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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269화 (25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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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어져가는 던전의 비밀

    아침식사를 마치고나서, 나는 오늘은 또 뭘 하면서 시간을 때울지 생각했다.

    사라는 어젯밤에 있었던 일 때문에 나랑 얼굴 마주치기 부끄러운지, 식사를 마치자마자 잽싸게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중간부턴 자기가 신나서 리드한 주제에 이제 와서 부끄러워하기는.

    참고로 어젯밤의 그 메이드복은 내 인벤토리 안에 고스란히 잠들어있다.

    바네사가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으니까 말이야. 모처럼의 호의를 거절할 수는 없지. 이건 앞으로도 내가 유용하게 써주자.

    "그럼 이 몸은 잠깐 길드에 좀 다녀오겠네."

    그리고 디아나 역시도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를 일어났다.

    "길드에? 무슨 일로?"

    "거대 마석에 관한 일로 할 얘기가 있어서 말일세."

    그렇게 운을 띄우면서, 디아나는 설명을 해줬다.

    디아나의 예상대로라면 그 거대한 마석은 미궁 곳곳에 존재할 거고, 그렇다면 우리보다 먼저 그와 같은 마석을 발견하는 모험가들도 나타날 거다. 그리고 십중팔구 모험가들은 그 거대 마석을 캐내려고 하겠지.

    마석이 미궁의 기틀이 되고 있는 만큼, 만약 모험가들이 거대 마석을 캐내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그에 관한 경고도 겸해서, 길드에 얘기를 하러 간다는 모양이다.

    아쉽다. 모처럼 오늘 밤은 디아나 차례인 만큼, 디아나랑 놀아 보려고 했는데.

    던전에서 디아나를 괴롭히기로 다짐했으니까 말이야. 낮에 실컷 놀아서 띄워주고, 밤에 괴롭히면서 떨어뜨리는 작전을 실행할 예정이었는데.

    너무 짓궂은 거 아니냐고? 후훗. 이것도 다 애정이 있어서 그러는 거야.

    "그럼 나도 같이 갈까?"

    "으음…. 아니. 이건 클랜 관련 일이 아니라 마법사 협회 관련 일이니 말일세. 이자들과 함께 가겠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따라가 보려고 했지만, 디아나는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렇게 얘기했다.

    뭐, 솔직히 내가 따라가 봤자 할 건 아무것도 없지만 말이야. 거대 마석에 대한 대화에도 전혀 도움이 안 될 테고.

    "그런가. 그럼 어쩔 수 없지."

    낮에 디아나를 띄워주고 밤에 떨어뜨리기 계획은 쿨하게 포기하도록 할까. 그냥 밤에 괴롭히기만 하자.

    "후우…."

    하지만 내 대답을 듣고, 디아나는 어째선지 한숨을 쉬면서 내게 다가왔다.

    "그럼 표정 짓지 말게나. 다른 사람들에게 위험이 생길 수도 있는 일이니만큼, 제대로 경고를 하러 가야하지 않겠나. 이 몸이 길드에서 돌아오면 제대로 상대를 해주겠네."

    그렇게 말하면서, 디아나는 의자에 앉은 내 머리를 자신의 가슴팍으로 끌어안은 후에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아무래도 내 표정이 쓸쓸해보였던 모양이다.

    아니, 그냥 널 더 효과적으로 괴롭힐 작전을 실행할 수 없어서 살짝 실망한 것뿐인데.

    으읏. 이렇게 갑자기 포근하게 대하지 마라. 양심이 찔리잖아.

    "아니, 그런 게…."

    "후훗. 부끄러워하는 겐가?"

    진짜로 그런 거 아닌데 말이야.

    오랜만에 제대로 맛보는 디아나의 누님모드에 더 이상 반박하기도 무안해져서, 나는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그럼 다녀오겠네."

    디아나는 한동안 내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면서 만끽하더니, 아쉬운 표정으로 떨어졌다.

    떨어질 때 살짝 보였던 건데, 내 머리를 끌어안기 위해서 까치발을 하고 있었다.

    훗. 귀여운 녀석.

    "응. 다녀와."

    "음."

    내가 보답이라도 하듯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디아나는 만족스런 표정으로 마법사 협회 누님들을 이끌고 식당을 나섰다.

