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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 성자-173화 (157/1,205)
  • 173====================

    복수

    그로부터 며칠 후.

    "하아…죽고 싶다."

    포츠가 우울한 표정으로 술을 들이키며 중얼거렸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무슨 일인데 이러고 있는 거야? 죽고 못 살던 여자 친구는 어디가고 혼자서."

    포츠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앉은 구원은 시치미를 떼고 물어봤다.

    장소는 2계층 여관의 식당.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구원은 식당에 홀로 앉아서 술을 들이켜고 있는 포츠를 발견했다.

    구원 일행이 식사를 마친 이후에도 포츠는 죽기 일보 직전의 표정으로 계속 술을 마시고 있었기 때문에, 구원이 포츠의 테이블을 찾아온 거다.

    "그 케이트가 문제라고오오오! 으아아아! 케이트으으으!"

    시끄러 인마. 취했다고 소리 지르지 마라.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너와 케이트 사이가 문제란 건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어. 모를 리가 없잖냐. 내가 그렇게 만든 건데.

    뭐, 이 멍청한 놈은 상상도 못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케이트의 바람 의혹이 불거지기 시작한 건, 내가 놈들의 방문을 두드리고 케이트와 눈빛을 주고받았을 때부터다.

    그렇게 힌트를 줬는데도, 이 멍청한 놈은 날 전혀 의심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딱히 날 믿는다기보다는, 지금 이 상황의 시발점이 그때라고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고 할까?

    때문에 놈은 이렇게 나에게도 아무렇지 않게 푸념을 늘어놓는 거다.

    아무튼 그날 이후로도, 구원과 케이트는 포츠의 의심을 증폭시키기 위해 다양한 행위를 해왔다.

    일단 케이트는 포츠와 잠자리를 가진 이후에는 무조건 구원을 찾았다. 심지어 내가 딴 놈이 싼 곳에 박는 건 싫어한다는 걸 알자, 그 이후로 포츠가 싸는 건 전부 입으로 받아 주고 있다고 했다.

    이 세계에서 입으로 해주는 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행위. 때문에 포츠는 케이트를 의심하면서도 한편으론 믿고 있다는 복잡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덤으로 케이트를 제대로 만족시켜주지도 못하고 있어서, 요즘 제대로 레벨도 못 올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게다가 포츠가 식당에서 분위기를 잡으며 키스를 하려고 했을 때, 키스를 하기 전에 빠져나와 구원의 물건을 입으로 빨아준 적도 있었고. 심지어는 딱 한 번뿐이지만 구원이 안에 싼 직후에 그대로 포츠에게 가서 안긴 적도 있었다.

    솔직히 케이트의 안에 쌌을 때는, 우리끼리 결전의 날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포츠는 멍청하게도 스스로 허리를 흔드는 도중 케이트와의 결합부에서 거품 섞인 하얀 액체가 나오자, 케이트가 너무 느끼는 바람에 진한 애액을 흘리는 거라고 착각을 해버렸다.

    당연히 포츠는 오히려 더 좋아하며 날뛰었고, 그 멍청한 모습에 천장위에서 포츠와 케이트를 지켜보고 있던 구원과 사라는 맥이 빠져서 그냥 구원의 방으로 돌아와 섹스나 했다.

    아니. 딴 놈이 안에 싼 정액을 보고 착각해서 오히려 의심이 줄어든다니. 말이 돼?

    포츠 녀석이 생각보다 훨씬 더 멍청한 까닭에 구원과 케이트의 행위는 점점 더 에스컬레이트할 수밖에 없었고, 겨우 포츠와 케이트의 관계를 점점 더 삐걱대게 만들 수 있었다.

    그 닭살 커플이, 이제 와서는 매일 만나면 싸움이 끊이지 않는 매일을 보내고 있을 정도로 말이다.

    아무튼 그렇다보니, 인생이 케이트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포츠 입장에선 지금 죽을 맛인 거다. 계속해서 사랑하는 케이트와의 관계가 삐걱대고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놈의 케이트를 향한 마음은 진심인지, 케이트를 의심하는 자신에게 자괴감 같은 것마저 갖고 있는 모양이었다.

    의심이 아니라 사실이지만 말이다.

    녀석의 얼굴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피폐해져갔고, 이대로 가면 우리가 아무 손을 안 써도 자살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자살을 하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꼴이다 싶었지만, 그래도 좀 더 확실하게 가야겠지.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럴 기회라고 생각됐다.

