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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 구원
그렇군…. 사실 마틸다가 분해하는 얼굴을 더 보고 싶어서 그냥 해본 말이었는데.
설마 진짜로 또 실전된 기술이 존재했다니.
대체 기술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진짜 괜찮은 거냐? 이 종교.
아무튼 뭐,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아니지만 말이야.
나는 마틸다의 왼팔을 다시 한 번 쳐다봤다.
원래 세계에서 번개 맞은 사람의 흉터를 본적이 있는데, 딱 그런 모양의 상처였다.
한줄기 굵은 선이 팔을 휘감고 있었고 그걸 중심으로 사방으로 잔가지가 뻗쳐있는 것 같은 모양의 흉터. 다만 번개 맞은 사람과는 다르게 붉은색 흉터가 아닌 검은색 흉터였지만 말이다.
마치 흑룡파라도 쓸 수 있을 것 같은 팔이다.
만약 내가 저런 상처를 가지고 있다면 붕대로 감은 다음에 ‘크큭. 조심해. 이 팔에는 흑염룡이 잠들어있다고.’라든가 ‘이미 늦었어. 푸는 방법을 잊어버렸거든.’같은 헛소리나 해대면서 꽤나 들떴겠지만, 여자로서 저런 흉터를 가지고 있는 건 꽤나 힘들겠지. 특히나 스스로에게 무척 자신 있어 보이는 미인으로서는 더더욱.
하지만 이미 소피아 대사제님이 예전엔 저런 걸 풀 수 있는 스킬도 있었다고 확실히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저주라는 말이다.
그저 레이아의 스킬 창을 열고, 스킬 포인트를 하나 분배하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다.
하지만 말이야. 바로 그렇게 치료해주기는 괘씸하지 않아?
얘 입장에선 내가 성공하면 치료가 돼서 좋고, 실패해도 날 씹을 수 있으니 좋은 거잖아?
내가 정말로 여신님의 사자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라면서 은근슬쩍 이런 딜을 하다니. 정말로 괘씸하기 짝이 없다.
아니, 치료해주지 않겠다는 건 아니다.
물론 내가 좀 쓰레기기는 하지만 말이야, 그래도 눈앞에 별다른 힘도 들이지 않고 치료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도 괘씸하다는 이유만으로 치료를 안 해줄 정도는 아냐.
저런 흉터를 보고 있으면 동정심도 생기기는 하고 말이야.
마틸다도 오늘 처음 보는 나에게 저런 흉터를 보이는 건 부끄러운지, 입술을 꽉 깨물고 소매를 걷은 팔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으니까 더더욱.
하지만 치료해주기 전에, 조금 가지고 노는 건 괜찮잖아?
"그렇군. 고대의 저주 말이지…. 그래서 정확히 효과가 뭔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 건데?"
저주라고 불리는 만큼, 그냥 보기 싫은 흉터가 있다는 게 전부는 아닐 거다.
"그, 그건…."
일단 괴롭히기 전에 저주의 정체부터 파악해보려고 물어보자, 갑자기 그렇게 기가 세보이던 마틸다가 살짝 눈가에 눈물을 띄우면서 말을 흐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강렬한 눈빛을 발하면서 날 노려봤다.
"그런 건 상관없잖아요?! 당신은 그저 이 저주를 회복할 수 있는 기술을 복원시키기만 하면 되는 거에요! 그러면 여신님의 사자로 인정해주겠어요!"
"이거 말 돌리는 게 수상한데? 확실히 말해라. 무슨 저주야? 혹시 치료를 시도하는 사람한테 반사되는 효과라도 달린 거 아냐 이거?"
"뭐, 뭐 뭣?! 사람을 뭘로 보고! 정말 무례하군요! 저 추기경이에요! 추기경!"
"그래. 그래. 그리고 난 네가 그렇게 신앙하는 여신님의 사자고."
"전 아직 인정 안 했어요!"
"끝까지 저주에 대해선 말 안하는 걸 보니 이거 진짜로…."
"구원씨. 구원씨가 생각하시는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안심하세요."
내가 마틸다를 계속 추궁하려고 하자, 레이아가 내 팔을 살며시 붙잡고 고개를 저었다.
"응? 레이아는 이게 뭔지 알아?"
"네. 저뿐만이 아니라 다들…."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다들 알고 있지만, 말하긴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아니. 그보다는 불쌍하다는 표정이었다.
심지어 사제들뿐만 아니라 실비아마저도.
혹시 이 저주, 유명한 건가?
하긴 그도 그렇겠네. 열두 명밖에 없다는 추기경이 걸린 고대의 저주. 오히려 유명하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였다.
하지만 아무도 나한테 알려줄 생각이 없는 걸 보면, 뭔가 그럴만한 사정이 있는 거겠지.
그래. 일단 이건 그냥 넘어가주지.