    하지만 디아나까지 나가버리면 대체 난 뭘 해야 되지?

    역시 남은 희망은 천사님밖에 없는 건가.

    "구원씨, 저 오늘 신전에 가서 대사제가 된 걸 얘기하려고 하는데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레이아가 생긋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꺼냈다.

    아, 그러고 보니 그게 있었지.

    저번에 나한테 아무 말도 안하고 대사제가 되는 의식을 치르러 갔을 때,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었냐고 뭐라고 했던 만큼, 이번엔 제대로 가기 전에 얘기를 해준 모양이다.

    "아, 응. 그럼 같이 갈까?"

    "네!"

    내가 먼저 같이 가자는 말을 꺼내자 천사님은 환한 미소를 지으셨다.

    이런 사소한 걸로 저렇게 행복해하시는 레이아 누님은 역시 천사님이 분명해.

    어차피 나도 딱히 할 일도 없었으니, 레이아와 같이 할 일이 생겼다는 건 기쁜 일이다.

    대체 아라크네 길드와 약속한 의뢰는 갈 생각도 안하고 뭐하는 짓이냐고? 그런 거 벌써 갈 리가 없잖아?

    고작 며칠이라곤 해도 우리 애들과 떨어지게 되는 거라고. 적어도 각자 한 번씩 안아주기 전까진 안 갈 거다.

    고로 의뢰를 하러가는 건 아무리 빨라도 내일모레 이후다.

    게다가 어차피 그게 아니더라도 신전엔 한 번 가야 하기도 했고.

    대사제님 만난 지 꽤나 오래 됐단 말이야. 가자마자 혼나는 건 아니겠지?

    애초에 교육을 받으러오라고 했던 이유 중 하나가 내가 정말로 레이아를 맡길 수 있는 사람인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던 만큼, 요즘엔 날 꽤나 믿으시는 눈치시니 그다지 깐깐하게 굴진 않으시겠지만.

    "그럼 갈까! 그 전에…실비아."

    "네, 넷?!"

    나는 레이아에게 팔을 내밀어서 팔짱을 끼게 만들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여전히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실비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도 거기서 그러고 있지 말고 이리로 와라. 어차피 할 일도 없지?"

    어차피 내가 말하지 않으면, 또 자기 딴에는 몰래 따라오는 거라면서 스토킹을 해올지도 모른다.

    그러기 전에 나는 먼저 선수를 쳤다.

    "네, 넷?! 하, 하지만…."

    레이아와의 데이트를 방해하게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실비아는 당황하면서 레이아의 눈치를 살폈다.

    훗. 넌 너무 네 기준으로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군.

    우리 천사님의 도량은 그런 일반적인 사람의 기준으로 측정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고.

    애초에 사람이 아니라 천사니까!

    "후훗. 그래요. 실비아씨. 저희와 같이 가요."

    거 봐라.

    레이아는 생긋 웃으면서 나와 팔짱을 낀 팔과는 반대쪽 팔을 내밀어 실비아에게 손짓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 역시 레이아는 천사야.

    "저, 정말로 괜찮으신 겁니까?"

    "후훗. 네."

    우리 천사님의 넓은 그릇을 함부로 재단하려 하지 마라.

    나는 쭈뼛쭈뼛 다가온 실비아를 얼른 낚아채어 옆구리에 끼었다.

    "히아아앗!"

    실비아는 내 갑작스런 행동에 놀라서 도망가려고 했지만, 내 옆구리에 끼인 시점에서 이미 늦었다.

    게다가 살짝 다리에 힘이 풀린 건지, 파닥거리기만 할 뿐 제대로 힘도 못내고 있었다.

    "후하하핫. 이제 도망 못 간다."

    "으아아…으아아아…."

    "구원씨. 실비아씨를 너무 놀리면 안돼요."

    "네. 죄송합니다."

    뭐. 그래도 놔주진 않을 거지만. 이것도 다 특훈의 일환이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훈련을 멈추지 않는 나란 남자.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하다니까.

    나는 한쪽에 레이아, 한쪽에 실비아라는 남이 보면 부러워 죽을 양손의 꽃 상태로 신전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실비아는 계속 새빨개진 상태로 부들부들 진동했고, 그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꼭 가녀린 아녀자를 추행하는 놈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신전으로 향하는 동안 우리를 향한 시선이, 특히 나와 실비아를 번갈아 보는 시선이 엄청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나 자신이 정말로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떳떳하게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 신경 쓸 필요 없는 거야.

