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성자-178화 (162/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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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

저택에 돌아오자마자, 사라가 구원에게 달라붙었다.

"구원. 지금부터 할 일 있어?"

"응? 왜?"

"그냥. 구원이 할 일 없으면 같이 있고 싶어서."

어제까지의 사라와 너무도 다른 직설적인 표현에, 옆에서 듣던 디아나와 레이아의 어깨가 움찔하고 떨렸다.

"음…. 그럼 잠깐만 내 방에서 기다릴래? 우선 마법사 협회 사람한테 케이트 얘기부터 좀 해두려고. 얘기 끝나면 곧장 갈게. 어차피 나도 너한테 할 말이 있고."

"할 말?"

"아, 응. 그런 게 있어. 아무튼 다녀올게."

마법사는 디아나를 제외하면 다들 각자 소속된 학파가 있다.

그 중 케이트가 소속된 학파는 화염 마법을 전문으로 다루는 이그니스 학파라고 들었다.

구원은 그 이그니스 학파의 수장을 찾아갔다.

"실례합니다.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음? 별 일이군. 자네가 날 찾아오다니. 무슨 일인가?"

사실 같은 저택에서 살고 있기는 하지만, 구원과 마법사 협회 사람들은 그다지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마주치면 인사를 하는 정도일까.

마법사 협회 사람들은 일단 기본적으로 시선이 디아나를 향해있는 경우가 많고, 디아나가 없을 때도 묘하게 구원을 피하는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디아나가 바네사의 경우처럼 나랑 얽히지 말라고 주의를 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구원도 딱히 마법사 협회 사람들에게 볼 일이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냈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대화를 나눈 적이 거의 없었다.

"사실 부탁이 있어서 말이에요."

"음? 부탁?"

"실은 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마법사가 저택에 묵게 될 것 같은데, 그렇게되면 아무래도 계속 던전에 들락날락 거리는 저희보단 그쪽 분들과 같이 지내게 되지 않겠어요? 게다가 같은 이그니스 학파의 마법사니, 잘 좀 지내달라고 부탁하고 싶어서요."

"과연. 텔루나님의 저택에 낙하산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따돌림 당하지 않도록 보살펴 달라는 얘기인가?"

이 사람도 과연 연륜이 있다 보니 그 정도 속뜻은 바로 읽을 수 있는 모양이었다.

역시 디아나 관련 일이 아니면 그 나이와 위치에 상응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왕이면 마법도 가르쳐주거나…."

"그 말은 제자로 들여 달라는 얘기로 들리네만? 미안하지만 난 철저하게 실력주의라서 말이네. 그런 정체도 알 수 없는…."

"앞으로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던전에서 일주일이상 지내지 않고 돌아오겠다고 약속드리죠."

"일단 실력 파악 정도는 해보지."

그래봤자 디아나 관련이 되면 이렇게 돼버리지만.

역시 디아나가 던전에만 가면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는 게 싫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이그니스 학파의 수장과 딜을 만족스럽게 성공시키고, 구원은 바네사를 찾아갔다.

"그런 고로. 케이트란 애가 오면 방 하나 내줘."

"…디아나님은 허락하신 겁니까?"

"여긴 내 클랜 하우스니까 맘대로…아니 미안. 디아나한테도 이미 얘기해뒀어."

구원은 허세를 부려 보려다가 바네사의 날카로운 눈빛을 보고 바로 포기했다.

결코 얘한테 힘으로 질 것 같아서 그러는 게 아니다.

바네사의 충성심을 높이 사서 져줬을 뿐이다. 난 친절하니까 말이지.

"디아나님이 허락하셨다면…알겠습니다."

그렇게 케이트 관련 조치를 모두 끝내고, 구원은 자신의 방에 들어갔다.

사라가 침대에서 뒹굴 거리고 있다가, 구원이 들어가자 파바박 소리를 내면서 일어났다.

"구, 구원. 왔어? 얘기는 잘 끝냈고?"

"…너 거기서 뭐했냐?"

"뭐, 뭐가? 아무것도 안했는데?"

눈을 돌리고 딴청을 피우는 게 무진장 수상했지만, 뭐 이번엔 넘어가자.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얘기가 있었다.

"사라. 할 얘기가 있어. 거기 앉아봐."

"뭐, 뭐야. 갑자기 또 무게 잡고."

사라는 의아해하면서도, 얌전히 침대위에 앉았다.

"너…용사지?"

구원은 드디어 사라에게 이 질문을 했다.

지금까지는 언젠가 사라 스스로 밝힐 거라고 생각하고 조용히 있어줬다. 하지만 사라의 목적이 마왕 토벌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확인할 필요가 생겼다.

