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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
포츠 방패의 효과로 무사히 위기를 넘긴 일행은 다시 그 비밀 던전, 일명 개미굴로 향했다.
어제의 실패를 교훈삼아 제대로 전략만 짜면, 이 개미굴은 그 어느 곳보다 훌륭한 사냥터였다. 몬스터 웨이브처럼 계속해서 몰려나오는 적들을 그저 때려잡기만 하면 되는데다가, 여차할 땐 도주도 용이하니 말이다.
전략이라고 해봤자 거창한 걸 생각한 건 아니다.
그냥 사라와 디아나, 레이아는 입구 쪽에 있고, 구원은 셋에게 닿지 않는 범위까지 전진하여 성역 선포를 사용하는 게 전부다.
성역 선포의 범위를 조절할 수 있다고 해도, 범위를 줄여버리면 성역에 닿지 않아서 후위 쪽으로 빠져나가는 몬스터들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니 아예 구원이 멀찍이 떨어져 최고 범위로 성역 선포를 사용하는 게 낫다는 계산이다.
그리고 디아나는 빛을 만들어 시야만 밝혀주고, 공격 마법의 지원은 하지 않기로 했다.
한 번에 소탕하려는 게 아닌 이상, 굳이 디아나까지 공격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디아나의 임무는 시야를 밝히는 것과, 모기의 꼬리를 들고 있다가 구원이 신호를 하면 바로 통로를 여는 것으로 한정했다.
일행들과 거기까지 말을 맞추고, 구원은 다시 개미굴로 향하는 통로를 열었다.
어제와는 다르게, 구원이 앞장서서 내려가자마자 갑자기 개미들이 맹렬하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거. 이놈들 단체로 왜 이래.
생각해보니 대답은 간단했다. 어제 성역의 영향을 받았던 놈들이 구원을 보자마자 달려든 거다. 현재 놈들의 상태는 발정 상태로 하루 동안 방치 당했던 케이트랑 비슷한 상태다.
개미 몬스터들이 발광하는 걸 보니, 구원은 살짝 케이트한테 미안한 감정이 생겼다.
하루 종일 방치당하면 이정도 수준이구나.
바네사는 레벨이 높아서 그나마 멀쩡한 거였어.
아무튼 여기서 녀석들을 일일이 때려잡을 수는 없다.
구원은 우선 이 공간의 중앙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리고 개미떼들에게 둘러싸여 치열한 혈투가 벌어졌다.
적당히 개미들과 싸우다가, 정기가 소모되면 디아나에게 신호를 보내 통로를 열고 빠져나간다.
그리고 휴식을 취하면서 정기가 전부 회복되면 다시 개미굴에 들어간다.
참 간단하면서도 효율적인 루틴이다.
그리고 우리 파티는 정기를 회복하는 것도 빠르다보니, 그 효율은 훨씬 더 상승했다.
"그런데 디아나. 마나를 전달할 땐 원래 이렇게 찰싹 붙어있어야 하는 거야?"
"다, 당연하지 않나! 그럼 이 몸이 좋아서 자네에게 달라붙어있는 걸로 보이나?"
그렇지?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물론 디아나가 찰싹 달라붙어있는 게 싫은 건 절대 아니다.
옆에선 레이아 누님이 치료를 해준다면서 쓰다듬어 주시고, 앞에선 디아나가 찰싹 달라붙어있다니. 오히려 행복한 순간이다. 아무리 휴식중이라고는 해도, 사냥 중에 이런 행복한 경험을 해도 되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행복한 순간이다. 다만….
사라야. 눈이 무섭다.
구원이 디아나에게 굳이 물어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냥 노닥거리는 게 아니라 필요에 의한 행동이란 게 밝혀졌으니 방해도 못하고, 사라는 그냥 구원은 노려보기만 했다.
안 그래도 질투심이 강한 앤데, 갈수록 더 강해지는 것 같단 말이지.
