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195화 (179/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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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성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디아나가 했던 말들을 곰곰이 생각해보자.

사라나 레이아와 계속 같이 있어도 되지만, 정을 붙이지 마라.

이건 디아나 본인의 독점욕 때문이 아니라, 구원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디아나와 키스를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종합해보면 이런 뜻이다.

사라나 레이아에게 정을 주면, 수명이 한정되어있는 그녀들이 먼저 떠나갈 때 힘들어지는 건 구원 바로 너다. 그러니 정을 주지 말고 자신만 바라봐 달라.

정말 기특하기 짝이 없는 녀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디아나의 말대로 해줄 수는 없었다.

디아나의 그런 의도를 전부 파악하고도, 구원은 사라와 레이아도 진심으로 대하겠다고 대답한 거다.

"무, 무슨! 자네 이 몸의 말이 이해가 안 되는가!"

"잘 이해하고 있어. 사라와 레이아에게 진심이 되면, 언젠가 있을 이별이 더 괴로워질 테니까 마음을 주지 말라는 거지?"

"그, 그걸 알면서…!"

"그걸 알면서도, 진심으로 대하겠다고 한 거야. 디아나. 물론 사라와 레이아의 수명이 다 해서 이별하게 될 땐 슬플지도 몰라. 하지만…."

"슬플지도 모르는 게 아니라, 확실히 슬프네! 자네는 그 고통을 못 겪어 봤으니 그렇게 쉽게 생각하고 있는 걸세! 자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그래. 네 말대로 난 아직 겪어보지 못해서 상상하는 것밖에 할 수 없어. 네 말대로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슬플지도 모르고, 감당하기 힘들지도 몰라. 하지만 미래에 슬플 걸 걱정하느라 지금 사라와 레이아를 좋아하는 마음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 너도 그런 겁쟁이를 좋아하는 게 아니잖아?"

"하지만! 그래도!"

"그리고 나중에 내가 힘들어할 때가 와도, 난 과거의 디아나처럼 홀로 남는 게 아니잖아?"

"으윽!"

"그렇잖아? 나만 디아나의 곁에 있어주는 게 아니야. 디아나도 계속 내 곁에 있어주는 거지?"

"으으…으으…으아아아!"

디아나는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어보자 대답하기 부끄러운지, 다시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 이상한 소리를 냈다.

너무 창피한 나머지 그대로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손은 여전히 나한테 잡혀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파닥거리는 것 말고는 아무 동작도 취할 수 없었다.

"어딜 도망가려는 거야? 뭐야? 설마 그때 되면 나 버릴 생각이야?"

"자네 바보 아닌가! 그럴 리 없지 않은가! 엘프의 키스는 평생 단 한 사람만을 바라보겠다는 영원의 맹세일세!"

"그런 걸 여자한테 하려고 했단 말이야?! 역시 디아나는…!"

"그런 거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아아! 이 몸이 여성한테 그런 제안을 했을 정도로 정든 사람과 영원히 이별하는 게 힘든 거라는 뜻일세!"

"그래도 난 네가 곁에 있어줄 테니까 괜찮아."

"으으으으! 자네 자신이 지금 얼마나 뻔뻔한 얘기를 하는 건지 알고 있는 건가?! 다른 여자랑 헤어져서 슬퍼하면 이 몸에게 위로해 달라고 하는 것 아닌가!"

디아나는 그렇게 외쳤지만, 구원에겐 그냥 마지막 발버둥으로 보였다.

이미 디아나의 마음은 완전히 설득된 것 같았다.

"나 원래 이기적이고 뻔뻔한 놈이잖아. 디아나도 그 정도는 알고 날 좋아한 거 아니었어?"

"으으윽. 여, 역시 자네와 키스하는 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어허. 그렇겐 안 되지."

구원은 디아나의 양손을 놔주고, 대신 양 볼을 감싸듯이 디아나의 얼굴을 잡았다.