    마침 오늘 밤은 사라의 차례. 일을 벌이기에 딱 좋은 날이다.

    구원 일행도 슬슬 도시로 한 번 올라갈 때도 됐으니, 더 길게 끌 것도 없다.

    이렇게 놈의 정신을 갉아먹어 놨으니, 이제는 뛸 듯이 기쁘게 만들어 줄 차례다.

    "뭐. 그 여자 친구가 어쨌는데?"

    "오히려 내가 묻고 싶어! 요즘 잠자리에서 케이트도 엄청 느끼고 있고, 상성도 점점 더 좋아져서 케이트의 안은 그 어느 때보다 최고고, 지극 정성으로 나한테 봉사해주고, 그런데 왜 요즘 그렇게 의심되는 행동을 하는 거냐고! 게다가 걸핏하면 화를 내고! 방금도…."

    그러니까 화를 내는 거다 멍청한 놈아.

    케이트가 엄청 느끼는 게 아니라, 나한테 느끼고 갔으니 만족한 표정을 짓는 거고, 상성이 좋아진 게 아니라 내가 안에 한 번 싼 덕분에 케이트의 레벨이 올라서 좋게 느껴지는 거고, 지극 정성으로 봉사하는 게 아니라 네가 안에 못 싸게 하려고 입으로 해주는 거다.

    "쯧쯧. 여자 친구 자랑을 그렇게 해대더니 결국 하나 있는 것도 관리를 못하냐? 이 형님을 본받아라. 이 형님은 셋이나…."

    "염장질 할 거면 꺼져!"

    이 새끼가 자기는 지금까지 만날 때마다 실컷 나랑 비슷한 짓을 한 주제에….

    하지만 참아준다.

    "후우…. 잘 들어라. 셋이나 데리고 다니면서 아무 문제없이 화목하게 지내고 있는 이 형님께서 불쌍한 네 놈에게 조언 한 가지 해주지."

    "…뭔데."

    놈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지, 구원의 거들먹거리는 말투에도 간절한 눈빛을 보내왔다.

    "살다보면 여자와의 사이가 조금 틀어질 수도 있어. 하지만 끊을 수 없는 진정한 유대가 있다면, 그것도 결국 한 순간의 해프닝에 불과하지. 지금 케이트와의 사이가 삐걱거리는데 그 이유를 모른다면, 그 알 수도 없는 이유를 어떻게든 알아보려고 하는 것보단 진정한 유대를 형성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는 말이지."

    구원은 마치 연애 박사라도 된다는 듯이 떠들어댔다.

    원래 이런 건 말만 그럴듯하게 하면 어떤 헛소리를 해도 그럴듯하게 들리는 법이다. 특히 취한 놈 상대로는 더없이 효과적이지.

    "그 네가 말하는 진정한 유대라는 게 뭔데?"

    "멍청한 놈. 남녀 사이에 헤어질 수 없는 진정한 유대가 뭐 얼마나 있겠냐?"

    "…그렇군! 케이트를 임신시키면 되는 건가! 아, 하지만 아직 피임 마법이…."

    "멍청한 놈아! 네 머릿속에는 그딴 생각밖에 없냐?! 임신시키기 전에 해야 될 게 있잖아!"

    "뭐? 해야 될 거?"

    "프러포즈 말이다. 프러포즈!"

    구원의 외침에 포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뭔가 깨달은 얼굴이 됐다.

    "프러…포즈…!"

    "내가 살던 세계에선 제대로 성공한 프러포즈 하나로 결혼생활 평생이 행복해진다는 말이 있지. 여자들은 원래 그런 거에 껌뻑 죽는 법이거든. 평생 자신만을 바라보며, 평생 책임지겠다는 진실한 마음을 담은 로맨틱한 프러포즈. 아무리 요즘 너희 둘 사이가 삐걱대고 있다고 해도, 케이트가 널 좋아한다는 건 변함이 없을 거 아냐? 그럼 로맨틱한 프러포즈 한 방으로 너희 둘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든 간에 전부 해결될 거다."

    "그런가…! 그런가…! 아, 하지만…."

    "응? 또 뭐가 문젠데? 설마 아직 결혼할 맘이 없다고 하려는 건 아니겠지? 너 그렇게 좋아 죽으면서 정작 결혼할 생각은 없다니 그거 완전…."

    "아냐! 당연히 결혼하고 싶지! 하지만 돈이…."

    "…너 지금까지 벌어둔 돈은 뒀다가 어디에 썼냐?"

