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186화 (17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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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아의 진심. 그리고 디아나, 또 다시

    "괜찮아?"

    "후우우우. …네. 가요."

    저택 앞에서 레이아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굳은 의지가 담긴 눈동자를 빛냈다. 그리고 구원의 손을 마주잡고 있던 손에 힘을 꼬옥 쥐었다.

    아무래도 무척이나 긴장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긴장할 필요는 딱히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저렇게 스스로에게 기합을 넣는 레이아의 모습이 귀여워서 말없이 지켜만 보고 있었지만.

    하긴 나도 마냥 흐뭇해 있기만 할 때는 아니다.

    레이아를 설득하는데 성공했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오히려 이제부터가 고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가장 어려운 상대를 남겨두고 있으니 말이다.

    지고의 대마법사라는 명성을 전 세계에 떨치고 있는 디아나다. 당연히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도 장난이 아니게 높을 거다.

    절대 쉽게 생각할 상대가 아닌데, 그런 실수까지 해버렸으니. 안 그래도 높은 난이도를 급상승시켜 버린 꼴이다.

    지금부터 디아나를 설득할 생각만 해도 골이 아플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하는 수밖에 없지.

    슬슬 디아나도 돌아올 시간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저택에 돌아와 있을지도 모른다.

    구원도 각오를 다지고, 저택으로 들어갔다.

    "…다녀오셨습니까."

    저택 입구에는 바네사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이지만,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얘 지금 기분 엄청 나쁜 거 같은데?

    "어. 응. 다녀왔어. 거기 가만히 서서 뭐하고 있어?"

    "…디아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뭐? 아직 안 왔어?"

    "…네."

    그렇게 말하면서 바네사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구원과 레이아의 마주잡은 손을 쳐다봤다.

    "구원님은, 디아나님을 찾으러 가신 게 아니었습니까?"

    구원은 그제야 바네사가 왜 화가 났는지 눈치 챘다.

    한시라도 디아나와 얘기하고 싶다면서 뛰쳐나간 놈이, 다른 여자랑 사이좋게 손을 붙잡고 온 상황이니 말이다.

    "아니, 그게 말이지.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들이 있었거든."

    구원은 바네사에게서 슬쩍 시선을 피하며 얼버무렸다.

    마음이 아프다.

    "하, 하지만 아직도 안 왔다니. 슬슬 돌아올 때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평소라면 그랬겠죠."

    엄청 가시가 돋쳐있다.

    게다가 내가 죄인인지라 뭐라고 할 말도 없다.

    "그, 그래도 아직 식사 시간까지 조금 더 시간이 남았고, 곧 오겠지? 그래. 디아나가 식사 시간에 빠진 적은 없잖아?"

    "……."

    자신을 안심시키듯 말하는 구원에게, 바네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정원을 통과하고 건물로 들어가자, 홀에는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 구…원. 왔어."

    지금 레이아와 마주잡은 손을 보고 명백하게 목소리 톤이 떨어졌는데.

    "…그 모습을 보니. 레이아하고는 잘 풀린 모양이네."

    역시나 인정해준다고는 했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다른 여자와도 맺어진 모습을 보면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어, 응. 뭐, 그렇지. 덕분에."

    구원이 곤란해 하고 있자, 레이아가 살짝 구원의 앞으로 나섰다.

    마치 사라에게서 구원을 보호하듯이 말이다.

    "사라씨. 죄송해요. 사라씨와 그런 사이인 건 알지만, 저도 제 마음에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어요. 지금부터 잘 부탁 드려요."

    "…네."

    역시 레이아는 강하다. 그저 한 없이 가련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다.

    상황을 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맞닥뜨리는 그 굳은 의지에, 구원은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다.

    절대 다른 뜻으로 떨리는 게 아니다.

    왠지 사라와 레이아 사이에 전기가 파지직 파지직  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이거랑 내 몸이 떨리는 건 아무런 관계가 없다.

    "자, 구원씨 아앙 하세요."

    "아, 아앙…."

    그리고 식사 시간에도, 레이아는 구원에게 찰싹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레이아가 이렇게 챙겨주는 건 당연히 기쁘다. 기쁘기 그지없다.

    다만, 주위의 시선이 따가웠다.

    "레, 레이아. 구원도 밥 정도는 혼자서 먹을 수…."

    "그래도. 내버려두면 구원씨는 고기만 골라서 드시는 걸요. 골고루 먹지 않으면 중요한 때에 제대로 힘을 못 쓰게 될 거예요."

    지, 지금 묘하게 힘을 강조한 것 같은데.

    설마 그 힘써야 할 중요한 때라는 게, 오늘밤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그렇군요. 그런 이유라면…."

