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
새로운 동료
"그럼 내가 다가가니까 도망은 왜 간 건데?"
"그, 그건…막상 다가오시면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완전히 사랑에 빠진 소녀 같은 반응이었다.
실제로 지금 이렇게 대화를 하면서도, 실비아는 나와 눈도 못 마주치고 시선을 내리깐 채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아니, 그런 반응은 이상하잖아. 네가 나한테 원하는 건 쾌락이잖아? 아님 뭐야? 너 나 좋아해? 뭐 내가 좀 잘나긴 했지만…."
"조, 좋아해…? …그런가."
그렇게 물어봤는데, 어째 실비아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의 마음을 확인이라도 하듯이 가슴에 손을 가져다댔다.
"구원님께서 제게 마지막 쾌락을 주신 그 순간부터, 계속 구원님의 얼굴만이 머릿속에 아른 거렸습니다. 그리고 가슴 한 구석이 계속 따뜻하고, 간지럽고, 안타깝고. 그래서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서. 저, 이게 좋아한다는 감정입니까? 이런 감정은 처음이라, 잘 모르겠습니다."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지 말라고 부모님께 안 배웠냐. 라는 말은 도저히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한 손을 여전히 자신의 가슴 위에 얹은 채로 질문하는 실비아의 모습을 보고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겠어.
뭐야? 그러니까 내가 마지막에 너무 잘해줘서 나한테 반하기라도 한 건가?
아니, 그건 아닌가. 내가 한 건 그저 쾌락을 준 것 뿐이다.
얘는 익숙지 않은 느낌에 그만 착각을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니. 나랑 한 게 너무 좋아서 그냥 안 잊히는 것뿐이겠지."
"…그런 겁니까?"
솔직히 단언할 만큼 나도 확신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차피 내가 얠 받아들이는 걸 거부한 이상, 그런 걸로 해두는 게 서로를 위한 거 아니겠어?
"그래. 그러니까 그만 쫓아다니고 돌아가라."
솔직히 말하면 실비아가 이러면 이럴수록 점점 더 귀여워 보이기 시작해서, 나는 일부러 매정하게 말을 했다.
하지만 실비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싫습니다."
"뭐, 뭐라고? 왜?"
설마 거절할 거라곤 생각도 못해서, 잠깐 당황해버렸다.
"제 감정의 정체가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좀 더 구원님의 얼굴을 보고 있고 싶습니다. 구원님께 폐는 끼치지 않겠습니다. 그저 멀리서 바라만 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니까 그것만은 용서해주십시오."
실비아는 무려 당당하게 스토킹을 계속하겠다고 선언했다.
나랑 시선도 마주치지 못하는 주제에 대단한 아가씨가 아닐 수 없었다.
"아니, 위험하다고. 너 여기가 어딘지 제대로 알고는 있냐?"
"저도 던전에 관한 얘기는 풍문으로 들었습니다. 2계층 수준의 몬스터정도는 아무 문제없습니다."
그래도 만약이라는 게 있는 법이라고.
뭔가 점점 더 설득하기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실비아양."
"네, 넵!"
디아나가 말을 걸자, 실비아는 나와 대화할 때와는 또 다른 의미로 몸이 딱딱하게 굳는 게 보였다.
"자네 그냥 이 몸들을 따라다니게나."
"허, 허락해주시는 겁니까?"
"멀리서 따라다니라는 게 아닐세. 같이 행동하자는 걸세."
"네, 네?!"
"디아나?"
"어쩔 수 없지 않나. 실비아양은 자네를 쫓아다니는 걸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이니, 적어도 이러는 게 안전하지 않겠나. 실비아양이면 전력에도 큰 도움이 될 거고 말일세."
디아나는 저렇게 말했지만, 사실 그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계속 실비아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으니, 적어도 가까이서 내 얼굴을 보게 만들어 준 게 아닐까?
