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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228화 (212/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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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동료

    "아무튼 실비아, 미안하지만 눈 좀 감고 있어줘. 그냥 우리끼리만 알고 있는 비밀이 있어서 그러는 거니까 오해하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실비아는 일순간 씁쓸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제대로 눈을 감았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양 손바닥으로 눈까지 확실히 막았다.

    젠장. 귀엽잖아. 그리고 말은 또 왜 저렇게 잘 들어.

    아무튼 나는 실비아가 눈을 가린 걸 확인하고는, 일단 모기떼의 사체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모기떼를 해체하는 것보단 그 시간에 다른 몬스터를 잡는 게 효율이 좋다지만, 어차피 시간 때우기니까 말이야. 게다가 이건 초월종이니 다른 모기떼랑 다르게 나름 수입도 짭짤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모기의 꼬리를 하나 더 습득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꼬리도 비밀 열쇠의 기능을 하는 이상, 아마 양물취급인 건 확실할 거다.

    그렇다면 레이아의 스태프 강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어?

    그런고로 모기떼에서 꼬리를 하나 더 찾아낸 다음, 나는 비밀통로를 열기 위해 선인장으로 다가갔다.

    힐끔 곁눈질로 실비아가 여전히 눈을 가리고 있는 걸 확인한 다음 선인장에 모기의 꼬리를 꽂아 넣자, 땅울림과 함께 개미굴의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땅울림동안 실비아는 당황했는지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움찔움찔 거렸지만, 결국 끝까지 눈에서 손을 떼지는 않았다. 기특하다.

    "이제 됐어. 눈에서 손 떼도 돼."

    "네. 이, 이건…?"

    실비아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던 평지에 갑자기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만한 크기의 구멍이 뚫려있자 놀란 모양이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이건 다른 사람들한테 절대 말하면 안 된다?"

    "네. 알겠습니다."

    실비아는 끄덕끄덕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이면서 양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렸다.

    입은 왜 가리냐. 지금 말하지 말라는 게 아니잖아. 뭐, 귀엽지만.

    "그럼 가볼까?"

    나는 별 긴장감도 없이 개미굴에 발을 내디뎠다.

    알고 있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났으니, 다시 입구부터 개미들이 바글바글하겠지.

    하지만 이제는 무투가 레벨을 올린다고 성자 스킬은 어그로를 끄는 데만 사용할 것도 아니니까 말이야. 긴장할 필요는 전혀 없지.

    레벨이 올라 한층 밝아진 것 같은 디아나의 빛 마법을 따라 개미굴에 들어서자, 역시나 무수히 많은 개미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럼 가볼까. 아, 실비아 넌 그냥 전투에는 참가할 필요…아니, 얘들 곁에 있다가 혹시 내가 놓치는 몬스터가 있으면 처리를 부탁할 수 있을까?"

    "네. 맡겨주십시오."

    아무리 무투가 레벨을 올릴 필요가 없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레벨을 올릴 수 있는데 일부러 경험치를 나눠줄 필요는 없다.

    게다가 무엇보다 실비아는 우리 파티의 고정 멤버가 아니다.

    괜히 실비아와 같이 싸우면서 전위 2인 체제에 익숙해지면, 나중에 실비아가 빠졌을 때 후유증이 생길 위험이 있다.

    그래서 원래대로라면 전위에서 나와 같이 싸워야 할 포지션인 실비아는 우리 애들과 같이 후위로 배치시켰다.

    "자네, 알고 있겠지만 성역 선포는 절대 금지일세!"

    내가 앞으로 달려 나가자, 디아나가 뒤에서 절박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래. 내가 아무리 멍청해도 또 실비아가 성역 선포에 영향 받도록 하겠어? 걱정 마.

    아니, 쟤는 그걸 걱정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밖에서 또 흥분해 버릴까봐 걱정하는 건가?

    그렇다곤 해도 이렇게 많은 수를 상대로 성역 선포만큼 어그로를 끌기 좋은 스킬도 없다.

    성자의 진심을 쓴다고 해도, 모든 몬스터가 날 공격하러 오는 건 아니니 말이다.

    날 무시하고 뒤쪽을 향하는 놈들까지 잡아두려면, 역시나 성역 선포는 필요하다.

    그래서 난 눈대중으로 후위와의 거리를 확인하고, 활발히 움직여도 절대 후위까진 닿지 않을 범위로 성역 선포를 발동했다.

    그리고는 성자의 진심을 사용해 개미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성자의 진심은 역시나 성자의 손길만큼의 위력은 나오지 않아서, 스치기만 해도 몬스터들이 픽픽 쓰러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근력은 250. 즉, 첫 레벨 제한을 풀기 전의 한계치에 도달해있는 상황이다.

