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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299화 (28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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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뢰

    "뭘 그렇게 쫄아있냐? 죽은 거 맞으니까 걱정 말라고! 하여간 이래서 병아리는…."

    내가 조심조심 오우거 시체에 다가가자 겁먹었다고 생각한 건지, 앨리시아가 내 등을 찰싹 때리면서 쾌활하게 말했다.

    "겁먹은 거 아니거든."

    "그래그래. 자식. 그래도 자존심은 있나보지?"

    앨리시아는 내 머리를 팔로 감싸 옆구리에 끼고는 반대 손으로 머리를 마구잡이로 흐트러뜨렸다.

    이거 갑자기 왜 이래?

    아니, 물론 평소에도 이런 성격이었지만, 그래도 어제 전투 때엔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아, 그런가. 어제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

    이거 설마 자기 딴엔 다독이려고 그러는 건가.

    앨리시아야. 네가 왜 그 외모에 그 능력으로 아직까지 남자 한 번 못 사겨봤는지 알 것 같다.

    "야. 진짜 겁먹은 거야? 갑자기 왜 그렇게 조용해?"

    역시 걱정 되서 그랬던 건지, 내가 조용히 있자 앨리시아가 살짝 걱정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그냥…. 굳세게 살아라. 앨리시아."

    "뭐?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언젠간 너도 어울리는 짝이 나타날 거야."

    "이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갑자기 그 말이 왜 튀어나와?!"

    "아니, 아무것도 아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앨리시아의 옆구리에서 벗어나 오우거 시체로 향했다.

    "야. 이 새끼야! 어딜 도망가!"

    훗. 뒤에서 남자 한 번 못 사겨본 패배자의 목소리가 들리는군.

    앨리시아가 집요하게 쫓아와서 무슨 개소리냐고 떠들어댔지만, 나는 그저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봐주고는 철저히 대답을 회피했다.

    오우거 시체에서는 이미 미리엘이 마석을 회수하는 중이었다.

    이렇게 덩치가 크다보니, 마석을 회수하는 것도 꽤나 중노동이다.

    심지어 마석 크기가 엄청나게 커지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저 덩치에서 주먹크기보다 작은 마석을 파내야 한다니.

    디아나에게 들은 얘기지만, 4계층부터는 몬스터들이 가진 마석의 색이 보라색으로 바뀌면서 크기가 줄어든다는 모양이다.

    색이 변하는 만큼 포함하고 있는 마나의 순도도 높아져서, 크기가 줄어들어도 마나 함유량은 더 높아진다나.

    3계층 몬스터들이 뱉는 마석이 이미 주먹 두 개만한 크기였으니, 마나를 품은 만큼 무한대로 커졌다가는 오우거 같은 녀석들이 가진 마나는 직경 1미터가 넘어갈지도 모를 일이니까 말이다.

    모험가들로선 고마운 얘기지.

    그러고 보니 얘들은 도축 스킬 같은 걸 익히고 있는 걸까?

    애초에 모험가는 길드에서 등록을 하면 얻을 수 있는 직업인데, 길드에서 모험가 스킬을 전수해준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배우고 있는 다른 모험가 스킬인 애널라이즈도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쓰는 걸 본적이 없고.

    디아나마저도 다른 사람의 레벨을 정확히 알지는 못하니, 아마 이 세계에서 애널라이즈를 배운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다.

    그럼 다른 모험가 스킬인 도축 역시도, 나 말고 다른 사람은 안배우고 있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나중에 디아나한테 물어봐야지.

    하지만 그런 걱정과는 별개로, 미리엘은 검으로 마석의 위치를 향해 곧장 파나갔다.

    오우거를 잡아본 게 한두 번도 아닐 테고, 마석의 위치 정도는 알고 있겠지.

    그리고 드디어 오우거의 몸이 썩어가듯 순식간에 사라지기 시작했다.

    자, 어떻게 됐어?

    나는 오우거의 하반신이 놓여있던 자리에 눈을 돌렸다.

    거기에는 뭔가 검붉은 색의, 거대한 기둥이 놓여있었다.

    "끄아아아악! 내 눈!"

    내가 성기를 볼 때마다 이런 반응을 해서 이제 익숙해진 건지, 아라크네 사람들은 내 쪽에는 시선도 주지 않고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쓸쓸하다. 우리 애들이 보고 싶다.

    "…크군."

    "정말 크네. 저런 거, 내 거 안에는 안 들어갈 것 같은데?"

    "그렇군. 나도 마찬가지야."

    얘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당연하잖아! 그럼 저걸 넣어볼 생각이었어?!

    "…곤란하군."

    뭐가?! 뭐가 곤란한데?! 저게 안 에 안 들어가는 게 그렇게 곤란해?! 정상이잖아?! 오히려 들어가면 곤란한 거 아니냐?!

    "으음…. 아, 그래! 구원!"

    앨리시아가 갑자기 내 어깨를 쳤다.

    "뭐야?!"

    "저거 넌 넣고 다닐 수 있지 않아?!"

    얘, 얘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거 미친 거 아냐?!

