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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300화 (28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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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뢰

    아침을 상쾌하게 오우거 레이드로 시작한 우리는,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바로 다시 길을 나섰다.

    5계층은 2계층과 마찬가지로 층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하나의 넓은 공간으로 이뤄져있다는 모양이다. 그래서 여기에 개미굴 같은 게 또 있을 수도 있다고 기대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또한 하늘은 높고 나무는 크고 몬스터도 크고 전부 큼지막한 이곳은, 계층의 주인까지의 거리도 엄청나게 멀다고 한다.

    뭐, 지금 내가 거리가 먼 걸 불평할 처지가 아니지만.

    오히려 좀 더 멀었으면 좋겠다.

    물론 얼른 의뢰를 마치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너무 빨리 도착해버리면 레벨 업을 할 시간이 없다.

    그리고 내 레벨이 부족하다는 걸 들킨 순간 바로 미리엘에게 강간당하는 미래밖에 안 보인다.

    게다가 계층의 주인만이 문제가 아니다.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초월종 또한 문제였다.

    만약 여기서 초월종을 맞닥뜨리기라도 한다면, 계층의 주인까지 갈 것도 없이 바로 관광코스다.

    오우거한테도 아슬아슬했으니 분명 초월종에겐 안 먹히겠지.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어젯밤에도 실비아랑 섹스를 할 걸 그랬나.

    그렇게 언제 초월종을 만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안절부절못하면서, 나는 쉴 새 없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너 아까부터 왜 그러냐?"

    결국 옆에서 걷던 앨리시아가 보다 못해 한마디 할 정도였다.

    "으, 응?! 뭐가?!"

    "아까부터 똥마려운 개처럼 그러고 있잖아. 뭐 문제 있냐?"

    "아니. 평생 남자 하나 못 사겨본 네 처지랑 비교하면 아무 문제없어."

    아, 실수했다. 너무 당황해서 그만 공격적으로 말하고 말았어.

    나는 말을 내뱉은 순간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상황이었다.

    "이, 이 새끼가 아까부터 진짜! 네가 나 남자 못 만났는데 보태준거 있냐?!"

    물론 앨리시아는 바로 불같이 화를 냈다.

    심지어 인정까지 해버렸어. 남자 못 만나본거.

    갑자기 먼저 시비 걸어서 미안하니까 조금 도와줄까.

    "그럼 보태줄까?"

    "뭐, 뭐어?"

    "그러니까 앞으로 네가 남자를 만들기 위해서, 뭔가 조언이라도 해줄까?"

    "네가?"

    "내가 뭐? 어때서? 너 지금 내 모습 안보이냐?"

    나는 양팔을 뻗어서 바로 옆에 붙어 따라오고 있는 두 명을 끌어안았다.

    "히아아아앗!"

    "꺄아악! 이, 이건…다, 당신…. 역시 당신도 절…."

    이제는 익숙한 실비아의 비명은 둘째 치고, 뭔가 위화감이 드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마틸다가 눈동자에 하트를 띄우며 날 쳐다보고 있었다.

    "으아아악! 깜짝이야! 네가 여기 왜 있어?!"

    "핫! 다, 당신이 갑자기 끌어안았잖아요?! 이 파렴치한!"

    다행이 마틸다는 내가 바로 팔을 떼며 멀어지자 정신을 차린 것처럼 보였지만, 방심할 수 없었다.

    방금 역시 당신도 절이라고 했지? 이거 진짜로 위험한 거 아냐?

    하지만 되살아난 자존심을 사용하자 바로 내 아들이 반응을 보였다.

    다행이다. 방금 전엔 정말로 아슬아슬했을 거야.

    하지만 아직 위기는 끝나지 않았었다.

    "왜, 왜 그렇게 커진 거죠?! 절 끌어안고?! 역시 당신도 절…."

    으아아아! 얘 진짜 귀찮아!

    "아니거든! 우리 실비아 끌어안고 이렇게 된 거거든?!"

    "흐에에엣?!"

    여전히 내 옆구리에 안겨있는 실비아는 스플래시 데미지를 입고 몸의 진동이 더 거세졌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

    미안하다 실비아. 내 아들을 지키기 위해선 이럴 수밖에 없었어.

    "크흠! 크흠! 아무튼! 이렇게 인기 있는 내가 조언을 해주겠다는 거다. 어때? 생각 있어?"

    "됐어! 그런 건 이미 충분히 들었다고!"

    들은 거냐.

    내가 언급하기 전부터도, 의외로 신경 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진짜 미안한 짓을 하기는 했네.

    "그래봤자 같은 여자한테 들은 거지? 남자인 내 조언은 또 다를 수도 있는 거 아냐?"

    "그, 그럼…어디 한 번 들어나…볼까…?"

    앨리시아는 아닌 척 하면서도 결국 관심을 보였다.

    역시나. 네가 레즈비언 행위에 빠지게 된 건 그저 남자가 없었기 때문이구나.

    불쌍한 것. 이 내가 구제해주도록 하지.

    "우선 말이지. 앨리시아. 넌 색기가 부족해."