    스치면 쓰러지는 수준은 아니라고 해도, 제대로 맞추기만 하면 여기 몬스터들은 한 방에 찌부러진다.

    이게 딱 좋은 수준일지도 모르겠군.

    게다가 예전의 성자의 손길처럼 몬스터들이 나에게 공격하기 위해 닿는 순간 일시적으로 스턴 상태가 되기 때문에, 꽤나 테크니컬한 전투를 구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투가 레벨을 올릴 필요성은 못 느끼고 있지만, 성자의 진심의 레벨은 솔직히 얼른 올리고 싶었다.

    아무리 내가 우리 애들이랑 관계를 가질 때 스킬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강력하면 할수록 마음이 든든해지고 남자로서 자신감이 생기는 게 성자의 스킬 아니겠어?

    그렇게 전투가 한동안 이어졌다.

    나는 더 이상 전투 직의 레벨을 올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디아나와 레이아는 그런 사정까지는 잘 모른다.

    그래서겠지. 나와 사라의 공격만으로 개미떼들이 처리되는 것 같자, 디아나는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사실 디아나나 레이아에게 이제 전투직 레벨을 올릴 필요가 없어졌다고 말하기도 힘든 게, 지금까지 마왕 토벌을 목적으로 전투직 레벨을 올렸다는 사실을 말해봐라.

    우리 천사님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실 거고, 디아나는 그걸로 한참을 놀려댈 거다.

    앞으로도 마왕이 어쩌고 운운은 영원히 나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있어야지.

    아무튼 개미굴 입구 쪽 방의 몬스터를 소탕하는 건 나와 사라만으로 꽤나 간단하게 처리가 됐다.

    전엔 디아나의 마법까지 동원하고도 그 고생을 했었는데, 이렇게 간단히 끝나게 될 줄이야. 역시 이 세계는 레벨이 최고야.

    "구원씨!"

    그리고 방의 소탕이 끝나자마자, 레이아가 잽싸게 나한테로 달려왔다.

    같은 파티라고 해서 생명력 게이지가 보이는 게 아니니, 앞에서 혼자 분투한 내가 엄청나게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사실 데미지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지만, 딱히 치료를 받을 필요까진 없는 수준인데 말이야.

    하지만 손에 밝은 빛을 머금고 내 몸을 어루만지는 레이아에게 그런 말을 전할 수는 없었다.

    아니, 나는 오히려 더 아픈 척을 하면서 레이아에게 엉겨 붙었다.

    "아야야. 레이아. 여기도 어루만…치료해줘."

    "후훗. 네. 여기요? 아니면 더 안쪽인가요?"

    내가 허벅지 안쪽을 가리키자, 레이아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살짝 장난까지 쳐줬다.

    하지만 이내 다시 진지한 표정을 짓고, 열심히 치료에 전념했다.

    정말로 걱정해서 이렇게 열심히 치료해주시는데 미안해요, 천사님.

    하지만 우리 천사님 손길이 좀 좋아야죠.

    전투가 끝날 때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당당하게 여기저기 만져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던전에 올 보람은 있는 것 같았다.

    이런 목적으로 던전에 다니면 천벌 받으려나.

    "디아나. 지금부터는 마법을 아낄 필요 없이 그냥 적당히 써줬으면 좋겠어."

    치료가 끝나고 개미 몬스터들의 사체에서 마석을 캐면서, 나는 디아나에게 말을 걸었다.

    "음? 그러면 자네와 사라양의 직업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이 몸은 가만히 있는 편이 좋지 않겠나? 실비아양도 그래서 뒤로 물린 것이라고 생각했네만."

    "그건 그런데, 솔직히 우리 레벨이 이제 2계층에서 돌아다닐 레벨은 아니잖아? 여기는 그냥 뭐하는 곳인지 정체가 궁금해서 와본 거고 말이야. 그러니까 레벨 업에 집중하는 것보다는 탐험 속도를 높이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흠…. 뭐, 자네가 그렇다면 이 몸은 상관없네만."

    전에는 그렇게 효율적인 레벨 업에 집중하던 내가 이런 말을 한다는 사실에 디아나는 다소 의아한 것 같았지만, 그래도 납득은 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 이후로 디아나가 마법을 난사하게 되자, 개미굴의 소탕이 몇 배는 더 속도가 빨라졌다.

    과연 레벨만 오르면 알아서 직업 레벨도 올라가는 대마법사님답다.

    개미굴은 커다란 방들이 짧은 통로를 통해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복잡한 구조를 하고 있었지만, 시야 구석에 맵이 떠올라있는 나에게 복잡한 길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솔직히 복잡한 맵의 구조보다는 방에 달려있는 개미의 알들이 더 신경 쓰였다.