애초에 이런 걸로 가지고 놀려던 게 아니었으니까.
"그렇군. 꽤나 힘든 저주인 모양이네."
"알았으면…!"
"즉, 그 저주를 풀 수 있는 기술이 실전된 지금. 치료를 하려면 나한테 기댈 수밖에 없다는 말이렷다."
"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요?!"
"으응? 아니. 그냐앙? 어쩔까아? 치료해줄까아? 으음. 하지만 이 시건방진 태도를 보고 있으니까 조금 말이야…. 여신님의 사도인지 알아본다면서 은근슬쩍 사심을 채우려는 것도 그렇고…. 어떻게 할까아?"
짜증난다고? 알아. 그게 목적이거든.
내 예상대로, 마틸다는 날 노려보면서 팔뿐만이 아니라 전신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다, 다, 당신이 실전된 기술을 말해보라고 했잖아요! 잔말 말고 정말로 여신님의 사자라면 치료나 하시죠! 그게 불가능하다면 전 당신을 여신님의 사자로 절대 인정하지 않겠어요!"
"그러시던가."
"뭐, 뭐요?!"
"그러시라고. 솔직히 네가 날 여신님의 사자로 인정하든 말든 전혀 관심 없어. 교단의 지원? 필요 없어. 너 내가 누군지는 아냐? 난 지원이 필요한 입장이 아냐. 그리고 내가 여신님의 명을 받들어 목표를 이뤘을 때, 교단에서 아무것도 해준 게 없다면 여신님이 어떻게 생각하실까?"
"으, 으읏…!"
훗. 이겼다.
마틸다의 분해하는 표정을 내려다보면서, 나는 승리의 쾌감에 빠졌다.
"그러니까 정말로 치료해주길 원한다면 말이야. 빌어봐."
"비, 빌어…?"
마틸다는 마치 ‘나한테 그런 소릴 한 건 네가 처음이야.’라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물론 드라마처럼 그런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반했다는 표정은 아니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냐는 표정이었지.
그도 그럴게, 이 세계는 모든 사람들이 여신님을 섬기는 세계다. 그리고 마틸다는 그런 단일종교 세계에서 열두 명 밖에 없다는 추기경님이시다. 그런 추기경님께서 누군가에게 빌어야할 경험을 몇 번이나 해봤겠어?
"그래. 거창한 말은 필요 없고. 부탁드립니다. 절 치료해주세요라고. 아, 그리고 시건방지게 굴어서 죄송…."
"구원씨."
내가 신나서 떠들자, 결국 다시 레이아가 내 팔을 꽉 붙잡았다.
내가 레이아를 쳐다보자, 레이아가 타이르는 것처럼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흔들었다.
"다른 분의 약점을 파고들어서 그러시면 안 돼요."
이런 분해하는 표정이 꼴 보기 좋아서 너무 들떴나.
남들이 보면, 아니 굳이 제삼자의 시선으로 보지 않아도 완전히 약점 있는 애를 괴롭히고 있는 거였으니까.
레이아 앞에서 못난 모습을 보여 버렸네.
괴롭히는 건 이쯤 해둘까.
마틸다도 이쯤 되면 조금 반성을 했겠지. 앞으론 그렇게 오만하게 굴지 마라.
"응. 야. 넌 우리 레이아한테 감사해야 된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 마틸다에게 한마디 해주고, 레이아와 단단히 팔짱을 꼈다.
저 풍만한 언덕으로 사심을 채우려는 게 아니다. 필요한 일이니까 이러는 거야.
뭐, 기분 좋은 건 부정 안하겠지만.
"그럼 스킬을 배우게 만들게. 아까처럼 또 배우자마자 발동되어버릴 수도 있고, 현기증 같은 게 생길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
"네."
이 세계의 사람이 스킬 포인트 분배로 스킬을 배우는 감각은 나완 다를지도 모른다.
나는 게임할 때의 감각 그대로 스킬을 배우고 사용하지만, 아무래도 여기 사람들은 다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애초에 게임 시스템은 나만 사용할 수 있는 특전일 테고.
나는 스킬 창을 열고 레이아의 스킬을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봤다.
레이아는 기본적인 저주 해제 마법은 이미 배우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마틸다의 저주를 풀기 위해 필요한 스킬은 이게 아니겠지.
어디보자. 고대 저주 해제…강력한 저주 해제 스킬이…찾았다!
레이아의 스킬 창에는 강력한 저주를 해제할 수 있다는 스킬이 확실히 존재하고 있었다.
어휴.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떠들어 놓고, 없으면 어쩌나 싶었네. 제대로 있잖아. 역시 여신님이 주신 시스템이야. 없을 리가 없지.
…못 배우지만.
그랬다. 확실히 스킬이 존재하긴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배울 수 있는 레벨이 무려 250. 그것도 대사제에서 한 번 더 전직을 하고 나서야 배울 수 있는 스킬이었다.
