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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동료
결국 디아나가 나한테 업히고, 사라와 레이아가 각각 양 팔에 달라붙은 상태에서 방 안을 조사하게 됐다.
사실 그래도 될 정도로 조사는 손쉽게 끝이 났다.
방 안에는 깨진 알의 조각들이 산란해 있을 뿐, 숨겨진 보물 같은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있었다.
거대한 마석이 박혀있는 곳을 처음에는 벽 양쪽으로 사람 두 명 정도가 나란히 들어갈 수 있을 크기의 틈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을 통해 벽 너머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벽 너머에는 넓은 공간이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여전히 사람 두 명 정도가 나란히 지나다닐 수 있을 넓이 정도의 통로가 반대편 틈까지 이어져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틈과 틈을 잇는 통로의 한 가운데에,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있었다.
"이거 역시 3계층으로 내려가는 길이겠지?"
역시 그 여왕개미도 계층의 주인 같은 종류였구나.
디아나의 말을 들어보면 모험자 길드에 알려진 루트의 2계층 주인보다는 훨씬 강한 모양이지만, 아무튼 그 여왕개미도 3계층으로 내려가는 길을 지키고 있었던 거다.
어째 난 다음 계층으로 넘어갈 때마다 비밀 루트로 가는 것 같네.
"그래 보이는데? 어떻게 할 거야? 한 번 내려가 볼까?"
사라 얘는 겁도 없나.
어제 하마터면 큰일 날 뻔한 경험을 하고도, 어제 싸웠던 개미들보다 강한 몬스터들이 득실거릴 다음 계층으로 넘어가는 게 전혀 무섭지 않은 모양이다.
하긴 3계층이라고 해도 일반 몬스터는 병정개미보다 조금 더 강한 정도일 거고, 여왕개미 같은 놈이 득실거릴 리는 없긴 하지만.
하지만 그냥 가기엔 한 가지 사실이 걸렸다.
"그야 물론…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냥 가도 될까?"
"응? 무슨 뜻이야?"
"2계층에 올 때도 갑자기 더워져서 고생했었잖아. 3계층은 그런 거 없겠어?"
"왜 없겠나. 3계층은 온통 눈으로 뒤덮인 추운 곳이라네. 그래도 걱정 말게. 이 몸이 있으니 아무 문제없네."
그러자 뒤에서 바로 디아나의 자신만만한 목소리가 들렸다.
등에 업혀있으니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다. 디아나는 오랜만에 자신의 활약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내심 기쁜 모양이었다.
하긴 여왕개미랑 싸울 때는 체면을 구겼으니 더욱 그렇겠지.
"역시 우리 대마법사님. 믿음직스럽다니까."
"흐잇!"
나는 디아나의 엉덩이를 가볍게 톡톡 때려주자, 곧바로 괴상야릇한 신음성과 함께 머리에 디아나의 꿀밤이 날아왔다.
어제 싸우면서 내구 250을 찍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더 안 아픈 것 같다.
"야. 살살 때려. 손 다칠라."
"이, 이익! 무식하게 튼튼해서는! 자넨 돌 머리가 자랑인가!"
하하하. 자랑이다. 분하지?
"야. 돌 머리라니. 난 머리만 단단한 게 아니라 온 몸이 단단하다고. 물론 제일 단단한 데는 아래에 달린…."
"그럼 거길 공격해도 된다는 말인 겐가?"
"죄송합니다."
아무리 디아나의 공격이 약해도 거길 공격받긴 싫은 게 남자의 본능이다.
그렇게 쓸데없는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우리는 길을 따라 내려갔다.
개미굴이 이미 2계층보다 조금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1계층에서 2계층으로 내려가는 통로보다는 조금 짧게 느껴지는 시점에서 우리는 통로의 끝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막혀있었지만 말이다.
통로의 끝은 새하얀 벽으로 가로막혀 더 이상 길이 이어져 있지 않았다.
"막다른 길이네요."
앞서가던 우리가 멈춰 서자 왜 그런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통로가 그리 넓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내 뒤에서 따라오고 있던 레이아가 뒤에서 까치발을 한 채 배꼼 얼굴을 내밀고 말했다.
젠장! 디아나를 업고 있지만 않았다면 등에 가슴이 닿았을 텐데!
아니, 가죽 갑옷을 입고 있으니 어차피 감촉은 느껴지지 않나.
역시 사람은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 돼. 지금 만지고 있는 디아나의 말랑말랑한 허벅지 감촉이나 계속 즐기자.
아, 디아나의 허벅지가 레이아의 가슴보다 못하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만약 둘 다 즐길 수 있다면 둘 다 즐기고 싶다는 얘기일 뿐이야.
"앗, 차가!"
나보다 앞장서서 걷고 있던 사라가 그 벽면에 살짝 손을 대보더니, 황급히 손을 땠다.