    처음에는 방에 있는 알들을 전부 깨면서 전진했지만, 서너 번째 방부터는 그냥 방치하면서 전진해왔다.

    그도 그럴게, 알이 너무 많단 말이야.

    바닥을 제외하고는 벽부터 천장까지 빼곡히 알들이 박혀있는데, 전부 터뜨리면서 가기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마석이라도 나오면 그나마 낫겠는데, 아무 보상도 없다보니 더더욱 그랬다.

    결국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많은 알들을 전부 깨면서 전진하기는 힘들다는 결론을 내리고, 우리는 알들을 방치한 채로 전진하고 있었다.

    그렇게 개미굴을 전진해나가자, 튀어나오는 몬스터들 중에 더 크고 강한 몬스터가 있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초월종이라고 불릴 수준은 아니었다. 마석도 초월종치고는 너무 초라했고.

    아마 1계층의 고블린과 홉고블린 같은 개념의 상위 몬스터겠지.

    개미 몬스터니까 일개미와 병정개미 정도 되려나?

    그렇게 방을 전진할수록 일개미보다 병정개미의 비율이 점점 더 늘어났다.

    그리고 결국 모든 개미들이 병정개미로 변했다고 느껴졌을 때, 드디어 초월종으로 보이는 놈이 나타났다.

    몸 길이는 대략 3미터 정도.

    아니, 아무리 초월종이라지만 일반 몬스터랑 몸 크기가 너무 다른 거 아니야?

    병정개미도 기껏해야 1미터 정도인데.

    몸집이 워낙 크다보니, 그 턱에 달린 이빨이 마치 장검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래봤자 2계층의 몬스터다.

    2계층의 오크 초월종도 지금보다 레벨이 훨씬 낮을 때 이미 잡은 전적이 있는데, 고작 저런 놈한테 겁먹을 필요가 없지.

    나는 기합을 넣듯이 두 주먹을 한 번 강하게 부딪히고, 놈을 향해 달려갔다.

    어디 근력 250의 위력을 쬐끔만 맛 보거라!

    아무런 스킬도 사용하지 않고, 순수하게 힘으로만 휘둘러지는 주먹이 놈의 안면에 제대로 틀어박혔다.

    퉁!

    그리고 뭔가 둔탁한 소리가 나면서, 내 주먹이 튕겨져 나왔다.

    뭐야 이거? 물리 내성?

    놈 역시 충격이 전혀 없는 건 아닌지 휘청대고 있었지만, 그래도 찌부러지지 않고 여전히 제대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중요했다.

    설마 2계층에서 근력 250의 공격력을 버텨내는 놈이 있을 줄이야.

    얕봐도 너무 얕봤나. 과연 초월종은 다르군.

    …이라고 내가 생각할 것 같아?!

    나는 곧장 주먹에 성자의 손길을 둘렀다.

    애초에 내가 오크 초월종을 잡았던 것도 때려잡은 게 아니라 말려 죽인 거거든!

    나는 성자의 손길을 두른 주먹을 그대로 초월종에게 연속해서 휘둘렀다.

    오라오…앗. 이건 저작권에 걸리려나? 아무튼 러쉬다!

    키에에에!

    결국 몇 대 때리지도 않은 시점에서, 놈은 이상한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훗. 이겼다.

    정정당당하게 싸우라고?

    무슨 소리야? 대체 성자한테 뭘 바라는 건데?

    무투가? 그건 그냥 몸놀림을 거들 뿐이지. 난 성자라고!

    초월종이 처음 등장한 이후로는, 꽤나 빈번하게 초월종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그냥 시간 때우기 용도였는데, 이렇게 맵을 완성시켜가면서 개미굴을 탐험하다보니 조금 열중해버렸다.

    위험이랄 게 전혀 없다보니, 게임하던 생각이 나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어느덧 시간을 보니 저녁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온 거야?

    맵을 확인해보니, 엄청나게 안쪽까지 들어왔다.

    이거 출구로 나가려면 전투 없이 걷기만 해도 한참 걸리겠는데?

    어쩌면 한밤중이 될지도 모르겠어.

    "얘들아. 슬슬 돌아…."

    쿠구구구궁.

    돌아가자고 말을 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공간 전체가 떨리는 것 같은 거센 진동이 느껴졌다.

    콰아아아앙!

    그리고는 갑자기 벽 한 쪽이 폭발하듯 무너지더니, 놈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 공간 전체를 가득 메울 것 같이 거대한 크기. 등에 달린 날개.

    누가 봐도 내가 이곳의 보스라고 주장하는 것 같은 풍채의 몬스터.

    바로 여왕개미의 행차셨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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