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275화 (259/1,205)

275====================

성자 구원

아니, 소름돋고 있을 때가 아니지!

"잠깐 실례!"

그렇게 말하고, 나는 방금 입었던 바지의 앞섶을 다시 풀었다.

그리곤 바지와 속옷을 한꺼번에 잡아서 앞으로 쭉 당겨 물건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곧바로 되살아난 자존심을 사용했다.

그러자 내 아들이 순식간에 최대 크기로 솟아오르면서 바지 위로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주변에서 그 모습을 보고 ‘와아아아….’같은 탄성이 튀어나왔지만, 지금 난 그런데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후우우. 다행이다. 제대로 기능하잖아. 식겁했네.

내가 물건을 바라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는 걸 보고, 레이아가 스윽하고 내 앞을 가로막는 것처럼 다가왔다. 그리곤 살며시 내 양손을 붙잡아 바지에서 손을 떼게 만든 후,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다시 바지 앞섶을 매줬다.

"괜찮아요. 저주에 걸렸으면 그곳에 검은 흉터가 생겨야 하거든요. 아까 면밀히 살펴봤지만, 그런 흔적은 보이지 않았어요."

과연. 그래서 내 물건을 그렇게 빤히 쳐다본 거였나.

나는 레이아의 말에 안심하면서, 물건의 크기를 줄어들게 만들었다.

그건 그렇고 마틸다 저 녀석 뭐야. 완전 걸어 다니는 폭탄이잖아.

아니. 마지막에 날 밀치면서 뛰쳐나간 걸 보면 본인도 저주를 전염시킬 생각은 전혀 없었던 모양이지만 말이야.

그래도 위험하기 짝이 없는 녀석이다.

"대체 저 저주는 대체 뭔데? 갑자기 왜 나한테 전염되려고 한 거야? 내가 쟬 절정하게 만들어서?"

"…아뇨."

제일 의심되는 조건이 절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아닌 모양이었다.

"그럼?"

"…그러네요. 마틸다 추기경님도 계시지 않으니. 처음부터 자세하게 설명해드릴게요."

레이아는 그렇게 운을 떼면서,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원래 마틸다 추기경님은 대륙 전체에 그 명성이 자자할 정도로 무척 인자하고, 다정한 사람이었어요."

처음부터 믿을 수 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아니, 우리 천사님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그래도 저 시건방지기 짝이 없는 마틸다가?

내 표정을 읽었는지, 레이아는 쿡쿡하고 입을 가리면서 살포시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천사님이야말로 대륙 전체에 명성이 자자해야 할 사람인데.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마틸다 추기경님이 방금 전까지 보여줬던 태도는 그분의 원래 모습이 아니세요. 마틸다 추기경은 아무튼 친절하시고, 만인을 사랑하는, 자애에 넘치시는 분이셨어요. 그야말로 여신님의 분신이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으면서, 그 누구보다 성녀에 가까운 분이셨죠."

지금 모습으로선 도저히 상상이 안 되는데 말이야.

시건방지고 틱틱대고 오만해 보이는 눈초리하며, 뭐 하나 맞아떨어지는 모습이 없다.

"하지만 어느 날 한 저주에 걸린 여성을 만나게 된 거예요. 그녀는 고대 유물을 조사하다가 저주에 걸리게 된 모양이에요. 그 저주는 고대의 저주 중 하나라고 알려진 저주로,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는 무척 위험한 저주였죠. 저주에 걸린 여성 본인은 검은 흉터를 몸에 지니게 되고, 그 여성이 사랑하는 사람을 모두 성불구자로 만들어버리는 저주. 사랑도 교접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그야말로 여신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 같은 저주였죠."

"그러…아니. 잠깐만. 저주에 걸린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 성불구자가 된다고?"

그 설명이 정말이면, 방금 내가 겪었던 상황이 여러모로 이상하지 않아?

"네. 하나하나 천천히 설명 드릴게요. 마틸다 추기경은 그 저주 걸린 여성을 만나고, 어떻게든 구해주고 싶다고 생각을 하게 됐어요. 여신님이 이 세상에 내려주신 축복을 더 이상 경험하지 못하는 건 너무 슬픈 일이니까요. 하지만 현재 저희에게 남아있는 저주 해제 마법으로는 도저히 그 저주를 풀 방법이 없었죠. 그래서 마틸다 추기경님은 결심을 하신 거예요. 본인의 몸에 그 저주를 가둬 먼저 여성을 구원해주고, 본인에게 옮겨진 저주는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해제할 방법을 찾아보겠다고요. 하지만…."

아까 봤던 마틸다의 모습으로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들지만, 얘기만 들어보면 심각하게 착해빠진 녀석이었다.

"하지만 저주를 해제할 수 없었다고?"

"아뇨. 앗, 물론 그것도 그렇지만요. 다른 문제가 하나 있었어요."

"어떤 문제?"

"그게, 그…마틸다 추기경님은 아무래도 무척이나 쉽게 사람을 좋아하게 되시는 분인 것 같으셔서…."

"…잠깐만.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그 상대방이 성불구자가 되는 저주지?"