"난 이기적이고 뻔뻔할 뿐만 아니라 끈질기기도 해서 말이야. 넌 나한테 좋아한다고 고백한 시점에서 끝난 거야. 이제 늦었어.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한다고 해봤자 안 놔줄 거야."

구원은 그대로 디아나의 얼굴에 자신을 얼굴을 가져다댔다.

"자, 잠깐 기다리게! 마지막으로 잘 생각하게! 이 몸과 키스하면 이제 돌이킬 수 없어진다네! 정말로 영원히…!"

"너 꼭 나보고 키스하지 말라고 설득하는 것 같다?"

"그런 게 아니라 평생을 좌우할 결정이니 신중히 생각하고 결정하라는 걸세! 나중에 가서 후회한다고 해도 되돌릴 수 있는 것이…으읍."

계속해서 파닥거리며 떠들어대는 디아나의 귀여운 입을, 구원은 자신의 입으로 틀어막았다.

바로 눈앞에서 디아나의 커다란 눈망울이 진동하듯이 떨리는 게 보였다.

그 눈동자를 보면서, 지금까지 디아나와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정말 길었다. 대체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걸린 건지.

구원은 감격에 벅차서 한동안 그러고 있다가, 천천히 디아나의 입술에서 떨어졌다.

입술을 맞대고 있는 시간은 길었지만, 혀도 넣지 않고 입술도 움직이지 않은, 말 그대로 맞대고 있을 뿐인 키스였다.

"우선은 처음이니까 가볍게. 키스가 처음이신 우리 대마법사님한테 앞으로 다양한 키스를 잔뜩 알려줄 테니까 잘 배우라고."

디아나는 구원이 떨어진 후에도 입을 살짝 벌리고 한동안 멍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딘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어투로 말했다.

"이제 정말로 돌이킬 수 없네. 이건 이 몸의 마법으로도 풀 수 없는 주박일세. 아니, 풀 수 있어도 풀어주지 않을 걸세. 자네는 이제 영원히 이 몸과 함께 살아가야하는 걸세."

"바라던 바야."

구원은 그렇게 말하면서 새가 쪼는 것처럼 다시 가볍게 디아나의 입술에 입술을 맞추고 떨어졌다.

그러자 디아나는 그제야 키스를 했다는 실감이 나는 건지, 얼굴을 붉히며 파닥댔다.

"이제부터 잔뜩 할 텐데 그렇게 부끄러워해서 어떻게 해?"

"시, 시끄럽네! 이 몸이 대체 얼마나 오랜 세월을 거쳐서 드디어 처음 키스를 처음 했다고 생각하는 겐가!"

"얼마나 오랜 세월을 거쳤는데?"

"3…! 말할 것 같나! 자네 바보인가?!"

"이제 평생 같이 지낼 사인데 뭐 어때서 그래? 그래서 3 다음 나올 단위가 뭐였는데? 천? 만?"

"시끄럽네! 조용히 하게!"

"부끄러워할 것 없다니까. 디아나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시끄럽다는 말 안 들리나?"

"…죄송합니다. 너무 기어올랐습니다."

더 이상 말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디아나의 냉철한 목소리에 구원은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몇 살을 먹어도, 여자에게 나이 얘기는 금기인 모양이다.

"어서 옷이나 입게. 얘기가 일단락 됐으니 일단 여기서 나가세나."

그러고 보니 아직도 알몸이었다.

인벤토리에서 옷을 꺼내 입으면서, 구원은 다시 디아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너도 은근히 겁이 많네. 그럼 지금까지 키스를 못했던 게 내가 거절할까봐 그런 거였어? 내가 거절할 리가 없잖아?"

"시, 시끄럽네! 이 몸이 그 친구에게 거절당하고 얼마나 상처받았었는지 아는가! 겁을 좀 먹어도 이상할 거 없지 않은가!"

