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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성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이, 이, 이 몸의 남자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겐가아아!"
어렴풋한 의식 속에서 문득 그런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막 기절에서 깨어나 멍한 머리는 그 말의 뜻을 이해하기에 앞서서 좀 더 직접적이고 단순한 것들을 먼저 깨달았다.
우선 방금 들린 목소리가 디아나의 목소리라는 것.
그리고 물건 끝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으로, 지금 삽입하기 직전이라는 것.
이것들을 종합하여, 구원의 멍한 머리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디아나아아! 내가 잘못했어어어!"
구원은 자신의 위에 있는 여성을 꽉 끌어안았다.
하지만 뺨에 닿는 감촉이 뭔가 허전했다.
디아나가 원래 셋 중에 제일 작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작았었나? 이건 작다는 수준을 뛰어 넘어서 없는 수준인데?
"미안해! 그 사이에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으면 살까지 빠져버리다니! 안 그래도 작던 가슴이! 흐으윽! 디아나아아아!"
"무, 무, 지금 뭐라고 했나? 가, 가슴이 뭐 어째?"
그러자 옆에서 디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정면이 아니라 옆에서.
그제야 구원은 막 깨어났을 때 들렸던 목소리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봤다.
이 몸의 남자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겐가. 확실히 그렇게 말했었지?
그 말은 즉, 지금 내가 끌어안고 있는 게 디아나가 아니라는….
구원은 주저주저하면서 고개를 들어 자신이 끌어안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확인했다.
나른해 보이는, 하지만 미약하게 열기를 띠고 있는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뜨허어어억!"
구원은 바로 위에 있던 실비아를 밀쳐냈다.
어쩐지 가슴이 작더라니! 그래.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그렇게 줄어들 리가 없지!
"디아나님! 오해입니다! 전 디아나님이라고 생각하고!"
실비아를 밀쳐내고, 구원은 바로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얼핏 보인 디아나는 마치 이쪽에 달려들다가 그대로 멈춘 것 같은 자세로 굳어져 있었다.
그리고 화를 내야하는지, 아니면 좋아해야하는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표정으로 구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히 구원의 발언만 놓고 보면 때려죽여도 시원찮은 기분이겠지만, 그래도 구원은 실비아를 디아나로 착각하고 벌인 일이다.
즉, 깨어나자마자 디아나에게 사과하면서 엉겨 붙을 정도로 디아나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디아나는 주먹을 들고 우왕좌왕하더니, 결국 주변을 둘러보며 일갈했다.
"둘만 있고 싶네! 다들 나가게!"
야. 아무리 그래도 여기 영주성인데. 그런 게 통할 리가….
"네, 넷! 다들 나가죠. 그럼 디아나님. 편히 계세요."
통했다.
펠리시아는 마치 잘 됐다는 듯이 사람들을 물리기 시작했다.
너 왜 그렇게 공손하냐? 그런 이미지 아니었잖아?
마치 건드리면 터질 폭탄을 대하는 것 같은 태도였다.
디아나와 펠리시아의 말에, 방 문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뭐야 저거. 뭔데 여기 이렇게 사람이 많아.
나 지금 전부 벗고 있잖아. 이거 무슨 수치 플레이야?
구원은 슬그머니 이불을 끌어당겨 하반신을 덮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행동은 정면에서 뻗어져 나온 손 하나에 제지됐다.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와중에도, 실비아는 나가지 않고 오히려 구원의 물건을 덥석 잡아온 것이다.
"시, 실비아?!"
구원이 놀라는 것보다 먼저, 펠리시아가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실비아의 이름을 불렀다.
"이…!"
"누가! 실비아를 끌고 와!"
"넷!"
그리고 옆에서 디아나가 이글이글 불타는 눈동자로 뭔가 외치려고 했을 때, 펠리시아가 사람을 시켜 실비아를 끌고 갔다.
실비아는 열기를 띤 눈동자로 구원을 바라보면서, 맥없이 끌려 나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방 안에는 구원과 디아나만이 남겨졌다.
구원은 아직도 상황 파악이 제대로 안 되고 있는 상태였고, 디아나는 화는 났는데 그걸 쏟아내지는 못해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방 안에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그 정적을 먼저 깬 건 디아나였다.
"아무 말이라도 해보는 게 어떤가? 자네 이 몸에게 뭔가 할 말 없나?"
"어…음…. 미안. 난 디아나 가슴이 작다고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
구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디아나의 주먹이 연속으로 날아와 꽂혔다.
물론 구원이 느끼기에는 토닥토닥 수준으로 그치는 공격이었지만 말이다.