역시 착해 빠졌다니까. 너 그러다 언제 다른 여자한테 나 뺏겨도 모른다?
뭐, 그럴 일 없을 거지만.
"알겠어. 적어도 이번 탐험동안은 어쩔 수 없지. 자, 실비아. 내 얼굴이 보고 있고 싶은 거지? 이렇게 가까이 있는 편이 더 잘 보인다고."
나는 아래를 향하고 있는 실비아의 얼굴을 양 손으로 잡아서 억지로 위를 향하게 만들고, 지근거리까지 내 얼굴을 가져다댔다.
"아, 아으…아으으."
실비아는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져서 필사적으로 눈동자를 옆으로 향해 시선을 피했다.
내 얼굴이 보고 싶다면서. 왜 보라고 들이대면 시선을 피하는 건데.
그러자 옆에서 토닥토닥하고 디아나가 공격을 해왔다.
"파티원으로 받아들이라고 했지 자네가 꼬드기라곤 안했네!"
"꼬, 꼬드긴 거 아니야! 그냥 잘 보라고!"
"자네 얼굴로 그러는데 꼬드긴다고 생각하지 않을 여자가 몇이나 되겠나! 생각을 좀 하게!"
"내 얼굴이 왜?!"
"그, 그건…그러니까…."
아, 억울해서 소리쳤는데, 생각해보니 잘생겼단 뜻이구나.
"응? 내 얼굴이 어때서 그런 건데? 응? 좀 말해보라니까?"
"이, 이이…시끄럽네!"
하하핫. 네 토닥토닥 공격 따윈 간지럽지도 않다!
"훗. 디아나도 예뻐."
"우으으읏!"
"…구원. 던전 안에서 노닥거리는 건 적당히 하시죠."
"넵. 죄송합니다."
결국 보다 못한 사라가 차가운 말투로 끼어들었고, 난 바로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너무 약한 거 아니냐고? 너희도 사라의 저런 표정을 보면 저절로 그렇게 될 거야.
사실 어제 둘이서 동시에 나한테 안긴 것 때문에, 사라와 디아나는 오늘 아침부터 계속 서로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다들 모여 대화는 하는데, 미묘하게 사라와 디아나만 서로 시선도 마주치지 않고 직접적인 대화도 주고받지 않는 상태였다.
그런데 그런 디아나와의 대화에 끼어들었다는 건 어지간히 보기 짜증났단 소리겠지.
실제로 말투도 존댓말이었고.
"아, 아무튼 사라하고 레이아도 실비아를 임시 파티원으로 받아들이는 건 괜찮지?"
"…후우. 응. 이런 경우엔 어쩔 수 없네."
"짧은 기간이지만, 잘 부탁 드려요. 실비아씨."
그렇게 결국 실비아도 임시로 파티에 껴서 같이 행동하게 되어버렸다.
"에, 엣?!"
정작 같이 다닌다고 말한 적 없는 실비아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말이다.
스토킹을 할 거면 적어도 이렇게 될 각오는 하고 있었어야지.
하지만 솔직히 던전 탐험이라고 해도, 솔직히 긴장감은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예전에 돌아다닐 때도 여차하면 성자 스킬을 쓰면 된다는 생각에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상황이 더 심각했다.
레벨이 엄청나게 오른 거다.
성자라는 직업 덕분에, 내게서 레벨이 오른다는 건 모든 스탯이 상승한다는 걸 의미한다.
게다가 이 세계는 레벨에 따른 보정도 있다.
즉, 굳이 성자 스킬을 쓸 것도 없이, 무투가로서 싸워도 여기 계층 몬스터에겐 질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거기에 성자 스킬이라는 보험, 그리고 레벨이 더욱더 올라서 막강해진 디아나라는 2차 보험까지 있다.
긴장을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이정도 수준이면 곧장 3계층으로 향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거다.
아니, 오히려 3계층 몬스터들마저 쉽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3계층으로 향하지 않았다.