    아무리 내가 아까 좀 놀렸다고 해도 그렇지, 그런 농담은 너무한 거 아니냐?!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거야? 너도 안 들어가? 칸나에게 들은 얘기론, 넌 손만 대도 물건을 아공간에 넣을 수 있다고 하던데."

    "응? 아, 아공간? 아, 아아! 그런 얘기였어?!"

    "그럼 무슨 얘기라고 생각한 건데?!"

    "응? 아, 아하하하! 아무것도 아냐! 아무것도! 그보다 왜? 아이템은 너희가 가지고 있다가 마지막에 한 번에 정산해주는 거 아니었어? 너희 아공간 주머니도 있잖아?"

    "우리가 가진 주머니 중에 저걸 집어넣을 수 있는 크기는 없어. 아무리 아공간 주머니라도 입구에 들어가지도 않는 크기의 물건을 넣을 수는 없다고."

    과연. 아까 내 거에 안들어간다느니 뭐니 하는 얘기는 그런 얘기였던 건가.

    난 또 얘들이 남자만 잡아먹는 게 아니라 이상 성벽까지 가지고 있는 줄 알고 식겁했네.

    "그래서, 넌 넣을 수 있는 거야?"

    "…그야 넣을 수는 있지만…."

    "있지만 뭐야?"

    "저거 만지기 싫은데."

    "뭔 애새끼 같은 소릴 하는 거야?"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해봐. 너라면 같은 여자 성기를 만지고 싶어?"

    "……."

    어째선지 앨리시아는 내게서 눈을 돌렸다.

    "…너 만진 적 있구나. 그랬어. 남자가 상대를 해주지 않으니 결국 여자한테 눈을 돌린…."

    "그, 그런 거 아니거든 새끼야!"

    "그, 그래. 그러시겠지. 이해한다."

    "이, 이 새끼가! 그러니까 그런 거 아니라고 했잖아!"

    "그래. 이해한다니까?"

    "이해한 표정이 아니잖아?!"

    시끄러운 레즈비언 녀석이다.

    나는 앨리시아를 무시하고 오우거의 성기로 다가갔다.

    "구원. 미안하지만 부탁할 수 있을까?"

    나와 앨리시아의 대화를 들었는지, 미리엘이 진지한 얼굴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 그래."

    어젯밤 이후로 묘하게 미리엘이 대하기 어려워졌다.

    미리엘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지만, 오우거한테 성자의 파동이 먹힌 것도 정말 아슬아슬했고.

    이거 들켰다가는 분명 오늘 밤에 강간당한다.

    게다가 미리엘 이 녀석, 자기는 더 이상 레벨을 올릴 필요가 없다고 했었지.

    그 말은 즉, 바꿔 말해서 레벨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말이다.

    레벨 250. 이 녀석은 대체 몇 명의 남자를 희생해서 그 레벨에 도달한 거지?

    역시 아라크네 클랜에서 제일 무서운 건 미리엘일지도 모른다.

    특히 섹스라는 행위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점에서 더욱더.

    "뭐하는 거지?"

    "잠깐, 잠깐만 기다려."

    내가 오우거의 성기 앞에서 가만히 서있자, 미리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젠장. 역시 만질 수밖에 없는 건가. 이딴 거 만지고 싶지 않은데.

    지금까지 몬스터 성기들은 만지면서 나름 면역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큰 건 또 느낌이 달랐다.

    "에잇!"

    그때 앨리시아가 내 손을 붙잡고 그대로 오우거의 성기에 가져다댔다.

    "끄아아악! 무슨 짓이야?!"

    "빨리빨리 하라고. 언제까지 그렇게 시간 끌고 있을 거야?! 너 때문에 다들 기다리잖아?"

    젠장.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열 받는다.

    이 녀석, 분명 방금 전에 내가 놀렸다고 복수한 거야.

    하지만 여기서 더 반박해봤자 오우거 성기를 만지고 있는 시간만 길어질 뿐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얼른 오우거 성기를 인벤토리에 넣었다.

    "크흑. 더럽혀진 기분이야."

    "고작 잠깐 만진 것 같고 소란은."

    "젠장! 이렇게 된 이상! 가슴으로 정화해주겠어!"

    나는 앨리시아의 가슴에 손을 뻗었다.

    딱딱해. 그야 그렇지. 갑옷을 입고 있는 걸.

    "뭐하냐 너? 풉. 뭐야. 말론 그러면서 혹시 동정을 뺏어간 이 몸이 그리웠던 거냐? 갑옷 벗어서 잠깐 만지게 해줘?"

    제길. 그래. 얜 이런 애였지.

    진짜 싫다. 아라크네 클랜. 뭔 여자들이 하나같이 부끄러운 줄을 몰라.

    "젠장! 그런 거 아니거든! 그냥 아무나 좋으니 가슴이 만지고 싶었을 뿐이야!"

    "어머, 그럼 누나가 만지게 해줄까?"

    "아뇨. 생각해보니까 제가 어리석었네요. 아녀자의 가슴을 함부로 만지려 들다니. 신사로서 그럴 수는 없죠."