"자네는! 정말로! 이 몸에게! 제일 처음 할 말이! 그것이란 말인가!"
"아니! 아니야! 잠깐만! 막 깨어나서 정신이 없어서 그래! 잠깐만 기다려봐!"
구원은 디아나의 양 주먹을 마주잡듯이 양 손으로 잡아 멈추고, 잠깐 생각에 빠졌다.
내가 정신이 나갔지. 왜 긁어 부스럼을 만들려고 그딴 발언을.
어떻게 디아나가 갑자기 내 앞에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찾아 헤맸던 디아나다.
상황 파악은 나중에 하고, 우선은 디아나를 만나면 제일 처음 하려던 말을 하자.
디아나에게 할 말은 애초에 정해놓고 있었다.
"디아나, 전엔 미안했어. 그래도 난 진심이었어. 진심으로 널 사랑해. 그러니까 어디가지 마. 계속 내 곁에 있어줘."
"으, 으, 으으…."
디아나는 얼굴이 귀 끝까지 새빨개져서, 정체불명의 행동을 취했다.
아마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려고 한 것 같은데, 두 손 다 붙잡혀져 있는 바람에 몸만 꿈틀댄 모양이다.
"이, 이 몸이 자네 같은 남자와…."
"하지만 네 남자인 거지?"
디아나는 확실히 아까 그렇게 말했다.
내 남자에게 무슨 짓이냐고.
아까는 너무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서 그 뜻을 제대로 이해 못하고 흘려 넘겼지만, 지금은 확실하게 그게 무슨 뜻인지 알 만큼 정신을 차렸다.
"그, 그건…! 그러니까! 이, 이 몸은 그저…!"
"디아나. 전에는 괜히 섹스로 정신을 빼놓고 진심을 듣는다는 헛짓을 해서 미안해. 하지만, 그래도 난 디아나가 날 생각하는 마음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진 않아. 그러니까 사라와 레이아와 함께 계속 내 곁에 있어줘. 난 너희 모두를…."
그때까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마냥 부끄러워하던 디아나였지만, 사라와 레이아의 이름이 나오자 갑자기 뭔가 기억난 듯이 얼굴색이 변했다.
"그건 안 되겠네."
달콤한 말에 부끄러워하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뭔가를 결심한 듯이 굳은 표정으로 디아나는 그렇게 단언했다.
설마 거절당할 거라곤 생각 못해서, 구원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솔직히 말해서 너무 자만하고 있었다.
디아나가 날 좋아하는 건 확실하니, 진심으로 설득하면 마지못해서라도 넘어와 줄 거라고 생각했다.
"디아나…."
"그래. 인정하지. 이 몸은 자네에게 마음이 있네. 키스를 약속할 만큼 말일세. 지금 당장이라도 자네에게 키스를 하고 싶을 정도네."
"그러면 하면 되잖아! 나도 언제든지…!"
"하지만 자네가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주고 있는 상황에선 안 되네."
공주도 그렇게 말했었고, 역시 디아나정도 위치의 사람은 다른 여자들과 한 남자를 공유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걸까?
디아나가 날 좋아하는 감정은, 다른 여자와 공유할 거라면 차라리 관계를 끊어버릴 거라고 생각할 수준밖에 안 되는 걸까?
하지만 디아나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디아나는 미간에 주름을 만들고 말을 고르듯이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 구원. 이 몸을 선택해주게."
"뭣…! 그게 무슨…!"
"무슨 말인지 자네도 잘 알잖나. 사라양이나 레이아양에겐 미안하지만, 이 몸만을 바라봐주게. 자네가 그러겠다고 말해준다면, 이 몸은 평생 자네와 함께 하겠다고 맹세하지."
"디아나. 지금 나한테 너하고 사라와 레이아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하는 거야?"
"그 말대로일세."
"정말로, 정말로 그 두 가지 선택밖에 없을까? 넷이서 다 같이 사이좋게 지낸다는 선택은 없을까? 내가 이기적인 건 알아. 하지만 그래도…."
"이 몸을 선택하면 사라양과 레이아양과 얼굴도 보지 말자는 게 아닐세. 오히려 지금처럼 지내도 되네. 단, 그녀들에게 진심이 되지 말게. 자네의 진심은 이 몸에게만 있는 걸세."
이건 디아나 나름의 중재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구원에게는 더욱 가혹하게 들렸다.
그러면 사라와 레이아는 가볍게 가지고 노는 정도로만 상대하라는 말이잖아.