예전처럼 강해져야한다는 목적이 있었다면 3계층으로 향했을 테지만 말이야.
우리가 던전에 온 목적은 단 하나다.
그저 디아나가 며칠 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아도 될 이유가 필요한 것뿐이다.
그러니까 3계층엔 가지 않는다.
전처럼 강해지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그냥 정말로 탐험하는 기분으로 돌아다니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는 탐험을 하기에 아주 좋은 장소를 알고 있다.
이 도시의 모험가 중 그 누구도 발을 들이지 않은 곳 말이다.
"…역시 부활했군."
개미굴의 입구가 있는 곳 근처에 가자, 시끄러운 모기떼들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바로 모기떼 초월종이다.
뭐, 안 온지 오래되기도 했으니 예상은 했지만 말이야.
"흠. 그렇구먼. 이 몸이 처리하겠네."
"아니. 기다려봐."
디아나가 손을 들어 허공에 마법진을 그리려고 했지만, 그 전에 내가 한 발 앞서 나갔다.
"저 놈들은 나한테 맡겨둬."
"…자네 그 고생을 하고도 또 그런 말이 나오는가? 질리지도 않는구먼."
또 내가 성역 선포를 쓸 거라고 생각했는지, 디아나가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구원. 실비아씨가 있다고 괜히 허세 부리지 말고, 여긴 디아나한테 맡기자."
"구원씨. 다치시는 건 싫어요."
얘, 얘들아? 너희 나 믿는 거 아니었어?
이대론 안 되겠어. 파티장으로서, 아니 그 이전에 남자로서 신뢰성을 회복해야겠어.
"아니. 나한테 맡겨. 성역 선포와는 다르다고, 성역 선포와는!"
"음? 자네 다른 스킬이라도 더 배운 겐가?"
그러고 보니 아직 말을 안 했다.
디아나한테는 그 스킬도 말을 해야 되는데.
뭐, 그건 나중에 하기로 하고.
"훗. 보고 있으라고."
조금 더 다가가자, 검은 구름을 연상케 하는 초월종 모기떼도 이쪽을 발견했는지 급속도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자, 와라!
놈들이 다가오는 걸 바라보면서, 나는 자신만만하게 성자의 진심을 사용했다.
이걸로 난 완벽해졌어.
이제부터 너희는 내가 공격해도 쾌감을 느끼고, 너희가 날 공격해도 쾌감을 느낀다.
이도저도 못하는 쾌락 속에서 쓰러지는 게 좋을 거다!
모기떼가 내 몸을 덮듯이 달려들어도, 나는 팔을 벌리고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어차피 내 몸에 빨대를 꼽기 위해 닿는 순간 픽픽 나가떨어질 거다.
내가 할 일은, 그저 가만히 서서 승리의 쾌감에 도취되는 것 뿐.
이윽고 모기떼가 내 전신을 감쌌다.
아마 밖에서 보면, 내 몸이 모기떼들에 둘러싸여 사람모양 검은 구름으로 보일 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놈들이 내 몸에 착지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따끔거리는 가벼운 고통이 느껴짐과 동시에,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디아나님! 마법 좀 부탁해요!"
쏴아아아.
내 외침과 동시에, 정수리부터 폭포처럼 쏟아지는 물줄기에 내 온 몸이 흠뻑 젖었다.
덕분에 모기떼들도 일제히 쓸려나갔지만 말일세.
"나이스! 디아나! 레벨이 올라서 그런가? 마법 영창 속도도 엄청 빠르네!"
"아니, 확실히 레벨이 오른 덕분이기도 하네만, 애초에 이렇게 될 것 같아서 미리 준비해두고 있었네."
좋아해야할지 슬퍼해야할지 모를 회답이 돌아왔다.
좀 믿어줄 수 없었니? 아니, 뭐 덕분에 살았지만.