이거 실컷 놀려놓고 이제 와서 뭐라고 변명을 해야 되지.
"어…음…야. 아니. 추기경님. 그게 말이죠…."
"…설마 이제 와서 못하겠다는 건 아니겠죠?"
내 반응에서 뭔가를 캐치해냈는지, 마틸다가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아니, 그게 말이야. 그 저주를 해제할 수 있는 스킬이 있기는 있어. 있기는 있는데 말이야."
"그런데 뭐요? 제가 아직도 부탁드린다는 말은 안 해서 그런 건가요? 알겠어요. 제대로 부탁…."
"아니! 아니야! 하지 마! 그런 건 됐어! 난 그렇게 쪼잔한 놈이 아니거든. 문제는 그 스킬이 말이야. 적어도 사제 레벨이 250은 돼야지 배울 수 있어서 말이지. 아직 우리 레이아가 배울 수가…."
"뭣?! 그렇게 잘난 듯 떠들어놓고 지금와서 그런 소리인가요?!"
응. 미안.
"그, 그럼 저 사람 말고,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는 건…."
"응. 그건 불가능해. 사랑하는 사람만 가능하거든."
원래라면 레이아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면서 말해야 할 대사지만, 과연 이 상황에서 염장까지 지르기는 미안했다.
그런 내 말을 듣고, 마틸다의 표정이 엄청나게 구겨졌다.
그러더니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푸욱 하고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중얼거렸다.
"그러시겠죠. 그럴 줄 알았어요. 뭐, 애초에 기대도 안 했어요."
아니. 표정 보니까 엄청 기대했다가 실망한 거 같은데.
야. 진짜 미안하다.
"역시 당신이 여신님의 사자라는 건 사기인 모양이군요. 여러분이 들었다는 그 여신님의 목소리도, 뭔가 속임수를 쓴 것에 불과하겠죠."
"아니에요. 마틸다 추기경님. 구원씨는…."
"당신은 조용히 하세요. 듣자하니 당신의 몸으로 여신님이 오셨다고 하는데, 애초에 당신 이제 막 대사제가 된 거잖아요? 어쩐지 이상했어요. 대사제의 몸에 여신님이 내려오신다니. 그건 성녀님만이 가능한 거잖아요? 당신도 이 사람과 한패 아니에요? 여신님의 섬기는 몸으로서 부끄러운 줄…."
이게 듣자듣자 하니까.
난 솔직히 좀 미안한 짓을 했으니까 뭐라고 해도 상관없는데, 감히 우리 레이아한테까지 뭐라고 해? 심지어 레이아가 자길 몇 번이나 감싸줬는데.
"야. 넌 그럼 사기꾼이랑 여신님을 이용해서 사기나 치고 다니는 애를 여신님이 대사제로 인정해줬다는 거냐? 그거야말로 신성모독 아냐?"
"읏…! 실례. 말이 조금 심했네요. 그건 사과하죠. 아무튼 전 당신을 여신님의 사자로 인정할 수 없어요!"
과연 그렇게까지 말할 생각은 없었던 건지, 마틸다는 일단 사과를 하기는 했다.
다만 말투가 싸가지 없는 건 여전했다.
아무리 추기경이라지만, 성직자란 애가 신성 모독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발언까지 하고도 이런 태도라니. 뭘 믿고 이러는 거지?
아무튼 마틸다가 이렇게 나오는 이상, 내가 여신의 사자라는 건 인정되지 않을 모양이다.
별로 상관은 없지만 말이야. 애초에 교단의 지원 같은 건 필요도 없었고. 괜히 사람들이 떠받들게 되면 그건 그것대로 부담스러울 것 같고.
다만 이 싸가지 없는 애한테 사기꾼 취급당한다는 것 하나만은 불쾌하기 짝이 없지만,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혹시 실전된 기술이 더 있지 않으려나?
"그렇다면, 레이아가 여신님을 몸에 받아들인 그 기술을 저희에게 알려주면 되는 게 아닐까요?"
그때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소피아 대사제님이 그런 제안을 해왔다.
"네?"
"레이아가 여신님을 몸에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건, 다시 말해서 대사제라면 할 수 있다는 거잖아요? 그러면 저나 마틸다 추기경께 어떻게 하는 건지 알려주면,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오오오! 과연 소피아 대사제님! 머리도 좋으셔!
가만히 생각해보면, 여신님이 강림했던 걸 증명하기에는 오히려 이게 더 확실하다.
게다가 난 여신님과 이어서 더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 오히려 이게 더 좋다.
내가 사기꾼이 아니란 것도 밝혀지고, 이 세계로 날아온 목적도 알 수 있고. 일석이조란 거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진작 이랬어야했는데.
나도 여신님을 만나고 정신이 없긴 없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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