    "이 새끼가! 시비 거는 거냐?! 나도 충분히 색기 있거든?! 얼마 전까진 내 안에 넣자마자 싸버리면서 동정 버렸던 새끼가!"

    "워워. 진정해. 놀리는 게 아냐. 난 진심으로 충고하는 거라고. 물론 네 몸은 색기 있지. 그건 인정해. 하지만 앨리시아. 아무리 하드웨어가 좋아도 소프트웨어가 그 모양이면 말짱 꽝이야."

    "좋아. 무슨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나한테 시비 걸고 싶다는 건 잘 알았다. 잠깐 저기로 따라와 새끼야! 상대해주마!"

    "바로 그 태도야! 그 태도가 문제라고 앨리시아! 조금만 애교떨면 남자 같은 건 금방 만들 수 있는 외모를 가지고도 네가 여태까지 남자 한 번 못 사겨본 이유가 바로 그거야! 넌 너무 난폭해! 몸매는 섹시해도 마음속 깊이 이성으로 안 느껴져!"

    실제로 나도 얘랑 말할 때는 뭔가 사내놈이랑 대화하는 기분이고.

    "그래서 남자한테 아양이라도 떨라는 말이냐?! 핫! 그런 짓까지 할 정도로…."

    "모든 남자한테 다 그러라는 게 아니잖아? 네가 맘에 드는 남자 하나한테만 그러면 돼. 그리고 항상 애교를 떨라는 것도 아니고. 요는 갭이야. 갭."

    "…갭?"

    "그래. 평소에는 남자같고…으악! 잠깐! 욕하는 거 아니니까 좀 계속 들어봐! 평소에는 이성처럼 안 느껴지고 털털한 애가, 가끔씩 보여주는 여자다운 모습. 그것만으로 남자를 뿅 가게 만들 수 있는 거라고."

    "…구체적으론 어떻게 하라고."

    앨리시아도 그 정도라면 자기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건지, 조금 받아들이는 자세가 됐다.

    "그러니까 신경 쓰이는 남자한테만 조금 더 여성스럽게, 그렇군. 실비아."

    "네, 넵?!"

    "귀족 영애로서 여성스러운 게 뭔지 앨리시아한테 시범 좀 보여줘."

    "……펴, 평안하신지오. 제 이름은 실비아…."

    "됐다."

    "아우우우우…."

    그러고 보니 실비아도 남자랑 인연이 없는 삶을 살았었다.

    어디 여성스러운 애 없나? 나는 주변을 살펴봤다.

    문득 아라크네의 면면들이 재미있다는 듯이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지만, 도와줄 생각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너희 동료잖아. 조금 도와주라고.

    젠장. 어쩔 수 없지. 내가 이 한 몸 희생할 수밖에 없나.

    "앨리시아. 지금부터 딱 한 번만 보여줄 테니까 두 눈 크게 뜨고 잘 봐라. 이게 좋아하는 남성을 대할 때 여자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란 거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마틸다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 턱을 손으로 잡아서 위를 올려다보게 만들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마틸다."

    "네…. 구원씨…."

    역시나 마틸다는 순식간에 사랑에 빠진 여자로 변해서 촉촉하고 달콤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좋아. 이 이상은 위험하다.

    "너 완전 쉬운 여자구나."

    "뭐, 뭐라고요!"

    나는 곧바로 목소리를 바꿔 비웃듯이 말했고, 마틸다는 바로 격분했다.

    후우. 위험했어.

    "어떠냐. 앨리시아. 잘 봤냐? 이게 바로 여성성이란 거…."

    "제, 제가 그렇게 여성스럽나요?"

    아오. 얘 귀찮아!

    "그래봤자 마틸다지만!"

    "그게 대체 무슨 뜻이죠?!"

    나한테 반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 이상 마틸다가 들으면 더 귀찮아질 것 같아서, 나는 앨리시아의 머리를 끌어안고 귀에다가 입을 가져다대 속삭였다.

    "아무튼 잘 알았냐? 방금 저게 여성스러운 태도라는 거야. 내가 이 한 몸 희생해서 보여준 거니 똑똑히 봤겠지?"

    "저, 저런 걸 나보고 하라는 거냐."

    앨리시아는 답지 않게 자신 없는 태도로 말했다.

    "뭐야? 저 정도도 못할 것 같아? 그냥 조금 달콤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것뿐이잖아. 거기다 시선에 물기까지 띄면 최고고."

    "으으으음…."

    "좋아. 자신 없으면 어디 지금 연습이라도 해봐."

    "여, 여기서?!"

    "뭐 어때? 내가 보고 평가해줄게. 내 합격점을 받으면, 넌 남자와 그저 섹스를 할 뿐 아니라 더 깊은 관계까지 될 수 있는 여자가 되는 거다. 괜찮아. 너라면 할 수 있어. 일단 하드웨어는 좋으니까."

    "일단이라니 뭐냐! 일단이라니!"

    "칭찬해준 거잖아. 아무튼 자! 해봐! 부끄러워하지 말고!"

    "으으윽…저런 걸 어떻게…."

    "분위기라도 잡아줄까? 앨리시아…."

    "네…으아악! 역시 안 되겠어! 느끼한 얼굴 저리 치워!"

