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180화 (16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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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아의 진심. 그리고 디아나, 또 다시

"…늦었구먼."

식당에 내려가자마자, 디아나가 기분 나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레이아도 말은 안하고 있지만, 불안한 표정으로 구원과 사라를 쳐다봤다.

"미안. 미안. 조금 일이 있어서. 그렇지, 사라?"

"응…. 응? 네?! 아, 응. 네."

"…자네들 계속 같이 있었던 건가?"

"그렇게 됐네."

"왠지 묘하게 친해진 것 같군."

"그야 뭐…."

구원은 대놓고 말하기도 쑥스러워서, 사라를 바라보며 얼버무렸다.

정작 그 사라는 구원의 시선에 신경 쓸 때가 아닌 모양이었지만 말이다.

불안한 표정으로 눈동자가 이리저리 헤엄치고 있었다. 다리도 자세히 보면 살짝 오므리고 있는 상태로 불안 불안하게 걷고 있고.

"하읏…."

그리고 의자에 앉았을 때 야릇한 소리까지.

이쯤 되면 사라가 왜 그러는지 알겠지?

그래. 사라는 지금 내가 준 선물을 두 개 다 그대로 몸에 지니고 있었다.

바네사가 부르러 오자 겨우 구원을 때리던 손을 멈춘 사라는, 만신창이가 된 구원의 얼굴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구워언! 괜찮아?!"

네가 이렇게 만든 거다 이 아가씨야.

"…이게 괜찮아 보여?"

"미, 미안해…. 하지만 구원이…."

"변명 따윈 필요 없어. 내 요구를 들어주기 전엔 절대 용서하지 않겠어."

"무, 무슨…."

"내 선물을 둘 다 그대로 지니고 있어."

구원의 말에, 사라는 순간적으로 다시 화난 표정을 지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 모습을 보고 구원은 순간적으로 쫄았지만, 사라도 구원의 얼굴을 보고 더 때릴 수는 없었는지 주먹을 휘두르지는 않았다. 대신 새빨간 얼굴로 구원을 노려봤다.

"지, 진짜…. 변태 아니야?"

"어차피 여긴 나중에 나한테 줄 예정이었잖아? 이렇게라도 풀어놓지 않으면 찢어질걸?"

"그, 그래도…!"

"으아아. 얼굴이, 가슴이, 너무 욱신거려."

"으윽! 그, 그래도 이걸 언제까지…!"

"내일모래면 다시 네 차례잖아? 그때까지만 버티면 돼."

"3, 3일이나 이러고 있으라고?!"

"아아악! 얼굴이! 가슴이!"

"알았어! 하면 되잖아! 하면! 이 변태!"

"좋아. 그럼 얼른 한 판 더 하고 밥먹으러가자."

"뭐, 뭐?! 한 판 더해?"

"그럼 이대로 내려갈까? 힐링 섹스로 치료는 하고 가야지."

그래서 현재 이 모습이라는 얘기다.

사라는 식탁에 앉아서도, 불안정한 모습으로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당연한 얘기지만, 주위 소리는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다.

"으으으으으음…."

디아나는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구원과 사라를 쳐다봤다.

사라는 디아나와 레이아의 시선에는 눈치 채지도 못하고, 테이블 위에 놓인 물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아앗!"

그리고 이쪽을 불안한 눈으로 쳐다보던 레이아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자, 조용히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그 꼬리는 축 처져있고, 귀도 완전히 접혀서 아래로 처지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표정은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아마 엄청나게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았다.

"레, 레이아? 왜 그래?"

평소 레이아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리액션에 구원은 깜짝 놀랐다.

레이아는 한참 아래로 숙이고 있다가, 겨우 고개를 들고 구원을 쳐다보며 말했다.

"사, 사라씨 손에…반지가…."

그렇게 말하는 레이아의 눈은 그렁그렁 물이 차올라서 당장이라도 울 것 같았다.

"뭐, 뭣이?!"

이번엔 디아나가 벌떡 일어났다.

재빨리 사라의 손을 바라보더니, 반지를 확인하자마자 살기가 느껴지는 얼굴로 구원을 노려봤다.

정작 사라로 말할 것 같으면….

"네?! 앗, 네. 구원이 줬어요."

정신이 딴 데 가있는 듯, 별거 아니라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 버렸다.

아니, 뭐. 딱히 숨길 건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담담하게 알린 거 아니냐? 적어도 좀 기뻐하면서 말하라고. 엉덩이에 꽂힌 것 때문에 그럴 때가 아니란 건 알지만.

"내 언젠간 이럴 줄 알았네! 어쩐지 요즘 묘하게 친하더라마는!"