"그런 것 치곤 저번에 섹스할 땐…아, 그래서 그렇게 가출할 만큼 화났던 거구나. 제대로 하렘은 거절하려고 했는데 내가 억지로 승낙하게 만들어서."

"그렇다네! 자네 잘못이 얼마나 큰지 알겠는가?!"

"그래도 이렇게 잘 풀릴 거였으니까, 결과적으론 그것도 괜찮았던 거 아냐?"

"뭐가 괜찮나! 전혀 안 괜찮네!"

"어떤 점이?"

"이, 이 몸도 고백은 그런 상황보단…아무튼 전혀 안 괜찮았네! 자네는 여심이란 걸 전혀 모르네!"

다 말해놓고 얼버무리려고 하기는.

저거 분명 얼버무리는 척 하면서 대놓고 자기 소망을 말 한 거겠지?

고백은 섹스하면서가 아니라 제대로 된 상황에서 받고 싶다고.

좋아. 그럼 그렇게 해줘야지. 좋아하는 여자가 그걸 원한다는데 당연히 해줘야지.

구원은 인벤토리에서 한 가지 물건을 더 꺼냈다.

"디아나."

"뭔가?"

"이거 받아줄래?"

구원은 불퉁한 태도의 디아나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반지 케이스를 열어서 내밀었다.

"이, 이건…!"

내가 반지를 사면서 사라 것만 샀을 리가 없잖아.

어차피 셋 모두와 이런 관계가 되길 원하고 있었는데.

제대로 세 개를 샀다.

"손을 내밀어줄래?"

"……."

디아나는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왼 손을 내밀었다.

구원은 그 손을 붙잡고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조용히 약지에 반지를 껴줬다.

"좋아해, 디아나. 앞으로도 나랑 쭉 같이 있어줘."

디아나는 손을 얼굴 앞으로 들어 멍하니 반지를 보더니, 뒤로 홱 돌아버렸다.

"왜, 왜 그래? 마음에 안 들어?"

이 기회를 놓치면 오히려 더 어색해질 것 같아서 바로 실행한 건데. 역시 장소 세팅 같은 것도 제대로 해서 하는 게 좋았을까?

그래도 고급 호텔처럼 잘 꾸며진 영주성에서 하는 거라 나름 운치는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그런, 그런 거 아닐세."

하지만 이어서 들려온 디아나의 목소리에, 구원은 디아나가 왜 뒤를 돌았는지 깨달았다.

"디아나. 제대로 얼굴을 보여줘."

"자, 흑. 잠깐만 기다리게."

"싫어. 지금 보여줘. 네 기뻐하는 얼굴이 보고 싶어."

구원의 말에, 디아나는 천천히 다시 뒤로 돌았다.

디아나의 얼굴은, 예상대로 눈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역시 보여주는 건 부끄러운지, 디아나는 구원에게 매달리듯 끌어안고 구원의 가슴에 얼굴을 박았다.

"예쁜데 왜 숨기려고 그래?"

"…역시 자네는…여심을 너무 모르네."

그렇게 말하고, 디아나는 한동안 구원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들썩이던 디아나의 어깨가 드디어 진정되는가 싶더니, 디아나가 툭하고 말을 내뱉었다.

"…어서 가세. 한시라도 빨리 저택으로 돌아가고 싶군."

"응. 나도 마찬가지야."

구원은 디아나를 안아 들고 그대로 방 밖으로 나왔다.

밖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 문을 열자마자 펠리시아의 얼굴이 보였다.

"앗! 디아나님! 그리고 자ㄱ…구원. …보아하니 잘 된 것 같군요."

그렇게 말하는 펠리시아의 얼굴은 어딘지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기분 탓인지 시선도 내 얼굴이 아니라 고간을 향하고 있는 것 같고.

아니. 역시 기분 탓이 아니다.

이 색정광 공주 같으니라고.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생각이 나냐?

"덕분에 잘 됐어. 보다시피 말이야. 그럼 우린 이만!"

