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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220화 (20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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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비아의 각오

    최후의 자존심을 사용한 덕분에 정기를 모두 소모한 난, 일단 그 자리에서 회복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몸을 가눌만해지자, 기절한 실비아의 몸 위에 이불을 덮어주고 방을 나왔다.

    "앗, 구원."

    "끝났는가?"

    "괜찮으세요?"

    방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메이드의 안내를 받아 우리 애들이 모여 있던 곳으로 가자, 다들 황급히 내게로 다가왔다.

    "응. 스킬은 제대로 풀어주고 왔어."

    "…실비아양은 그걸로 납득하던가?"

    디아나는 석연찮은 표정으로 실비아의 상태를 물어봤다.

    "글쎄. 기절해버려서 잘 모르겠네. 하지만 어쩌겠어. 납득하겠지."

    "만약 실비아양이 그걸로 납득 못한다면…. 여, 역시 이 몸도 실비아양을 받아들이는 걸 인정…."

    "괜찮다니까."

    디아나까지 이렇게 말하자, 방금 실비아한테 잠깐 끌렸던 게 괜히 더 찔리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살짝 오기 같은 게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한 번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했었는데, 이제 와서 말을 바꿔 받아들이겠다고 말하는 건 남자답지 못한 것 아니냐는 오기 말이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받아들이면, 실비아와 한 번 자고 나니 끌려서 마음이 바뀐 거 아니냐는 오해를 낳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건지는 몰라도. 아무튼 그랬다.

    그래서 디아나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쓰다듬으며 흐트러뜨리고, 일부러 강한 말투로 괜찮다고 근거 없이 확언했다.

    "아무튼 볼 일은 끝났으니까 돌아가자. 그러고 보니 펠리시아는?"

    "앗! 그, 그러고 보니…! 구원! 또 뭐 당하지 않았어?!"

    역시 실비아의 임팩트가 너무 커서 존재 자체를 잊고 있었나보다.

    사라가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외쳤다.

    "걱정 마. 너희 나가고 바로 펠리시아도 따라 나갔어. 난 너희랑 같이 있을 줄 알았는데."

    "아뇨. 아까 구원씨가 있던 곳에서 나오고는 한 번도 못 봤어요."

    하긴, 나갈 때 모습을 보면 완전히 발정 난 상태였지. 어디 아무 남자나 붙잡아서 떡이나 치고 있는 건가?

    아무튼 그렇다면 굳이 펠리시아한테 간다는 말을 하고 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펠리시아한테 굳이 간다고 알리려는 것도, 기절한 바람에 직접 전할 수 없는 실비아 때문인데. 그냥 근처에 있는 메이드한테 전해달라고 부탁하지 뭐.

    그렇게 우리는 다시 디아나의 저택으로 돌아왔다.

    뭔가, 드디어 실비아와 관련된 이야기가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하자 시원섭섭한 기분이었다.

    마지막에 그런 기특한 모습을 보고 나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니야. 난 우리 애들만 바라보면 돼.

    어차피 이제 다시는 만날 일도 없잖아?

    …없겠지? 없을 거야.

    "…겨우 이제 좀 안정이 되는 기분이구먼."

    디아나도 나와 같은 심정인 모양이다. 안심한 것 같은, 그러면서 한 편으론 착잡한 것 같은 미묘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에잇. 이렇게 복잡한 기분일 땐 디아나를 놀리는 게 제일이다.

    "그래봤나 넌 다시 마법사 협회 사람들한테 끌려갈 거지만 말이야."

    "무, 무슨! 자네 오늘도 던전에 안 갈 생각인가?!"

    디아나는 생각지 않고 있었다는 듯이, 화들짝 놀라며 외쳤다.

    음. 예상대로 좋은 반응이다.

    그냥 좀 과하게 칭송받는 것뿐이니 부려먹으면서 편하게 지내면 좋을 텐데 말이야.

    뭐, 나 같아도 나한테 그렇게 들러붙는 애들 상대로 익숙해지기는 힘들 것 같지만.