    갑자기 옆에서 사라도 구원에게 딱 달라붙어서 음식을 입으로 옮겨주기 시작했다.

    "자, 구원. 여기. 이것도 좀 먹어봐."

    명백히 레이아를 견제하는 행동이었지만, 레이아는 예상외의 반응을 보였다.

    "어머? 사라씨도 구원씨에게 힘을 붙여주시려는 건가요? 고마워요."

    "네? 아뇨. 구원은 저하고도 사귀고 있으니까, 딱히 레이아가 고마울 일은…."

    "그래도…오늘 밤은 제 차례인 걸요."

    레이아는 요망하게 꼬리를 살랑거리면서 살짝 눈웃음 쳤다.

    여, 역시나?! 아니. 뭐 나도 물론 밤에 힘 쓸 생각은 가득하지만, 그래도 설마 우리 천사님이…. 물론 살짝 요염하신 천사님도 최고지만!

    "으, 으으으윽!"

    레이아에게 카운터를 제대로 맞은 사라는 마치 따지듯이 구원을 쳐다봤다.

    아니, 나보고 어쩌라고.

    구원은 슬며시 시선을 피해서 여자들의 기 싸움에 말려들지 않도록 노력했다.

    지금의 난 그저 밥 먹는 기계에 불과해.

    입에 음식이 들어오면, 그저 씹어서 삼킬 뿐.

    참고로 디아나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꽤나 오랫동안 기다렸지만, 너무 시간이 늦어서 어쩔 수 없이 식사를 먼저 시작하게 됐다.

    그래서 사라와 레이아 사이에 껴서 행복하면서도 살짝 오싹한 체험을 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디아나의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아침에 나갔던 애가, 대체 이 시간까지 뭐하고 있는 거지?

    디아나 상대로는 쓸데없는 짓이겠지만, 걱정도 됐다.

    설마 무슨 일이라도 당한 거 아니겠지?

    아니. 그럴 리 없다. 그 디아나다. 지고의 대마법사 디아나.

    아무리 전생으로 약화됐다고 하지만, 그 연륜까지 어디 가는 건 아니다.

    디아나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리 없어.

    하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다.

    디아나가 자기 의지로 저택에 돌아오지 않고 있는 거라는 뜻이니까.

    "텔루나님은 어떻게 되신 거지? 오늘은 하루 종일 안 보이시는군."

    식사 시간이 지나고 하늘이 완전히 새까맣게 물들어도, 디아나는 결국 저택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쯤 되자 마법사 협회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술렁임이 커질 때마다, 구원의 불안감도 서서히 커져만 갔다.

    어떻게 하지. 어쩌면 좋지.

    이거 설마, 아니 그래도…. 아니겠지?

    머릿속으로는 애써 부정하려고 했지만, 한 가지 가정이 계속 머리에 떠올랐다.

    얘…. 설마 또 가출한 거 아니야?

    "…저기 말이지. 레이아. 정말. 정말 미안한데."

    "…알아요. 디아나씨 때문에 불안하신 거죠? 나가서 찾아보실 생각이신가요?"

    구원이 운을 떼자, 레이아가 다 안다는 표정으로 구원을 쳐다봤다.

    "응.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어. 이대로라면 디아나뿐만 아니라, 레이아한테도 실례를 할 것 같아."

    이대로 레이아를 안아도, 분명 내 머릿속에는 디아나에 대한 걱정만 가득할 거다.

    그런 건 디아나와 레이아 둘 모두에게 실례라고 생각했다.

    "…좋아요. 다녀오세요."

    레이아는 슬프지만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겠어?"

    "…네. 저도 디아나씨의 기분은 잘 아니까요. 얼른 찾아서 달래주세요."

    "레이아…고마워."

    "괜찮아요. 앞으로 평생 이 얘기 할 테니까요. 두고 보세요. 맺어지고 처음 보내는 밤을 바람 맞은 여자의 한은 무섭다고요."

    레이아는 구원에게서 마음의 짐을 덜어주려는 건지, 농담조로 윙크하며 말했다.

    대체 왜 이렇게 착하실까. 스스로는 천사가 아니라고 하지만, 역시 레이아는 천사가 틀림없다.

    "레이아! 사랑해!"

    "네. 저도…그…사, 사랑해요…."

    구원은 레이아를 꽉 껴안았다.

    그리고 레이아가 낮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대로 키스를 할 수 없다는 게 이렇게 분하다니.

    레이아도 같은 생각인지, 구원을 애처로운 눈빛으로 올려봤다.

    그러다가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를 세워 자신의 입술에 가져다대더니, 그대로 손가락을 구원의 입술에 살며시 가져다댔다.

    "밤은 제가 예약해놨으니까요. 디아나씨랑 잘 되셨다고 저 바람맞히시면 안돼요."