나는 발에 성자의 손길을 두르고 바닥에 쓸려나간 모기들을 짓밟으면서 슬픈 기분이 됐다.
그나마 곧장 달려와서 치료를 해주는 레이아의 손길만이 위안이었다.
"애초에 뭘 하려고 했던 거야? 성역 선포가 아니라면서 왜 가만히 있었어? 자살이라도 할 셈이었어?"
사라도 놀랐는지, 살짝 책망하는 말투로 말했다.
젠장. 이럴 셈이 아니었는데.
"온 몸에 성자의 손길을 두른 것과 같은 효과가 나는 스킬을 익혔단 말이야. 원래대로라면 내 몸에 닿자마자 이놈들이 쓰러져야 하는데, 스킬 숙련도가 낮아서 그 정도 위력은 안나왔나봐."
"서, 성자의 손길을 온 몸으로…?!"
"응. 이제 굳이 안 때리고 방어만 해도 몬스터 놈들의 주의를 집중시킬 수 있어. 엄청 편하겠지?"
"그, 그러네."
하지만 사라의 얼굴에는 약간 질린 표정이 띠워져있었다.
"그, 그래도 성자의 손길만큼은 위력은 없는 것 아닌가?"
"지금으로선 그렇지. 아직은 숙련도가 낮아서 1/20도 안 돼."
"그, 그렇구먼. 그거 다행…안타깝구먼."
디아나까지도 살짝 질린 표정이었다.
왜 이런 표정을 짓지? 다행?
아, 과연. 내가 잠자리에서 써먹을까봐 겁먹은 건가.
하긴 성자의 진심이 원래 성자의 손길 위력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면, 확실히 엄청나긴 할 거다.
좋아. 기대하는 것 같으니 얘들한텐 다음에 시험해주자.
아,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열심히 내 몸을 치료해주고 계시는 천사님은 예외다.
천사님은 맨 정신으로 성자의 손길을 느낀 적이 없으니, 그 위력이 제대로 실감 안 되는 것뿐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모기떼 초월종도 잡았으니, 이제는 개미굴에 들어가서 본격적인 탐험을 시작할 때다.
앗, 그러고 보니 거기에 가려면 실비아가…뭐, 얜 모험가가 아니니까 상관없으려나.
아니, 그래도 일단 비밀은 유지해야지.
"실비아."
"네, 네!"
여전히 실비아는 나와 똑바로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방금까지 나한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던 주제에, 막상 내가 자길 보면 시선을 돌린다.
"눈감아."
"네, 네?!"
내가 정면에 서서 말하자, 실비아는 뭘 기대한 건지 얼굴을 붉히고 말했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드디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다시 순식간에 고개를 돌렸지만.
왜 이렇게 놀라는 거야?
"뭐하는 짓인가! 이 몸은 자네를 믿고 실비아양을 파티로 받아들였건만!"
"…응? 그게 무슨…아, 아니야! 키스하려던 거 아니야!"
"이 바람둥이!"
"그러니까 아니라니까!"
얘네 아까까진 서로 시선도 안 마주쳤으면서 왜 이럴 땐 이렇게 호흡이 좋아?!
역시 같이 밤을 보낸 효과가…라고 말하면 맞아죽겠지?
"구원씨…전 구원씨를 믿어요."
"역시 저한텐 천사님밖에 없어요!"
"앗! 레이아, 치사해요!"
"이, 이 몸도 믿는 건 마찬가지일세! 애초에 그러니까 실비아양을 데려 다니자고 한 것 아닌가!"
"저, 저 역시…!"
레이아가 대화의 흐름을 바꿔준 덕분에 내게 걸려있던 의혹은 어느새 흐지부지 되고, 누가 더 날 믿는지 서로 언쟁하기 시작했다.
역시 천사님이 최고야.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실비아는 공주와 다르게, 지금까지 머리를 굴린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언제나 그냥 있는 그대로를 직설적으로 말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