아무튼 그렇게 개미굴에서 사냥을 하다가 여관으로 돌아왔다.
효율적으로 사냥을 할 수 있다 보니, 굳이 전처럼 밤늦게까지 사냥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에 사냥을 마치는 시간은 평소보다 조금 더 이른 시간이 됐다.
식당에서는 또 포츠와 마주쳤는데, 놈은 아직도 피골이 상접해있었다.
아직 회복을 못한 건지, 아니면 그사이에 또 케이트한테 시달린 건지.
혹시 케이트, 의심받지 않으려고 평소보다 포츠와 더 관계를 맺거나 그러는 건 아니겠지?
아무튼 저 모습을 보아하니 사냥도 제대로 못한 것 같고, 저러다가 그냥 위로 올라가버리는 거 아냐?
그러면 케이트도 따라서 위로 올라가 버릴 텐데.
이왕이면 그 전에 케이트와 제대로 다시 한 번 얘기를 해보고 싶은데 말이야.
얘들이 위로 올라가 버리면 언제 다시 이렇게 얘들을 만나게 될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케이트도 아마 포츠와의 애인 행세를 그만둘 테고, 지금까지 진행해왔던 일들이 전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걱정을 할 필요 없이, 케이트가 결단을 내리는 건 구원의 생각보다도 훨씬 빠른 타이밍에 이루어졌다.
그 결단은 포츠의 한 마디에 의해서 촉발되었다.
"아무래도 일단 위로 올라가야겠어."
"그게 무슨 소리냐?"
디아나와 진한 밤을 보내고, 구원은 먼저 식당에 내려와 있었다.
식당에는 여전히 피골이 상접한 포츠가 스프를 깨작이고 있었다.
놈은 구원을 보자마자, 딱히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자랑하듯이 그런 말을 했다.
"우리 케이트가 요즘 나를 너무 사랑해서 말이야. 안 되겠어. 일단 위로 올라가서 확실히 사랑해주지 않으면."
아무래도 이런 꼴이 돼서도 여자 친구와의 관계는 자랑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정작 그 여자 친구는 구원과 눈도 못 마주치면서 우물쭈물 대다가, 포츠의 발언에 화들짝 놀랐다.
"잠깐. 포츠. 위로 올라간다고?"
예전 같았으면 남들 앞에서 무슨 소리냐고 핀잔을 줬을 텐데,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반응이었다.
"그래. 이런데서 이러지 말고, 위로 올라가서 진득하게 하자고. 케이트도 그게 낫지?"
"그, 그야…으, 으응…."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놈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후, 어떠냐는 듯이 구원을 쳐다봤다.
어떻긴 뭘 어때. 저 반응을 보고도 그런 표정이 나오냐?
케이트 쟤 위로 올라간다고 하자마자 내 눈치 엄청 살피고 있는데. 누가 봐도 나랑 멀어지는 게 싫어 보이는 반응이다. 아니. 그 이전에 너랑 있는 게 어색한 반응이라고. 좀 눈치 채라.
하지만 포츠 녀석은 피폐해진 상태라 케이트의 얼굴에 제대로 신경을 못 쓴 건지, 아니면 그냥 멍청한 건지 눈치를 못 챈 기색이었다.
"그래…. 뭐 그러든지 말든지."
아니, 그냥 멍청한 게 맞는 것 같다. 어쩌면 그냥 눈이 장식인 걸지도.
이놈도 눈이 있다면, 내 옆에 절세미인 세 명이 항상 붙어 다니는 걸 봤을 텐데.
아니, 사라나 디아나는 얼굴을 가려서 안보이니 그나마 이해한다.
그런데 우리 천사님 얼굴을 똑똑히 봤을 거 아냐?
그런 미인이랑 같이 다니는 사람한테, 비교적 평범한 자기 여자 친구 자랑을 할 마음이 들어?
쓰레기이긴 하지만, 진짜 저 콩깍지 하나 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놈이다.
