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294화 (278/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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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뢰

    나는 실비아와 마틸다를 데리고 아라크네 클랜 하우스에 찾아왔다.

    손주를 챙기는 할머니처럼 이것저것 꼼꼼히 챙겨주는 디아나와, 내 손을 꼭 붙잡고 자신의 가슴에 파묻으면서 잘 다녀오시라고 말해주는 레이아. 그리고 얼굴에 불안한 티는 안 내려고 노력하면서 무사히 안 오면 무사하지 못할 거라는 의미 불명의 말을 건네는 사라의 배웅을 받고나서야 나는 출발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게다가 나서기 직전엔 왠지 애들이 마지막에 실비아를 붙잡고 뭔가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 자기들끼리 쑥덕댄 바람에 괜히 시간을 더 잡아먹어 버렸다.

    설마 실비아만 따라온다고 갈군 건 아니겠지?

    아니, 우리 애들이 그럴 애들은 절대 아니지만.

    그냥 모험가 선배로서 던전이 익숙지 않은 실비아에게 던전에서의 주의사항 같은 걸 말해준 거겠지.

    아무튼 그래서 우리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도 꽤나 시간이 지나서, 거의 점심에 가까워질 무렵에야 아라크네 클랜 하우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마차를 타고 왔으니까 이동시간은 그나마 짧았던 덕분에 그나마 점심 전에는 도착할 수 있었다.

    마차로 오게 된 건 마틸다 때문이지만.

    가까운 거리라고는 해도 걸어오다가 또 마틸다가 이상한 남자한테 엮이면 귀찮으니까 말이다.

    덕분에 내가 마차로 오는 동안 마틸다와 엮이게 됐지만, 뭐 일단 지금은 무사하다.

    마차에서 내리기 전에 살짝 확인해봤으니까 확실해.

    "그래서 얘들 둘도 데려갔으면 좋겠는데."

    "굳이 호위를 데려오지 않아도 우리가 알아서 잘 지켜줄 수 있다고 말했을 텐데?"

    역시나 미리엘은 그다지 탐탁지 않은 모습이었다.

    뭐, 너들을 완전히 믿을 수는 없다고 말하는 꼴이니까 말이야. 자존심을 건드린 거겠지.

    미청년같이 시원스레 뻗은 눈매를 조금 찌푸리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 애들이 워낙 걱정이 심해서 말이야. 이해 좀 해줘."

    원래 나이 먹으면 걱정만 는다고들 하잖아. 라는 말은 굳이 생략했다.

    디아나야. 내가 이렇게 배려심이 깊단다.

    "게다가 그 둘도 그쪽 클랜인 거지? 5계층을 다닐 수 있기는 한 건가? 오히려 짐이 늘어나면 곤란한데."

    "아, 그건 걱정 마. 얘들 이래 봬도 꽤나 도움이 된다고? 한 명은 왕실친위대의 기사님. 한 명은 세계에서 12명밖에 없다는 추기경님이라고."

    "추기경님이라…당신도 드디어 제 위치를 조금 깨달으신 모양이군요. 이래 봬도 라는 말은 꽤나 마음에 안 들지만 말이죠."

    마틸다가 뭔가 떠들어댔지만, 난 철저히 무시하기로 했다.

    쟤 상대를 일일이 다 해줬다간 끝이 없으니까.

    "뭐?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아니, 지고의 대마법사님까지 있는 시점에서 이미 더 말해 입 아픈 얘기인가. 흠…좋아. 그럼 이렇게 하지."

    미리엘은 턱을 괴고 잠깐 생각을 하더니, 몇 가지 조건을 걸어왔다.

    일단 실비아와 마틸다는 내 곁에 붙어 있으면서 호위에만 집중할 것. 괜히 전투에 가세한다고 나서봤자, 오히려 팀워크만 흐트러질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이건 뭐 당연한 거다.

    아무리 능력이 되더라도 함께 호흡을 맞추던 파티에 갑자기 외부인이 들어가면 문제가 생기는 건 당연하지.

