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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276화 (26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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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자 구원

    "그, 그러니까…그게…그래요! 저도 같이 가야겠어요!"

    "뭐? 넌 또 왜?!"

    "아까도 말했잖아요? 제 눈으로 직접 여신님이 강림하는 걸 보기 전에는 당신을 여신님의 사자로 인정하지 않겠다고요."

    "그거랑 네가 날 따라오겠다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

    "여신님이 언제 또 강림하실 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아니. 얘가 뭘 모르네. 여신님을 강림시키는 법을 깨우친 거라니까. 레이아의 의지로 여신님을 몸에 받아들일 수 있어. 그런데 한 번 여신님을 강림시키고 나면 다음에 또 강림시킬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이 필요해서 지금은 못하고 있는 것뿐이야. 나중에 다시 할 수 있게 되면 내가 레이아를 데리고 와서 보여줄게. 그럼 되잖아?"

    "아뇨! 당신이야 말로 뭘 모르시는군요. 성녀 후보였던 제가 그걸 모를 것 같나요? 하지만 여신님의 강림은 꼭 성녀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일어날 때도 있어요. 여신님이 저희에게 전할 말씀이 있으실 때 말이에요."

    과연. 그러고 보니 내가 스킬을 찍자마자 여신님이 바로 강림했었지. 그건 레이아가 발동한 게 아니라, 여신님이 직접 레이아의 몸으로 강림해온 거였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것도 시전자가 여신님을 몸에 받아들일 수 있을 때나 가능한 거지? 그런 게 아니라면 아직 나와 얘기가 덜 끝난 여신님이 지금 당장이라도 또 강림해 오셨을 테니까. 아직 1년이나 남았으니까 따라올 필요 없어."

    "하, 하지만…."

    내 말에 마틸다는 이게 아닌 데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안절부절 못했다.

    이거 왜 이렇게 따라오려고 기를 쓰지? 진짜 나한테 반한 거 아냐?

    "…야. 너 진짜 나한테 반한 거 아니지?"

    "아, 아, 아니거든요!"

    …무지무지 수상한데.

    나는 마틸다의 눈동자를 지긋이 바라봤다.

    "…읏!"

    그러자 마틸다는 내 눈을 1초도 제대로 마주보지 못하고, 고개를 홱하고 돌려버렸다.

    뭐야. 이 불안한 반응은.

    나는 혹시나 싶어서 다시 한 번 되살아난 자존심을 사용해봤다.

    이상하다. 분명 제대로 커지는데.

    "왜, 왜, 왜 갑자기 절 보고 커지는 건가요?!"

    "너 보고 커진 거 아냐! 네 반응이 하도 수상해서 제대로 작동하나 확인해본거야!"

    이게 우리 레이아가 오해하면 어쩌려고 그딴 망발을 하고 있어.

    나는 황급히 반박하고 레이아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이다. 전의 그 눈은 나오지 않았어.

    아니. 그때가 잠깐 이상했던 것뿐이고, 보통 이게 정상이지만 말이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 천사님이신데.

    "아무튼! 1년 후에 쿨타임이 다 돌 때쯤에 다시 널 부를게. 그럼 됐지?"

    "자, 잠깐만요! 그게…그, 그래! 기록을 보면 역대 성녀님들마다 여신님을 받아들일 수 있는 주기가 달랐어요! 그리고 공통적으로 성녀 경력이 길어지실수록 그 주기가 짧아지셨죠! 저 분도 성장하시면 그 기간이라는 게 줄어들 수 있는 거 아닌가요?!"

    …확실히 쿨 타임이 줄어들 요소는 몇 가지 있다.

    레이아의 레벨과 스탯의 성장. 여신 강림 스킬 레벨의 성장. 그리고 사제의 기본 패시브 스킬인 신앙심 스킬 레벨의 성장.

    "그래도 1년이나 남은 기간이 갑자기 하루가 되거나 하진 않을 거야. 그러니까 넌 그냥 돌아가서 얌전히 기다려."

    "으으으으윽!"

    마틸다는 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듯이 발을 동동 굴렸다.

    나한테 반한 게 아니라면 대체 왜 저렇게 따라오고 싶어 하는 걸까?

    "좋아요! 제가 따라가는 건 포기하죠! 대신! 앞으로 정기적으로 여기에 보고를 하러 와야 해요! 기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말이에요! 전 다음에 여신님이 강림하실 때까지 여기에 머물며 기다리기로 하죠!"

    마틸다는 결국 살짝 눈가에 눈물을 머금은 채로 날 노려보면서 패배 선언을 했다.

    뭔가 맘대로 조건을 걸긴 했지만, 저 정도 조건이면 들어주지 못할 것도 없다.

    어차피 그게 아니더라도 레이아는 여기 신전에 계속 들락날락할 테고, 나도 소피아 대사제님 얼굴을 보러 종종 올 테니까.

    "네? 마틸다 추기경님이 여기에 머무르시는 겁니까?"