"…네. 원래부터 모두를 사랑하시는 자애로우신 분이라고는 알려져 있기는 했지만, 설마 그렇게까지…. 아무튼 저주에 걸린 후, 마틸다 추기경은 다른 사람이 조금만 친절하게 대하면 바로 사랑에 빠지는 성격이신 게 판명됐죠."

"잠깐. 그럼 방금 난…."

"그게, 성자의 손길을 쓰시면서 마틸다 추기경을 부드럽게 어루만지셨잖아요? 그리고 마지막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셨고…."

"그것만으로?! 그것만으로 좋아하게 된다고?! 대체 쟨 얼마나…."

"저, 저도 설마 그 정도까지라고는 생각지 않아서 미리 주의를 안 드렸었어요. 그, 구원씨가 마틸다 추기경님께 보여주신 태도만 유지하시면 아무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마틸다 추기경님 본인 앞에서 무척이나 반하기 쉬운 성격이라고 말씀드리기도 힘들어서…죄송해요."

"아니. 레이아가 죄송할 건 없는데. 하지만 고작 그런 걸로 반하…아니. 난 저주에 걸리지 않았으니까 아직 반한 건 아닌 건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건 그거대로 자존심 상하는…."

"구원씨."

드디어 긴장이 풀린 내가 조금 농담조로 말하자, 레이아가 ‘안돼요.’라고 하듯 타이르는 말투로 내 이름을 불렀다.

"네. 죄송합니다."

"아무튼 얘기를 계속할게요. 마틸다 추기경님도 처음에는 본인이 그렇게까지 반하기 쉬운 성격이란 걸 인정하지 않으셨다고 하지만, 결국 몇 번의 소동 끝에 인정하실 수밖에 없게 되셨죠."

몇 번의 소동이라니…걘 대체 지금까지 몇 명이나 고자로 만들었다는 거야.

"그래서 마틸다 추기경님은 다른 사람이 본인에게 친절하게 대하지 않을 방법을 생각하게 됐고, 저런 태도를 연기하게 되셨다는 말이에요."

그걸로 레이아의 기나긴 설명이 끝났다.

과연. 듣고 보니 마틸다 걔 진짜 불쌍한 애네.

그 틱틱대는 모습을 생각하면 진짜 연기인지 의심스럽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 레이아가 그렇다는데 그런 거겠지.

거 괜히 너무 놀려먹었나? 아니, 오히려 걔 상대로는 그렇게 대하는 게 맞는 건가?

사정을 알고 나니 죄책감이 엄청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괜히 친절하게 대하면 저주에 걸린다는 모양이니까. 아까처럼 대하는 게 정답이겠지.

그리고 마치 타이밍을 노리기라도 하듯이, 마틸다가 한 명의 사제에게 안내되어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아무래도 내가 설명을 듣는 동안 소피아 대사제님이 사람을 시켜서 마틸다를 찾아오게 만든 모양이다. 역시 유능하셔.

"……."

방에 들어온 마틸다는 마치 죄인처럼 나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가끔 눈동자만 움직여서 힐끔힐끔 날 쳐다보는데, 그 눈빛에는 동정심, 연민, 죄책감 같은 감정이 가득했다.

"야. 너 왜 날 그런 표정으로 보냐?"

"하,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 마틸다의 시선이 정확해 내 고간으로 꽂혔다.

아, 이거 혹시 사제한테 얘기 못들은 건가?

"그 눈은 뭐냐? 나 고자 아니거든?"

"엣? 거, 거짓말!"

"내가 그런 거짓말을 왜 해? 자!"

내가 되살아난 자존심을 사용하자, 바지 앞섶이 불룩하고 솟아올랐다.

"거, 거짓말…어째서…?"

그런 내 모습을 마틸다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왜? 혹시 너 진짜로 나한테 반하기라도 했냐?"

"아, 아니거든요?!"

마틸다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부정했다.

아까도 생각했지만 말이야. 그렇게 반하기 쉽다는 애가 이렇게까지 맹렬하게 부정하면 그건 그거대로 자존심 상한단 말이지.

뭐, 고자 될 생각은 없으니까 다행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그래서. 소피아 대사제님. 얜 대체 왜 다시 부른 거예요?"

"왜 소피아 대사제는 존칭이면서 전 얘라고 부르는 거죠?!"

"그야 넌 친…넌 그냥 얘로 충분해."

위험했다. 반사적으로 또 농담이 튀어나올 뻔했어.

내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넌 친하니까 얘라고 하는 거지.’라고 했으면 또 소동이 일어났을 거다.

이거 말 하나하나를 전부 조심하면서 막대해야 되는 것도 의외로 귀찮네.

"무슨 논리인가요?! 그건!"

마틸다는 어째선지 아까보다 더 분한 얼굴로 나한테 엉겨왔다.

넌 자기가 남자한테 얼마나 위험한지 알면 좀 가만히 있어라. 괜히 엉기지 말고.

"시끄러. 그래서 소피아 대사제님?"

"네. 마틸다 추기경님. 구원님이 여신님의 사자라는 건 결국 인정해주시는 건가요?"

"그, 그건…그…."

"뭐야. 아직 인정 못하겠다는 거냐? 그럼 내가 다시 한 번 천국을…."

