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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 준비
"자, 자. 진정해. 질투할 거…."
"구원도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셈이야?!"
"그러고 보니 그 처자도 꽤나 가슴이 크구먼! 응?!"
어, 어라? 앨리시아한테만 화난 거 아니었어?
예상외의 공격을 받은 난 당황해서 앨리시아의 가슴에서 얼굴을 떼려고 했다.
"…야. 앨리시아."
"응? 뭐냐 갑자기?"
"…좀 놓지?"
그랬다. 딱 봐도 전사 타입인 앨리시아는, 힘이 무식하게 강했다.
대체 얼마나 무식하면 내가 몸을 미는데 꿈쩍도 안하는 거야.
아니, 힘으로 진 건 아니다.
그럼. 내 보너스 스탯이 몇인데. 올인하면 이 정도쯤은 아무 문제없지.
다만 안 할 뿐이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렇게 조금이라도 더 오래 내 가슴에 닿고 싶었냐? 그런 어이없는 얘기까지 해가면서? 동정을 바친 이 누님 품이 그렇게 그리웠어?"
"…뭐?"
이, 이 정신 나간 년이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구우우워어어언!"
"야, 야. 농담 아니고 진짜 위험해. 놔!"
내가 다급하게 말하자, 앨리시아가 고개를 숙여서 내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훗. 늦게 온 벌이야. 내가 이틀 동안 우리 클랜장한테 얼마나 시달렸는데. 너도 좀 당해봐라."
앨리시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그제야 겨우 날 놔줬다.
겨우 이틀 안 왔다고 이러는 거냐?!
호탕할 정도로 시원스런 미소가 더 열 받는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사라야! 디아나야! 오해야! 저런 남자 한 번 못 사겨본 애 품 따위 관심도 없어! 오빠 믿지?"
나는 앨리시아의 팔에서 힘이 빠지자마자 앨리시아를 황급히 밀쳐내며 외쳤다.
내 그 필사적인 모습에, 둘 다 믿음이 생긴 모양이다.
디아나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누가 오빠인가 누가."
"헤헷. 누나. 나 믿지?"
"떼끼! 되도 않는 애교 부리지 말게나."
되도 않는 애교라니. 충분히 먹히는 것 같은데 말이야.
"구원. 나한테 딱 붙어있어야 돼."
사라는 뭔가 사명감에 불타는 것처럼 살짝 내 앞을 막아서기까지 했다.
뭔가 남녀 역할이 바뀌지 않았냐? 아니, 이 세계는 이게 정상인가?
미묘한 기분이다. 아니, 듬직하긴 하지만 말이야.
그리고 그 사라에게 위험시 당하고 있는 앨리시아로 말하자면, 아까 내가 한 말이 비수에 박힌 모양이었다.
"야! 내가 지금까지 남자 한 번 못 사겨본 거에 네가 뭐 보태준 거 있어?!"
"인정하는 거냐. 안 사귄 게 아니라 못 사귄 거라고."
"그런 거 아냐! 이 새끼가 진짜…!"
"푸풉! 앨리시아는! 사귀고 싶어도! 사겨줄 남자가 없었대요!"
"그, 그런 거 아니라니까! 내가 맘만 먹으면! 이 씨…!"
앨리시아는 분을 못 참고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잘못하면 한 대 치겠다? 중요한 의뢰를 맡은 이 귀중한 몸을 말이야! 크하하하!
그러게 왜 나한테 그런 어쭙잖은 도발을 걸어. 그것도 이미 약점도 파악된 애가.
난 남의 약점을 사정없이 파고들 수 있는 남자라고.
"그럼 얼른 너희 클랜장한테 안내나 해주시지. 기다리고 있는 거잖아?"
나는 승리자의 미소를 짓고 아직도 씩씩대는 앨리시아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두들겼다.
"두고 보자…."
진득한 원한을 담아서 중얼거리고는, 앨리시아는 몸을 돌렸다.
뭐, 저래도 시원시원한 성격이니까 또 금방 풀어지겠지.
앨리시아의 말에 따르면 아라크네 클랜장은 현재 자신의 방에 있다는 모양으로, 앨리시아는 절차를 전부 무시하고 집무실이 아니라 곧장 그쪽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래서 우리는 클랜원들의 숙소로 사용되는 건물에 들어가게 됐고, 전에도 본 적 있는 그 광경을 맞닥뜨리게 됐다.
반라의 여성들이 당당하게 돌아다니고 있는 그 천국 말이다.
심지어 여긴 더 레벨 높은 사람들이 사는 구간인지, 다들 전보다 미모 수준이 한 단계 더 올라간 느낌이었다.
그래봤자 우리 애들 수준은 안 되지만, 그래도 역시 눈이 호강하는 느낌이 든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이, 이건…!" "이, 이 사람들은 뭔가요?! 부끄럽지도 않은 건가요?" "으와아아…."
디아나, 사라, 실비아도 모두 그 광경에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역시 디아나도 몰랐구나.
하긴 나한테 경고할 때도 그냥 남자가 쇠약사한다는 애매모호한 얘기만 했었으니까.
