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263화 (247/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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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져가는 던전의 비밀

나는 호가호위를 즐기면서도 은근슬쩍 삼인방에게 신경을 기울였다.

세레나는 그나마 차분한 성격이라서 별로 경계가 안 되지만, 칸나나 에이미는 요주의 인물이다.

칸나는 일단 생각이 없고, 에이미는 성직자 주제에 4p를 꼬드겼을 만큼 발랑 까진 애다. 언제 어느 때에 폭탄발언을 할지 몰라.

물론 내가 쟤들과 4p 약속을 했을 때는 아직 우리 애들과 이렇게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었으니 따지고 보면 아무 문제없었던 행동이다. 게다가 결국엔 까먹고 하러 가지도 않았으니, 정말로 양심에 찔릴 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이란 녀석이 그렇게 이성적으로만 작동하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안 들키는 게 제일이지.

그렇게 경계를 하면서 얼마 멀지 않은 마을까지 갔지만, 결국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에이미는 레이아에게 딱 달라붙어서 나와 어떤 관계인지 이것저것 물어보고는 분위기를 파악했는지 나와 있었던 과거 얘기는 하지 않았고, 칸나에 이르러서는 나와 마법사 협회 누님들 눈치를 보느라 입을 열 처지가 아닌 걸로 보였다. 야생녀답게 상하관계가 명확한 사람에겐 약한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래서 우리는 아무 일 없이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 얼른 얘들이랑 헤어지면 돼.

"칸나! 세레나! 에이미! 너희들!"

하지만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인물이 있었다.

"애, 앨리시아씨!"

"교관님이라고 불러라! 앨리시아 교관님이라고! 그보다 너희들 멋대로…! 어? 구원? 네가 왜 얘들이랑 파티를 맺고 있어?"

앨리시아는 삼인방을 보고 화난 얼굴로 달려왔지만, 이내 내 얼굴을 보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마법사 협회의 누님들을 보고는 살짝 놀란 것 같기는 했지만, 말 그대로 조금 놀라기만 했을 뿐이다. 삼인방처럼 겁에 질리는 일 없이, 당당하게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과연 거대 클랜의 간부님이란 건가.

"아니, 딱히 파티를 맺고 있는 건…."

"아항. 알겠다. 칸나가 그렇게 너랑 한 번 해봤어야 했다고 분해하더니, 결국 다시 약속을 잡은 모양이지?"

"…한 번 해봐?"

"‘다시’ 약속을 잡는다?"

갑자기 내 주변 온도가 급속도로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위험해. 이 전개는 위험해. 삼인방을 경계하고 있었더니 설마 다른 놈이 튀어나와서 폭로를 할 줄이야.

"야, 야.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당황하면서, 우리 애들에게 안보이게 열심히 윙크와 눈짓을 해가면서 앨리시아에게 내 의사를 전달했다.

야. 이것아. 분위기 파악 좀 해라. 지금 나한테 업혀있는 디아나나, 내 옆에서 걷고 있는 사라는 안보이냐? 저기 에이미랑 걷고 있는 레이아도 나랑 가까이 있고, 뒤에 있는 실비아도 나한테 뜨거운 눈빛을 보내고 있을 텐데? 넌 그 전부를 보고도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냐?

나는 열심히 얼굴 근육을 움직여가면서 무언의 어필을 해봤지만, 앨리시아는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니면 일부러 그러는 건지 오히려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그 윙크는 뭐냐? 야. 병아리. 너 지금 나까지 꼬드기는 거냐? 쟤들이랑 끼어서 5p를 해보시겠다고? 핫! 요새 좀 잘나간다고 너무 기고만장한 거 아냐? 동정 때였을 때 기억이 안 나는 모양이지? 너 같은 건 나한테 넣기만 해도 예전처럼 찍 싸…."

"야 이 멍청아! 넌 왜 그렇게 눈치가 없냐! 그러니까 그 레벨 찍도록 남자가 없지!"

"뭐, 뭐, 뭣! 그,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

나는 결국 앨리시아가 분위기 파악을 해주기를 포기하고,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앨리시아가 남자가 있는지 없는지는 전혀 모르지만, 뭐 아무리 예뻐도 저 성격에 있을 리가 없지.

그리고 저렇게 반응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내 예상은 맞았던 모양이다.

저 눈치 없는 여자한테 더 막말을 퍼부어서 울게 만들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구원. 저랑 잠깐 얘기 좀 하죠."

"호오. 사라양도 이 자와 할 말이 있는가. 그거 우연이구먼. 이 몸도 그렇다네."

"구원씨. 저기, 얘기 좀 들려줄 수 있을까요?"

위험해. 진짜로 위험해.

사라는 내 팔을 꽉 붙잡고 마치 처음 만났을 때처럼 냉랭한 말투로 말하는데, 위압감이 장난 아니었다. 심지어 존댓말까지 쓰고 있고.

