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284화 (268/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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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 준비

"과연. 대충 납득은 됐어. 그런데 앨리시아가 정보 공유를 해주겠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그 얘기는 없네?"

"음? 쳇. 뭐야. 정말로 그 얘기까지 꺼냈던 거냐."

미리엘이 앨리시아를 바라보면서 못말리겠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데려오라고 한 건 미리엘이잖아? 난 잘못 없어."

"그건 그렇지만…뭐, 어쩔 수 없지. 좋아. 그럼 그걸로. 대신 이쪽도 5계층의 주인뿐만 아니라 가는 도중에 만나는 놈들 성기는 몽땅 얻어낼 테니까 각오하라고."

"흠. 역시 이 몸은 웬만하면 거절하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하네만."

"그러니까 걱정 할 것 없어. 아라크네 클랜의 간부 전원이라고. 전원. 만에 하나라도 5계층에서 잘못될 일은 없어. 네 남자는 무사하게 돌려준다고 약속하지. 꼬마 아가씨."

미리엘은 특유의 상큼한 미소를 지으면서 디아나에게 대답했다.

겉모습만 보면 잘생긴 놈이 우리 디아나를 유혹하는 것 같아서 미묘한 기분이다.

"흠. 꼬마 아가씨라니. 이 몸이 적어도 자네보다…크흠. 이 몸의 소개가 늦었군. 다이애나 텔루나일세."

디아나는 자신의 나이에 관해 말하려다가, 내 눈치를 살짝 보고는 말을 바꿨다.

과연 나이를 신경 쓰는 건 내가 있을 때뿐인가. 귀여운 녀석. 앞으로도 종종 놀려줘야지.

"…뭐?"

디아나의 자기소개에 과연 미리엘도 말문이 막힌 모양이었다.

"동명이인…은 아니겠지. 은발의 엘프고. 이거이거. 실례했군요.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과연. 아무리 특수한 직업을 가지고 있어도 차례차례 새로운 발견을 해대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었는데. 설마 옆에 있는 게 지고의 대마법사님이었다니."

야. 성기의 활용법을 알아낸 건 나 맞거든?

뭐, 성자 스킬을 몬스터한테 쓰라고 말해준 건 디아나가 맞긴 하지만 말이야.

아무튼 미리엘은 상당히 놀란 모양이다.

하지만 뭔가 예상했던 것과는 반응이 달랐다.

마법을 쓴다고 했었으니까, 분명 다른 마법사들처럼 껌뻑 죽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대형 클랜의 클랜장으로서 그런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는 걸까?

"그쪽도 분명 마법을 쓴다고 했었지."

"잘 알고 있군. 내 소문을 들은 적 있나보지?"

"아니. 발견한 비밀 통로는 모두 알려준다는 약속을 어떻게 믿냐고 하니까, 앨리시아가 댁이랑 마나의 계약을 하라고 해서."

"…앨리시아."

"뭐, 뭐? 문제 있어?"

"…됐다. 그래. 그럼 지금 당장 마나의 계약을 해주지."

미리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바로 마나가 담긴 목소리로 계약 내용을 읊었다.

디아나가 보는 앞에서 속임수를 쓸 수 있을 리도 없고, 분명한 마나의 계약이었다.

"시원하네."

"어차피 약속은 지킬 생각이니까. 리스크가 없는데 망설일 이유가 없지. 게다가 이쪽이 이렇게까지 해줬으니 이제 위험해서 못가겠단 말은 못하겠지?"

과연. 그런 속셈이었나.

"미안. 디아나. 그렇게 돼버렸네."

"으으으으으음."

디아나는 조금 마음에 안든다는 표정을 짓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쩔 수 없구먼. 그래서, 의뢰는 언제부터 할 셈인가?"

"우린 빠를수록 좋은데…그쪽은 언제부터 출발할 수 있는데?"

"그럼 내일부터 하는 걸로 하지."

"음? 내일?"

내일이란 말에 어째선지 디아나가 날 쳐다봤다.

"자네 말일세…."

"응? 왜?"

"대체 실비아양은 또 언제 안은 겐가!"

"잠깐 그건 무슨 소리야?"

"자네가 그러지 않았나! 다들 한 번씩 안아주기 전에는 의뢰하지 않을 거라고! 그런데 내일 의뢰를 간다는 건, 이미 실비아양을 안았다는 소리 아닌가!"

"구원 당신 그런 이유로 의뢰를 안 하고 있었던 거였어? 게다가 실비아하고 벌써…. 확실히 실비아를 안아도 된다고 인정해주긴 했지만, 혹시 우리보다 더 자주하고 있는 거 아니야?"

디아나의 말에 촉발되어서 사라의 눈초리도 날카로워졌다.

"잠깐! 오해야! 한 번씩 안아준다는 건 너희랑 레이아까지 셋만 말한 거지! 실비아랑은 던전에 다녀와서 한 번도 안 잤어! 그렇지! 실비아! 너도 뭣 좀 말해봐!"

"…네. …사실입니다."