"어, 어떻게 알았어?"

"지금까지 말 안하고 있었지만, 난 사실 다른 사람의 레벨과 직업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있어."

"뭐?! 그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니. 그땐 아직 능력 개발이 덜 돼서 레벨밖에 몰랐어. 네 직업을 알게 된 건 한참 후야. 아무튼 그래서, 너 용사 맞지?"

"으, 응…. 미안. 계속 말 하려고 했는데, 한 번 타이밍을 놓치고 나니까 계속 말 할 기회가 없어서."

"아니. 괜찮아. 사과할 필요는 없어. 그보다 궁금한 게 있는데."

"응? 뭔데?"

"너 대체 왜 용사인 건데?"

"엣? 뭐, 뭐라고?"

"그러니까 왜 용사냐고."

"왜 용사냐고 물어봐도…. 그게 무슨 소리야?"

"용사라면 보통 마왕 토벌이 목적이잖아! 그런데 이 세계는 마왕도 없다고 하고! 그럼 용사는 대체 뭐 하러 있는 건데?!"

"나, 나한테 물어봐도 몰라, 그런 거! 왜 갑자기 그렇게 열을 내?"

"네가 용사란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내가 마왕 토벌을 준비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뭐어?!"

구원의 말에 사라는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구원을 쳐다봤다.

그러다가 이내 눈이 점점 더 가늘어지더니, 못참겠다는 듯이 폭소했다.

"아하하핫! 뭐야 그거? 지금까지 그런 착각을 하고 있었던 거였어? 귀여워!"

"나, 남자한테 귀엽단 말 하지 마! 애초에 마왕 토벌 같은 걸 할 것도 아니면 용사란 건 왜 숨긴 건데?!"

"그치만…할아버지가 그렇게 말했는걸. 용사를 이용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 아버지도 뭔가 안 좋은 일을 당한 모양이고. 하, 하지만 구원한테는 정말로 말 하려고 했어! 그런데 뒤늦게 밝히자니 조금 쑥스러워서…."

"…그런가. 결국 마왕은 정말로 없는 건가…."

"풉!"

"웃지 마!"

"아, 알았어. 아, 안 웃을…게."

야. 용사가 있는 세계에 떨어져서 마왕이 있을 수도 있다고 착각하는 게 그렇게 웃기냐?

사라는 얼굴이 시뻘게지고,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겨우 웃음을 참았다.

"후우. 후우. 그래서, 할 얘기는 이걸로 끝이야?"

"그래."

"그럼 나랑 같이 나가자."

"응? 어딜?"

"그냥 여기저기. 우리 정식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첫 날이잖아? 나, 구원이랑 데이트 하고 싶어. …싫어?"

"그럴 리가! 지금 바로 나가자!"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사라의 솔직한 모습에, 구원은 두말할 것도 없다는 듯이 사라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같이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맛있어 보이는 게 있으면 먹으면서 평범한 데이트를 즐겼다.

사라는 지금까지의 쿨한 모습은 가면에 불과했다는 것처럼, 행복한 미소를 띠고 구원과의 데이트를 즐겼다.

반말도 그렇고, 저 미소도 그렇고, 사람이 갑자기 저렇게 변할 수가 있구나.

어쩌면 할아버지의 복수라는 짐을 내려놓고, 드디어 진짜 사라의 모습이 드러난 건지도 모르겠다.

남을 경계하는 쿨한 모습이 아니라, 저렇게 환하게 웃을 줄 아는 모습이 사라의 원래 모습일지도.

환하게 웃는 사라는 정말로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워서, 구원은 그 모습을 직시하기 힘들 정도였다.

지금까지 사라와 계속 함께 다녔던 구원마저 이런 거다. 다른 남자들의 시선도 사라에게 집중되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구원과 사라가 액세서리 가게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있었을 때, 용기 있는 남자가 한 명 등장했다.

가게의 종업원인 그 남자는 사라의 미모를 칭송하며 이것저것 액세서리를 추천하기 시작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꼬셔보려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냥 사라가 너무 예쁘다보니 대화라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느낌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구원은 우월감에 젖었다.

봤냐? 이게 바로 내 여자야.

그리고 사라로 말할 것 같으면….

"필요 없어요."

"하지만 손님. 손님 같은 분께는…."

"이봐요. 제 말 안 들려요? 필요 없다고요. 괜히 방해하지 말고, 다른 손님한테나 신경 쓰시죠?"

"…네, 네. 죄, 죄송합니다."