저렇게 케이트를 좋아하는 만큼, 더 고통스럽게 될 테지만.
그건 그렇고 이제부터 어쩐다.
쟤들이 그냥 이대로 올라가버리면, 구원으로선 정말로 케이트와 만날 방도가 없어진다.
슬슬 제대로 케이트와 대화를 나눠서 결심을 하게 만들고 싶은데 말이야.
어느 쪽이든 말이다.
케이트가 도와주지 않겠다고 하면, 그건 그거대로 계획을 수정해서 진행시켜나갈 필요가 있으니까.
빨리 결정해주지 않으려나.
"…이봐요."
하지만 구원보다 더 안달이 난 건 오히려 케이트 쪽이었던 모양이다.
구원이 식사 도중에 잠시 화장실에 들르기 위해 자리를 일어났을 때, 타이밍을 보고 있었는지 케이트가 곧장 뒤따라와 구원을 불렀다.
"응?"
"그, 그게…저…저 오늘 위로 올라가는데요."
케이트는 말 꺼내기 어려운 듯 주저주저하면서 입을 열었다.
"응. 아까 들었어. 그때 옆에 있었잖아?"
하지만 구원은 냉정하게 대답했다.
누가 봐도 구원이 바라던 기회가 찾아온 상황이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져야 한다. 주도권을 뺏기면 안 된다.
"그…재촉하지 않는 건가요?"
지금까지 결심을 미룬 건 너잖아.
이제 와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하지만 그런 속마음과는 달리, 구원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응? 내가 왜?"
"하, 하지만…이대로 제가 도와주지 않으면 당신도….."
"전혀. 물론 네가 도와주면 좀 더 쉽게 놈을 절망으로 빠뜨릴 수 있겠지만, 아니면 아닌 대로 다른 계획을 진행해나가면 그만이야. 어차피 위로 올라가면 이렇게 빈번하게 만나기도 힘들 테고. 네가 내 제안을 거절한 걸로 간주하고 일을 진행해나가겠어."
살살 간을 보려고 하는 케이트의 반응을 보고, 구원은 냉정하게 말했다.
얘한테 사실을 대부분 털어놨다고는 하나, 처음에 한 번 관계를 맺은 건 완전히 내가 함정에 빠뜨린 거다.
그거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한 번은 봐줬다. 저번에 결심을 하지 않았는데도 관계를 맺어준 것으로 말이다.
하지만 두 번은 없다. 이 이상 질질 끌려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지.
"읏…그, 그런…. 그, 그래. 그럼 한 번만. 한 번만 더 저와 관계를 맺어 주세요. 그렇다면 확실히 결정을…."
내 반응이 예상 외였던 건지, 케이트는 살짝 안달 난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반응을 보고, 나는 역시나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자긴 결심을 하지 않으면서 계속 이대로 질질 끌어서 나와의 관계만을 이어나갈 속셈이었던 거다.
미안한 마음에 한 번 대가없이 관계를 가져준 게 실패였던 건가.
사람의 마음은 간사한 법이니까 말이야.
그야 대가 없이 계속 쾌락만을 얻을 수 있다면, 그야 최고겠지.
"그렇게 한 번만, 또 한 번만 하다가는 끝이 없어."
케이트를 바라보는 시선이 점점 차가워지는 걸 스스로도 자각하면서도 구원은 냉정하게 말했다.
나는 할 만큼 했다.
포츠를 처리하기 전에 진실을 알려줬고, 선택권도 줬다.
유일하게 얘한테 잘못한 것도 이정도면 충분히 보충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더는 끌려 다닐 필요가 없다.
"하, 하지만…. 그래. 지금 절 만족시켜주면 대신…."
케이트는 어떻게 해서든 나와 더 관계를 가져보려는 것 같았지만, 내 표정이 점점 더 차가워지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는지 목소리가 점점 더 줄어들었다.
"대신…."