    내가 마틸다에게 했던 것처럼 앨리시아의 허리를 감싸 안으면서 부드럽게 이름을 부르자, 앨리시아는 한 번 시도를 해보는 것처럼 보이더니 결국 날 밀쳐냈다.

    느끼하다니. 충격이다. 난 지금까지 스스로 남자답게 생겼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네가 너무 안하려고 하니까 분위기 좀 잡아준 거잖아. 너 남자 사귀기 싫어?"

    "관심 없거든! 그러고 보니 어째서 내가 사내새끼가 고픈 것처럼 된 거야! 애초에 네 조언이란 건 그냥 한 번 흥미삼아 들어본 것뿐이었다고!"

    "에이. 얘 또 그런다."

    "너 역시 시비 거는 거지!"

    무슨 소리를. 사람이 모처럼 호의를 베풀고 있는데.

    …뭐, 조금 즐기고 있다는 건 부정하지 않겠지만.

    "자, 그러지 말고 한 번 더…."

    "전방에 사이클롭스 한 마리! 수컷이야!"

    하지만 그때 혼자 앞장서서 정찰을 하고 있던 루티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쳇. 휴식 시간은 끝인가.

    "그런가! 자, 구원! 너도 빨리 성자 스킬을 준비해!"

    앨리시아는 뭔가 다행이란 표정으로 재빨리 무기를 그러쥐고 외쳤다.

    아니, 준비하고 뭐고 할 거 없이 바로 발동 가능하거든. 게다가 내가 스킬 쓰는 건 마지막이잖아.

    이번 녀석도 오우거처럼 레이드하는 방식으로 잡아야하는 건지, 미리엘과 앨리시아, 지니가 쏜살같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실비아와 마틸다는 어제 같은 일은 벌어지게 하지 않겠다는 듯 내 앞을 든든히 가로막고 섰고, 내 뒤에는 아라크네의 후위 진들과 릴리가 굳게 틀어막았다.

    맨날 앞에 나가서 싸우다가 이렇게 보호받으니까 참 기분이 묘하단 말이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번에도 오우거처럼 성자의 파동 여러 발을 써야 할지도 모르니까. 제대로 긴장하고 있자.

    결국 사이클롭스도 아무런 문제없이 잡았고, 그 날은 초월종 같은 것도 만나는 일 없이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지쳤다.

    언제 초월종이 나올지 몰라서 전전긍긍하는 것도 꽤나 신경을 갉아먹는 일이었다.

    그나마 앨리시아로 놀…앨리시아에게 조언을 해주며 긴장을 풀지 않았으면 버티기 힘들었을 거야.

    하지만 난 해냈다.

    하루 종일 미리엘에게 내 레벨이 부족하다는 걸 들키지 않았으니까, 일단 한 고비는 넘긴 셈이야.

    이제 밤마다 실비아랑 엄청나게 해대서, 초월종과 계층의 주인에게 성자의 파동이 먹힐 정도로 레벨을 올리면 끝이다.

    난 해내고 말겠어!

    "그런고로 실비아. 벗어."

    "네, 네헷?!"

    "뭘 그렇게 놀라. 어젯밤에 설명했잖아. 너랑 섹스해서 레벨 업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지금 이 상태론 레벨이 부족해. 언제 미리엘이 내 레벨을 올려주겠다면서 덮쳐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야. 오늘부터 계층의 주인에게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하루도 쉬지 않고 섹스를 한다."

    "아, 아, 아아…."

    실비아는 앞으로의 고난을 예감하는 건지, 얼굴을 감싸 쥐고 절망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런 표정이야? 나랑 하기 싫어?"

    "조, 좋습니다! 좋습니다만…살아남을 자신이…."

    "걱정 마. 나한텐 힐링 섹스도 있으니까. 육체적인 컨디션은 오히려 더 좋아질 거야."

    "저, 정신적인 측면은요?"

    "그거야 네가 노력해야지."

    "여, 역시 저…!"

    "실비아는 내가 다른 여자한테 덮쳐져도 상관없는 거구나."

    "아, 아, 아, 아닙니다!"

    "그럼 얼른 벗어."

    "아우으으으으…."

    "참고로 말하는데, 너 이번엔 기절하면 안 된다? 다른 애들이랑 다르게 넌 기절하면 절정에 달하지도 못하니까. 내 레벨 업이 목적인 이상, 넌 반드시 깨어있어야 돼."

    "우으읏! 그, 그런 조건까지…."

    "왜? 자신 없어?"

    "아, 아닙니다! 노력 하겠습니다…."

    내가 살짝 실망스런 표정을 짓자, 실비아는 고개를 붕붕 흔들더니 자신의 뺨을 양손으로 찰싹 때려 기합을 넣으며 말했다.

    아프겠다.

    "그렇다고 너무 그렇게 긴장할 건 없고. 자기 뺨은 왜 때려. 예쁜 얼굴에 상처 나면 어쩌려고."

    "하우우우우…."

    하지만 내가 속삭이자 기합이 들어갔던 얼굴을 바로 헤실헤실 풀어졌다.

    이거 안 될지도 모르겠는데.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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