"디아나. 너도 잘 알잖아. 내가 그렇게 요령 좋은 놈이 아니라는 거. 그렇게는 못해. 그냥 사라하고 레이아도 받아들여주면 안 될까? 그 둘을 받아들여줘도, 너한테 절대 소홀히 하지 않을 거라고 약속할게. 최선을 다해서 있는 힘껏…."
"그런 문제가 아닐세! 이 몸이 받아들인다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란 말일세! 이 몸은 자네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 왜 그걸 몰라주나! 자네는 이 몸과의 키스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건지 전혀 모르고 있네!"
"그야 당연히 모르지! 말해준 적이 없잖아! 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건데?!"
구원의 외침에 디아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리고 굳은 눈동자로 구원을 곧게 마주보며 입을 열었다.
"자네는…영원히 산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으…응?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에, 구원은 살짝 당황했다.
다른 사람이 말했으면 도 같은 거 안 믿는다고 대응했겠지만, 상대는 디아나다. 전생 마법을 이용하면 아마도 영원히 살 수 있을 디아나.
저런 말을 꺼낸 것도 뭔가 의미가 있을 거다.
생각해보자. 그래. 디아나는 영원히 산다. 그리고 난 그렇게 살지 못한다.
내가 평생 디아나와 붙어있어도, 디아나 입장에서 나와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 살아갈 시간과 비교하면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만 집중해줬으면 한다는 말일까?
그렇게 생각해보니, 이 이상 막무가내로 하렘을 주장하기 힘들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 하나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난 대체 어쩌면 좋지.
"미안해. 영원히 사는 널 상대로 이런 말을 하는 내가 이기적이란 건 알고 있어. 그래도…."
"이 몸 얘기가 아닐세."
"응?"
"자네 자신이 영원히 산다는 걸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은 걸세."
"그게…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의 의미일세. 이 몸과 키스를 하게 되면, 이 몸과 생명을 공유하게 되네."
그렇게 말하는 디아나의 표정은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마치 거절당할까봐 겁을 내는 것처럼.
"어…그러니까…너랑 키스하면 나도 영원히 산다고?"
"…그렇다네. 그 말 대로일세."
"…그럼 좋은 거 아냐?"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닐세! 자네는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거 아닌가?! 영원히 사는 걸세! 아는 얼굴들이 차례차례 떠나가도, 세상에 홀로 남겨져서 영원히!"
물론 구원도 그 정도는 상상할 수 있다.
그런 주제의 영화들도 본 적 있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디메리트를 감수하더라도 디아나가 말한 영원한 삶에는 압도적인 메리트가 하나 있었다.
"홀로 남겨진다니. 너랑 키스해서 영원히 사는 거면 둘이서 남겨지는 거잖아. 영원히 사는 것에 그 어떤 힘든 일이 있더라도, 너랑 영원히 살 수 있는 거라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런 것들 이상으로 너랑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게 기뻐. 아무리 생각해봐도 좋은 거잖아?"
"자, 자, 자네란 남자는…!"
디아나는 크게 감동받았는지, 눈동자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구원을 쳐다봤다.
"뭐야? 그럼 지금까지 내가 영원히 사는 건 싫다고 널 거절할까봐 말 못하고 있었던 거였어?"
"하, 하지만, 하지만 과거에 이미 한 번 거절당한 적이 있단 말일세!"
"응? 설마 나 말고도 키스하려고 했던 사람이 있었어?"
"그렇…앗! 아닐세!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었네! 마법사 협회의 전신이 되는 조직에서! 다들 차례차례 죽어가니 쓸쓸해져서, 마지막 남은 친구에게 같이 살아달라고 했던 것뿐이었네! 심지어 상대는 여자였네!"
"그, 그럴 수가! 디아나가 동성애도 커버 가능했었다니! 설마 사라와 레이아를 포기하게 만들려는 것도…!"
"그, 그런 거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자네 지금 이 몸과 장난…장난이구먼! 진지한 얘기 중에 무슨 짓인가!"
디아나는 드디어 구원이 장난치고 있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너무 심각해 하기에 분위기 좀 풀어주려고 그런 건데.
"아, 아무튼! 자네도 이 몸을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군. 자네도 이 몸의 마음을 알았겠지? 이 몸은 자네를 생각해서 말한 걸세. 사라양과 레이아양에게는 진심을…."
"아니. 그 둘도 진심으로 대할 거야. 너랑 마찬가지로."
안심해서 말하는 디아나에게 구원은 오히려 당당하게 하렘을 선언했다.
디아나가 독점욕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라 날 생각해서 하렘을 거부하는 거였다면, 오히려 디아나를 설득할 자신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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