"어때? 굉장하지? 우리 클랜이 자랑하는 레벨 업 시스템이라고."
앨리시아는 제법 자랑스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내가 쳐다봐도 아무렇지도 않게 눈웃음치면서 지나가는 여기 클랜원들도 그렇고, 그걸 또 자랑스러워하는 앨리시아도 그렇고, 역시 여기 클랜 사람들은 다들 어딘가 상식에 문제가 있어보였다. 칸나 파티는 성직자까지 있는데도 4p를 제안해오기까지 했었고.
"어딜 보는 겐가! 자네는 보지 말게!"
그래도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디아나는, 까치발을 들고 황급히 내 두 눈을 가렸다.
야. 어차피 저런 거 본다고 내 맘이 변하거나 그러지 않아. 그러니까 그렇게 바들바들 떨면서까지 눈 가릴 거 없어. …치워주세요.
"디아나. 괜찮아요. 제가 할 게요."
디아나가 온 몸을 뻗어서 겨우겨우 내 눈을 가리고 있는 게 안쓰러웠는지, 사라가 바통을 이어받아서 내 눈을 가려왔다.
그러니까 굳이 안 가려도 된다니까.
뭐, 이건 이거대로 등에 사라의 뭉클한 가슴이 닿으니까 괜찮긴 하지만.
결국 난 눈이 가려진 채로 각양각색의 미인들이 반라로 돌아다니는 천국을 그냥 지나쳐야 했다.
저 천국이 내 천국이 될 수 있었는데.
얘들은 저걸 뿌리치고 온 날 좀 더 아껴주고 믿어줄 필요가 있어.
그리고 건물의 최상층으로 올라가서야, 내 눈은 간신히 해방될 수 있었다.
한 층을 통째로 클랜장이 쓰는 건지, 아니면 그냥 우연히 사람이 없을 뿐인 건지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미리엘. 들어간다."
앨리시아는 그 중 한 방으로 성큼성큼 다가가더니, 노크도 없이 그냥 문을 벌컥 열었다.
방 안에는 방금 샤워라도 한 건지 촉촉하게 젖어있는 굉장한 미인이 홀딱 벋은 채 수건으로 몸을 닦고 있었다.
뭐랄까, 아름다운 것 보다는 잘생겼다는 느낌이 드는 미인이다. 동성에게 엄청나게 인기 있을 것 같다.
머리도 짧게 잘른 상태라, 얼굴만 보면 예쁘장하게 생긴 남자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몸은 적당하게 근육이 붙은 매끈한 몸매에, 가슴도 엉덩이도 적당히 볼륨이 있어서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좋은 인상이었다.
다만 몸 이곳저곳에 보이는 상당히 심각했을 것 같은 상흔들이 옥에 티였지만, 그걸 덮고도 남을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였다.
그 미인은 갑자기 문이 열렸는데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앨리시아를 쪼아댔다.
"앨리시아. 넌 그렇게 한가하게 돌아다닐 시간 있으면, 밀크 로드 메이커인지 뭔지나…."
"그러니까 그렇게 보채지 좀 말라고. 안 그래도 데려왔으니까."
"뭐?!"
그제야 미인은 우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맑고 곧은 눈빛이 인상적인 미인의 시선이 앨리시아, 실비아, 사라, 디아나를 지나서 마지막에 나에게서 멈춰 섰다.
"호오…."
그리곤 호기심에 눈을 빛내면서, 몸을 닦던 수건을 찰싹 소리가 날 정도로 기세 좋게 자신의 어깨위로 둘렀다.
그리곤 다리를 어깨 넓이로 벌리고, 수건을 잡지 않은 쪽 손은 허리 위로 올린 채 품평하듯이 날 쭉 훑어봤다.
자기 몸을 가릴 생각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모양이다. 감사하기 그지없…아니, 이게 아니지. 역시 이런 기이한 클랜은 클랜장도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
"그쪽이 밀크 로드 메이커인가."
"구원이다. 그 별명으로 날 부르지 마라."
"하핫. 기세는 좋군. 알았다. 구원. 난 미리엘이다. 그럼 갈까?"
미리엘은 호탕하게 한 번 웃더니, 여전히 옷을 입을 생각도 안하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뭐? 어딜?"
"응? 의뢰를 하러 온 거 아니었나?"
"갑자기 오자마자 무슨 의뢰야. 의뢰 관련해서 얘기를 하러 왔다고."
"그런가. 별로 얘기할 건 없다고 생각하지만. 뭐, 일단 앉아."
미리엘은 재미없다는 표정이 돼서 방 안에 있는 소파를 가리키고, 자신은 그 건너편 소파에 털썩하고 앉았다.
끝까지 옷을 입을 생각은 없어보였다.
심지어 소파에 앉아서는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있었다. 덕분에 핑크빛의 잘 여문 꽃잎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당신. 옷 좀 입는 게 어떤가요?"
그리고 언제 어느 때나 누굴 상대라도 기죽지 않는 사라가,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내 눈은 다시 양 손으로 꽉 가리고 말이다.