    "당연하지! 그럴 리가 있겠어! 그럼 다녀올게!"

    구원은 입술에 닿은 레이아의 손을 꼭 붙잡고 그 손가락에 진하게 키스를 한 다음, 일어났다.

    "네. 다녀오세요."

    레이아는 구원이 키스를 했던 부분을 요염하게 핥으며 말했다.

    저 모습을 보니, 당장이라도 하고 싶어졌다.

    그러려면 한시라도 빨리 디아나를 찾아야만 한다.

    좋아. 빨리 끝내버리자고.

    기다려라 이 가출 소녀…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좀 많지만 어쨌듯!

    네가 어디 숨어있던, 반드시 찾아내주마!

    저택을 뛰쳐나온 구원은 잠깐 멈춰 서서 생각을 해봤다.

    수소문도 통하지 않고, 그렇다고 디아나가 갈만한 곳은 이미 낮에 전부 찾아본 상황이다.

    막무가내로 뛰쳐나오긴 했지만, 대체 어떻게 디아나를 찾아야 하는 거지?

    광장 한복판에 멈춰 서서 머리를 쥐어뜯던 구원은,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번뜩였다.

    잠깐만. 왜 꼭 디아나가 멀리 갔을 거라고 생각한 거지?

    발상을 전환해보자.

    온갖 마법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디아나다. 모습을 숨기는 건 일도 아닐 거다.

    그렇다면, 그렇다고 한다면. 굳이 멀리 가는 게 아니라, 가까이서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지켜보고 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구원은 길게 숨을 들이 키고, 광장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큰 소리로 외쳤다.

    "디아나아아아아아!"

    밤이라고 하지만, 여긴 던전 도시다.

    주위에 지나가는 사람도 꽤나 있었지만, 구원은 그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잠깐의 쪽팔림 따위, 디아나를 찾을 수 있다면 아무것도 아니지.

    "디아나아아아아! 보고 있는 거 아니까 빨리 나와아아아아!"

    하지만 역시나 무반응이었다.

    하긴 디아나가 계속 날 지켜봤다고 한다면, 레이아와 낮에 일을 치렀던 것도 다 보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난 낮에 레이아와 한 다음 암살자 레벨이 올랐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암살자 레벨이 오르는 조건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은밀하게 섹스를 하는 거라고 예상하고 있다.

    즉, 그 예상이 맞는다고 한다면, 레이아와의 행위를 아무한테도 들키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하기엔 너무 아쉬웠다.

    혹시 화나서 나갔다가 내가 저택에 돌아온 이후로 지켜보고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고.

    좋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자.

    구원은 만약 디아나가 듣고 있다면,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말을 외치기로 했다.

    소문이 퍼지면 디아나의 평가를 떨어뜨리는 말이지만, 설령 지나가면서 다른 사람이 듣더라도 이걸 그대로 믿지는 않겠지. 그냥 웬 미친놈의 헛소리로만 판단할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구원은 바로 다시 숨을 들이켰다.

    "지고의 대마법사! 다이애나 텔루나는! 노ㅊ…!"

    "세이비어스의 클랜장 구원. 맞습니까?"

    구원이 차마 다 외치기도 전에 누군가 구원에게 말을 걸었다.

    다만, 디아나는 아니었다.

    아니. 아예 얼굴도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장담하는데, 지나가면서 얼굴도 마주친 적 없었을 거다.

    왜냐하면 이정도로 예쁜 여자를 봤으면 잊으려고 해봐야 잊을 수가 없었을 테니까.

    구원에게 말을 건 사람은 그 정도로 상당한 미모를 자랑하는 여기사였다.

    두꺼운 기사 갑옷을 입고 있어서 몸매는 잘 모르겠지만, 갑옷 위로 드러난 얼굴은 상당히 예뻤다.

    기사라는 직업 때문인지 표정은 무표정했지만 말이다. 아니, 이건 직업 때문이 아닌 것 같은데.

    바네사의 무표정과는 조금 다르다.

    바네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무표정이라고 한다면, 이 여기사는…그래. 마치 따분하다는 표정이었다.

    아무튼 사라와 디아나, 레이아 덕분에 이 이상 없을 정도로 눈이 높아진 구원이 보자마자 예쁘다고 판단할 정도의 미모를 자랑하는 여기사였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연참은…퇴근하고 12시까지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글만 써야 돼서 힘들어요….

    그래도 오늘은 해냈습니다.

    히로인은 더 등장시킬지 말지 고민 중입니다.

    가볍게 한두 번 하는 여자들은 더 나오겠지만, 메인 히로인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저도 모르겠네요.

    Tigerfish, 알테니아, 느블르스브그으 //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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