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187화 (17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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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던전 도시의 영주

    "제가 구원은 맞습니다만, 그쪽은 누구신지?"

    갑자기 본적도 없는 미인이 갑자기 말을 걸어온 거다. 그것도 디아나의 이름을 외치고 있을 때. 당연히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실례했습니다. 제 이름은 실비아 바벳. 왕실 친위대 소속의 기사입니다."

    실비아라는 이름의 기사는 자신의 가슴 앞에 박힌 문양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 그런 거 보여줘도 난 모르거든.

    "그래서, 그 왕실 친위대의 기사님이 저한테 무슨 용무이신지?"

    "지금부터 저와 함께 영주성으로 가주셔야겠습니다."

    과연 판타지 세계의 기사라는 걸까? 꽤나 고압적인 말투였다.

    "죄송하지만, 지금은 할 일이…."

    "저야 말로 죄송하지만, 이건 권유가 아닙니다."

    그래. 애초에 온건하게 갈 생각은 없다는 거지.

    "이유는? 갑자기 끌고 가려고 하는 거야. 뭔가 이유는 있겠지?"

    실비아의 태도를 보고, 구원도 바로 그에 맞게 태도를 바꿨다.

    전에도 말한 것 같지만, 상대의 태도에 따라 얼마든지 태도를 바꿀 수 있는 게 바로 나란 남자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상대가 친절하다고 나도 친절하리란 보장은 없지만.

    "세이비어스 클랜의 클랜장 구원. 당신이 쿠데타를 꾀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영주님은 이를 간과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여겨, 당신을 소환한 겁니다. 얌전히 따라오시길 바랍니다. 저도 난폭한 짓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뭐요?"

    전혀, 진짜, 요만큼도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을 들어서, 구원은 벙찌고 말았다.

    쿠데타? 내가?

    "잠,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 쿠데타? 뭔가 착각한 거 아냐? 동명이인이라던가…."

    이 세계에 구원이라는 이름의 동명이인이 있을 리 없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말하지 않고는 참을 수 없었다.

    아니 다른 것도 아니고 쿠데타라니. 맨날 던전에 틀어박혀 있었던 내가 말이야?

    차라리 사기죄나 살인 같은 죄로 잡아간다고 하면 이해라도 하지.

    "착각? 지고의 대마법사 텔루나님의 저택을 클랜 하우스로 삼아서 활동 중인 세이비어스 클랜의 클랜장 아닙니까?"

    "아니, 그건 맞는데…."

    "그럼 착각이 아닙니다. 당신은 지고의 대마법사님을 부추겨 마법사 협회 산하에 있는 모든 학파의 수장들을 자신의 클랜 하우스로 모으게 했습니다. 이는 마법사 협회를 예전처럼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아닌가하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그 목적이 쿠데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 또한 제기되었습니다."

    "뭐? 아니, 그건…!"

    구원은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솔직히 마법사 협회의 수장들을 모을 때,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디아나도, 마법사 협회의 수장들도 바보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다들 천재 중의 천재들이다.

    당연히 그에 따른 대처도 알아서 잘 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뭐? 쿠데타 의혹?

    "잠깐. 잠깐만요. 잠깐만 기다려 봐요."

    "변명이라면 됐습니다. 어차피 영주님께 가면 기회는 충분히 드릴 테니, 변명은 그때 가서 하시죠. 그럼 따라오시기 바랍니다."

    "아니. 잠깐만요. 그게, 디아나, 아니지, 어떻게 된 일인지 지고의 대마법사님이 다 설명해줄 수 있거든요? 그런데 그 지고의 마법사님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상태란 말이에요. 방금 제가 외치는 거 들으셨겠지만, 안 그래도 열심히 찾고 있는 중이거든요. 제가 찾는 즉시 얘기해서…."

    "텔루나님의 지혜를 빌려, 말을 맞추겠다는 말을 당당히도 하시는군요."

    "네?!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영주님께서는 당신이 혼자 있을 때를 노려 텔루나님과 말을 맞추기 전에 데리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순순히 따라오시죠."

    "아니, 하지만…."

    "마지막 경고입니다. 당신이 납득할 정도로 충분히 설명은 드렸다고 생각합니다. 이 이상 저항한다면, 힘을 억지로라도 끌고 가겠습니다. 난폭한 짓은 하고 싶지 않으니, 순순히 따라오시죠."

    더는 말하기 귀찮다는 듯이, 실비아는 힘을 줘서 말했다.

    결국 구원은 순순히 실비아를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다른 죄목이라면 모를까, 쿠데타 의혹으로 끌고 가겠다는데 반항하면 정말로 큰일이 날 것 같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해진 점은 있다. 지금 디아나는 확실히 날 지켜보고 있지 않다는 거다.

    "하아…."

