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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277화 (26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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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자 구원

    "…지쳤다."

    "수, 수고하셨어요."

    저택에 돌아온 후, 나는 완전히 진이 빠져 있었다.

    레이아가 그런 내 팔을 꽉 끌어안아주면서 옆에서 다독여줬다.

    역시 나한테는 천사님밖에 없어.

    왜 이렇게 진이 다 빠졌냐고 하면, 말할 것도 없이 마틸다 때문이다.

    신전에서 내가 마지막에 한 말 때문에 완전히 풀이 죽은 마틸다는, 우리와는 조금 떨어져서 터벅터벅 따라왔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어딘지 상처받은 표정의 굉장한 미인이 혼자서 거리를 쓸쓸하게 걷고 있는 거다.

    그런 마틸다를 노리는 남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든 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때 대화가 또 가관이었는데.

    "당신같이 아름다운 아가씨가 왜 혼자서 쓸쓸히 길을 걷고 있는 건가요?"

    "네? 저, 아름답나요?"

    "물론이죠. 제가 본 그 누구보다…."

    "스토오오옵!"

    멀리서 봐도 마틸다가 남자한테 반하려고 하고 있는 게 확연했다.

    내 눈엔 마치 마틸다의 눈동자가 하트 모양으로 변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본 나는 도저히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 뭐야 당신?!"

    "뭐긴 뭐야 얘 일행이지! 꺼져!"

    "뭐? 하지만…!"

    "마틸다! 너 내 일행 맞지?"

    "네?! 네!"

    내가 마틸다를 곁으로 끌어들이면서 말하자, 어째선지 마틸다는 내 품에 폭 안겨오더니 이번엔 날 바라보면서 눈동자가 하트로 변하려고 하고 있었다.

    으악! 딴 놈 아들 구하려다가 내 아들이 죽게 생겼네!

    "야! 넌 방금 전에 내가 그렇게 매력 없다고 설파한 주제에, 이렇게 쉽게 반하려고 하냐?!"

    "핫! 바, 반하지 않았거든요?!"

    그제야 마틸다는 정신을 조금 차렸는지, 몽롱해져가던 시선이 조금 돌아오면서 외쳤다.

    나는 황급히 마틸다와 떨어져서는, 마틸다를 꼬시려던 남자에게 말했다.

    "야. 넌 나한테 평생 감사하면서 살아야 된다. 자신의 행운에 감사하면서 얼른 가봐."

    "무, 무슨 소리를…."

    "가라고."

    "칫…!"

    남자는 이해가 안가는 표정이었지만, 내가 살짝 살기를 띄며 말하자 기가 죽었는지 그대로 도망치듯 사라졌다.

    후우. 마틸다 얘는 뭔 애가 고작 예쁘단 말 한 번 들었다고 반하려고 하냐? 그런 얼굴로 태어났으면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예쁘단 말 정도는 질리도록 많이 들었을 거 아냐.

    나는 도저히 한마디 하지 않고는 지나칠 수 없어서 마틸다를 돌아봤다.

    "야 넌…."

    "당신…저 분을 도와주기 위해서 나선 건가요? 의외로 친절한 구석이…."

    하지만 돌아온 건, 다시 몽롱해져가는 마틸다의 시선이었다.

    "아니거든! 네가 불행해지는 꼴이 보고 싶어서 방해한 거거든!"

    "어, 어쩜 이렇게 성격이 나쁠 수가…?!"

    내 화려한 순발력에 의해서, 겨우 마틸다가 나에게 반하는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아직 설 수 있지? 아들아. …응. 선다. 다행이다.

    나는 마음 같아선 기특한 아들 녀석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은 심정이 됐다.

    나 자신의 명예는 시궁창으로 던져버리는 꼴이 됐지만, 그래도 아들은 지켜냈어. 이게 바로 부성애라는 녀석인가.

    아무튼 내가 상상도 못할 인간쓰레기라고 생각하게 된 마틸다는 다시 멀찍이 우리와 떨어져서 걷게 됐고, 또 다시 다른 놈팡이가 꼬여왔다.

    그때마다 나는 아까와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는 거다.

    신전에서 저택으로 올 때까지 쭉.

    아예 떨어져서 걷지 말고 붙어 다니라고 말을 해보기도 했지만, 마틸다의 저 성격 때문에 그것도 불가능했다.

    "왜요? 저랑 같이 걷고 싶으신가보죠?"

    라고 말을 하면, 대답할 방법이 없잖아.

    같이 걷고 싶다고 하면 반할 거고, 걷기 싫다고 하면 ‘그럼 이대로 갈래요.’라고 대답하고.

    덕분에 떨어져서 걷는 마틸다에게 놈팡이가 꼬일 때마다, 그걸 도와주는 과정을 반복해야 했다.

    그래도 덕분에 확실히 알게 된 건 하나 있다.

    이거 신전에 놔뒀으면 분명 하루에 적어도 수십 명은 피해자가 생겼을 거야.

    "음. 자네 왔는가. 현관에서 뭘 하고 있는…그 여자는 누구인가?"

