정산한 후에, 일단 마석 정산금은 절반을 건네 받았다.

    그리고 아라크네의 클랜 하우스의 정원에 도착하여, 우리는 이번 의뢰를 수행하면서 얻은 아이템을 모조리 꺼내기 시작했다.

    아라크네의 다른 클랜원들도 궁금했던 건지, 우리가 있는 곳에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일단 아이템 분류는 성기와 성기가 아닌 아이템으로 나누고, 성기는 아라크네 클랜이 전부 가지는 걸로 한다.

    그리고 나머지 아이템들은 절반으로 나눠서 우리 클랜과 아라크네 클랜이 나눠가지는 거다.

    내가 초월종의 성기를 하나하나 꺼낼 때마다 주변 갤러리들의 분위기는 점점 더 고양되어갔다. 어째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와이번 초월종의 성기를 꺼내자, 주변에서 새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꺄아아악! 뭐야 저거! 저게 성기?!"

    비명소리가 뭔가 즐겁게 들리는 건 기분 탓일까?

    역시 여기 클랜원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조금 이상해.

    "후우. 안구가 썩어가는 느낌이야."

    성기들이 모여 있는 곳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웠다.

    "역시 다시 봐도 크군. 앞으론 이걸 스스로 들고 다녀야하는 건가. 대형 아공간 주머니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되겠군."

    "뭐, 그래도 크기가 큰 만큼 이게 들어갈 틈을 찾는 것도 쉽지 않겠어? 조그만 건 맞는 구멍이 어디 있는지 찾는 것도 일이라고."

    "확실히. 그도 그렇겠군."

    미리엘은 내 말이 재밌었던 건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웃으라고 한 말 아닌데 말이지.

    "그럼 나머지 물건들을 나눠볼까. 내가 분류해주지."

    미리엘은 그렇게 말하면서 주저앉고는 손수 종류별로 척척 분류를 해나갔다.

    보통 이런 거대 클랜장들은 뭔가 뒤에서 뒷짐만 지고 있는 이미지가 있는데, 그러고 보니 얘는 다 스스로 나서서 하네. 내가 할 소리가 아니기는 하지만.

    "자, 여기. 다시 한 번, 정말 고생 많았다."

    "어, 그래. 너희도. 또 서로 도울 일이 있으면 돕자고."

    미리엘이 분류한 아이템들을 수거하고, 나는 드디어 저택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잠깐 기다려!"

    그때 앨리시아가 돌아가려는 날 제지했다.

    아, 그러고 보니 나도 얘한테 할 말이 있었는데. 깜박할 뻔 했네.

    "뭐야?"

    "너희는 앞으론 어떻게 할 거야? 개미굴 너머라는 3계층 중간을 탐험할 예정인 거냐?"

    "응? 그야 그런데. 왜?"

    "아니. 아무것도 아냐! 그냥 궁금해서!"

    이상한 녀석. 뭐 아무튼 나도 할 말이 있었으니까 상관 없지만.

    "그보다 앨리시아. 나 너한테 할 말이 있어."

    "뭐, 뭐?! 뭔데?!"

    앨리시아는 갑자기 긴장을 하면서 외쳤다.

    너무 그러지 마라. 나도 긴장되잖냐.

    "그게, 실은 말이지. 지금까지 말 못하고 있었는데. 실은 네가 그때 나한테 가슴 내밀면서 섹시하게 어필했던 거 있잖아? 그거 솔직히 엄청 섹시했어. 그래서 말인데…."

    "어, 어. 엉…."

    어째선지 앨리시아는 점점 더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한쪽 다리를 살며시 뒤로 뺐다.

    "역시 넌 섹시한 게 잘 어울리는 것 같아. 그 어설프게 루티아씨 따라하는 말투만 아니면 완벽해. 그러니까 좋아하는 남자가 있으면 그걸로 밀어붙여. 넌 여성스런 태도로 어필하는 건 안 되겠더라. 놀려먹는 게 재밌어서 거짓말했었어! 그럼 이만!"

    나는 빠르게 말을 마치고 재빨리 뒤로 돌아서 아라크네 클랜을 탈출했다.

    놀려먹을 땐 놀려먹더라도, 마지막엔 제대로 조언을 해주는 나. 착하지 않냐?

    아무리 나라도 쟤가 좋아하는 남자한테 계속 여성스런 모습으로 어필하려다가 망하게 되면 미안하니까 말이야. 그걸 보고 또 즐거워할 정도로 쓰레기는 아니라고.

    "이, 이, 이 개새끼야아아아아!"

    한동안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앨리시아가 뒤늦게 표호를 하면서 쫓아왔지만, 나는 아슬아슬하게 도망갈 수 있었다.

    앨리시아가 굳어있을 때 미리 도망간 것과 더불어, 암살자 레벨이 오르면서 민첩이 꽤나 올랐던 게 주효했다.

    "하하핫! 나 잡아…!"

    "구, 구원님!"

    "갑자기 혼자 도망가면 어떡해요?!"

    하지만 내가 미처 계산하지 못한 변수가 있었다.

    "계속 도망가보시지?"

    젠장! 인질극은 비겁하지 않냐?!

    "저기…그게…죄, 죄송합니다."

    "유언은 그게 끝이냐?! 그럼 죽어!"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299화에서 4계층부터 나오는 마석은 검은색이라는 구절이 있었는데, 마석 색을 검은색에서 보라색으로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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