디아나는 업혀 있어서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지금 내 목에 둘러진 팔에 힘이 들어가 있는 게 결코 기분 탓이 아닐 거다.

힘이 들어가 있다고 해도 디아나의 근력 문제 때문에 내 목이 졸려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디아나가 토닥토닥 공격을 할 때처럼 웃어넘길 분위기가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레이아로 말하자면, 눈이 죽어있었다.

생기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마치 감정이 죽은 것 같은 눈동자로 날 쳐다보고 있는 레이아는 정말로 박력이 넘쳤다.

사실 냉랭한 표정으로 노려보는 사라나 목에 두른 팔에 힘을 주고 있는 디아나보다, 레이아가 제일 무서웠다.

마치 ‘저게 사실이면 구원씨도 죽이고 저도 죽겠어요.’라고 말할 것만 같은 포스가 느껴졌다.

"자, 잠깐! 잠깐만 기다려 얘들아! 내게 스스로를 변호할 기회를 줘! 사라 넌 일 단 팔 좀 놔주지 않을래? 부러질…아니. 그냥 붙잡고 있어도 되니까 내 얘기 좀 들어줘."

저거 나중에 손 떼면 손 모양으로 피멍들어있을 거야.

"내가 쟤랑 한 건 모험가들 사이의 전통이라는 신입생 환영회인지 뭔지에 당한 거야! 난 오히려 피해자라고!"

"뭐? 야! 그때 너도…."

"넌 좀 닥쳐봐! 이 남자 한 번 못 사겨본 눈치 없는 년아! 네가 길드에서 내 멱살 잡고 여관까지 끌고 가서, 내 바지 벗기고 동정 따먹었잖아?! 내 말 틀려?!"

"아, 아니…."

과연 천하의 앨리시아도 남자 한 번 못 사겨본 눈치 없는 년이란 말을 듣고는 조금 멘탈에 데미지가 있었던 모양이다. 어울리지 않게 풀이 죽어서는 힘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난 앨리시아의 그런 모습을 보고도 전혀 미안하지 않았다.

헹! 넌 좀 더 상처 입어봐야 돼! 그래야 눈치란 게 좀 생기지!

"들었지? 난 그 신입생 환영회라는 녀석에 일방적으로 당한 거라고. 그것도 이 세계에 떨어지고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을 때, 아직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 파악도 못하고 있었을 때에 당한 거였단 말이야. 당연히 사라도 만나기 전이었고. 알겠지? 난 피해자야!"

내 필사적인 자기변호에 조금 설득이 됐는지, 사라와 디아나, 레이아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이 조금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었다.

"그럼 그렇게 당당한 구원씨. 저기 셋과는 어떻게 된 건지 변명을 한 번 해보시죠? 저 셋과 만난 건, 저는 물론 디아나하고도 만난 다음이었을 텐데요?"

"그러니까, 그게 말이지. 쟤들이 내 스킬을 보고 몬스터 물건이나 세우는 이상한 스킬 취급을 하잖아. 그래서 홧김에 내가 이 스킬로 너희 셋을 동시에 상대해도 천국을 보여줄 수 있다고 하니까 그럼 해보란 얘기가 돼서…으아아악! 부러져부러져부러져!"

"호오오오. 그러니까 이 몸들 몰래 저자들과 만나서 여자 셋을 동시에 안았다는 겐가. 어쩐지 이 몸과 사라양을 동시에 안을 때도 익숙한 것 같더라니…."

"아니야! 오해야! 쟤들이랑 안 잤어! 너희도 아까 들었잖아?! 칸나가 나랑 자봐야 했다면서 아쉬워했다고! 여자를 동시에 안아본 건 너희랑 할 때가 처음이었어!"

"거짓말하지 마요! 여자 셋을 동시에 안을 약속까지 해놓고 안했다고요?!"

"정말이야! 왜냐하면 까먹…난 그때도 너희를 사랑했으니까! 부끄러워서 말은 안하고 있었는데, 난 사실 그 이전부터 너희를 좋아하고 있었어! 그래서 괜히 다른 여자랑 자는 게 꺼려져서 안 갔다고!"

우리끼리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이런 말을 하게 될 날이 올 줄이야.

부끄럽다. 부끄러워서 죽을 것 같다. 지금이라면 접시 물에 코 박고도 죽을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내가 부끄러운 만큼, 그 효과는 발군이었다.

사라와 디아나의 손에서 힘이 확 풀어지는 게 느껴졌으니까.

으아아. 드디어 팔에 피가 통한다.

"정말이지? 믿어도 되지?"

드디어 다시 반말을 해주는구나. 사라야.

"그, 그럼. 사라야. 오빠 못 믿어?"

"아니…."

내가 최대한 진지한 표정으로 사라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자, 사라는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 먼저 시선을 아래로 피했다.