아무래도 이 하얀 벽은 눈인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주변 온도도 꽤나 내려간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눈에 막혀서 온도가 차단된 것 뿐, 이미 3계층에 도달해있는 건지도 모른다.
"어떻게 할까? 더 이상 못 갈 것 같은데."
"무슨 소리인가? 사라양. 조금만 옆으로 비켜보게."
디아나는 그렇게 말하더니, 내 어깨 너머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주문을 외우지도, 허공에 마법진을 그리지도 않았는데 디아나의 손바닥 앞에 사람 머리통만한 화염구가 생성됐다.
오오. 이제 이 정도 영창 없이도 사용가능해진 거구나.
디아나는 여전히 내 어깨 너머에 손을 내민 채로, 화염구를 조종하기 시작했다.
화염구가 눈의 벽 쪽으로 다가가자, 근처의 눈들이 순식간에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어떤가? 이걸로 갈 수 있게 됐다네."
"역시 디아나야. 잘했어."
"흐흠. 뭐 당연한 걸세."
그러게 말하는 디아나는 말과는 다르게 상당히 기분이 좋아보였다.
얘 정도 위치면 이런 말은 수도 없이 들었을 텐데. 그래도 기분 좋은 건 좋다는 건가? 아니면 내가 해줘서 그런 건가?
마음 같아서는 또 다시 엉덩이도 톡톡 쳐주고 싶었지만, 이번에는 참기로 했다.
아무리 나라도 때와 장소는 구분할 줄 안다. 마법을 사용하는 중에 방해를 할 수는 없지. …저 화염구가 나한테 날아올지도 모를 일이고.
그렇게 디아나의 화염구로 눈을 녹이면서 전진을 시작했지만, 앞뒤좌우위아래가 전부 눈으로 뒤덮여 있는 건 아무래도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갑자기 눈이 무너져 내리면서 생매장되는 건 사양이다.
디아나도 그걸 알고 있는지, 길을 정면으로 뚫는 게 아니라 위쪽으로 비스듬하게 뚫어나갔다.
그렇게 5분정도 눈 속을 헤치며 나간 결과, 드디어 바깥 공기를 쬘 수 있었다.
"추워!"
눈을 뚫고 나가자, 그동안 눈에 차단되어있던 3계층의 차가운 공기가 한 번에 밀어닥쳤다.
가죽갑옷을 뚫고 차가운 한기가 뼛속까지 강타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나마 나하고 사라는 나은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천 옷을 입고 있는 디아나와 레이아는 죽을 맛이겠지.
특히 내 리퀘스트로 개조가 왕창 돼서 몸에 달라붙고 노출까지 생긴 레이아의 사제복은 이 추위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거다.
레이아는 세모난 귀가 머리에 딱 붙도록 접고, 꼬리를 파르르 떨었다.
그러면서도 싫은 소리 한 번 안 내는 게 역시 천사님다웠다.
딱딱딱딱.
그리고 우리 천사님보다 더 한 애가 한 명 있었다.
소리가 들리는 곳에 시선을 돌리니, 실비아가 이빨만 딱딱 부딪히면서 완전히 얼어붙어있었다.
호화로운 판금갑옷은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독으로 작용한 듯, 갑옷에 서린 서리가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비싸 보이는 갑옷인데, 이런 상황을 상정한 대책은 되어있지 않은 모양이다.
하긴 그러고 보니 대사제님과의 상식 수업에서, 이 나라는 1년 내내 기후가 온화하다고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굳이 갑옷에 방한 대책을 할 필요는 없었겠지.
내가 저 상황이었으면 당장 뒤로 돌아서 왔던 길을 되돌아갈 텐데.
이런 상황에서조차 나하고 있고 싶은 걸까? 아니, 그냥 얼어붙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것뿐인가?
"디아나! 방한대책은?!"
"이제 됐네."
나도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디아나에게 외치듯 물어보자, 디아나는 곧바로 대답을 해줬다.
그리고 대답과 동시에, 디아나의 몸을 중심으로 화악하고 따뜻한 열기가 퍼져나갔다.
"오, 오오!"
나는 뒤에 업고 있던 디아나를 얼른 앞으로 옮기고 꼬옥 끌어안았다.
귀엽게 생긴 생체 난로구나.
내가 그렇게 디아나를 껴안고 있자, 곧바로 레이아도 정면에서 디아나에게 달라붙어왔다.
역시 견실하게 참고 있긴 했어도, 춥긴 추웠던 모양이다.
"으윽! 수, 숨이! 에에잇! 어서 그 가스…떨어지게! 달라붙지 않아도 제대로 춥지 않게 만들었네!"
왜 그렇게 레이아의 가슴을 적대하는 거냐. 너도 한 천년 후쯤엔 저렇게 될 거잖아.
자기도 미래엔 거유가 될 주제에, 레이아가 파티에 들어온 이후론 묘하게 거유를 적대하게 된 디아나였다.
이러다가 나중에 자기도 커지면 큰 가슴이 싫다면서 다시 전생해버리는 거 아닐까?