    하지만 이번엔 어째선지 소피아 대사제님이 곤혹스런 표정이 됐다.

    "네. 교황청에서 여기까지 오는 것도 시간이 걸리니까요. 만약 그것 때문에 여신님을 만나 뵐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 전 참을 수 없을 거예요."

    "그, 그렇군요. …구원님. 잠깐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구원님이라고 부르지 말아 주세요. 그냥 전처럼 편하게 대해주세요. 어차피 아직 여신님의 사자라고 정식으로 인정된 것도 아니잖아요?"

    "하지만 전 이 두 눈으로 직접…후훗. 알겠어요. 그럼 그렇게 하죠. 그래서 잠깐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내 곤란한 표정을 읽었는지, 소피아 대사제는 마치 귀여운 아이를 보는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승낙해줬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면서 나에게 손짓하여 둘이서만 얘기하고 싶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갑자기 무슨 얘기지?

    내가 소피아 대사제를 따라서 방문을 나서자, 소피아 대사제가 내게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걸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마틸다 추기경님을 당신 저택으로 데려가주실 수 없을까요?"

    "네? 그건 또 왜…."

    "아까 레이아가 설명 드렸다시피, 마틸다 추기경께선 지금 남성분과 만나기 매우 위험한 상태에요. 하지만 여기는 던전 도시의 신전. 아시다시피 모험가들이 항상 드나들고, 그게 아니더라도 무척이나 많은 수의 남성 신도들이 매일 찾아오는 곳이죠. 이렇게 사람이 몰리는 장소에 마틸다 추기경이 계시는 건 조금 곤란해요. 하지만 당신 저택이라면, 당신을 제외하고는 전원 여성밖에 없는 거죠?"

    "제일 중요한 제가 남잔데요?"

    "그건 그렇지만…왠지 모르게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리고 정 불안하시면 저택에서도 되도록 얼굴을 마주치지 않고, 레이아에게 상대하게 하는 방법도…라니. 말해놓고 보니 제가 너무 이기적이군요. 죄송해요. 잊어주세요. 마틸다 추기경님은 저희 쪽에서 어떻게 해서든 남성분과 마주치지 않도록 만들어 보이죠."

    소피아 대사제님은 결연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잠깐만요."

    나는 그런 소피아 대사제의 팔을 붙잡았다.

    "제가 마틸다를 데려가죠."

    "네? 하지만…."

    "괜찮아요. 생각해보니까 그게 맞는 것 같아요. 저만 조금 조심하면 되죠. 지금까지도 그렇게 대화하면서 저주에 안 걸렸으니까, 충분히 조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소피아 대사제는 미안한 얼굴로 몇 번이나 날 말렸지만, 나는 굴하지 않고 마틸다를 데려가기로 결심했다.

    아무리 그래도 마틸다가 여기 있는 건 너무 위험하잖아.

    솔직히 마틸다 걔가 태도는 그 모양이지만, 외모 하나만큼은 추기경이라는 직함이 무척이나 잘 어울릴 정도로 예쁘다.

    그런 애가 돌아다니는데, 아무리 신전 안에 있는 사제라고 해도 껄떡대는 남자가 한 명도 없을까? 당연히 있을 거고, 마틸다는 또 그게 좋다고 반하겠지.

    수많은 피해자들이 발생하게 될 거고, 이 신전의 명성도 급락하게 될 거다.

    내가 나 한 몸 바쳐서 그런 비극을 막자고 생각할 정도로 착한 놈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 여신님이 보낸 거니까 말이야.

    여신님이 섹스 왕창 하라고 보냈는데, 설마 그런 저주에 걸리겠냐는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 있었다.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내가 절정까지 보내줬는데도 일단 마틸다가 나한테 반하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미묘하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아직까지 괜찮았던 거다. 분명 앞으로도 어떻게든 될 거다.

    "레이아. 마틸다를 저택에 데려가려고 하는데, 괜찮을까?"

    "네. 저도 그게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레이아는 아마 나와 소피아 대사제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짐작하고 있는 거겠지.

    나에게 다가와서 걱정스런 눈빛을 보내면서도,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리고는 내 팔에 팔짱을 껴서 그 풍만하신 흉부를 밀착시키신 후, 마틸다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되도록 마틸다 추기경님의 상대는 제가 하도록 할게요. 구원씨는…."

    "응. 나도 험한 꼴 보긴 싫으니까. 부탁할게."

    레이아의 말에 나도 조그맣게 대답을 해주고, 나는 마틸다를 향해 말했다.

    "그런 고로 마틸다. 넌 나랑 같이 저택에 가줘야겠다. 너도 그게 더 편하지?"

    "저, 정말인가요?!"

    대체 나한테 반하지도 않았다는 애가 뭐가 그렇게 기쁜 건지, 마틸다는 얼굴에 화색을 띄면서 좋아했다.