디아나는 살기가 줄줄 새어나오는 표정으로 구원을 바라보며 험악하게 말했다.

장담컨대, 구원은 디아나가 저렇게 화난 표정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디, 디아나. 진정해."

"지금 이게 진정하게…! 후욱…. 후욱…."

디아나는 뭔가를 더 외치려다가, 테이블에 앉아있는 마법사 협회의 사람들을 보고 애써 호흡을 가다듬었다.

"…식사나 하지."

그리고 역대 최고로 거북한 식사 시간이 흘렀다.

디아나는 말은 안하고 있지만 구원만 바라보며 살기를 줄줄 흘리고 있었고, 레이아는 사라와 구원을 번갈아 보면서 비탄에 빠진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리고 사라는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얼굴로, 엉덩이 쪽에만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았다.

솔직히 기쁜 마음도 있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저런 반응을 보여준다는 건, 역시 쟤들도 나한테 마음이 있다는 반증이 되니까.

하지만 이렇게 분위기가 험악해질 줄은 몰랐다.

그냥 평소처럼 토닥토닥 거리면서 질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세계는 일부다처도 인정해주는 세계라는 점도 한몫해서,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참고로 이 세계는 여신이 여러 가능성을 낳도록 권장하는 만큼, 굳이 일부일처제만 강요하지 않는다고 한다. 남자든 여자든, 능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일부다처나 일처다부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래도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남과 공유한다는 게 쉬운 건 아니라서, 보통은 일부일처를 선호한다고 하지만 말이다.

대사제님의 교육 시간에 그 말을 들은 이후로, 구원은 하렘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보통은 일부일처제를 선호한다고 하지만, 난 보통이 아니다.

능력도 있고, 세 명 모두와 좋은 분위기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게다가 세 명 모두 기본적으로 서로 잘 지내고 있었다. 하렘 같은 건 언젠가 자연스럽게 완성되겠지. 라고 방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자만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

대체 어떻게 이 분위기를 수습해야 될까.

걱정 마! 사라와 사귀게 됐지만, 난 너희들의 사랑도 전부 받아줄 수 있어!

…말하자마자 뺨에 손바닥부터 날아오는 거 아닐까?

"그럼. 설명해보겠나."

식사가 끝나고, 자리를 물리자마자 자리에 남아있던 디아나가 구원과 사라를 추궁하듯이 그렇게 말했다.

"보이는 대로야. 사라랑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 건데…."

구원이 말하자마자, 디아나의 귀여운 입에서 으드득하고 전혀 귀엽지 않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호오…. 그, 그렇고…그런 사이…. 사라양과 말인가? 이, 이 몸과…이 몸과 그런 약속까지 한 주제에…!"

디아나는 구원을 죽일 기세로 노려봤다.

그런 약속이라는 건, 키스하기로 예약해 둔 걸 말하는 것일 거다.

그렇다는 말은, 디아나의 저 살기도 질투로 인한 것.

두려워할 건 없다. 용기를 가지고,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자!

"걱정 마! 디아나! 난 하렘왕이 될 남자다! 사라뿐만 아니라 너희 모두의…!"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겐가?!"

어, 어라?

솔직히 화낼 거라곤 생각했지만, 그래도 이런 험악한 반응이 아니라 좀 더 귀여운 방향으로 화낼 거라고 생각했다.

"자네는 사라양을 보기 미안하지도 않은 겐가?!"

아, 그런 건가.

사라를 대신해서 화내준 건가. 역시 디아나도 착해빠졌다. 그래서 더 좋은 거지만.

"아니, 그건 사라도…."

구원은 그렇게 말하면서 동의를 구하듯 사라를 쳐다봤다.

식사를 하면서 애널 비즈의 이물감에 익숙해진 건지, 사라도 아까보다 훨씬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진짜 최악이야. 사귀기로 한 바로 당일에 다른 여자를 꼬시다니."

사, 사라야?!

생각지도 못했던 사라의 배신에, 구원의 머릿속은 패닉상태가 됐다.

구원은 사라의 어깨를 꽉 끌어안고 귀에 입을 댄 후 빠르게 속삭였다.

"아니. 아니. 아니. 사라야. 얘기가 다르잖아."

"뭐가요?"

"너도 분명 인정해준다고…!"

"그러네요. 디아나와 레이아와 잘 되도 인정해드릴게요. 그런데 제가 도와드린다는 말은 한 마디도 안한 것 같은데요?"

그, 그랬다! 생각해보니 당연한 얘기였다.

자기 남자가 다른 여자를 꼬신다는데, 세상에 대체 어느 여자가 그걸 도와줄까.