    "사양하지 않아도 되는데."

    게다가 옆에서 끼어드는 바람에 나는 곧바로 냉정해질 수 밖에 없었다.

    분명 매력적인 커다란 가슴이고, 전신 레깅스 상태라 만지는 느낌도 죽일 테지만, 저거 만지면 분명 그대로 덮쳐질 거야.

    "그건 그렇고, 정말로 스킬이 먹히게 됐군. 하루 만에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지?"

    미리엘은 감탄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뭐, 뭐어. 난 이방인이니까. 이 세계 사람들이 모르는 기술 한두 개는 가지고 있지. 아무튼 이걸로 내가 너랑 잘 필요는 없다는 걸 알았겠지?"

    난 일단 최대한 허세를 부렸다.

    "그렇군. 앞으로도 부탁하지."

    이젠 돌이킬 수 없어.

    오늘부터는 매일 밤 실비아랑 밤새 섹스해서, 어떻게든 계층의 주인에게 도착하기 전까지 레벨을 끌어올린다.

    그러고 보니 얘들 전부 내 외모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네.

    일단 매력을 95나 올렸으니까, 뭔가 반응이 있어야 되는 거 아냐?

    나는 내 옆에서 서있는 실비아를 쳐다봤다.

    방금 내가 가슴으로 소란을 피웠기 때문인지, 자심의 가슴을 내려다보면서 조금 시무룩해져있었다.

    아냐. 실비아야.

    내가 앨리시아의 가슴에 손을 뻗은 건 그냥 걜 골려주려고 그런 거지, 결코 앨리시아 가슴이 커서 그런 게 아냐.

    "실비아."

    "네, 네히이입?!"

    나는 실비아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고 허리를 숙여서 실비아와 눈높이를 마주쳤다.

    서로간의 얼굴 거리가 10센티미터 정도밖에 남지 않을 정도로 밀착해서, 실비아와 두 눈을 지그시 바라봤다.

    실비아는 내 얼굴을 보면서 눈동자가 좌우로 거세게 진동했다.

    음. 모르겠다.

    얜 항상 이런 반응이니, 매력이 높아져 더 잘생겨진 내 얼굴에 반응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이러는 건지 분간이 안 된다.

    역시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없나.

    "나 뭐 변한 거 없어?"

    "벼, 벼, 변한 거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 그게, 그러니까…."

    실비아는 당황한 듯 고민했다. 역시 잘 모르는 건가.

    스탯이란 게 상대적인 만큼, 어쩌면 레벨이 나보다 훨씬 높은 애들은 그 차이를 잘 모르는 걸지도 모르겠다.

    "혹시 잘 생겨지지 않았어?"

    "구, 구원님은 언제나 잘생기셨습니다!"

    아니면 그냥 실비아 눈에는 내가 언제나 최고로 보여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역시 잘 모르겠다.

    아무튼 오우거의 나머지 아이템들도 수거하고, 우리는 야영을 했던 곳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거기엔 전투 현장에 혼자 오지 않았던 마틸다가 남아있었다.

    "다들 어디 갔다가 이제…. 어머. 당신 조, 조금 얼굴이…?"

    "응?! 얼굴이 뭐?!"

    내가 얼굴을 들이밀자, 마틸다가 얼굴을 붉히며 촉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게, 잘생겨지신…."

    으악! 너무 흥분해서 그만 폭탄에 불을 붙여버렸어!

    어쩔 수 없잖아! 사람인 이상 잘생겼단 말은 언제 들어도 기분 좋단 말이야!

    "성자 스킬을 강하게 한다고 좀 변하긴 했지! 왜 반했냐? 그럴 리 없지? 나 같은 쓰레기를, 그냥 외모가 좋다고 반할 만큼 쉬운 여자는 아니겠지?!"

    "다, 당연하죠! 사람을 어떻게 보고!"

    후우. 아슬아슬하게 넘겼나?

    응. 다행이다. 아직 선다.

    "역시 내 기분 탓이 아니었나. 뭔가 변한 것 같기는 했지만."

    "어머, 우리 귀염둥이. 뭐 했니?"

    "아, 네. 성자 스킬의 위력은 외모와도 관련이 있어서."

    역시 아라크네 사람들도 눈치는 채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람이 조금 달라 보이면 언급을 해달라고. 괜히 혼자서 안달 났었잖아.

    아니, 생각해보면 이게 당연한 건가.

    나라도 남의 여자가 평소보다 더 꾸몄다고 해서 예뻐졌다고 막 칭찬하지는 않을 테니.

    대놓고 꼬드기는 거잖아.

    게다가 그게 어디 높으신 분의 여자라고 생각해봐라. 완전히 권력에 도전하는 거다.

    얘들은 내가 디아나의 남자라는 걸 알고 있는 만큼, 말하기 힘들었겠지.

    "어쩐지 오늘따라 더 맛있…귀여워 보인다 싶었어."

    …어쩌면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언급을 안했던 것일 수도 있고.

    역시 여기 클랜 사람들은 하나같이 상대하기 힘들어.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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