    그리고 나도 개인적으로 얘들은 나하고만 붙어 있었으면 좋겠고.

    괜히 위험한 일을 나서서 할 건 없잖아?

    그리도 또 하나는 의뢰비용은 전에 말했던 그대로라는 거다. 얘들이 몬스터를 더 잡는다고 거기서 나오는 재료는 우리가 가지는 거 없이, 그냥 한꺼번에 다 모아서 절반을 우리 쪽에 건네주겠다는 얘기 말이다.

    이것 역시도 당연한 얘기다.

    애초에 얘들은 내 호위에만 전념할 거고, 몬스터를 잡는다고 쳐도 아라크네 클랜의 보호 하에 안전하게 한두 마리 잡는 게 전부일 테니까.

    쩨쩨하게 우리가 잡은 건 우리 것이라는 얘기를 할 생각은 없다.

    "오케이. 오케이. 그렇게 하자고."

    내가 긍정의 의사를 표시하자, 미리엘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의 사태가 발생하면 우린 그쪽 널 지키는 걸 최우선으로 생각할 거니까 말이야. 그 둘까진 장담 못해."

    미리엘은 마지막으로 경고하듯이 미리엘이 말을 걸었다.

    그렇게 위협하지 마라. 괜히 불안해지잖냐.

    …정말 괜찮겠지?

    "아무튼 좋아. 그렇게 정하기로 하고 그럼 슬슬 준비를 해볼까."

    "잠깐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주겠나? 다들 불러오도록 하지."

    아무래도 미리엘은 점심도 먹지 않고 곧장 출발할 생각인 모양이다.

    아니면 아침 겸 점심으로 때운 걸까?

    "그건 그렇고. 설마 왕실친위대의 기사님에 추기경님이라니. 그거 그거지. 귀족님이라는 거지?"

    우릴 정문에서 여기 미리엘의 방까지 안내해준 앨리시아가 감탄한 것 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귀족을 보고 감탄한 것 치고 태도는 그다지 공손하게 변한 것 같지 않지만 말이다.

    "넌 나가서 준비 안 해도 되냐?"

    "내 모습을 보면 알잖아? 이미 진작 다 끝났어. 미리엘이 어제부터 얼마나 닦달을 하는지…. 너도 조심해라. 저거 겉보기엔 시원시원해 보여도 은근히 쩨쩨하고 잔소리가 심하니까. 던전에 들어가면 너도 알게 될 거야."

    앨리시아는 허리춤에 매단 꽤나 큼지막한 주머니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확실히 앨리시아는 제대로 무장을 갖춘 상태였다.

    하지만 저 주머니, 크기는 자체는 크지만 안에 뭐가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말이야. 그래도 주머니를 친 걸 보면, 안에 필요한 것들이 들어있다는 거겠지?

    그 말은 즉, 공간 마법이 걸린 주머니인가. 과연 대형 클랜의 간부님.

    얘들한텐 내 인벤토리 능력도 그다지 자랑할 게 못될 것 같다.

    "그렇게 쩨쩨한 사람인데 다른 클랜 사람한테 그렇게 뒷담을 까도 되는 거냐."

    "괜찮아. 괜찮아. 그런 건 별 신경 안 쓰니까."

    그럼 쩨쩨한 게 아니잖아.

    "그런데…."

    "구, 구원님!"

    내가 5계층에 대해서 물어보려고 했을 때, 실비아가 갑자기 내 이름을 외쳤다.

    "응?"

    "그, 그게…그러니까…."

    "갑자기 왜 그래? 말하기 힘든…아, 화장실?"

    "아,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라…아! 그래! 그, 이틈에 저흰 뭔가 준비할 게 없겠습니까?"

    "아니. 우린 이미 다 준비해서 왔잖아. 갑옷까지 그렇게 차려입고 무슨 소리야?"

    "그, 그렇군요…."

    "뭐야. 그 말 하려고 부른 거야?"

    "네…."

