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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293화 (277/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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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뢰 준비

    "자네는 대체 실비아양에게 무슨 짓을 한 겐가?"

    "아니. 그냥 평범하게 한 것뿐인데…."

    "그럼 저 모습은 뭔가?!"

    디아나는 식당 구석에서 찌그러져서 나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있는 실비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걸 나한테 물어봐도…. 야. 실비아."

    "히이이익! 네, 넵!"

    "너 왜 그러냐?"

    "아, 아,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긴. 그보다 적어도 대답할 때 정돈 사람 얼굴을 보고 해라."

    "히으으응! 아, 아, 안됩니다! 무리무리! 무리입니다!"

    내가 실비아에게 다가가서 억지로 얼굴을 돌리려고 하자, 실비아가 바들바들 떨면서 필사적으로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뭐가 무리라는 건데?"

    "우으으으…지, 지금 얼굴 보면 느낍니다!"

    내가 얼굴을 붙잡고 있는 것도 견디기 힘든 건지, 결국 실비아가 양심 고백을 해왔다.

    "뭐, 뭐?!"

    "지금 얼굴 보면, 그러니까, 그, 어젯밤 생각이 나서…느, 느껴버립니다!"

    "……."

    나는 실비아의 얼굴을 놔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거였어? 뭐 확실히 일어났을 때도 기절을 하기는 했지만…그냥 힐링 섹스 때문인 줄 알았는데.

    사실 실비아는 오늘 벌써 기절을 한 번 했었다.

    어젯밤에 기어코 여덟 번 사정을 끝낸 나는 당연히 힐링 섹스를 위해 실비아와 연결된 채로 잠을 잤고, 아침에 일어난 후에도 실비아가 일어날 때까지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실비아는 눈을 뜨자마자 멍한 표정으로 상황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커다란 눈을 몇 번 끔뻑끔뻑 움직이더니, 갑자기 급속도로 진동을 시작했다.

    "구, 구, 구, 엣? 세, 세, 세, 히우으으으으…."

    이상이 실비아가 일어나서 다시 기절할 때까지 내뱉은 말의 전부다.

    실비아는 일어나마자자 곧장 내 가슴에 다시 얼굴을 처박고 기절하면서, 허리를 부들부들 떨었다.

    일어나자마자 절정을 느끼면서 기절하다니. 하여간 곤란한 녀석이 아닐 수 없다.

    뭐, 기절한 본인은 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한 표정으로 기절해있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래서 난 실비아가 다시 일어나기 전에 결합을 풀고 먼저 옷을 입을 수밖에 없었고, 나중에 다시 일어난 실비아는 그 이후로 계속 이렇게 나에게서 떨어져서 얼굴도 안보고 있었다.

    그게 설마 얼굴만 봐도 위험할 수준이라서 그런 거였다니.

    어제 그렇게 해댔으니 조금 내성이 붙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역효과가 났나?

    정신적 만족감으로 쾌감을 느끼는 애한테 너도 나름 소중하다고 했던 게 어쩌면 가장 큰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걸로 알았지? 난 잘해준 것밖에 없어."

    "…그, 그렇구먼."

    실비아의 외침에 과연 디아나라도 기가 막혔던 건지, 디아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구석에 있는 실비아는 무시하고 식사를 하기로 했다.

    "구원, 아라크네 클랜에는 언제 갈 생각이야?"

    "응? 밥 먹으면 바로 갈 생각인데."

    "꽤, 꽤나 급하게 가네요."

    "응. 이런 건 빨리빨리 처리해버려야지."

    "준비는 다 끝난 겐가?"

    "준비랄 게 있겠어? 난 그냥 뒤에서 성자 스킬만 몇 번 쏴주면 되는 건데."

    "무슨 소리인가! 5계층에 가는 걸세! 자네 레벨에 5계층에 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 겐가?! 만약의 일이 생기면 이 몸은…이 몸은…."