"이, 인정할게요! 인정하면 되잖아요?!"

그렇게 겁먹지 마라. 그러니까 괜히 더 하고 싶어지잖아.

머리론 불쌍한 애니까 놀려먹으면 안 된다는 걸 알아도, 막상 눈앞에서 저 틱틱대는 태도를 보고 있으면 놀려먹고 싶어진다.

옛날에 틱 장애를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봉사활동 했을 때를 생각하게 하는군.

그때도 틱 장애에 걸린 사람은 본의 아니게 시도 때도 없이 욕한다는 걸 머리로는 잘 알고 있었는데도, 계속 욕을 듣다보다 화가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었지.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그런데 마틸다 추기경님. 한 가지 제안이 있는데요."

"네? 뭐죠?"

"성자 구원과 성녀 후보 레이아의 결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잠깐만요! 소피아 대사제님! 왜 또 그 얘기를!

대사제님은 얘기를 하면서, 레이아를 바라보고 인자한 미소를 지으셨다.

으아. 저거 완전 딸을 시집보내는 어머니의 눈빛이야. 완전히 딸의 행복만을 바라고 계셔.

"겨, 겨, 겨, 결혼이요?! 이 사람이?!"

마틸다도 그 얘기가 무척 의외였던 건지, 당혹스런 목소리로 외쳤다.

"네. 여신님의 사자와 성녀 후보의 결혼소식이 알려지면, 성녀가 부재중이라 불안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희망이 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저희가 직접 두 사람의 결혼식을 열어주는 건 어떨까요?"

"그, 그건…! 하지만 그런 건…!"

딸의 행복을 위해서 팍팍 밀어붙이는 대사제님을 상대로, 마틸다는 어째선지 결혼에 대해서 부정적인 듯한 태도를 취했다.

그러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힘내라! 넌 할 수 있는 아이야!

직접 응원하면 또 반하느니 어쩌니 소동이 일어날지도 모르니까, 나는 조용히 마음속으로 마틸다를 응원했다.

마틸다는 힐끔 내 눈치를 살피더니,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 떼를 쓰듯이 외쳤다.

"그런 건 안 돼요! 이런 사람을 저희 모두가 직접 나서서 축복해주다니! 있을 수 없어요!"

"네? 하지만 아까는 구원님이 여신님의 사자라는 걸 인정하신다고…."

"어디까지나 임시로 그렇게 판단한다는 거예요! 확실히 이 사람이 보여준 힘이 대단하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속단할 수는 없어요! 그러니까 이 건은 보류에요! 이 자가 뭔가 그럴듯한 공훈을 세우거나, 다시 한 번 여신님이 강림하시는 걸 제 두 눈으로 보게 되기 전까지는 절대 이 자가 여신님의 사자라고 공표해서는 안 돼요!"

잘한다! 바로 그거야!

애초에 나도 마틸다의 태도에 욱해서 그런 거지, 귀찮게 여신님의 사자라면서 떠받들어지는 건 싫었으니까.

교단의 지원이란 것도 필요 없고.

"하지만 여신님의 목소리는 저와 여기 있는 모두가…."

"어, 어쩔 수 없네!"

소피아 대사제님이 다시 반론을 하기 전에, 나는 황급히 외쳤다.

"응!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지! 마틸다 추기경님이 그렇게까지 말하시니…잠깐. 너 나한테 반하지 마라."

"아, 안 반하거든요!"

도저히 믿을 수가 있어야지.

내가 아까 그렇게 갈궜는데도, 부드럽게 좀 만져줬다고 반할 것 같이 된 애니까.

아니, 갈구던 애가 갑자기 어루만지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거니까 더 효과적이었던 건가? 아무튼!

"소피아 대사제님. 신경써주신 건 감사합니다. 하지만 괜찮아요. 저도 아직 여신님의 사자를 자처하기에는 스스로가 부족한 것 같아요. 아까 대사제님도 들으셨겠지만, 제가 여기 올 때 조금 착오가 있었거든요. 아직 여신님이 절 이 세계로 보내신 이유도 정확히 모르는데, 여신님의 사자를 자처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좋아. 완벽해. 여신님의 사자인 주제에 여신님의 의도도 모르는 놈이란 타이틀이 붙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래도 이 위기를 넘기기엔 이러는 게 최선이겠지.

이거라면 레이아에게 아무런 상처도 주지 않고 결혼을 피할 수 있어.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소피아 대사제님은 살짝 아쉽다는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내 말을 순순히 수긍해주셨다.

옆에 있는 레이아도 표정은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살짝 귀가 쳐진 것을 보면 조금 실망한 모양이다.

미안 레이아. 결혼식은 이왕이면 나중에 다른 애들이랑 같이 하자.

"아무튼 저흰 볼 일 끝났으니 그럼…."

"자, 잠깐 기다리세요!"

어차피 여기 온 목적은 원래 레이아가 대사제가 됐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였다.

볼일을 마친 나는 기절한 실비아를 들쳐 업고 황급히 자리를 피하려고 했지만, 그 앞을 마틸다가 막아섰다.

넌 또 왜?!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