    "응? 던전? 뭐야? 디아나 던전 가고 싶어?"

    "그, 그런 건 아니네만!"

    내가 놀리는 것처럼 말하자, 디아나는 살짝 욱하는 반응을 보이며 대답했다.

    아까 실비아와의 관계를 중재할 땐 상당히 냉정하게 상황을 주도했던 디아나가, 내가 놀릴 땐 이렇게 애처럼 반응해서 바로 낚인다.

    역시 재미있어. 내가 이래서 디아나만 놀리기를 못 끊는다니까.

    "그럼 안가도 상관없겠네."

    "그, 자, 자네는 던전 아래로 내려가는 게 목표 아니었나?!"

    그러고 보니 디아나한테는 마왕이니 용사니 그런 설명 하나도 없이 그저 던전에 다니기만 했다.

    내가 여타 다른 모험가들처럼, 던전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모험심을 가지고 던전에 다니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뭐, 확실히 안전이 확보되는 수준에서 게임하는 기분으로 도전해보는 것도 좋을 지도 모른다.

    어차피 시간은 말 그대로 무한히 있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오늘 갈 건 아니야.

    "응? 딱히? 사라나 레이아는 오늘 던전에 가야할 일 있어?"

    "아니."

    "아뇨! 전혀 없어요!"

    사라는 쿨하게, 그리고 레이아는 어째선지 강력하게 던전에 용무가 없다는 걸 어필했다. 또 습관처럼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가슴 앞에 모으면서.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레이아는 가슴이 커서 저러면 그냥 팔로 가슴을 모으는 것 같은 자세가 돼버린단 말이지.

    정말 훌륭한 습관이 아닐 수 없다.

    "다들 갈 일이 없으면 오늘도 갈 필요 없겠네."

    "그, 그런가…."

    살짝 시무룩하고 있어.

    티는 안내려고 하는 모양이지만, 속마음이 뻔히 보인다.

    지금 열심히 마법사 협회의 수장들에게서 벗어날 생각을 강구하고 있을 거다.

    "그래! 오늘은 이 몸의 차례이니, 자네는 오늘 하루 종일 이 몸과 어울려줘야겠네!"

    "디아나, 차례는 그냥 밤의 차례라고…."

    "어제 하루 종일 구원을 독차지하고 있었던 사라양이 말하긴가?!"

    "어머, 그러네요. 그럼 디아나 때문에 낮은커녕 밤의 차례마저 뺏겼던 레이아가 대신 한 마디 해주세요."

    "그, 그건 치사하지 않나…!"

    "후훗. 괜찮아요."

    "으, 음?"

    "괜찮아요. 디아나. 하지만 어제 사라씨처럼 독차지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다 같이 다니는 건 어떠세요?"

    "오, 오오! 괜찮겠나! 물론 이 몸은 찬성일세!"

    레이아의 관대한 말에 디아나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드디어 디아나도 천사님의 진면목을 알아보기 시작한 모양이다.

    "가끔은 그런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게다가 사라까지 찬성해버리니, 내 의견은 상관없이 결정이 된 거나 마찬가지다.

    나도 딱히 반대하려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조금 재미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조금은 싫어하길 바랐는데.

    어차피 디아나의 목적은 나랑 데이트하는 게 아니라, 마법사 협회 수장들을 피하는 것이었다 이거지?

    물론 서로 싸우면서 수라장이 되는 것보단 훨씬 낫지만 말이야.

    뭘까, 이 기분은? 날 두고 서로 싸우지 않으니 미묘하게 섭섭한 마음도 든다.

    애초에 갑자기 이런 분위기가 된 이유가 궁금하다.

    분명 전까지만 해도 날 두고 박 터지게 싸우는 분위기 아니었나? 왜들 갑자기 이해심이 깊어졌어?

    아니, 물론 레이아는 그런 싸움에서 한 발 물러나 있는 위치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말이야.

    실비아 때문에 내부 결속이 강해진 건가?

    "그렇게 정했으면 여기서 내리세."

    "응? 여기서?"