    "미안. 그래도 걱정 마. 6계층에서도 날고 긴다는 아라크네 클랜의 간부들이 총출동하는 거잖아. 설마 그렇게 위험하겠어?"

    "아무리 그래도 던전에선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걸세! 당장 실비아양만 해도 개미굴에서 위험에 처한 적이 있지 않은가! 만약 그런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하면, 그자들은 스스로의 몸을 던져서 자네를 지키려고 하지 않을 걸세. 결국 마지막엔 스스로에게 달려있다는 말일세."

    그거야 그렇다. 미리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킬 거라고 확언했지만, 막상 자기 목숨이 경각에 놓이게 된 상황이 들이닥친다면 그런 약속을 지킬 수 있을 리가 없다.

    "응. 미안. 조심할게."

    "…여, 역시 의뢰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디아나의 말을 듣고 불안해진 건지, 레이아가 안절부절못하면서 내 안색을 살폈다.

    "아니. 거기 클랜장이 이미 마나의 계약까지 썼거든. 그렇게는 못해."

    "…구원. 정말로 조심해야 돼."

    사라까지도 걱정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내 손을 꽉 붙잡았다.

    "…이 몸이 레벨만 조금 더 높았다면 같이 따라가겠네만…."

    디아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사실 준비기간이 한 달 정도 된다면 가능한 얘기이긴 하다.

    차라리 실비아와 섹스를 엄청나게 해서 내 레벨을 실비아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그걸 바탕으로 디아나의 레벨을 집중적으로 올려주면 되는 거니까.

    뭐, 그러려면 내가 한 달 내내 실비아하고 디아나만 안고 있어야 되기는 하겠지만.

    뭐, 아무튼 이래저래 불가능한 얘기라는 거다.

    "…저, 저기…!"

    그때 구석에 처박혀있던 실비아가 갑자기 소리를 높였다.

    여전히 내 얼굴을 보기 힘든지 눈은 꽉 감고 있었지만, 그래도 일단 고개는 이쪽을 향해있었다.

    "그, 그렇다면, 제, 제가 따라가는 건 어떻겠습니까?!"

    실비아는 그런 말을 외쳤다.

    "응? 네가? 아니, 너 레벨이…."

    아마 미리엘이랑은 비교가 안 되게 낮을 텐데?

    미리엘의 레벨은 내 애널라이즈로 확인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그에 반해 실비아의 레벨은 아직 187.

    분명 나하고 비교하면 엄청나게 높지만, 그래도 5계층에 가기에는…아니 잠깐. 앨리시아는 실비아보다 레벨이 좀 더 낮지 않았던가?

    간부 전원이 간다고 했으니, 분명 앨리시아도 이번 의뢰에 참가할 텐데?

    "실비아양 자네 기사직 레벨이 어떻게 되는가?"

    "184입니다."

    예상 외로 엄청나게 높았다.

    뭐야 얘. 직업 레벨이란 거 올리기 힘든 거 아니었어? 내 무투가 레벨은 아직도 60대에서 놀고 있는데.

    그런가. 어렸을 때부터 레벨은 미리 왕창 올려놨었으니까, 남는 시간에 기사 수행만 엄청나게 한 건가.

    "흠…확실히 직업 레벨은 충분하네만…게다실비아양은 던전에 익숙지 않으니…5계층의 주인과 싸울 때는 조금 위험할 수도 있고…."

    디아나는 턱에 손을 대고 고심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곧 고개를 들고 곧은 눈동자로 실비아를 쳐다봤다.

    "실비아양, 괜찮겠나? 확실히 자네 직업 레벨은 5계층을 다니는 여타 모험가들에게 전혀 뒤지지 않네. 하지만 자네는 던전에 익숙지 않네. 이 몸들 셋을 감싸기 위해서였다고는 하지만, 고작 2계층 보다 조금 더 강한 개미굴에서 그 정도 상처를 입었을 정도로 말일세. 아마 5계층의 주인과 싸울 때는 그 이상으로 위험할 걸세. 그래도…."

