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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임명
손을 마주잡고 위아래로 몇 번 흔든 후 손을 떼려고 했지만, 어째선지 실비아가 붙잡은 손을 놔주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얼굴이 묘하게 붉었다. 게다가 가랑이를 오므리고 허벅지끼리 미묘하게 비벼대고 있었다.
아까 그 성자의 손길 한 번으로 이렇게 되어버린 건가.
아까 성자의 손길로 터치를 할 때, 내가 풀어주지 않는 한 스킬의 효능이 얘 몸속에 계속 남아있을 거란 사실을 까먹은 건 아니다.
하지만 뭔가 뒤 구린 감정 없이 섹스를 할 수 있게 되자, 마음이 가벼워 져서 그냥 가볍게 장난을 친 거였다.
게다가 아까 그 손길은 정말로 최소한의 위력으로 한 거다.
아무리 실비아가 쾌감에 대한 내성이 없어서 반응이 민감하다고는 해도, 겨우 그걸로 이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할 일은 아닐 텐데.
아니면 지금부터 나와 섹스를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자주 하진 않을 거라고 못 박긴 했지만, 그래도 처음 동료로 맞아들인 때에는 바로 해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미안하게도 지금 당장 실비아를 안을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자기랑 자자는 사라와 레이아에게 도망쳐서 이리로 온 건데, 여기서 실비아하고 해버리면 나중에 감당이 안 되잖아.
아무리 내가 웬만한 건 미래의 나에게 떠넘긴다고 해도, 그건 정말로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일이 아닌 것 같아.
"야. 말해두겠는데, 지금 당장 너랑 섹스할 거 아니다."
"핫! 아, 아뇨! 그런 의미로 잡고 있었던 거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내 말을 듣자, 실비아는 깜짝 놀라며 바로 손을 뗐다.
하지만 말과는 달리, 표정은 살짝 시무룩해졌다.
"방금 약하게 스킬 쓴 것 때문에 못 참을 것 같아?"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참을 수 있습니다!"
"…만약 못 참겠으면 혼자 끙끙대지 말고 꼭 말해야 된다?"
"네, 네. 알겠습니다."
얘도 일단 부끄러운 감정이 없는 건 아닌지,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이거 조금 미안하네. 나도 사라랑 레이아한테 도망쳐온 상황만 아니라면 얘랑 한 번 해보고 싶긴 한데 말이야.
물론 실비아의 외모가 훌륭하니 안고 싶다는 남자로서의 본능도 있지만, 그보다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대체 얘는 전에 어떻게 그렇게 느꼈던 걸까?
섹스 애널라이즈를 사용해 봐도 여전히 성감대는 한군데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치료를 위해 했을 때, 분명 성자 스킬을 쓰지도 않았는데 계속해서 느끼고 있었다.
한때 디아나마저 치료를 위해 조사했다 실패했다고 했던 불감증이 말이다.
어떻게 된 건지 호기심이 생기잖아.
"그, 그럼 전 구원님께서 안아주실 때까지, 계속 레벨을 올리고 있으면 됩니까?"
그때 실비아가 갑자기 이상한 말을 해왔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네? 그야 구원님의 던전행이 더 편해지시려면…."
"금지야."
"네?"
"너 이제 다른 남자랑 자는 거 금지야. 난 딴 놈이 안은 여자 안는 거 싫어."
실비아가 한 말을 이해하는 순간, 생각을 이어나가는 것보다 먼저 내 입에서는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곰곰이 생각하자면, 내가 얘한테 다른 남자랑 자지 말라고 하는 건 이상했다.
내 여자로 인정한 것도 아니잖아? 게다가 자주 안진 않을 거라고 못까지 박아둔 상태고.
그런데도 다른 남자랑 자지 말라고? 이기적이기 그지없는 발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비아가 다른 남자한테 계속 안길 거라고 생각하니 열불이 뻗쳤다.
사라나 디아나한테 독점욕이 강하다고 하면서, 결국 독점욕이 제일 강한 놈은 나였다는 말이다.
"읏…넷!"
하지만 그 이기적인 발언에, 어째선지 실비아는 행복한 미소를 띠우며 힘차게 대답했다.
그 미소를 보자 왠지 죄책감이 더 강해지는 것 같아서, 나는 시선을 피하며 화제를 돌렸다.
"아, 아무튼! 동료도 됐으니까 너 그 말투 좀 어떻게 안 되냐?"
"말투…말입니까?"
"그래. 너 귀족 영애라면서. 평소에도 그런 말투를 쓰는 건 아닐 거 아냐."
"그, 그게…실은 평소에도 이런 말투입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미안할 건 없는데. 평소에도 그런 말투라고?"
"네…. 실은 어렸을 때부터 기사단에 소속되어 있어서…."