구원과 보내는 둘만의 시간이 방해받아서 짜증이 난 모양이다. 원래 다른 남자상대로는 유독 쿨한 사라지만, 이번엔 쿨한 걸 뛰어넘어 살벌한 모습으로 종업원을 쫓아냈다.

방금까지 구원을 향해 방긋방긋 웃던 여자가 자신을 오물이라도 보는 듯이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쏘아붙이자, 종업원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그 자리를 뒤로 했다.

"구원. 이건 어때?"

그리고 사라는 다시 구원을 바라보고 방긋 웃으며 머리핀을 집어 들었다.

"무, 무서워…."

"응? 뭐가? 이게?"

사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머리핀을 바라봤다.

아니. 머리핀 말고, 네가 말이야. 네가.

역시 나를 대하는 태도가 변했어도, 사라는 사라였다.

환하게 웃을 줄 아는 모습이 사라의 원래 모습이기는 무슨. 쟨 쿨한 게 원래 모습이고 내 앞에서만 특별한 거였어.

뭐, 내 입장에선 전혀 나쁠 거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사라와 액세서리를 구경하던 도중, 구원은 한 가지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특별할 것 없는, 그냥 흔하게 생긴 진주 목걸이였다.

하지만 구원이 주목한 건 그 목걸이가 외관 때문이 아니다.

아니. 어떤 의미론 외관 때문이 맞지만, 구원이 주목한 이유는 좀 더 기능적인 측면 때문이다.

"사라. 잠깐만 여기 있어. 점원한테 뭐 좀 물어보고 올게."

"응? 뭘?"

"그런 게 있어. 아무튼 다녀올게."

구원은 가게 안의 점원에게 다가가, 자신이 생각한 모양의 액세서리를 주문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

"네? 물론 가능이야 합니다만, 그런 걸 대체 어디에 쓰시려고…."

"그건 알 것 없고요. 아무튼 되는 거죠? 그럼 그렇게 만들어 주세요. 외관상 예쁘게 만들기보다는, 최대한 튼튼하게 만들어주세요. 얼마나 걸리나요?"

"말씀하신 대로 바꾸는 건 간단한 작업이니,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아마 30분 정도면 가능 할 것 같은데, 그럼 그렇게 만들어드릴까요?"

"네. 부탁드립니다."

"네. 그럼 제작이 완료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구원은 종업원에게 액세서리 제작을 의뢰하고,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사라에게 돌아왔다.

"꺼지시죠."

"히이이익!"

그 사이에 또 한명의 희생자가 나온 모양이다.

"앗, 구원 왔어? 무슨 얘길 하고 온 거야?"

"응? 아니. 그런 게 있어."

구원은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스스로의 입 꼬리가 씨익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왠지 미소가 음흉해."

…너 진짜 날카롭구나.

"그, 그래? 네가 너무 예뻐서 그런가?"

"피이. 바보."

사라는 부끄러운 듯이 구원의 가슴을 살짝 때리며 말했다.

크흑. 가슴을 울리는 공격이다.

물리 공격과 정신 공격이 복합된 고도의 기술이었다.

봤냐? 얘가 이런 애가 애인이야! 부럽냐?!

참고로 정신 공격은 말 할 것도 없고, 물리 공격 쪽도 꽤나 먹혔다.

…물리적으로도 가슴이 울렸어.

성자가 성행위 전반에 버프를 받는 것처럼, 용사란 것도 전투와 관련된 행동 전반에 전부 버프를 받는 것 아닐까? 이런 가벼운 공격이 내 방어력을 흔들다니….

사라와 사귀기 위해서, 튼튼한 몸은 기본인 모양이다.

액세서리 가게에서 사라 몰래 특별히 주문한 물건과, 그리고 또 몇 가지 액세서리를 사고 나서 가게를 빠져나왔다.

그렇게 사라와 조금 더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세시가 다 되가는 무렵에 저택으로 돌아왔다.

아직 시간이 한참 있는데 왜 벌써 돌아왔냐고?

그야 사라와 내 의견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역시 사귀기 시작한 첫 날인데, 아침에 그건 너무 어중간했지."

"피이. 변태."

"뭐야?! 너도 동의해서 이렇게 일찍 돌아온 거잖아! 내가 변태면 너도 변태다!"

구원은 그렇게 말하면서 사라를 침대에 던지고,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꺄아악! 변태한테 습격당해!"

사라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목소리는 즐거운 것 같았고, 몸도 살짝살짝 비틀어서 구원이 벗기기 쉽도록 만들어주고 있었다.

사라. 이 앙큼한 계집애 같으니라고.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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