그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지.
"하지만 이러고 있는 편이 더 따뜻해요. 디아나씨도 따뜻하게 만들어 드릴게요."
하지만 레이아는 한 발도 물러나지 않은 채, 디아나를 꼭 끌어안았다.
오히려 자신의 꼬리를 디아나의 몸에 감으면서, 더욱더 꼭 끌어안았다.
평소 레이아의 성격이라면 디아나가 이렇게 싫어하는 모습을 보고 바로 물러났겠지만, 방금 전의 추위가 어지간히 싫었던 모양이다.
덕분에 레이아의 가슴은 디아나의 얼굴에 짓눌린 채 이리저리 형상을 바꿨다.
부럽다. 대신할 수 있다면 대신하고 싶다.
"으, 으윽! 자, 자네가 어떻게 해보게!"
디아나가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내게 부탁을 해왔다.
훗. 그런 얼굴로 부탁받으면 거절할 수 없지.
"레이아. 그쯤 해둬. 그렇게 가슴을 밀어붙이고 싶으면 나한테…."
"구원?"
조금 장난 친 것뿐인데, 곧바로 사라가 3계층의 기온만큼이나 차가운 눈빛으로 날 쏘아봤다.
하여간 농담이 안통해요. 그런 질투심 강한 점이 또 사라의 매력 포인트이긴 하지만.
"저기 실비아를 봐. 아까 전까지만 해도 얼어있었는데, 지금은 녹아가고 있는 중이잖아. 디아나한테 떨어져도 괜찮을 거야."
"…네."
레이아는 살짝 아쉬워하는 얼굴로 디아나에게서 떨어졌다.
그렇게 상황이 일단락되고, 겨우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지금 우리가 서있는 곳은 커다란 언덕 위였다.
즉, 2계층으로 가는 통로는 이 눈으로 된 언덕의 아래쪽에 파묻혀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러니 아직까지 저 비밀 통로가 발견이 안 됐지.
2계층 때는 오크 주둔지의 한복판으로 이어져있더니, 3계층에선 눈 밑이냐.
정규루트가 아닌 쪽의 통로는 하나같이 위치가 변태 같다.
아니, 그렇게 말하면 그걸 또 발견해버린 난 대체 얼마나 변태냐는 얘기가 되어버리나.
아무튼 2계층 때처럼 몬스터들의 주둔지 한복판에 위치하는 건 아닌 만큼, 이번이 그나마 나은 경우라고 생각해도 되겠지.
돌아갈 때 다시 저 밑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싫은 기분이 되지만 말이다.
"실비아도 괜찮아?"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결국 어제도 실비아와 섹스를 하게 됐던 거다. 괜히 눈치가 보였기 때문에, 사실 오늘은 하루 종일 실비아하고는 변변히 대화도 안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까지 아무 말도 안 건넬 수는 없지.
"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까까지만 해도 얼어있던 실비아는, 내가 말을 걸자 바로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응이 이렇게 기특하니까 오늘 하루 종일 말 안 건 게 또 죄책감 생기네.
나는 그런 죄책감을 속이듯 바로 시선을 딴 데로 돌렸다.
"디아나. 어때? 여기가 어딘지 알 것 같…아니다."
"뭔가. 그 반응은. 자네 이 몸을 무시하는 겐가? 2계층 때도 결국 이 몸이 말한 방향으로 가서 마을을 찾지 않았었나!"
"오오. 그랬지. 역시 우리 대마법사님은 기억력도 좋으셔. 그럼 여기도 어딘지 알 것 같아?"
"전혀 모르겠네!"
어쩌란 거야.
자랑스러운 듯이 가슴 내밀지 마라. 레이아랑 비교하면 있는지 티도 안 나는 수준인 주제에.
아니, 아무리 그래도 레이아하고 비교하면 불쌍한가.
좋아 인심 썼다. 지금부턴 실비아하고 비교해서 거유라고 불러주지.
물론 내 마음 속에서만 그렇게 부른다는 거다. 이런 걸 입 밖으로 냈다간 여기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매장될 거다.
나는 그렇게 혼자 결론을 짓고, 주변을 둘러봤다.
이리저리 지형이 굴곡지어있고, 앙상한 가지의 나무들도 간간이 보였다.
허허벌판이던 2계층과 비교하자면 장소를 구분하기 쉬워 보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2계층과 비교했을 때의 얘기다. 온통 하얀색으로 뒤덮여 있는 만큼 3계층 역시도 위치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아보였다.
"그럼 일단 조금 돌아다녀볼까? 주변에 어떤 몬스터가 나오는지 파악하면 대충이나마 위치를 특정 지을 수 있겠지."
맵퍼가 아니라서 주변 풍경에 별로 신경을 안 써서 장소 구분을 못하는 것뿐이지, 디아나가 기억력 자체는 엄청나게 좋으니 말이다. 몬스터만 보면 대강의 위치정도는 바로 파악할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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