아, 그러고 보니 디아나도가 그런 말 했었지.
불감증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레벨은 엄청 높았고, 덕분에 어린나이에 걸맞지 않은 성장을 할 수 있었다고. 그 영향인 건가.
"그래. 뭐 평소 말투가 그런 거면 억지로 바꿀 필요는 없어. 편안한대로 해. 다만 그 구원님이란 건 어떻게 안 되겠어? 내가 님자 붙여서 부를 정도로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그냥 편하게 구원이라고 불러."
"네, 네?! 하,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고 자시고. 너 처음 만났을 땐 그냥 구원이라고 불렀었잖아."
"죄, 죄송합니다! 그, 그때는…그게…."
"아니. 질책하는 게 아니야. 오히려 그때처럼 편하게 부르라는 거지."
"그, 그럼…. 구, 구, 구…."
네가 비둘기냐. 구구구 거리게.
"그, 그냥 구원님이라고 부르면 안 됩니까? 구원님은 구원님입니다!"
결국 실비아는 날 편하게 부르지 못하고, 울먹이면서 그런 말을 외쳤다.
그게 울먹이면서 할 말이냐? 그러니까 왠지 내가 괴롭히는 것 같잖아.
그래. 그냥 너 좋을 대로 해라.
나는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얘기 끝났어."
실비아와 얘기를 하면서 나름 시간이 흘렀다.
이쯤 되면 사라와 레이아도 조금 진정됐을 거라는 생각에, 다시 내 방으로 돌아갔다.
해산해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라와 디아나, 레이아는 여전히 내 방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런데도 실비아와 대화할 때는 방해될까봐 찾아오지 않았다니. 역시 우리 애들은 착하다니까.
그리고 실비아와 하지 않고 참은 나는 천재가 분명해.
셋은 방 안의 테이블에 앉아서 다들 우아하게 티타임을 즐기는 중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없으면 다들 친하기는 하단 말이야.
중간에 내가 끼면 경쟁심이 폭발하는 모양이지만.
만악의 근원은 나인가.
내가 들어오자마자, 다들 내 몸을 위에서 아래로 쭉 스캔하는 것 같았다.
역시 한 판하고 왔는지 아닌지 확인하고 있어.
기분 탓인지, 레이아의 콧망울이 귀엽게 움직이는 게 냄새까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아무튼 찔리는 게 없는 나는 당당하게 실비아를 소개했다.
"그런고로 얘도 오늘부터 우리 클랜이니까, 다들 잘 부탁해."
"자, 잘 부탁드립니다!"
실비아는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허리를 90도로 꾸벅 접으며 인사했다.
"음. 환영하네."
"새삼스럽지만 잘 부탁드려요."
"후훗. 잘 됐어요."
"감사합니다. 디아나님. 사라님. 레이아님."
"사, 사라님?!"
"실비아씨. 이제부터 동료니까 그렇게 존칭으로 부르실 필요는 없어요."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구원님의 부인 분들께 그런…."
"부, 부인이라니…. 아직 결혼은 안했어요."
사라야. 쿨한 표정 무너졌어. 좋아하는 거 다 티난다.
물론 그런 사라도 사랑스럽고 좋지만.
아무튼 실비아가 녹아드는 건 생각보다 훨씬 손쉬워보였다.
어떻게하면 우리 애들의 마음에 들 수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
아니, 그런 계획적인 발언이라기보다 그냥 진심으로 한 말 같기는 하지만.
"그럼 새 동료가 들어온 기념으로 오늘 점심은 외식이라도 할까?"
실비아와의 인사가 끝나고, 다들 받아들여주는 분위기 속에서 그런 제안을 했다.
예로부터 판타지 세계에서 동료들끼리 친해지기 위해서는 같이 술을 마시는 게 최고였지.
게다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가면, 낮 시간 동안 누가 먼저 사도 임명을 받을 건지 다툴 일도 없어지니까 말이야.
내 머리도 나름 잘 돌아가지 않냐?
"좋구먼! 아주 좋은 생각일세! 그러세!"
그러자 어째선지 디아나가 반색을 하며 찬성했다.
뭐야. 왜 이렇게 좋아해?
"야. 그러고 보니. 너 왜 여기서 태평하게 이러고 있냐?"
"그, 그게 무슨 말인가? 당연히 자네가 실비아양과 잘 얘기했는지 걱정돼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 아닌가!"
"그럼 얘기 잘 된 거 확인했으니까 이제 마법사 협회 애들한테 갈래?"
"시, 식사는 어쩌려고 그러는 겐가?! 외식은?!"
역시 그거였군.
사도 임명으로 다툴 필요도 없는 디아나가 계속 여기 눌러 앉아있었던 이유가 그거였어.
"음. 역시 식사는 집에서…."
"무슨 소리인가! 이런 경사스런 날엔 외식이 좋네!"