    실비아를 따라가면서, 구원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실비아는 자신의 실력에 어지간히 자신이 있는 건지, 구원을 전혀 구속하지 않고 그냥 앞장서서 걸어갔다.

    덕분에 죄인이 된 기분은 좀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막막한 건 마찬가지였다.

    설마 집나간 애 찾으러 나왔다가 끌려가게 되다니.

    "하아…. 이봐요. 그…기사님?"

    "바벳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뭡니까?"

    "따라가는 건 좋은데, 우리 클랜 하우스에 연락은 좀 넣어줄 수 있을까요? 제가 갑자기 없어지면 애들이 걱정할 텐데."

    "그런 부분은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영주님은 그렇게 꽉 막히신 분이 아닙니다. 당신을 데려가는 것도 사정을 들어보기 위한 겁니다. 당신이 정말로 결백하다면, 아마도 그리 오래 붙잡혀 있지는 않을 겁니다."

    저거, 돌려 말해서 클랜 하우스에 연락은 하지 않을 거라고 얘기하고 있는 거지?

    구원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지. 가는 동안 변호할 말이라도 생각해두자.

    실비아의 말처럼 정말로 영주가 꽉 막힌 사람이 아니라면, 사정을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이해해 줄 거다.

    난 그냥 마법사 협회 애들을 달래기 위해서 일부만 디아나의 저택에 살게 한 거라고 말해주면 된다. 마법사들의 디아나 사랑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할 테니까.

    영주성으로 가는 길은 꽤나 멀었다.

    보통 영지라면 영주성이 가운데에 있고, 그를 중심으로 도시와 논밭이 퍼져나가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여기는 던전 도시. 도시의 중심은 던전 입구와, 그를 둘러싼 길드다.

    그리고 영주성은 고급 주택가의 가장 외각 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고급 주택가를 지나는 도중에 클랜 하우스도 지나쳤지만, 안에 연락을 하는 건 실비아가 용납하지 않았다.

    디아나와 접촉할 수도 있다나 뭐라나.

    말을 맞추고 할 것도 없이, 정말로 그냥 빠순이들 소원 좀 들어준 건데.

    아무튼 그렇게 꽤나 오래 걸어서, 구원은 드디어 영주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영주성은 엄청나게 으리으리했다.

    아무리 영주성이라지만, 너무 으리으리하게 지은 거 아냐?

    구원이 촌놈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살피고 있자, 실비아가 말을 걸어왔다.

    "성이 신기하신 모양입니다?"

    "아, 네. 제가 살던 세계에 이런 양식의 건물은 남아있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대단하네요. 한낱 영주성이 이 정도라면, 대체 이 나라의 수도에 있는 왕성은 얼마나 대단한 건가요?"

    어차피 내 소재를 파악하고 찾아온 사람이다.

    내가 이방인이라는 것도 이미 파악하고 있을 테니, 굳이 그 부분은 설명을 하지 않았다.

    "이 성이 다른 곳에 비해서 유독 화려하기는 합니다. 여기는 대대로 왕족이 직접 다스리는 곳이니까요."

    "아, 그렇군요. 왕족이 직접 다스린다니. 그렇다면 이렇게 으리으리한 것도 납득…네? 잠깐만. 뭐라고요? 그럼…."

    "네. 당신을 소환하신 이곳의 영주님도 왕족이십니다. 모쪼록 실례되는 행동은 하지 않기를."

    "저 왕족을 대하는 예절 같은 거 전혀 모르는데요?"

    "괜찮습니다. 이방인이시니, 그저 실례되는 행동만 안 하시면 됩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영주님은 그렇게 꽉 막히신 분이 아닙니다."

    실비아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면서, 성 안을 걸어 나갔다.

    왕족을 만나는 건데 너무 대충인 거 아냐? 그런 의문점이 생겼지만, 그 의문점은 곧 풀렸다.

    "바벳님! 안녕하십니까!"

    "음."

    만나는 사람들마다 실비아에게 각 잡고 경례를 하는 것이다.

    …이거 어쩌면, 내 생각보다 훨씬 높은 사람인 거 아냐? 난 이미 그런 사람한테 반말까지 했었고…진정하자. 그래봤자 얘가 우리 디아나보다 직급이 위겠어?

    솔직히 지금까지 들었던 디아나의 명성을 생각해 보면, 왕족이라고 해도 디아나가 꿀릴 것 같지는 않았다.

    난 지고의 대마법사님한테도 처음부터 말 놓고 지냈던 놈이야.

    그렇게 생각하자, 구원의 머리도 좀 차분해졌다. 설마 별 일이야 있겠어?

    실비아를 따라갈수록, 점점 주변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적어지기 시작했다. 아까는 관리들로 보이는 사람들과 기사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메이드들 정도밖에 보이지 않게 됐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유독 화려한 문의 앞이었다.