실비아는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런 실비아의 표정을 보고, 사라와 디아나의 눈에 이번에는 동정의 빛이 감돌았다.

"자네 말일세. 아무리 그래도 너무한 것 아닌가."

"진짜로 구원은 섬세함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니까."

아니. 너희가 무섭게 쳐다보니까 그런 거잖아!

그리고 조금 매정하게 보일지 몰라도, 이게 맞는 거잖아! 실비아를 너희랑 똑같이 대할 수는 없는 노릇 아냐?

"이보게. 미리엘이라고 했던가."

"네."

"의뢰는 모레부터 하는 것으로 하세."

"디, 디아나? 갑자기 무슨?"

"구원은 조용히 해."

사라는 풀죽은 실비아의 어깨를 감싸 안고는 다독여주면서 말했다.

억울하다. 그렇다고 내가 진짜로 실비아랑 매일 뒹굴었으면 화냈을 거면서.

"모레라…. 그러죠. 이틀정도라면."

"그리고. 이 몸이 자네에게 당부할 말이 있네만."

"말씀하시죠."

"이자는 이래 봬도 이 몸의 남자일세.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거라고 믿네. 아무쪼록 의뢰를 하는 동안 자네 클랜 사람들이 알아서 잘 대해줄 거라고 믿네."

"…진심이십니까?"

"자네는 이 몸이 농담하는 것으로 보이나?"

"…알겠습니다. 지고의 대마법사님이 그러길 원하신다면."

방금 대화를 해석해보자면 이런 뜻이겠지.

디아나는 내 남자니까 손대지 말란 거고, 그에 대해 미리엘은 우리랑 자면 레벨을 엄청 올릴 수 있을 텐데 진심이냐고 물어 본 거다.

아무래도 모험가로서는 레벨 업 기회를 스스로 걷어찬다는 것이 믿기 힘든 선택일 테니까.

하지만 디아나는 굳게 고개를 끄덕였고, 미리엘은 그걸 받아들였다.

디아나가 저렇게 못박아두지 않았다면, 여기 클랜 사람들은 호기심 때문에라도 날 덮쳤을 거다.

입구에서 봤던 그 눈빛을 생각해보면 확실해.

디아나는 애초에 이것 때문에 온 거니, 목적은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이걸로 내 정조는 무사하게 됐다는 거다.

조금 아쉽…아냐! 아쉽지 않아! 난 얘들뿐이야!

"그럼 얘기는 끝난 것 같군. 가세."

"아, 입구까지 배웅해드리겠습니다."

우린 미리엘의 배웅을 받아 클랜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디아나. 의뢰를 모레부터 한다고 한 건 역시…."

"며칠 동안은 얼굴도 못 보는 것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실비아양이 너무 가엽지 않나."

"너 내가 실비아를 안은 줄 알았을 때는 화낸 주제에."

"구원도 참! 그거하고 이거하곤 다른 얘기지!"

"음! 그렇다네! 자넨 정말 여심이란 걸 모르는구먼!"

아니. 대충 알 것 같기는 해. 얘들도 속으론 복잡한 거겠지.

일단 실비아를 안아도 된다고 허락은 했는데, 막상 내가 몰래 실비아를 안았다는 생각이 들면 화나고. 그렇다고 아예 안지 않겠다고 하면 또 실비아가 불쌍하고.

한마디로 말해서, 사라도 디아나도 너무 착한 게 문제라는 거다.

나는 그저 사라와 디아나를 양옆으로 꽉 껴안아줬다.

"사라, 디아나. 사랑해."

"흥. 아무튼 나도 이런 바람둥이한테 빠져서 고생이라니까. 난 구원만 사랑하는데."

"그렇다네. 자, 다시 한 번 기회를 줄 테니 이번엔 제대로 말해보게. 이 몸의 이름만 부르면서 말일세."

"잠깐! 디아나! 치사하잖아요!"

"이런 건 먼저 말한 자가 임자일세!"

"그러신가요? 그런데 제가 먼저 구원이랑 사귀게 됐을 때 디아나가 어떤 반응을 보였었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걸세!"

하여간 얘들은…잘 나가는가 싶더니 결국 이러기냐.

나는 둘의 말다툼에 휘말리기 싫어서, 슬쩍 둘에게서 떨어져 뒤에서 걷고 있던 실비아에게 다가갔다.

"실비아."

"네. 구원…히야아아아악!"

"넌 뭘 풀죽어 있는 거야. 애초에 쟤들이랑 다른 취급 받을 거란 걸 알고도 내 옆에 있고 싶었던 거 아니었어?"

"아우, 아우, 아우…."

내가 귓가에 속삭이자, 실비아는 언제 풀이 죽었냐는 듯이 새빨개져서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입을 뻐금뻐금 댔다.

"그렇다고 네가 싫다는 건 아니니까 말이야. 예쁘고. 부드럽고. 오히려…."

"아, 아으으으으…."

"구원! 당신은 또 은근슬쩍 실비아하고!"