    2계층에 다닐 정도의 모험가라면, 당연히 버는 것도 상당한 수준이 된다.

    당연히 모아둔 돈도 있을 거다. 이 멍청한 놈 혼자라면 모를까, 케이트도 붙어있는데.

    "난 한 순간 한 순간을 최대한 즐기며 살아간다고! 당연히 모은 돈 같은 건 없다!"

    "그게 자랑이냐. 케이트가 그걸 그대로 내버려 뒀어?"

    "당연하잖아. 어차피 수입 대부분은 케이트가 관리하고 있고, 내가 쓰는 돈은 다 쓰라고 준 용돈이니까 아무 문제없었지."

    용돈 받아서 사는 처지였냐.

    이거 완전히 꽉 잡혀 살고 있었네.

    "…좋아. 반지 살 돈 정도는 빌려주지."

    "뭐?! 정말로?!"

    "그래 인마. 친구 좋다는 게 뭐냐?"

    "너, 너…좋은 놈이구나!"

    포츠는 구원의 두 손을 힘껏 움켜잡았다.

    손 떼라. 땀내 나는 사내새끼랑 스킨십할 생각 없다.

    특히 너 같은 쓰레기와는 더욱더.

    "그래서. 얼마면 되는데?"

    "헤헷. 이왕이면 많이…."

    놈이 비굴하게 두 손을 맞잡은 모습을 보고, 구원은 쿨하게 인벤토리에서 금화를 한 움큼 꺼냈다.

    어차피 돈이야 다시 회수할 수 있을 거고, 이정도 쯤이야 뭐.

    "자. 가져가라."

    "이, 이렇게나?!"

    "주는 게 아니라 빌려주는 거니까 나중에 반드시 갚아라."

    "다, 당연하지! 걱정 마! 내가 케이트랑 잘 되면 평생 은인으로 모시면서 배로 갚을게!"

    "오냐. 그럼 얼른 갔다 와라. 제대로 된 반지를 사려면 위로 올라갔다 와야 할 것 아냐? 얼른 안 가면 오늘 안에 못 온다."

    "그, 그렇지! 그럼 난 이만!"

    포츠는 언제 죽을 것 같은 얼굴이었냐는 듯이, 희망의 끈을 잡은 듯 환한 미소를 지은 채 여관 밖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저 미소가 포츠가 지을 마지막 미소가 될 거다.

    실컷 웃어둬라. 이제 이 앞으론 절망스런 미래밖에 남지 않았으니.

    구원은 일단 지금 일어난 일을 설명하기 위해 사라의 방으로 찾아갔다.

    "…그렇군요. 그럼 드디어…."

    "그래. 드디어야."

    "…알겠어요."

    어차피 놈이 반지를 사고 오려면 꽤나 시간이 걸릴 거다.

    구원은 사라와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충분히 얘기해서 말을 맞추고 난 후, 포츠의 방으로 향했다.

    포츠는 혼자 식당에서 마시고 있었지만, 케이트가 어디 간 건 아닐 거다.

    오히려 한바탕 싸우고 포츠가 방에서 쫓겨난 거라고 보는 게 맞겠지.

    구원은 노크도 없이 바로 문을 열어봤다.

    생각대로 문은 잠겨있지 않았고, 그 안에는 케이트가 혼자 있었다.

    "포츠 당시…구, 구원씨!"

    문이 열리자마자 케이트는 짜증스런 표정으로 뭔가를 외치려다가, 구원의 얼굴을 보고 바로 표정을 바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연기 엄청나네…."

    "뭐, 그렇죠. 그래서 무슨 일이에요?"

    "드디어 때가 됐어."

    "그렇군요. 그럼…."

    "그래. 계획대로 일단 포츠의 청혼을 받아줘. 그리고 있는 힘껏 행복하게 해줘. 부탁할게."

    "하아…. 역시 그런가요. 뭐, 좋아요. 대신. 알고 있겠죠?"

    "그래. 잊을 수 없는 쾌락을 맛보게 해줄게. 그럼 나중에."

    나는 그렇게 말하고. 문을 열었다.

    고작 이런 말만 하고 나가려는 거냐고? 물론 아니지.

    내가 연 건 이 방에 딸린 욕실의 문이다.

    그리고 욕실에서 난 꽤나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젠장. 너무 빨랐나. 아니. 그래도 늦는 것보단 낫지.

    오랜 계획의 끝이 드디어 찾아온 거다.

    몇 시간이고 기다려주겠어.

    "케, 케이트!"