"호, 호오. 배짱도 두둑하군. 지금 이 몸의 눈앞에서 사이 자랑 하려고 노닥거리는 겐가?"

"아, 아니. 디아나님. 진정하세요. 그런 게 아니라…."

"지금 이 몸이 진정하게 생겼나?! 이 몸을 그렇게 그런 식으로 꼬드겨 놓고…. 으으, 으으윽…!"

디아나는 눈가에 살짝 눈물까지 맺히기 시작했다.

"이젠 모르네! 둘이 잘 먹고 잘 살게!"

디아나는 그렇게 외치고, 순신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잘 먹고 잘 살라니. 애도 아니고….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디아나!"

구원은 바로 디아나를 쫓아가려고 했지만, 당장 그럴 수는 없었다.

"구원씨…."

왜냐하면 이 자리에서 구원을 추궁하던 건 디아나뿐만이 아니었으니까.

레이아는 아까부터 구원의 이름만 부르면서, 비통한 표정으로 계속 구원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디아나처럼 살기까지 뿜으며 호통치며 화내는 것도 그렇지만, 이것도 역시 정신 공격이 장난 아니었다.

우리 천사님이 저런 표정을 짓게 만들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살욕구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올 정도의 파괴력이었다.

"레, 레이아. 그러니까…."

"흐윽!"

처, 천사님!

레이아는 비통한 표정으로 식당을 나가버렸다.

"큰일 났네."

사라는 그 모습을 보고 짧게 상황을 평가했다.

"너, 너! 너무한 거 아니냐?"

"지금 구원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와? 사귀자고 하자마자 그 날 바로 자기 여자 엉덩이에 이상한 걸 꽂아놓고, 그 상태로 자기 여자는 방치한 채 다른 여자를 꼬드기려고 한 사람이?"

사라는 입을 삐죽이며 새초롬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응. 미안. 생각해보니 너무한 건 나네.

하지만 이대로 있을 수도 없었다.

사라의 도움은 포기하자. 지금은 우선 디아나와 레이아와 제대로 대화를 나눠야 돼.

어차피 오늘 밤은 디아나와 보낼 차례다.

구원은 디아나는 밤새 듬뿍 얘기를 나누며 설득하면 되니, 우선은 레이아의 방에 찾아갔다.

하지만 레이아는 어지간히 충격받았는지, 아무리 노크를 해도 방문을 열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레이아! 레이아! 문 좀 열어봐! 다시 제대로 얘기를…!"

"저…구원님?"

구원이 레이아의 방문을 두드리고 있자, 뒤에서 한 메이드가 말을 걸어왔다.

"응?"

"레이아님이라면 오늘은 신전에서 주무신다고 하시면서 방금 나가셨습니다."

"…아, 응. 그래. 고마워."

쪽팔린다. 빈방에 대고 필사적으로 외쳐댄 거야?

그리고 신전이라니.

마누라가 싸우고 집나가서 친정으로 가버리면 이런 기분일까?

구원은 참담한 기분을 뒤로 한 채 일단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조금 냉정해질 필요가 있겠어.

레이아를 쫓아가기엔 늦었고, 디아나는 곧 얼굴을 보게 될 거다.

무작정 들이닥치지 말고, 일단 할 얘기를 정리해보자.

일단 내가 진심으로 너희 모두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이해시켜야 돼.

그리고 디아나는 약속 운운도 했었다. 그 약속을 했던 내 마음에 한 점 거짓도 없었다고 제대로 알게 해줘야 한다.

구원은 그렇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하면서 디아나를 기다렸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디아나는 구원의 방에 찾아오지 않았다.

이거 설마….

불안한 예감이 등줄기를 짜르르 울리며 스쳐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설마 레이아에 이어서 디아나도?!

구원은 황급히 디아나의 방으로 달려갔다.

디아나의 방문에는 양옆에 메이드 둘이 나란히 서 있었다.

"디아나는 안에 있어?"

"네?! 네. 그, 그런데요?"

구원이 메이드의 어깨를 잡으며 말하자, 메이드는 화들짝 놀라면서 우물쭈물 대답했다.

다행이다. 디아나마저 어디 딴 데로 가버렸으면 어쩌나 싶었다.

하지만 마냥 안심할 수는 없다.

그렇게 스킬 연구를 중시하던 디아나다. 웬만한 상황이라면 만약 나랑 자는 게 별로라도 스킬 연구 때문에 찾아오긴 했을 거다. 그런데 자기 차례도 무시하고 이렇게 내 방에 찾아오지 않았다는 건, 지금 디아나의 심경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말해주고 있는 거다.

구원은 각오를 다지고, 디아나의 방으로 들어갔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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