    하지만 신전에 가까워질수록 거리에 사람들이 늘어만 갔고, 그에 따라 우릴 바라보는 시선도 점차 늘어만 갔다.

    그리고 결국 불의를 보면 참을 수 없는 정의감 넘치는 청년까지도 등장했다.

    "잠깐만! 거기! 잠깐 멈춰보실까!"

    꽤나 시원스런 이목구비를 가진 청년이 우리 앞을 막아섰다.

    아마 신전에 신관을 구하러 가는 모험가인 모양이다. 척 봐도 모험가 같은 차림을 하고 있었고, 그 뒤로 마찬가지로 모험가 차림의 여자들이 셋이나 있었다.

    나랑 비슷하게, 여자 여럿에 남자 하나가 모인 모험가 파티인거겠지.

    뭐, 이 세계에서 남자가 낀 파티는 대부분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만.

    "무슨 일이지?"

    "지금 무슨 일이라고 했나?! 뻔뻔하기 그지없군! 백주대낮에, 그것도 신전 앞에서 아녀자를 희롱하다니! 여신님 보기 부끄럽지도 않은 건가!"

    "희롱하다니. 거 참 사람 듣기 안 좋은 말을. 얘 지금 싫어하는 게 아니라, 좋아 죽으려고 그러는 거야."

    남자 모험가들끼리는 기본적으로 친하게 지낸다.

    난 지금 평범한 천 옷차림이니 저쪽은 날 모험가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겠지만, 난 일단 앞을 막아선 호청년에게 친밀하게 얘기해보려고 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변명이 통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얼른 그녀를 해방시켜줘라!"

    호청년은 내게 성큼성큼 다가오면서 외쳤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실비아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팔을 풀어줬다.

    "흐앗, 하악, 하악, 하악."

    내게서 해방되자마자 실비아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몇 발자국 떨어지더니, 그 자리에서 주저앉으면서 심장부근을 움켜쥐고는 급히 숨을 몰아쉬었다.

    "괜찮으십니까?"

    그리고 그런 실비아에게 호청년이 다가가서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얼핏 보기엔 흑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자연스런 동작은 이런 식으로 여자를 꼬셔본 게 한두 번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얼씨구. 정의로운 척 하더니 결국 그게 목적이었냐.

    하지만 나는 그런 호청년을 보고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실비아를 다른 셋과는 달리 애인 같은 관계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래도 지금은 내가 안고 있는 여자다. 다른 놈이 들이대면 물론 화가 난다.

    이전의 나라면 바로 놈에게 제재를 가했겠지.

    하지만 사도 임명 이후로, 나에게도 조금 여유가 생겼다. 내가 싫어할 짓을 우리 애들이 절대 할 리가 없지.

    실비아는 사도 임명을 하지 않았다곤 하지만, 일단 사도 임명이 가능한 것 까지는 확인했으니까.

    "저놈이 어디 이상한 곳을 만지기라도…."

    놈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어깨에 팔을 두르려고 했지만, 겨우 숨을 고른 실비아가 그 팔을 냉정하게 쳐냈다.

    "저놈이란 건 혹시 구원님을 말하시는 겁니까?"

    "네, 네?!"

    "저 분은 당신 같은 미천한 사람이 놈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분이 아니십니다."

    오오. 실비아야. 나랑 대면할 때완 다르게 말 잘하잖아.

    게다가 미묘하게 깔보는 것 같은 느낌이 완전 귀족님 같다.

    그러고 보니 나랑 처음 만났을 때도 존댓말만 할 뿐 미묘하게 귀찮은 표정을 짓고 강압적인 태도를 보였었지.

    나는 감상에 빠지면서 흥미롭게 호청년과 실비아의 대화를 들었다.

    "하, 하지만 저 놈…저 사람은 방금 당신을 희롱하지 않았습니까!"

    호청년은 다시 나를 놈이라고 부르려다가, 실비아의 눈매가 매서워지자 바로 정정했다.

    응. 평소엔 멍한 표정의 미녀의 눈매가 날카로워지면 무섭지. 이해한다.