    실비아는 왠지 ‘쿠후응.’하고 풀죽은 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대체 뭐지?

    "그런데 앨리시아. 5계층 말인데. 거기서 나오는 몬스터 얘기 좀 해줄 수 있어?"

    일단 디아나에게 듣기는 했지만, 나는 앨리시아에게 다시 질문했다.

    디아나가 던전에 다닌 건 아무래도 상당히 오래 전 얘기라고 하니, 그 동안 뭔가 새로운 몬스터를 발견하거나 했을 수도 있으니까.

    게다가 아무래도 디아나에게는 들을 수 없는 얘기도 있고 말이다.

    디아나는 이미 500레벨을 찍은 상태에서 던전을 탐험했다는 모양이니까, 그냥 압도적인 화력으로 쓸고 다니면서 몬스터들에게 나오는 재료의 활용법이나 몬스터들이 사용하는 기술의 연구에만 몰두한 모양이다.

    그래서 몬스터를 상대하는 방법 같은 걸 알려줘도, 솔직히 내 입장에선 별로 도움이 안 된다.

    반면 딱 봐도 전사 타입인 앨리시아의 얘기는 아마 상당히 도움이 되겠지.

    "응? 그렇군. 일단 엄청 커."

    정정하지. 어쩌면 앨리시아 얘기도 그다지 도움은 안 될지도 모르겠다.

    "야. 그 정도는 나도 들어서 알아. 그런 거 말고, 뭔가 구체적인 정보 없어? 각 몬스터들의 특징이나 상대하는 팁 같은 거 말이야."

    "응? 팁? 그렇군…."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해?"

    그때 미리엘이 방으로 돌아왔다.

    "응? 아, 글쎄 앨리시아가 네 흉을 보더라고."

    나는 곧바로 고자질하기로 했다.

    전에 우리 애들 앞에서 날 물 먹이려고 했던 대가를 치러라.

    "어? 야!"

    "신경 안 쓴다면서?"

    "그렇다고 그걸 말하냐?!"

    "훗, 나란 남자는 그런 남자야."

    "이게, 지금 그걸 자랑이라고…!"

    "호오…. 내 욕인가…."

    "윽. 야. 잠깐 미리엘."

    "기억해두지."

    "아오! 그런 게 아니라!"

    아무래도 미리엘은 이 자리에서 앨리시아에게 뭐라고 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쳇. 아쉽다. 쟤가 한 방 먹는 꼴 좀 보고 싶었는데.

    뭐, 저렇게 분해하는 걸 보니까 나중에 뭔가 당하기는 당할 모양이지만 말이야.

    "근데 금방 왔네? 준비는 끝났어?"

    "그래. 이제 나만 준비하면 끝이지. 조금만 기다려."

    그렇게 말하면서, 미리엘은 벗고 있던 옷을 아무렇지도 않게 훌렁 벗었다.

    브라보! 그래! 바로 이거야! 난 널 믿고 있었다!

    확실히 온몸이 흉터투성이이긴 하지만, 그걸로 감춰지지 않을 정도로 여전히 멋진 몸매다.

    헬스장 모델로 적임일 것 같은 예쁘게 발달한 근육들이 일품이다.

    나는 눈을 돌리지 않고 미리엘의 알몸을 대놓고 빤히 쳐다봤다.

    그냥 감상만 하는 것뿐이니까. 딱히 바람피우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돈 괜찮잖아?

    미리엘도 내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방 한구석에 놓여있던 갑옷들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오오. 지금 허리를 굽히면서 성기가 제대로 보였어. 다듬어진 몸에 잘 어울리는, 꽤나 잘 물어줄 것 같은 성기다.

    "으아, 아으으, 에잇!"

    그때 갑자기 뭔가가 내 시야를 가렸다.

    방금 목소리를 들어보자면 실비아라고 생각하는데.

    설마 그 실비아가?

    만약 질투심이란 게 정말로 생겼다고 해도, 얘가 이렇게 그걸 표출할 거라곤 생각할 수 없는데.