    아무래도 디아나는 이미 길드에 다녀온 모양이었다.

    하긴 그냥 레이아가 대사제가 된 걸 보고만 하고 오는 것 치곤 우리가 좀 오래 걸리기는 했지.

    아무래도 이대로 쉴 시간은 없는 모양이다.

    "아, 디아나는 모르나보네. 마틸다 추기경이야."

    "음? 마틸다 추기경…? 뭣?! 잠깐! 떨어지게나!"

    디아나는 잠깐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화들짝 놀라서 내 허리를 양손으로 끌어안고 황급히 마틸다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끌고 가려했다.

    물론 내가 그대로 버티고 서있었기 때문에 끌고 가진 못하고 그냥 낑낑대기만 했지만.

    역시 디아나도 마틸다 추기경의 소문은 알고 있는 건가. 반응을 보니 얼굴은 처음 보는 모양이지만, 이게 위험물이라는 건 꽤나 유명한 모양이다.

    나는 그런 디아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말했다.

    "괜찮아. 걱정할 거 없어."

    난 지금 수많은 남성들을 구제해주는 대가로 자신의 명예를 희생한 덕분에, 마틸다 안에서 평가가 바닥을 치는 중이거든.

    그런데도 내가 조금만 잘해주려고 하면 표정이 몽롱해지니까 방심할 수는 없지만.

    나쁜 남자라고 생각하면서도 조금만 잘해주면 반하려고 한다니. 대체 얼마나 반하기 쉬운 성격인 거야. 지금까지 나쁜 놈한테 안 걸리고 자란 게 신기할 정도다.

    "이 분은 누구신가요? 초면에 꽤나 무례하시네요?"

    "이 저택의 주인인 다이애나 텔루나다. 너도 이름은 들어봤겠지?"

    "다이…지고의 대마법사?! 당신 같은 사람이 어째서…."

    "지금 이 몸의 낭군님께 당신 같은 사람이라고 한 겐가?"

    디아나는 여전히 내 허리에 달라붙어서, 마틸다에게 극도로 경계하는 자세를 취했다.

    "나, 낭군…?!"

    "아무튼 자세한 얘기를 해줄 테니까 일단 좀 방에 들어가자. 그리고 마틸다 얘는 바네사한테 얘기해서 방 하나 내줄 수 있을까?"

    "음?! 자네 설마…."

    디아나가 나를 의심스런 눈초리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여자를 데려와서 방 하나 내주라고 하면, 그야 오해할 만하겠지.

    하지만 디아나야. 생각을 해봐라. 상대는 좋아하면 고자로 만들어 버리는 애라고?

    "아냐. 아냐. 오해하지 마. 그 증거로 자. 봐. 알겠지?"

    "자, 자네 바보 아닌가?! 이런 데서 무슨 짓인가?!"

    나는 무죄 증명을 위해서 바로 되살아난 자존심을 썼다.

    내 허리에 달라붙어있던 디아나는 몸에 내 물건이 부풀어 오르는 감각이 느껴지자, 화들짝 놀라서는 내 배를 찰싹 때렸다.

    "우오우."

    "왜, 왜 이상한 소리를 내는 겐가?!"

    아, 미안. 내 물건이 좀 크잖아? 네가 배라고 때린 데까지 커져있었거든.

    게다가 찰싹 때린다고 때려봤자 디아나다. 주먹 쥐고 진심으로 때려도 토닥토닥 밖에 되지 않는 디아나.

    그런 디아나의 손바닥이 내 물건을 기습적으로 건드렸으니, 그야 이상한 소리가 나오지.

    "아, 아무튼 이걸로 내가 무죄란 건 알겠지? 그럼 방에 가자. 설명해줄게."

    "잠깐! 저도 같이…!"

    "아니. 넌 됐으니까."

    무사히 저택에 돌아왔으니까 더 이상 너랑 엮일 생각은 없다.

    앞으로 너랑은 최대한 얼굴도 마주치지 않겠어.

    나는 시무룩해진 마틸다를 바네사에게 맡기고, 디아나와 레이아를 데리고 내 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실비아양은 왜 자네에게 업혀있는 겐가?"

    그리고 뉴 페이스가 사라지자 드디어 눈치를 챈 건지, 디아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묘하게 불퉁한 표정인 것이, 자기 지정석을 뺏겼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야. 내 등이 딱히 네 지정석은 아니거든? 그야 언제든 업어주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말이야.

    "응? 얘? 기절했거든."

    "또 무슨 짓을 한 겐가?"

    "아냐. 별일 안했어. 그렇지 레이아?"

    "네. 그냥 많은 분들이 보는 앞에서 끌어안고 뺨과 뺨을 부비부비 하신 것 밖에 없으셨어요. 후훗. 실비아씨도 부끄럼이 많으시네요."

    으악! 레이아! 그렇게 자세하게 말할 필요는 없었는데!

    "별일 하지 않았는가!"

    결국 오늘도 디아나의 토닥토닥 공격을 맞는 꼴이 되어버렸다.

    뭐 디아나의 공격은 귀여우니까 상관없지만 말이야.