    "당연하지 않나! 저택에 가면…아, 아무튼 여기가 마침 번화가이기도 하고, 돌아다니기에는 좋은 위치 아닌가!"

    "알았어. 내리자 내려."

    결국 바네사 혼자 마차를 이끌고 저택에 보낸 후, 우리는 번화가에서 데이트를 즐기기로 했다.

    그리고 셋 모두와 확실히 마음을 전달하고 처음 하는 단체 행동은, 내가 아까 바랐던 대로 박이 터졌다.

    "구원, 이거 어떤 것 같아?"

    "오 예쁘네. 살짝 드러난 허리 라인이 섹시해서 아주 좋아."

    "하여간 엉큼하다니까. 그런 것만 보이지?"

    "구원씨 저는요?"

    "천사님은 그냥 가만히 서계시기만 존재감이 넘쳐흐르시죠."

    특히 가슴의 존재감이 끝내주시지.

    디아나 머리에 얹어 놓으면 디아나는 보이지도 않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물리적인 의미로.

    "흠. 이, 이 몸도 스타일은…."

    "넌 일단 가슴부터 좀…잠깐! 농담! 농담이야! 정말로! 내가 디아나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키스해줄까?!"

    "이런 공공장소에서 할 것 같나!"

    "그럼 공공장소에서 알을 노리는 것도 그만둬줬으면…진짜 장난이었다니까?!"

    응. 여러 가지 의미로 박 터졌다.

    서로 또 이렇게 견제하니 고생스럽긴 하지만, 그런 만큼 얘들이 날 좋아하고 있다는 실감도 난다.

    어라? 얼마 전까지는 수라장이 벌어지면 식은땀만 났는데, 지금은 고생해도 살짝 즐기는 경지에 도달했어.

    이거 혹시 하렘왕에 한 발자국 가까워진 거 아니야?

    …응. 실비아를 거절한 시점에서 하렘왕이니 뭐니 다 헛소리지.

    젠장. 조금 잊으려고 했는데 다시 생각나버렸다.

    꿀꿀한 생각은 야한 생각을 해서 잊는 게 최고야.

    "좋아! 필립의 가게에 가자!"

    거기라면 맘껏 꿈을 꿀 수 있어.

    "필립의 가게? 거기가 어딘가요?"

    "갈 것 같나!"

    "구원, 모처럼 다 같이 다니는데 그런데 가고 싶어?"

    필립의 가게가 뭐하는 곳인지 모르는 레이아는 순진한 얼굴로 되물었지만, 아픈 기억이 있는 디아나는 바로 폭발해버렸다.

    그리고 사라마저 날 차가운 눈동자로 쳐다보며 힐난했다.

    …응? 잠깐. 사라는 왜?

    "사라 네가 필립의 가게가 어딘지는 어떻게 알아?"

    "으, 응?! 그, 그게! 그러니까…!"

    "아! 너 설마 관…!"

    "꺄악! 바보!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거야!"

    사라가 귀여운 비명을 내지르며 황급히 내 입을 틀어막았다.

    "음? 관?"

    "디, 디아나는 몰라도 돼요!"

    "둘만의 비밀이란 건가? 자네와 이 몸 사이에 말 못할 것이 어디 있다고 그러나. 뭔가? 말해보게."

    뭔가 특별한 비밀이라고 생각했는지, 디아나는 살짝 삐진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궁금하면 알려주도록 하지.

    난 디아나의 귀에 입을 가져다대고, 최대한 달콤한 목소리로 조그맣게 속삭였다.

    "관장."

    "자, 자네 바보인가?! 엣?! 잠깐! 사라양이 관…으읍!"

    "바보! 그걸 왜 말해!"

    "아니, 궁금해하길래…."

    "진짜 자네는 어디까지 바보인지 모르겠군!"

    또 이러네. 분명 둘이 투덕거리려는 분위기였는데 어느새 공격 대상이 나로 바뀌었다.

    그래. 내가 바로 이 한 몸 희생하여 내 여자들의 싸움을 중재하는 이 시대의 성자지.