이 세계에 막 오자마자 댁 같은 미인이 섹스하자고 엉겼으면, 아마 정신 못차리고 댁한테 푹 빠졌을 텐데.

날 늦게 만난 자신의 악운을 탓하라고.

펠리시아와 더 엮여봤자 더 좋을 게 없을 거라는 생각에, 구원은 황급히 밖으로 향했다.

뭔가 까먹은 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이렇게 생각나지 않는 걸 보면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닐 거다.

펠리시아와 마찬가지로 대기하고 있던 마법사 협회의 수장들을 이끌고, 밖에서 기다리던 바네사가 모는 마차에 탑승하여 일행은 순식간에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구원의 품에 안겨있던 디아나는, 저택에 돌아오자마자 구원의 손을 이끌고 방으로 향하려고 했다.

물론 그 전에 앞을 가로막는 존재들이 있었지만 말이다.

"구원!"

"구원씨!"

물론 사라와 레이아 얘기다.

둘은 구원이 어지간히 걱정됐던 건지, 잠도 제대로 못 잔 것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니 얘들 입장에선 내가 밤에 디아나를 찾는다고 뛰쳐나가더니, 그대로 소식이 없다가 다음날에나 돌아온 거다.

그야 걱정할 만도 하지.

"어디 다친 곳 없으세요?"

레이아는 파티에서 힐러 역할을 맡은 사람의 본능인지, 구원의 몸을 이곳저곳 만지면서 몸을 확인했다.

구원과 디아나의 손이 이어져있는데도 아랑곳 않고 말이다.

"괘, 괜찮아. 미안해. 갑자기 영주성에 끌려가서 말이야. 걱정했지? 그래도 아무 문제없었어."

"다행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레이아는 구원의 품에 꼭 안겨들었다.

마주잡고 있는 디아나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물론 근력의 차이 때문에 전혀 아프진 않았지만, 디아나의 얼굴을 보기 무서워졌다.

"레, 레이아? 난 괜찮으니까 잠깐 떨어…."

"싫어요."

레이아는 구원을 끌어안은 상태로 고개를 좌우로 격하게 흔들면서 거부했다.

으어어. 레이아 누님. 누님은 그렇게 흔들면 같이 흔들리는 게 있어서 위험하단 말이에요.

진짜 위험해. 설 것 같아.

이 상태로 서면 안 그래도 한계에 가까원 보이는 디아나가 폭발할 거다.

참아라, 아들아. 지금은 안 돼!

하지만 레이아는 그런 구원의 기분을 아는 건지, 살짝 볼을 상기시키면서 말했다.

"괜찮아요."

"뭐, 뭐가?"

"가기 전에 제가 한 말 잊으셨어요?"

"그게, 미안. 영주성에서 너무 정신이 없어서 지금 잘 기억이…."

"밤은 제가 예약해놨으니까요. 디아나씨랑 잘 되셨다고 저 바람맞히면 안돼요."

…기억났다.

당연하지! 라고 당당히 대답했던 것까지 전부.

…이거 어쩜 좋지.

물론 약속은 지켜야겠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레이아랑 방으로 들어가기에는, 마주잡은 손에 힘이 점점 강해져가는 디아나를 보기 너무 무서웠다.

구원이 식은땀을 흘리며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에, 먼저 행동에 나선 건 다름 아닌 디아나였다.

디아나는 레이아와 구원 사이로 파고들어, 둘을 떨어지게 만들었다.

"꺄악. 디, 디아나씨. 디아나씨 차례는 그제 밤이었잖아요. 오늘은 제 차례…."

"그런 거 모르네! 에잇!"

디아나는 떼쓰는 것처럼 그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뭔가 정체 모를 마법을 사용했다.

"엣?! 꺄악!"

레이아가 마법을 맞고 몸을 움츠린 사이에, 디아나는 구원을 붙잡고 그대로 저택 밖으로 달려 나갔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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