    아무튼 방에 도착한 우리는, 사라까지 불러서 한꺼번에 사정을 설명하기로 했다.

    처음 사라는 여전히 어젯밤 일이 부끄러운지 쭈뼛쭈뼛 거리면서 내 방에 들어왔지만, 다들 모여 있는 걸 보고는 쿨한 표정으로 돌아와서는 내게 다가왔다.

    살짝 아쉬워 보이는 게, 어쩌면 나랑 단 둘이 얘기하길 기대한 건지도 모르겠다.

    메이드한테는 그냥 할 얘기가 있으니까 사라를 데려와 달라고만 말했으니까 착각한 건가. 귀엽기는.

    "구원? 할 얘기가 있다고 들었는데."

    "아, 응. 새로 식객이 한 명 더 늘었거든. 사정을 조금 설명해주려고."

    나는 레이아를 통해서 여신이 강림한 것, 그 때문에 내가 교단의 성자로 떠받들어질 뻔 했지만 증거 부족으로 유보된 것, 그리고 마틸다가 우리 저택에 식객으로 살게 된 것까지 차례로 설명해나갔다.

    "…사정은 알겠어. 하지만 굳이 우리 저택에 데려올 필요는 없지 않아? 신전에 있으면 되잖아."

    "말했잖아. 그렇게 되면 매일 엄청난 피해자가…."

    "피해자라고 해봐야 죽는 것도 아니잖아?"

    "그런 말 하시면 안 돼요. 사라씨. 모처럼 여신님이 이 세상에 내려주신 축복을 받지 못하게 되는 건걸요. 그런 건 너무 불쌍해요."

    "하지만 여기 두면 구원이 그렇게 될 위험성도 있는 거잖아요? 전 다른 사람들보다 구원이 더 소중한 걸요."

    "으음…."

    레이아도 그 말에는 반박하지 못하고 살짝 곤란한 표정만 지어보였다.

    "자, 자. 둘 다 그만 해. 어차피 우리 저택에 둔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난 걔랑 마주치지 않을 생각이니까. 그리고 어차피 걔한테서 내 인상은 최악이라서 그나마 딴 놈들보단 좀 반하기 힘들 거야."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냥…. 많은 일들이 있었어."

    자신의 명예를 희생해서 무수히 많은 딴 놈 아들들을 구해낸 나야말로 진정한 성자가 아닐까? 내 직업 성자 말고 일반적으로 쓰이는 그 성자 말이다.

    "구원씨. 힘내세요. 저는 다 아니까요."

    "천사님!!"

    "우는척하면서 은근슬쩍 가슴에 달라붙지 말게!"

    쳇. 걸렸나.

    하여간 가슴에 관해서는 유독 날카롭다니까.

    "아무튼 알겠네. 자네가 교에서 인정받기 위해서인데 이 몸도 협력을 해야지."

    디아나는 내가 교에서 인정받게 된다는 사실이 꽤나 흡족한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게 명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디아나이기도 하니, 이 상황이 꽤나 맘에 드는 전개인 걸지도 모른다.

    교에서 레이아와 내 결혼식을 치러주려고 했다는 얘기는 빼먹었으니까 그런 거겠지만.

    그건 그냥 말 안하고 있는 게 맞는 거겠지?

    "디아나까지 그렇게 말한다면…. 대신 구원은 절대 그 추기경이란 사람한테 가까이 가면 안 돼!"

    사라도 결국 맘에 안 들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내게 재차 강조를 했다.

    "걱정 마. 내가 너희같이 예쁜 애들을 놔두고 어떻게 고자가 돼."

    암. 그럼 그렇고말고. 얘들을 곁에 두고 고자가 되면, 살아도 산 게 아닐 거다.

    나는 결연한 얼굴로 셋을 동시에 끌어안으려고 했지만, 반응은 의외로 차가웠다.

    "구원씨도 참…."

    레이아는 그나마 살짝 눈을 흘기면서도 싫지 않은 듯 내 품에 안겼지만.

    "자네는 걱정해주고 있는데도! 이런 상황에서까지! 그런 생각밖에 안 드나!"

    디아나는 그런 말을 하면서 토닥토닥 공격을 해왔다.

    "하여간 엉큼해가지고는!"

    그리고 추가타로 사라까지.

    잠깐! 디아나는 몰라도 사라 넌…!

    "크어억…! 큭…! 아, 안심시켜 주려고 그런 건데…. 레이아…."

    "네. 구원씨 저 여기 있어요."

    그나마 레이아가 사라의 공격을 받고 쓰러지는 날 가슴으로 받아줘서 고통이 반감됐다.

    이 가슴이야 말로 내가 꿈꾸는 유토피아. 온갖 고통에서 해방시켜주는 나만의….

    "그러니까 은근슬쩍 가슴에 달라붙지 말게! 큰 것이 그렇게 좋은가! 큰 것이!"

    "구원 이 변태가!"

    결국 이날도 마틸다로 시작된 소동은 내가 사라의 공격을 받고 기절하는 걸로 끝났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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