"너야 말로 무슨 소리야. 바네사가 우리 식사를 위해서 얼마나 애써주는데. 집 요리가 웬만한 음식점들보다 훨씬 맛있잖아. 안 그래?"
"으읏…. 그, 그건…."
디아나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대답을 못하고 울상을 지었다.
역시 괴롭히는 보람이 있다니까.
괜히 사도의 인장을 자랑해서 날 고생하게 만든 벌이라고 생각해라.
이렇게 계속 애태우다가 마지막에….
"후훗. 구원씨. 너무 그렇게 디아나씨를 괴롭히면 안 돼요."
"네. 미안해요. 천사님."
더 괴롭혀 주려고 했지만, 우리 천사님의 부드러운 한 마디에 나는 바로 마음을 바꿨다.
하아…. 어쩜 이리 착하실까. 정화된다. 역시 천사님이 최고야.
그렇게 그 날은 다 같이 나가서 식사를 하고, 돌아다니면서 실비아를 파티에 융화시키는 데 전념했다.
처음에는 딱딱하게 굳어서 긴장해있던 실비아였지만, 저녁 즈음에는 긴장도 풀린 모습이었다.
특히 실비아가 꼬박꼬박 존대를 하며 내 아내 취급을 해주는 게 주요했던 모양인지, 셋 다 실비아를 상당히 맘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내가 조금 질투심이 생길 정도로 말이다.
아니, 부인 소리 듣는 게 좋은 건 알겠는데, 너무 맘에 들어 하는 거 아니냐? 나도 좀 신경써줘라.
여자 넷에 남자 하나가 돌아다니는 거다.
어느 샌가 자연스럽게 쇼핑을 하게 되는 흐름이 되어버렸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남자는 끼어들 수 없는 여자들끼리의 대화가 시작되어 버렸다는 얘기다.
나 완전히 편리한 짐꾼 역할 아니냐? 인벤토리가 있으니 힘들진 않지만 말이야.
나도 좀 얘기에 껴줄…아니다. 생각해보니 여기 옷가게잖아?
으읏. 완치된 줄 알았던 예전의 트라우마가…. 드레스 한 벌 고르는 데 몇 시간이 걸리는 게 말이 돼?!
역시 내가 끼는 건 아닌 것 같아. 그냥 너희끼리 즐겁게 쇼핑해줘.
그렇게 한 발자국 떨어져서 나 홀로 고독한 싸움을 하고 있을 때, 문득 나처럼 일행과 한 발자국 떨어져서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바로 레이아였다.
"레이아? 왜 그러고 있어? 같이 쇼핑 안 해?"
"아, 구원씨. 후훗. 전 괜찮아요. 이렇게 구원씨 옆에 있는 게 더 좋은 걸요?"
레이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살며시 내 팔을 끌어안았다.
날 생각해주는 건가. 역시 천사님은 레이아야.
응? 반대로 말했나? 아니, 딱히 틀린 말 같지도 않은데.
하지만 그러면서도, 레이아의 시선은 계속해서 쇼핑을 즐기고 있는 사라와 디아나, 실비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저 눈동자에 담긴 감정은 뭘까? 부러움…인가?
아니, 부러워 할 거면 그냥 같이 껴서 쇼핑하면 되잖아.
돈은 버는 대로 제대로 분배하고 있으니, 레이아가 딱히 부족한 것도…잠깐. 그러고 보니 레이아는 버는 돈을 어디다 쓰는 거지?
관장약 사건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사라는 종종 혼자서라도 나가서 쇼핑 같은 걸 한다.
디아나는 말할 것도 없다. 애초에 저 저택에 돌아가는 비용을 전부 부담하고 있는 거니까.
하지만 레이아는? 그러고 보니 우리 파티에 들어오기 전에는, 돈을 전부 빈민가 사람들을 돕는데 쓰느라 스태프도 못 사서 재료를 구하고 있었다.
솔직히 파티에 들어온 이후로도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다들 자기 몫의 돈을 어떻게 쓰든 자기 마음이란 생각도 있었고, 이제 마나풀 서식지를 발견했으니 빈민가에 레이아가 그만큼 자기 돈을 쓰지 않아도 괜찮을 거란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내 생각이 짧았다는 걸 깨달았다.
상대는 우리 천사님이다.
사정이 조금 나아졌다고, 남을 돕는 데 쓰는 돈을 줄일 사람이 아니란 거다.
지금도 설마 버는 족족 빈민가 사람들을 돕는데 쓰고 있는 건가.
그러고 보니 옷도 항상 사제복이다.
그렇다고 사제는 항상 사제복만 입고 있어야 하냐면, 그건 아닐 거다. 처음 저택에 왔을 때 디아나의 드레스를 빌려 입은 적도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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