    "시끄러워! 뭐야?! 갑자기 소리나 지르고!"

    욕실 문에 귀를 대고 있자, 둘의 대화소리가 내게도 또렷하게 들려왔다.

    "케이트. 할 말이 있어."

    "뭐야?! 당신 또 뭘 저질렀어?"

    "그게 아냐. 들어줘 케이트."

    케이트의 앙칼진 반응에도, 포츠는 굴하지 않고 여느 때와 달리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동안 많이 생각해봤어. 갑자기 우리 사이가 왜 이렇게 됐는지."

    "그거야 당신이 항상항상항상 사람을 의심하니까 그런 거잖아?!"

    "맞아. 내 믿음이 부족했어. 그리고 내가 너무 믿음직스럽지 못하기도 했지. 하지만 케이트. 이해해줘. 그런 의심조차도 다 널 사랑했기 때문에 그런 거였어."

    "그런 입 발린 소리, 누구라도…!"

    "그러니까 케이트. 나와, 아니. 저와 결혼해주세요. 지금부턴 어떤 순간에도 난 널 믿고, 그리고 또 네가 믿을 수 있는 남자가 되고 싶어. 앞으로 계속. 쭉 너와 함께 지내면서."

    "아……!"

    오오. 잘 했다. 포츠.

    내 조언을 반쯤 배끼긴 했지만, 그래도 뭐, 나름 훌륭한 프로포즈였다고.

    축하한다. 진심으로 말이야.

    지금 이 순간 네 행복을 가장 바라고 있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사라와 나일 테니까.

    "다, 당신…정말로…."

    "그래. 앞으로 다신 널 의심하지 않겠어. 그러니까 케이트."

    의혹이 있고 아무 것도 판명되지 않았는데 성급하게 ‘다신 널 의심하지 않겠어.’라니.

    뭐, 네가 그렇게 멍청하니까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리기는 하는 거지만 말이야.

    "나와…겨, 결혼 해주겠어?"

    놈은 답지 않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케, 케이트?!"

    "지금까지…괜히 화내고 해서 미안해…. 나…당신이 날 그렇게까지 생각해줄 줄은…!"

    "케, 케이트! 그, 그럼…!"

    "네. 저도 당신과 결혼하고 싶어요!"

    "케이트!"

    저런 행복해 보이는 목소리라니.

    아마 천장에서 보고 있을 사라는 당장이라도 쳐죽이고 싶을 정도로 분노하고 있겠지.

    "그리고…나 당신에게 또 하나 고백할 게 있어."

    …응? 잠깐만. 뭐야. 고백이라니. 이런 건 예정에 없었는데?

    "지금까지 내가 계속 화냈던 이유는…."

    잠깐만! 씨발! 설마 배신할 생각은 아니겠지?!

    난 욕실 문을 박차고 나가려고 했지만, 그것보다 케이트의 말이 조금 더 빨랐다.

    "당신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기 때문이었어."

    ……응?

    "뭐, 뭐? 케이트?! 정말이야?!"

    "…응. 실은 피임 마법을 날짜를 잘못 계산해서…. 왠지 요즘 식욕이 없고, 계속 짜증이 나고, 그래서 검사를 해봤는데…. 나 당신 이외에 다른 남자와는 관계를 맺은 적도 없고…."

    "그, 그럼…!"

    "응. 그러니까 내 배에는…당신과 나 사이의 아이가 있는 거야."

    "케, 케이트으으!"

    어휴. 놀래라. 진짜 깜짝 놀랐네.

    케이트 저 녀석. 그런 애드리브를 할 거면 좀 미리 말해달라고.

    설마 내가 지금까지 해온 애드리브에 대한 복수는 아니겠지?

    하마터면 뛰쳐나갈 뻔 했잖아.

    "케이트! 사랑해!"

    "응. 나도. 와 줘…."

    "어, 어?! 하지만 아이가…."

    "괜찮아. 오히려 며칠 지나면 그때부터 못하게 될 걸? 그러니까 지금 충분히 해둬야지. 무엇보다…이런 날 안하면 언제 하겠어?"

    "케이트으으으으!"

    포츠는 목소리만 들어도 행복해 죽을 것 같다는 게 전해져오는 목소리로 케이트의 이름을 불렀다.

    ============================ 작품 후기 ============================

    쿠폰, 추천,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고솜히 // 구원의 방입니다. 케이트가 전에 항의하러 온 적이 있기 때문에 구원의 방이 자신의 방 옆방이란 걸 알고 거길 노크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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