    "야. 나도 어쩔 수 없이 승낙하는 거지, 내가 친절해서 그런 게 아냐. 그러니까 반하지 마라."

    "아, 안 반하거든요! 누가 당신 같은 남자한테! 당신 같은 남자는 제 쪽에서 사양이에요! 오죽하면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도 제가 반하지 않고 있겠어요?! 그런 남자는 처음이에요! 정말 남자로서 매력이 없으시네요!"

    넌 지금 그게 자랑이라고 떠들고 있는 거냐? 응? 이렇게 대화 조금 하면 무조건 반하는 게 자랑이라고? 자랑 아니거든?!

    아오! 저거 진짜 연기하는 거 맞아? 일일이 신경을 긁네.

    반박하고 싶다. 반박하고 싶어서 미치겠다.

    내가 조금만 진심으로 나서면 너 같은 건 순식간에 반하게 만들 수 있다고.

    내가 진짜 남자로서 매력이 그렇게 없으면, 여신님이 날 이 세계에 자신의 사자로서 보냈겠냐고.

    하지만 내 반박에 마틸다가 수긍해버리면, 그건 그것대로 또 문제가 되어버린다.

    자칫하면 내가 고자가 될 수도 있게 되는 거니까.

    하여간 이러나저러나 귀찮은 녀석이 아닐 수 없었다.

    "레이아. 집에 가자."

    "잠깐만요! 제 말은 무시하는 건가요? 반박의 여지도 없으신가 보죠?!"

    내가 무시하고 레이아에게 말을 걸자, 마틸다가 제대로 상대해달라는 듯이 엉겨왔다.

    아 좀 그만 엉겨라! 넌 좀 자기 입장을 자각하라고!

    나는 마틸다가 입 다물고 따라오도록, 레이아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그대로 입술 박치기를 감행했다.

    또 다시 사제들 사이에서 ‘꺄아아악!’하는 환성이 터져 나왔다.

    아까부터 생각했는데 말이야. 너희 참 리액션 잘해준다.

    "구, 구원씨도 참…."

    "뭐, 뭐, 뭐 뭐하는?!"

    정작 기습 키스를 당한 레이아는 살포시 얼굴만 붉히고 내 가슴을 꼬리 끝으로 가볍게 살짝 때리는 수준의 반응을 보였는데, 마틸다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면서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그런 마틸다에게 우쭐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봤냐? 내가 진짜 전혀 매력이 없으면, 우리 천사님 같은 사람이 날 좋아해주겠어?

    나는 그렇게 마틸다를 침묵시키고는, 여전히 기절해있는 실비아를 들쳐 업으려고 했다.

    "으응…구원니임…?"

    그러자 때마침 정신을 차린 실비아가 눈을 떴다.

    좋은 타이밍이네. 마틸다를 좀 더 확실히 침묵시키기 위해서 추격타를 가해볼까.

    "일어났어? 엿차."

    나는 실비아를 그대로 안아들고, 그대로 볼과 볼을 부비부비 비볐다.

    "……엣?"

    그러자 막 눈을 뜬 실비아의 움직임이 다시 뚝하고 멈췄다.

    "아, 아, 아, 아, 아, 우아으으으으…."

    그리고는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뚝뚝 끊어지는 소리를 내뱉더니, 결국 다시 한 번 기절해버렸다.

    "훗. 봤냐? 좋아서 기절까지 하는 거? 이게 바로 그 매력 없는 남자의 마성이란 거다. 난 매력이 없는 게 아냐! 그저 너한테 매력을 보여줄 필요가 없을 뿐이지! 내가 뭐 하러 너 따위에게…."

    "구원씨. 그러지 마세요."

    더 말하면 내 말이 심해질 거라고 생각했는지, 레이아가 살며시 내 팔에 매달려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 천사님은 너무 착하시다니까. 내가 그런 말까지 들었는데도…아니. 생각해보니까 아무리 레이아가 천사님이라지만, 내가 욕을 먹을 땐 화를 내긴 한다.

    실제로 포츠 녀석도 꽤나 싫은 눈치였고.

    그렇다면 마틸다는 딱한 사정이 있으니까 이렇게 대해주는 건가.

    그래. 생각해보면 쟤도 딱한 애인데 내가 너무 심했나. 태도가 저러니까 나도 모르게 욱해서 그만.

    나는 레이아의 말대로 마틸다를 도발하는 건 멈추기로 했다.

    "……."

    이미 늦은 것 같지만 말이다.

    마틸다는 만화라면 쿠구궁이라는 글씨가 머리 위를 짓누르고 있을 것 같이 충격 받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관심 없는 남자가 너 따위한테 잘 보일 필요 없다고 한 것 정도로 저렇게까지 충격 받을 필요 없잖아?

    저런 표정을 보고 있으니까 엄청 미안하긴 한데, 저거 또 솔직히 사과하면 반할지도 모르는 거다.

    "자, 가자."

    나는 어쩔 수 없이 사과도 하지 않고 저택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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