좋아! 됐다!

"크, 크흠. 기특한 생각도 했었구먼. 그렇게 이 몸이 좋았던가?"

그리고 디아나 역시도, 내 목에 둘렀던 팔을 풀고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뭔가 조금 자랑스러워하는 게 열 받긴 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지. 얜 밤에 무조건 울린다.

사라와 디아나는 그렇게 화가 풀렸지만, 그 당시 아직 아는 사이가 아니었던 레이아는 해당사항이 없는 얘기였다.

레이아는 여전히 박력있는 표정으로 에이미를 바라봤다.

"정말로 구원씨랑 안 잤나요?"

"으, 응! 응! 정말이야! 우리 그날 기다리고 있었는데, 전부 바람맞았어! 정말이야! 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얼굴 한 번 못 봤어! 정말이야!"

에이미는 겁에 질린 소동물처럼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얼마나 필사적인지, 정말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해가면서 사용할 정도였다.

넌 그래도 분위기 파악은 잘 하는구나. 성직자의 금기도 쉽게 깰 정도로 발랑 까진 애지만.

"그렇군요."

그리고 그제야 레이아의 눈동자도 점점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내 팔을 살짝 껴안으면서 다시 평소처럼 천사같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죄송해요. 구원씨. 사실 저하고는 만나기도 전의 일이었는데, 저도 참…. 제가 잠깐 어떻게 됐었나 봐요. 괜히 구원씨를 의심만하고…."

"아, 아냐. 나도 만약 레이아가 나랑 만나기 전에 다른 남자 여럿이랑 한꺼번에 잤단 소릴 들으면 마찬가지로 화났을 텐데 뭘. 당연한 거야. 전혀 신경 쓸 거 없어. 오히려 질투해줘서 기뻐."

나는 이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는 사실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그래도 이번 일로 확실히 알게 된 게 있다.

진심으로 화나면, 이 중에 레이아가 제일 무섭다. 기억해두자.

아무튼 우리 애들이 일단락된 상황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앨리시아를 노려봤다.

앨리시아는 아직 멘탈에 데미지가 조금 남아있는 듯, 살짝 풀죽은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있었다.

"너 아직도 거기서 뭐하냐? 얘들 데려가려고 온 거지? 남의 클랜 분열시키려고 들지 말고 얼른 데려가라. 자, 가라. 가."

나는 훠이훠이 하고 손을 내저으면서 앨리시아를 쫓아내려고 했다.

"어…응…. 아니, 아니 잠깐만! 기다려!"

"또 뭔데?!"

"할 말이 있어."

"나는 할 말 없거든?! 얼른 꺼져!"

"아니, 이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후우. 야. 기다려봐. 사적인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야. 잠깐 일 얘기를 하려는 거다."

내 계속되는 냉랭한 태도에, 앨리시아는 멘탈의 상처보다 분노게이지가 더 올라간 모양이다.

다시 눈에 힘이 들어가고 입이 험해지면서 욕설이라도 내뱉으려는 것 같았지만, 이내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말을 이어갔다.

저래 봬도 일단 감정 조절을 할 줄 아는 모양이다. 대형 클랜의 간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는 건가.

"일 얘기?"

"그래. 길드에서 이번에 대대적으로 새로운 정보를 발표했지. 정보 제공자는 세이비어스 클랜의 클랜장, 구원이라고 하더군. 너 맞지? 그렇게 독특한 이름은 달리 없을 거고, 칸나에게 들었던 전투방식대로라면 그 정보를 제공한 건 네가 맞을 거야. 그렇지?"

"그래. 그런데?"

앨리시아가 말하는 길드 발표라는 건 들어보지 않아도 뻔한 내용들이었다.

내가 순순히 인정하자, 앨리시아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너희 클랜, 정확히는 너한테 제안이 있어. 아니, 의뢰라고 하는 편이 좋겠군. 너, 우리 클랜이 몬스터들의 성기를 수집하는 것 좀 도와주지 않겠어?"

"뭐?"

"너도 길드에 정보를 팔 때부터 짐작하고 있었겠지만, 너같이 특수 능력이 있는 게 아닌 한 성기를 얻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야. 성기를 세우기만 하면 된다지만, 전투 중에 그게 어디 쉬운 일이어야 말이지. 그래서 손쉽게 세울 수 있는 너한테 부탁을 하고 싶다는 거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칸나, 세레나, 에이미 삼인방은 32화 후반부부터 몇 화 동안 잠깐 등장했던 인물들입니다.

261화의 레이아 행동 수정 말입니다만, 분위기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구원이 말하자마자 레이아가 기다렸다는 듯이 치료한다는 대목으로 전과 같은 분위기는 풍기게 만들었죠.

다만 수정 전은 너무 노골적인 것 같아서 어느 쪽으로도 해석할 수 있도록 조금 모호하게 바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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