안 돼! 비밀의 크레바스가…!
보는 것 정돈 괜찮잖아! 바람피우겠단 것도 아니고!
"응? 딱히 그럴 필요성은 못 느끼겠는데."
좋아! 바로 그거야! 넌 너답게 살아야 돼! 자신을 굽히지 마라!
"역시 이 의뢰는 취소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구먼."
"동감이에요. 너무 위험해요."
"응? 이봐.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무슨 소리야. 구원이라면 의뢰 내내 우리가 철통같이 지키며 안전을 보장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요! 옷 좀 입어요!"
"응? 아아. 하핫. 설마 그런 얘기였던 건가. 이거 실례했군."
미리엘은 호탕하게 한 번 웃더니, 천이 곧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내 눈이 해방되었을 때는, 미리엘의 몸은 이미 옷에 단단히 감싸여져 있었다.
젠장! 그렇게 쉽게 자신을 굽히다니! 난 벌써부터 네놈에게 실망했다!
"훗. 이거 소문 이상으로 재밌는 녀석인 모양이군. 그래서, 의뢰에 대해 할 말이란 게 뭐지?"
"이것저것 있잖아. 의뢰를 언제부터 언제까지 할 건지. 보수는 어떻게 할 건지."
"뭐야. 그런 거냐. 간단하잖아. 의뢰는 지금 당장이라도 갈 수 있다. 기간은 우리가 목표로 한 놈의 성기를 얻을 때까지. 보수는…그렇군. 의뢰기간동안 사냥으로 얻은 모든 수입의 절반을 주도록 하지. 물론 그쪽이 사냥을 할 필욘 없어. 따라다니면서 돈만 버는 거야. 맘에 들지?"
"기간은 목표로 한 놈의 성기를 얻을 때까지라고 했는데, 혹시 그 목표로 한 놈이 누군지 알 수 있을까?"
"간단하지. 5계층의 주인이야."
"이 몸은 절대 반대네!"
"디아나? 갑자기 왜 그래?"
"왜 그러냐고 했나? 5계층일세! 5계층! 지금까지 던전을 가장 깊숙이 파헤친 자들도 6계층에 도달한 게 전부였네. 그런데 5계층의 주인을 상대한다는 걸세!"
"그래. 그리고 그 6계층에 도달한 파티 중 하나가 바로 우리 파티지. 걱정 마. 댁 남자는 털 끝 하나 안 다치게 할 테니까. 텔레포트 마법진도 없는 6계층에 들락거리기 위해서, 우리가 얼마나 놈을 상대해왔다고 생각하는 거야?"
"자네는 구원의 스킬을 모르니 그렇게 말하는 걸세. 구원의 성자 스킬은 몬스터 상대로 심각하게 효과가 좋은 도발기가 된다네. 성기가 얻고 싶은 게지? 그러면 구원이 성자 스킬을 써야할 거고 말일세. 계층의 주인이 다른 모든 조건을 무시하고 구원만 공격해오는데, 정말로 털 끝 하나 다치게 하지 않겠다고 장담할 수 있겠나?"
"음? 흠. 과연. 그런 문제가 있었나. 하지만 걱정할 거 없어. 그러면 우리가 놈을 상대하다가, 마무리를 하기 직전에 그 성자 스킬이란 걸 쓰면 되는 거잖아? 그리고 보통 5계층의 주인은 나하고 우리 간부들 셋 정도면 처리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번엔 그 녀석을 보호하기 위해서 우리 클랜 간부 전원이 같이 사냥에 나설 생각이야. 이정도면 조금 안심이 되지?"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어?"
모처럼 저쪽에서 그렇게까지 해주겠다는데, 나는 호기심이 생겨서 그런 질문을 했다.
아무리 성기를 얻기 위해서라지만, 과 투자하는 느낌이 없잖아 있단 말이지.
얘들은 6계층을 다닌다고 했다.
하지만 나와 다니면서 얻을 건 5계층 몬스터들의 성기라고 한다.
그렇게까지 해서 얻을 필요가 있는 걸까?
"그래. 솔직히 말하면, 6계층은 꽤나 돌아봤다고 자부하고 있어. 물론 아직 돌아보지 못한 곳도 많지만, 그래도 중간에 계층의 주인처럼 보이는 녀석도 쓰러뜨렸었다고. 아직도 아래로 내려가는 계층을 못 찾는 다는 건 이상해. 성기로 통할 수 있는 비밀통로가 있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애초에 6계층 녀석들은 성기를 얻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고 말이야. 그런데 얼마 전 2계층에서 소규모 던전을 지나 3계층의 중간으로 통하는 길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 그렇다면 5계층에서 7계층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지 말라는 법도 없는 것 아니겠어?"
그렇게 말하는 미리엘은 눈은 뭔가 확신에 차있었다.
자신이 믿는 길은 무슨 일이 있어도 관철해나가는 사람의 눈이다.
그럼 아까도 옷을 입지 말라고…아니.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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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골수팬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