    "희롱? 아뇨. 그저 안고 있었을 뿐인데요."

    "하, 하지만 얼굴이 시뻘개져서 싫은 표정으로…!"

    "너무 좋아서 심장 고동을 억누를 수 없었던 것뿐입니다만."

    실비아는 나와 얘기할 때와는 달리, 전혀 부끄럼을 타지 않고 덤덤하게 얘기했다.

    "네, 넷?!"

    "볼일 없으면 좀 비켜주겠습니까?"

    "앗, 넷!"

    실비아의 덤덤하지만 확실한 말투에, 호청년은 당황해서 바로 옆으로 비켰다.

    실비아는 후욱 후욱 하고 심호흡을 하더니, 눈을 꼬옥 감고 다시 내 옆으로 쭈뼛쭈뼛 다가왔다.

    준비됐으니까 다시 안으라는 의사표명인 모양이다.

    후훗. 안기 전부터 저렇게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게 귀엽다.

    "흐아아앗!"

    나는 그런 실비아를 다시 옆구리에 꽉 끌어안고는, 그 귓가에 입을 가져다댔다.

    "그렇게 좋아?"

    "아우으으…조, 좋습니다아아…."

    이거 귀에다가 조금만 더 입김을 불어넣으면 녹아내릴 수도 있을 거 같은데. 한 번 시험해볼까.

    하지만 내 생각을 읽었는지, 레이아가 내 팔을 끌어안은 팔에 힘을 줘서 물컹한 가슴을 밀어오면서 말했다.

    "구원씨. 실비아씨를 너무 놀리지 마시라니까요. 그러시면 떽! 이에요."

    "헤헷. 죄송해요. 레이아 누나."

    실비아야. 천사님 덕분에 살았구나.

    나는 천사님의 귀여우신 호통에 바로 실비아 괴롭히기를 포기했다.

    청순하고 어른스러우시면서 귀여우시다니. 최고야.

    실비아 괴롭히기를 포기한 나는, 멍하니 우릴 보고 있는 호청년을 바라봤다.

    "이봐."

    "응, 아니, 네?!"

    아까 실비아가 내가 높으신 분인 것처럼 말을 한 덕분에, 호청년은 내게 존대를 해야 하는 건지 말아야하는 건지 혼란스러운 모양이다.

    "그러니까 내가 얘 좋아하는 거라고 말 했잖아. 앞으론 사람 말 좀 잘 들으라고. 애초에 말이야. 여신님 보기 부끄럽지 않냐 느니 어쩌니 했는데, 내 옆에 사제님이 계시는 건 안보였나 보지? 내가 정말로 신전 앞에서 아녀자를 희롱하는 거면 사제님이 아무말 않고 있을 리가 없잖아?"

    "응? …앗."

    호청년은 그제야 레이아의 존재를 눈치 챈 모양이다.

    하긴 커스텀한 사제복이니까 조금 알아보기 힘들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괘씸하기 짝이 없다.

    제대로 봤으면 분명 사제복이라고 알 수 있는 옷인데 말이야.

    그 말은 이놈은 레이아보다 실비아에게만 주목하고 있었다는 소리다.

    이 막대한 가슴의 격차를 앞에 두고 말이 돼? 이 새끼 이거 로리타 콤플렉스인지 뭔지 그런 거 아냐?

    그러고 보니 놈의 뒤에 있던 여성 모험가 셋도 미묘하게 어려보이는 얼굴에 발육부진의 기미가 엿보였다.

    겉으로 보기엔 정의감 넘치는 호청년인데 말이야.

    "그래서. 사과의 말은?"

    "죄, 죄송합니다."

    "뭐가?"

    "괜한 오해를 해서 죄송합니다!"

    호청년은 그래도 기본적으론 꽤나 괜찮은 놈인 건지, 내가 말하자 순순히 고개를 숙이면서 곧바로 사과를 해왔다.

    뭐, 그래봤자 취향은 그렇고 그런 놈이지만.

    "그래. 그럼 앞으로 조심하고. 모험가 동지끼리 다음에 만나면 인사나 하자고."

    "네. 응? 모험가? 아앗!"

    놈은 그제야 자기가 존댓말을 할 이유가 없단 걸 깨달았는지 소리를 질렀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를 뒤로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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