    디아나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알았다는 듯, 실비아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전 괜찮습니다! 구원님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그보다…그, 여러분이야말로 제가 가도 괜찮은 겁니까?"

    "음? 무슨 소리인가?"

    "여러분은 구원님을 며칠 동안 못 보시는데, 저 같은 게 구원님과…."

    "실비아씨."

    실비아의 말에 레이아가 마치 혼내는 것처럼 실비아의 이름을 불렀다.

    "저 같은 거라니.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실비아씨도 소중한 저의 동료인 걸요."

    "그래요 실비아. 그리고 아무리 우리라도 그렇게까지 질투심이 강하지는 않다고요."

    사라도 옆에서 시원스런 미소를 지으면서 긍정해줬다.

    "어? 질투 안 해주는 거야? 나 상처받았어!"

    "바보야! 지금은 당신 목숨이 먼저잖아!"

    난 괜히 사라를 놀리려다가 한 대 맞았지만.

    아무튼 다들 실비아가 의뢰를 따라가는 걸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확실히 나로서도 실비아가 따라가면 든든하긴 하다.

    얘가 지금은 이렇게 나랑 눈도 못 마주치고 있지만, 또 전투 상황이 되면 제대로 할 일을 할 테니까.

    그리고 솔직히 아는 사람이 같이 있는 게 더 편하기도 하고.

    "하지만 실비아가 따라간다고 해도, 아라크네 클랜 쪽에서 받아들일까? 이미 나 혼자 간다고 얘기해뒀잖아. 걔들 입장에선 짐이 늘어나는 거라고 느낄 수도 있을 텐데?"

    "음. 그쪽에서 전혀 신경 쓸 필요 없이, 그저 자네의 호위로만 따라가는 거라고 얘기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네만. 실비아양이 던전에서 사용할 짐은 자네가 챙겨 가면 문제없을 테고 말일세. 일단 얘기라도 해보는 게 어떻겠나?"

    "뭐, 걔들이 받아들이든 안 받아들이든 일단 얘기를 해볼 가치는 있다는 건가."

    "그런 걸세."

    "그럼 제가 의뢰를 따라가겠습니다. 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구원님은 절대 안전하게…!"

    "응. 그렇게 말해주는 건 기쁜데, 이왕이면 네 안전도 챙기면서 하자고. 네가 다치면 우리도 슬프니까."

    "하우으읏…네, 네엣…."

    힘차게 외치던 실비아의 기세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그럼 실비아양. 아무쪼록 이 자를 잘 부탁…."

    "잠깐만요!"

    그렇게 실비아를 데리고 가는 게 결정됐을 때, 가만히 식사를 하고 있던 마틸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외쳤다.

    쟨 또 왜 저래?

    "사정은 전부 파악했어요!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죠! 저도 같이…!"

    "아니 필요 없어. 그보다 엿듣고 있었던 거냐."

    "엿듣다니!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그렇게 당당하게 얘기하고 계셨으면서 무슨 소리인가요?!"

    뭐, 그건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남들이 대화하는데 제삼자가 껴드는 건 매너가 아니라고 생각해.

    "정말 실례되는 남자로군요! 모처럼 제가 도와드리겠다고 하는데."

    "아니. 그러니까 필요 없다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죠? 목숨이 걱정 되시는 거죠? 제가 같이 가면…."

    "아니. 너 뭐 들었냐. 엿들을 거면 좀 제대로 엿들어라. 그쪽 클랜에선 짐이 늘어난다면서 싫어할 수도 있다니까? 실비아는 레벨이 맞는 전투직이니까 그나마 짐이 아니라고 설득할 수 있지만, 넌 사제잖아. 완전히 누가 보호해주지 않으면 안 되는 직업이잖아."

    "흐흥!"