"후우…. 결심이 서지 않는 거라면 이 얘긴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하자."
그런 케이트를 바라보다가, 구원이 냉정하게 말했다.
"애초에 왜 그렇게까지 고민하는 건지 모르겠군. 난 꽤나 괜찮은 조건을 제시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읏…고민하는 게 당연하잖아요! 아, 아무리 당신이 주는 쾌락이 좋아도, 포츠가 아무리 쓰레기라도, 제 손으로 살인은…!"
……네? 아니. 잠깐. 뭐라고요?
"자, 잠깐. 그게 무슨 소리야? 살인이라니?"
"당신이 말했잖아요! 그 사람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배신하는 고통을 맞보게 해주겠다고. 그 사람이 사랑하는 제 손으로 직접 그 사람을 죽이라는 거 아닌가요?!"
"아, 아냐! 오해야!"
대체 무슨 착각을 하는 거야. 얘가 사람을 쓰레기로 만들려고 하네.
남의 손을 빌려서 죽인다니. 아무리 그래도 관계없는 사람을 그렇게까지 말려들게 하진 않는 다니까.
"오, 오해? 그게 무슨 말이죠?"
"무슨 말이긴. 말 그대로의 의미야. 살인같은 건 생각도 안 했어. 내 말 뜻은 그냥 지금처럼 나랑 바람피우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포츠의 신경을 살살 긁기만 하라는 거였어. 그럼 널 좋아해마지 않는 포츠도 미쳐 날뛸 거 아니야?"
"아, 그, 그런…."
케이트도 그제야 자기가 착각을 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어쩐지 이상하더라! 이미 나와 관계를 맺고, 또 계속 맺으려고 하는 이상 그렇게까지 고민할 일이 아니었는데도!
"하아…그래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물을게. 할 거야 말 거야?"
"저, 정말로 그렇게만 하면, 제 욕구를 채울 때까지 쭈욱 관계를 가져준다는 건가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영원히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지. 나도 언제까지 얽매일 수는 없고. 하지만 적어도 포츠가 처리될 때까지는 계속 관계를 가져주지. 어때? 나쁘지 않은 제안이지?"
얘가 누굴 얽매려고 들어.
아무리 그래도 무기한이란 조건을 내걸 수는 없잖아.
"으윽…. 조, 좋아요. 당신의 제안. 수락하겠어요. 정말로 전 이런 식으로 당신과 관계를 맺으면서 그 남자의 속만 긁어 놓으면 되는 거죠?"
"그래. 가끔 일부러 그럴듯하게 티도 내주면서 말이야. 아, 가끔 내 쪽에서 너와 관계를 원할 때도 있을 거야. 적절한 타이밍에 포츠의 속을 긁기 위해서 말이야. 너도 쾌락을 얻을 수 있는 거니까, 그 정돈 받아줄 거지?"
드디어 계획에 진척이 보인다는 생각에, 구원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단 질문 형식으로 물어보기는 했지만, 굳이 대답을 듣지 않아도 이미 답은 알고 있었다.
케이트는 구원이 원할 때 결코 거절하지 않을 거다.
조건이 포츠를 죽이는 거라고 착각했을 때조차 그렇게 고민할 정도인 거다.
나와의 관계를 피할 리가 없지.
평범한 사람이 살인마저 고민하게 만들 정도로 큰 쾌감을 주는 성자의 능력에 살짝 오싹해지면서도, 나는 겉으론 전혀 속내를 티내지 않았다.
"좋아요. 그 조건, 받아들이죠."
"좋아. 그럼 조건이 성립된 기념으로 한 번 만족시켜주지."
"네? 자, 잠깐만요. 여기에서요?"
"그래. 여기에서. 너도 방금까지 한 번만 더 만족시켜달라고 매달렸잖아? 걱정 마. 너 하나 만족 시키는 데 얼마 걸리지도 않아."
구원은 케이트의 스커트에 손을 집어넣어 곧장 팬티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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