    다만 그 크기는 성 안의 다른 방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접견실 같은 곳이라면 아마 문의 크기가 클 테니, 어쩌면 여긴 영주 개인의 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접견실이 아니라 이런 곳으로 부른다고?

    구원이 의아해할 틈도 없이, 실비아가 방문을 노크했다.

    "실비아 바벳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그러더니 안에서 어떤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는데, 마음대로 문을 열어버렸다.

    잠깐. 왕족이라면서. 실례되는 행동은 하지 말라면서. 넌 이래도 되는 거냐?

    구원은 당황했지만, 그 당황은 더 큰 당황으로 뒤덮어 씌워졌다.

    "후욱. 후욱. 후욱. 후욱."

    "흐음. 하읏. 후읏. 흐응."

    방문을 열자마자, 누가 들어도 떡치는 소리로 밖에 안 들릴 남녀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기다려, 당황하지 마라. 이건 공명의 함정이다.

    들리기엔 이렇게 들려도, 막상 안에 들어가 보면 운동 중이었습니다 같은, 허무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게 뻔하다.

    "따라오시죠."

    봐라. 실비아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고 있잖아.

    아무리 표정이 적은 사람이라도, 자기 군주가 떡치는 소리가 들리는데 저렇게 무표정으로 있는 건 있을 수 없지.

    "흐응!"

    응. 아니야. 떡치는 소리 맞아.

    방에 들어가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방 한가운데에 놓인 커다란 침실에서 남녀가 후배위 자세로 뒤엉켜있는 모습이었다.

    남자는 엄청난 근육질로, 척 보기에도 엄청나게 강해보이는 인상이었다.

    다만 엄청나게 단련되어 강인해 보이는 몸과는 다르게, 얼굴은 평범했다. 왕족한테 이런 말하면 실례가 되겠지만, 솔직히 길가다 마주쳐도 아무도 신경 안 쓸 것 같은 외모였다.

    반면 네발로 엎드려있는 여자의 미모는 엄청났다.

    얼굴이면 얼굴. 몸매면 몸매. 뭐 하나 빠질 것 없이 완벽했다.

    굳이 흠을 찾자면, 조금 심하게 퇴폐미가 느껴지는 점이라고 할까. 닳고 닳은 특급 창녀라는 느낌이었다.

    영주를 상대하는 거니, 진짜 특급 창녀일지수도 있지만.

    "말씀하신대로 세이비어스 클랜의 클랜장. 구원을 데려왔습니다."

    실비아가 말하자, 남자는 실비아를 힐끔 보더니 다시 허리를 움직이는데 집중했다.

    뭐야 저거. 싸가지 없는 거 봐라.

    그리고 인마. 허리를 흔들 거면 좀 제대로 흔들어라. 그게 뭐냐. 힘만 있는 힘껏 주고 있지, 기교가 전혀 없잖아.

    네 눈엔 여자가 별로 못 느끼고 있는 게 안보이냐?

    그나마 창녀니까 신음소리를 내주는 거지, 다른 여자 같았으면….

    "흐음. 저 사람이? 수고했어. 실비아."

    ……엥?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구원은 잠깐 머리가 정지했다.

    지금…저 여자가 말한 거야?

    잠깐.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그럼 저 퇴폐미 흘러넘치시는 분이 왕족?

    그럼 뒤에서 열심히 박아대고 있는 저 근육질 몰개성남은 뭔데?

    "이제 됐어. 그만 싸고 가."

    여자가 말하자, 남자가 엄청나게 자존심 상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미 하반신 쪽은 한계였는지, 곧바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뭐야? 다 쌌으면 얼른 빼고 가."

    으드득.

    남자는 이를 갈았지만, 여자의 말대로 바로 물건을 빼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작아.

    남자의 물건 따위에 관심은 없지만, 싫어도 눈에 들어와 버렸다.

    근데 진짜 불쌍할 정도로 작네.

    남자는 어째선지 구원을 노려보더니, 그대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로 방문을 빠져나갔다.

    원래 다른 놈이 저러면 구원도 화가 나야 정상이지만, 이번만큼은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로 아무렇지 않았다.

    그저 연민의 감정만 샘솟아 올랐다.

    강하게 살아라. 언젠간 네 것도 볕들 날이…미안. 거짓말은 못하겠다.

    "후우…그래서. 그쪽이 구원이라고?"

    역시나 이 여자가 영주가 맞는 모양이다.

    여자는 자신의 몸을 가릴 생각도 안한 채로, 퇴폐미 듬뿍 묻어나는 요염한 얼굴로 구원을 뜯어봤다.

    "얼굴은 반반하네. 좋아. 벗어봐."

    "…네?"

    "뭐야? 귀 안 들려? 벗으라고."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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