    아, 참고로 천사님께서는 그 사이에 계속 나와 팔짱을 끼고 내 정신을 치유해주고 계셨다.

    얼마든지 매도해봐라. 이 팔에 닿은 부드러운 촉감이 계속 느껴지는 한, 난 언제까지고 버틸 수 있어.

    "아무튼 가자! 필립의 가게!"

    "안 가!"

    "갈 것 같나!"

    훗. 너희들이 아무리 튕겨봤자, 결국 내가 강행하면 따라올 거란 걸 난 잘 알고 있지.

    어디 내가 가는데도 안 따라오고 버티나 보자.

    "서, 성인 용품점…. 구원씨, 저 구미호로 변하면 제대로 책임져주셔야 되요?"

    하지만 옆에서 중얼거리는 레이아의 한 마디에, 난 바로 생각을 바꿨다.

    "역시 모처럼 다 같이 다니는 데 그런 파렴치한 가게에 가는 건 잘못된 생각이지. 세상에 그런 파렴치한 가게가 버젓이 존재한다니. 믿을 수 없다니까."

    옆에 있는 레이아가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짓는 것처럼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그래. 기분 탓일 거야. 우리 천사님이 그럴 리가 없지.

    우리 천사님은 언제나 맑고 깨끗하고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이시라고.

    그렇게 우리는 가끔은 투닥대기도 하면서, 다 같이 즐겁게 마을을 돌아다녔다.

    물론 그밖에 문제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특히 처음 보는 남자 모험가를 만났을 때가 인상적이었다.

    "이봐! 형제!"

    놈은 보자마자 내 어깨에 팔을 두르더니, 쾌활하게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처음 보는 놈이다.

    아무리 남자 모험가들끼리 친하게 지낸다고는 하지만, 이건 좀 너무 친근하게 굴잖아.

    입에서 알콜향이 나는 것이, 대낮부터 꽤나 취한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내가 모험가라는 건 어떻게 알았지?

    아, 이렇게 예쁜 여자를 셋이나 끼고 있는데 모험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건가.

    "캬. 부럽다. 부러워. 하나같이 제수씨들이 미인이네. 어때? 우리 애들이랑 같이…."

    놈이 그렇게 말하면서 자기 뒤편의 여성 모험가들을 가리킬 때, 사라가 행동에 나섰다.

    "죽기 싫으면 꺼져."

    크으. 과연 사라야.

    살기가 유형화되어 사람을 찌르는 것 같다.

    "네."

    아무리 취했어도 모험가는 모험가인 모양이다.

    저 무지막지한 살기는 무시하려고 해도 무시할 수 없었는지, 놈은 슬그머니 내 어깨에서 팔을 내리고 자기가 가리켰던 여성 모험가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가자마자 엄청나게 구박받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술김에 한번 허세를 부려본 것인 모양이다.

    어쩐지 여자들 표정이 이상하더라.

    "흥! 자, 구원 어서 가자!"

    그리고 놈이 사라지자마자, 사라는 살기를 싹 지운 채 미소를 지으면서 내 팔에 안겼다.

    봤냐? 이 미소는 나만을 향하는 미소야.

    그 이후로는 별 탈 없이 마을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적당히 저녁시간 때가 됐을 때 저택으로 돌아가서, 저녁을 먹고 밤의 준비를 시작했다.

    깨끗하게 씻고 디아나의 방으로 찾아가려고 했을 때,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응? 내가 가려고 했는데, 디아나가 내 방으로 온 건가?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문을 열자 거기에는 레이아가 서 있었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무한의기사왕 // 펠리시아의 입에 걸린 성수 얘기라면, 물론 구원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만 고작 그것 때문에 저렇게까지 발정하는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한 거죠. 분명 하룻밤동안 멀쩡했던 걸 확인했고, 성수가 계속 걸려있다고 해서 효과가 더 강해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왜이리들다재밌지 // 외모에 대한 평가는 구원의 주관이 들어가있음을 감안해야 합니다. 구원의 눈에 히로인 삼인방만큼이나 예쁜 여자는 현재로선 존재하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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