    얘는 우리 파티 내에서 자기 위치를 실제보다도 더 낮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말이다.

    "실비아?"

    "죄, 죄송합니다! 구원님! 하지만…!"

    죄송해? 뭔가 수상하다. 아, 설마….

    "너 올 때 셋이 뭐라고 했어?"

    그러자 실비아의 몸이 움찔하고 떨렸다.

    "아, 아, 아, 아무 말 안 했습니다!"

    응. 그렇게 오래 붙잡고 있었는데 아무 말 안 했을 리가 있냐?

    아무래도 내 생각이 맞았던 모양이다.

    실비아는 우리 애들에게 호위 외에 다른 임무를 하나 더 부여받은 거다.

    내가 아라크네 클랜원에게 손을 못 대게 한다는 임무 말이다.

    어쩐지. 아까 앨리시아랑 말할 때도 말을 끊으려고 하더라니.

    "그래? 그럼 지금 네가 이러는 건, 나랑 껴안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도 되겠지?"

    "네헵?!"

    나는 뒤에서 달라붙어 내 두 눈을 가리는 실비아를 향해 돌아서서, 실비아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좋아. 그렇게 원한다면 던전까지 이러고 가기로 하지."

    "히야악! 히으으으으응! 구, 흐응! 구원니임!"

    우워! 갑자기 야릇한 신음소리 내지 마라!

    내가 깜짝 놀라서 실비아를 끌어안고 있던 손을 떼자, 실비아가 후다다닥 방구석으로 도망갔다.

    허억 허억 하고 숨을 몰아쉬면서 두려운 눈초리로 이쪽을 보지 마라. 내가 뭔 짓을 한 것 같잖냐. 그냥 끌어안기밖에 안 했다고.

    "야. 젖은 건 아니지?"

    "아, 아, 안 젖었습니다! …아마."

    내가 혹시나 싶어서 질문하자, 실비아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대답했다.

    저거 허벅지끼리 비벼대는 게 조금 수상한데.

    아무튼 이걸로 실비아가 내 눈을 가릴 수 없게 됐다. 이제 맘껏 미리엘의 알몸을….

    "그쪽 클랜도 꽤나 소란스럽군."

    젠장! 왜 벌써 다 입은 거야! 갑옷이란 거 원래 입기 복잡한 거잖아! 시간 좀 더 걸려도 되는 거 아냐?!

    "저래서야 정말로 던전에서 제대로 싸울 수 있는 건지 의문스럽군."

    "괜찮아. 저래 봬도 싸울 땐 제대로 싸우니까."

    하지만 아무리 아쉬워도 다시 벗으란 헛소리를 할 수도 없는 일이라, 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쳇. 괜찮다고. 그딴 거 안 봐도 어차피 우리 애들 몸매가 훨씬 더 좋거든.

    앞으로 며칠 동안은 못 보겠지만….

    젠장. 벌써부터 던전에 가기 싫어졌다.

    "그럼 갈까."

    미리엘은 내 퉁명스런 표정에 딱히 신경 쓰는 기색도 없이,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미리엘을 따라 밖으로 나가자, 거기에는 각약 각색의 차림의 사람들이 총 다섯 명 서있었다.

    미리엘과 앨리시아까지 포함해서 정확히 간부 일곱 명.

    클랜 이름값을 못 하는군.

    이왕 거미를 모티브로 클랜 명을 지었으면 간부도 여덟 명이 있어야 정상 아냐? 상식적으로 말이야.

    "그런 표정 짓지 않아도 돼. 한 명은 5계층에서 대기하고 있으니까. 약속대로 이번 던전 행에는 간부 전원이 나설 거야."

    내 표정을 읽기라도 한 듯, 미리엘이 그런 보충 설명을 해왔다.

    역시 여덟 명이었냐. 클랜 이름 값 톡톡히 하네.

    뭐 굳이 간부 숫자가 아니더라도 이름값은 충분히 하고 있지만 말이다.

    성행위 후 수컷이 죽는다는 의미에서.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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