"하여간 조금도 방심할 수 없구먼!"

실비아의 패닉에 빠진 목소리가 컸던 건지, 말다툼을 하던 사라와 디아나가 동시에 이쪽을 향했다.

"어? 아니, 얘가 아까부터 너무 풀죽어 있으니까 좀 위로해주려고…."

"당신은 누굴 위로할 때마다 그렇게 껴안고 뺨을 얼굴 전체에 문질러대면서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여?!"

"왜? 부러우면 사라도 해줄까?"

"그, 그런 거 아니거든?!"

"……이 몸은 그런 거니 해주게!"

옆에서 잠깐 생각하던 디아나는, 실비아를 빤히 쳐다보더니 뭔가 결심한 얼굴로 외쳤다.

"잠깐 디아나!"

"사라양. 자넨 아직 멀었구먼. 잠깐의 창피함만 참으면, 행복을 계속 누릴 수 있다는 걸세!"

"과연. 디아나야. 연륜이 묻어나는 말씀이로군."

"음. 이 몸이 폼으로 나이를 먹은 게…나이 그리 안 많네!"

"누가 뭐래. 자 이리와. 부비부비 해줄게."

나는 이미 혼절 직전 상태까지 몰린 실비아를 놔주고, 디아나를 끌어안았다.

"자네는 언제까지 이런 걸로 이 몸의 기분을 풀 수 있을 거라고…좀 더 강하게 하게! 실비아양은 뺨에 자국이 남을 정도로 하지 않았나!"

"분부대로 하죠. 우리 디아나는 말랑말랑하고 좋은 냄새도 나고 참 이렇게 껴안고 있기 좋다니까."

"어딜 만지면서 말랑말랑하다고 하는 겐가! 어딜 만지면서!"

마침 디아나의 배에 팔을 두르고 있었기 때문에, 이상한 오해를 산 모양이다.

"아냐. 그런 거 아냐. 말랑말랑하다고 한 건…가슴?"

"지금 이 몸을 놀리는 겐가! 왜 의문형인가?! 확실히 말하게!"

"그럼 역시 볼이 말랑말랑한 걸로…."

"역시란 게 뭔가! 역시란 게!"

디아나는 토닥토닥 내 몸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게 떨어지라고는 하지 않고 몸을 비벼오는 걸 보면, 부비부비하는 걸 멈추라는 말은 아닌 모양이다. 귀여운 녀석.

"으으으으! 치사해! 나도 껴!"

그리고 내가 이렇게 디아나와 노닥거리자 보고만 있기 힘들어진 건지, 사라가 결국 달려들었다.

"응? 사라는 아까 필요 없다고 하지 않았었나?"

"으읏. …하, 하지만…."

"흠. 정 사라도 껴주길 원한다면…그래. 최대한 깜찍한 표정으로 ‘오빠. 사라도 부비부비 해줘.’라고 말하면 생각해보지."

"지, 진심이야?!"

"무지막지하게 진심이야."

"으, 으으…. 잠깐의 창피함만 참으면 행복은 계속. 잠깐의 창피함만 참으면 행복은 계속…. 오, 오빠! 사라도 부비부비 해줘!"

사라는 아까 디아나가 했던 말을 빠르게 몇 번 반복하더니, 이내 평소보다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제 딴엔 깜찍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우와. 사라야. 너 그 표정 진짜 안 어울…."

"으, 으아앙! 잊어! 당장 잊어버려!"

"야! 잠깐! 아파! 사람 기억이란 건 머리 때린다고 날아가는 게 아냐! 사라야! 미안! 잘못했어! 항복! 실은 무지 귀여웠어!"

"잊어버려! 얼른 잊어버려!"

"으악! 디아나! 좀 도와…!"

"아까보다 힘이 빠졌네. 이 몸이 부끄럼도 참고 해달라고 한 걸세. 좀 더 확실히 하게나."

도움을 요청해봤지만, 디아나는 도와줄 생각이 요만큼도 없는 것 같았다.

젠장. 여자들이 벌거벗고 다니는 아라크네 클랜 하우스는 잘 빠져나와놓고는, 내가 왜 길거리에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거지.

"시, 실비아! 헬프!"

"네, 넷?! 하, 하지만…."

심지어 실비아도 날 도와주지 않았다.

큭. 역시 잘 알고 있잖아.

우리 세이비어스 클랜의 서열이 어떻게 되는지 말이야!

절대적인 천사로 군림하는 레이아님이 1위, 각각 물리와 마법을 담당하는 사라와 디아나가 그 아래를 다투며, 클랜장인 나 구원은 실비아 바로 위에 불과하다. 다른 말로 실비아를 제외하면 최하위라고도 한다.

큭. 어쩌다 이런 일이…. 밤일이라면 내가 모두를 이길 수 있는데!

아무튼 그렇게 나는 또 하나의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놀리는 것도 상대를 봐가면서 놀리자.

사라를 놀리다가 사라가 이성을 잃기라도 하면, 감당하기 무척이나 힘들어진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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