    마틸다가 갑자기 코웃음을 쳤다. 묘하게 열 받는다. 저거 진짜 연기로 저러는 거 맞아? 원래는 상냥한 성격이라는 거 확실해?

    "제가 비록 지금은 대사제로 직업을 옮겼지만, 원래는 성기사 출신이었어요. 적어도 그쪽 분만큼은 강할 자신이 있네요."

    내가 알기론 성기사는 아마 100레벨에 전직 가능한 직업이었을 거다.

    일단 성직자의 직업은 처음엔 사제로 고정되어있고, 그 이후에 둔기를 이용한 전투와 신체 강화를 주로 사용하는 성직자와 치유 마법을 더 전문적으로 다루는 대사제로 전직이 나뉘는 구조다.

    그런데 이 마틸다가 원래는 성기사였다고?

    내가 확인을 위해 레이아를 돌아보자, 레이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사정이 대충 짐작은 갔다.

    성기사란 건, 아마 대사제보다 대외적인 활동이 많은 위치겠지.

    하지만 마틸다는 함부로 밖에 다닐 수 없는 저주에 걸렸으니까 말이다.

    그에 따라 신전에서 가만히 지내면서 같은 계열의 직업인 대사제로 직업을 옮긴 거겠지.

    "아시겠나요? 전투능력도 뛰어나고, 다른 대사제들보다는 조금 뒤쳐진다고는 해도 치유마법마저 가능한 저야말로, 당신을 지킬 수 있는 최고의 인재라는 걸. 그렇군요. 당신이 제발 부탁한다고 머리를 숙인다면 같이 가드리죠!"

    마틸다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아니. 필요 없어."

    "어, 어째선 가요!"

    그 자신에 찬 얼굴이 순식간에 울상으로 변하며 외쳤다.

    "너랑 있으면 언제 고자될지 모르잖아."

    "그건 제가 좋아해야 가능한 얘기거든요! 누, 누가 당신 같은 사람을!"

    "마틸다."

    "네에…."

    내가 목소리를 깔면서 진지한 표정으로 마틸다의 이름을 부르자, 마틸다의 뺨이 곧바로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역시 넌 필요 없어!"

    "이, 이건 아니에요! 그냥 대답한 것뿐이잖아요?!"

    아니기는! 네 방금 눈빛은 완전 사랑에 빠진 여자의 눈빛이었어!

    사람이 어쩜 저러냐? 조금 그럴듯한 분위기를 내면서 이름만 불러도 저런 반응이라니!

    "흠. 마틸다양. 부탁해도 되겠는가?"

    하지만 옆에서 듣고 있던 디아나는 갑자기 마틸다에게 그런 말을 건넸다.

    "디아나?! 너 미쳤어?!"

    "떼끼! 그게 무슨 말버릇인가!"

    "하, 하지만! 너도 내가 왜 이러는지 알잖아! 낭군님 고자 만들고 싶어?!"

    "낭군님이 죽는 것보다는 낫네."

    "야! 아무리 그래도!"

    "그리고. 사실 지금 모습을 보면 그다지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구먼. 여태 잘 해오지 않았나."

    "하, 하지만! 그래! 다른 남자도!"

    "이 몸이 알기론 아라크네 클랜의 간부 중에 남자는 없을 걸세. 5계층에서 다른 남자 모험가를 만날 거라고 생각하기도 힘들고 말일세. 자네만 조심하면 되네."

    "구원. 나도 디아나의 말에 찬성이야. 난 구원이 잘 해낼 거라고 믿어."

    "그래요. 구원씨. 그리고 만약 구원씨가 불구가 되신다고 하더라도 저희 마음이 변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안심하세요."

    크윽. 사라야. 레이아. 지금의 나에게는 그 다정한 말이 너무 무거워.

    "결정이군요!"

    마틸다는 활짝 웃으면서 날 쳐다봤다.

    "으악! 이쪽 보고 웃지 마!"

    "그, 그런 뜻으로 웃은 거 아니거든요?! 정말 실례로군요!"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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